상하이 선화
1. 개요
상하이 선화(上海申花)는 중국 슈퍼 리그에 소속한 프로축구클럽이다. 한국에는 2010년대 초반 첼시의 주전인 드록바와 아넬카를 돈을 뿌려 데려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라이벌팀 상하이 상강과 함께 황사머니 구단의 하나이긴 한데 가성비가 영 신통찮고, 먹튀들에게 자주 호구가 되는 구단이다.
모기업이 제주도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2018년 논란이 된 영리형 병원인 녹지병원이 바로 이 구단의 모기업인 뤼디그룹(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녹지집단)이 투자해 세운 병원인데, 결국 2019년 3월 제주특별자치도 측에서 뤼디 측의 개원시한 연장 요구 수용 불가를 표하면서 허가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베이징 궈안, 산둥 루넝 등과 같이 원년부터 참가하고 있는 전통의 강호 포지션의 구단이지만 근래 성적은 신통치 않으며 같은 연고지인 상하이 상강의 무서운 성장에 밀리면서 현재는 위상이 많이 낮아진 상황.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9 시즌 중반 다롄 이팡에서 경질된 최강희 감독을 선임해 현재까지 지휘봉을 맡기고 있다. 2019 중국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어느정도 과거의 영광을 찾아가는 중이다.
2. 역사
2.1. 초창기 1960~1970년대
1951년 1부리그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뒀으며 1953년, 1954년 연속 3위를 거두었다. 1955년 6위로 잠깐 떨어지기도 했으나 1956년 다시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팀창단 최초로 FA컵 우승을 했다. 1957년 8위를 차지했고 1958년 7위를 기록하면서 잠시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1960년 3위를 기록하고 1961년 팀창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다. 1962년도에도 우승을 하면서 2연속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1963년 11위로 곤두박질 치다가 1964년 준우승을 하면서 다시 부활하나 싶었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에 모든 문화, 예술활동이 금지되고 선수, 감독은 숙청당하는 비운에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9년이라는 긴시간이 지난 1973년 리그참여가 허용되고 당해 상하이는 다시 리그에 참여해 준우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알린다. 1976년에도 조별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그저 그런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2.2. 암흑기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그러나 1977년 부터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1부리그에서 12위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더나 1978년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에 맴돌다가 1979년 9위로 잠시 중위권에 있나 싶더니 1980년 13위로 2부리그 강등을 당하게 된다. 1981년 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여 다시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2.3. 1980년~1990년대
1982년 1부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였고 1983년 3위를 기록하고 1984년 4위 1985년 6위를 1986년 5위를 기록하면서 중상위권 클럽으로 자리 매김 한다. 1987년 3위를 차지하였으나 1988년 6위로 잠시 떨어지더니 1989년 다시 3위를 차지한다.
1990년 4위를 기록하고 1991년 18년만에 1부리그 준우승을 기록한다. 그러나 1992년 5위를 기록하고 1993년 7위를 기록하면서 중위권을 뒤쳐지게 된다. 1993년 상하이는 상하이 지역회사 선화 그룹이 팀을 인수, 창단 선언을 하면서 지아 A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2.4. 지아 A리그
1994년 지아 A리그 원년에는 3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상위권으로 도약했고 1995년 슈퍼컵 우승을 기록하고 라이벌 베이징 궈안을 승점 4점차로 따돌리고 팀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다. 1996년 다롄 스더에게 승점 7점차로 우승을 내줘 준우승을 기록하고 1997년에도 다롄 스더에게 11점차로 우승을 내줘 2연속 준우승을 차지한다. 1998년에는 다롄을 슈퍼컵에서 복수하면서 우승했으나 다롄 스더가 19승 5무 2패 승점 승점 62점을 기록하고 상하이 선화는 11승 12무 3패 승점 45점을 기록하면서 승점 17점 차로 다롄스더 에게 우승을 내주게 되고 3연속 준우승을 차지하자 선화 팬들은 다롄에게 한지 맺히기 시작했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FA컵을 우승했다는게 유일한 위안거리다. 그러다 1999년에는 5위로 떨어지게 되고 2000년에 다시 우승권으로 다롄 스더와 경쟁하게 되었으나 다롄에게 승점 6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된다. 2001년에도 다롄에게 5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준우승만 5번을 기록하게 되 지아A리그 출범이후 최다 준우승팀이 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슈퍼컵에서는 다롄을 상대로 3:1로 복수하면서 슈퍼컵 3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 부터 상하이와 다롄간 경기가 열리면 서포터즈간에 폭력사태는 기본이고, 군대가 주둔할 정도로 치열한 더비매치를 형성하게 된다.
2002년에는 11위로 미끄러지게 돼서 감독을 경질하고 드디어 2003년 8년만에 2번째 우승을 차지했으나 이후 승부조작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
2.5. 중국 슈퍼 리그
2002년 SAV그룹과 상해광전그룹이 인수하였고, 이 체제하에서 2004년 중국 슈퍼 리그에 원년멤버로 참가한다. 2004년 슈퍼리그 원년에는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으로 미끄러지나 했지만 2005년 다시 우승권 경쟁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다롄 스더 강세 때문에 승점 12점 차로 다롄에게 우승을 내줬다. 2006년 산둥 루넝 22승 3무 3패 승점 69점을 기록하면서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지만 상하이는 14승 10무 4패 승점 52점을 기록하면서 17점 승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된다. 베이징, 다롄과 더불어 산둥까지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2007년 신흥재벌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주쥔(朱骏)이 최대 대주주로 들어오면서 소위 황사머니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주쥔은 온라인게임으로 돈을 번 재벌로서 정력적으로 축구단에 투자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이 사람이 조금 괴짜라서 유명 외국 클럽과의 친선전에 자신이 선수로 출전하겠다는 식의 억지를 부려서 중국에서조차 웃음거리가 된적이 있다. 어쨌든 주쥔은 이런 기행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상하이 지역의 다른 팀인 상하이 유나이티드와 선화를 합병시켜 팀 전력을 향상시켰다. 이 당시 A3 챔피언스컵(한국, 중국, 일본 리그 우승팀이 모여 치르는 왕중왕전)에서 당시 K리그 최강팀인 성남 일화를 3-0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07년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면서 잠시 주춤하다가 2008년 산둥 루넝, 베이징 궈안과 다시한번 우승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2점 차이로 산둥 루넝에게 우승을 내줄수 밖에 없었고 상하이 팬들은 산둥 루넝, 다롄 스더 말만 들어도 '''한이 맺히고 원통할 정도를 뛰어넘어 죽이고 싶을정도로에 감정'''을 지니게 된다. 2009년 5위를 기록했지만 라이벌 베이징 궈안이 우승하는걸 지켜봐야 했으며 팬들은 베이징 궈안에 우승을 지켜보며 울화통을 터트린다.
2010, 2011년 모두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자 주쥔은 팀 성적을 올리기 위해 2011년도에 들어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고, 이것이 한국에서 알려지게 된 황사머니의 시초이다. 결국 첼시에서 당시 챔피언스 리그 주전으로 뛰던 니콜라 아넬카와 디디에 드록바를 빼올 정도로 대형 영입을 연속적으로 이루어냈다. 하지만 주쥔의 이런 무리한 투자는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영진의 내분을 일으켰다. 주쥔 본인은 아넬카-드록바를 영입할 때 본인 재산을 썼으니, 구단 지분이 그만큼 더 올라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기타 주주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서 보드진의 균열이 났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아넬카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상태였고, 드록바는 시즌 11경기에만 출전하는 태업을 하여[2] 2012년에도 9위로 마감하는 저조한 성적을 낸다. 이런 고액용병의 효과에 의문을 품은 주주들의 문제제기로 이 두 특급 용병은 2.5년의 계약을 맺었지만 1년만에 중도 해지의 형식으로 팀을 떠났다.
이렇게 돈을 펑펑 쓰고도 처참한 성적을 얻은 2012년에 그동안 상하이 선화를 괴롭혔던 다롄 스더가 공중 분해된게 유일한 위안거리였지만, 2012년부터 마르첼로 리피를 불러온 광저우 헝다가 신흥강호로 자리잡으면서 상하이 선화는 우승권에서 점점 멀어진다. 2013년에는 8위를 기록하면서 시즌을 마감한다.
결국 축구 경영에 흥미를 잃은 주쥔은 2014년 1월 자신의 지분을 모두 뤼디그룹에 매각하고 선화에서 손을 뗐다. 뤼디그룹의 인수는 팬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선화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것으로 무마하였다. 뤼디그룹은 광저우 헝다의 모그룹인 헝다그룹과 마찬가지로 상하이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로 돈을 모은 재벌이었는데, 현지에서 이미지가 별로였는지, 구단 인수시에 팬들이 상당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에는 뎀바 바를 영입해 좋은 활약을 했으나 2016년 리그 경기 도중, 다리뼈가 상대 선수 태클로 제대로 부러져 치료및 재활에 거의 1년이 걸리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팀으로서도 에이스로 활약하던 거액 영입선수가 이렇게 되었으니 착잡할 듯.
그러다가 2017년부터 카를로스 테베스를 새롭게 영입했다는 보도가 BBC 등 주요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메시, 호날두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 주급 제의를 받으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테베스는 원래 폼이 죽었는지 태업인지 거의 비실대고 있었고, 상하이 선화는 성적이 급락하여 2017년 9월 약팀 허난 젠예에 2-1로 패하자 거스 포옛 감독은 사임했다.
2017년 잔여 시즌은 우진구이 대행이 지휘하게 되었고, 리그에서는 11위로 마쳐 하위권을 멤돌았지만, 중국 FA컵에서는 라이벌 상하이 상강을 이기고(1-0, 2-3, 어웨이골 룰 적용) 4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8년 시즌 우진구이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고, 리그 7위, 10승 8무 12패의 무난한 잔류로 평탄한 시즌을 보냈다. 중국 FA컵 우승으로 참가한 AFC 챔피언스리그에선 5무 1패라는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수원 삼성에게 홈에서 2-0으로 진게 가장 뼈아팠다.
2019년 시즌은 명장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를 선임하고 알레상드레 은둠부, 오디온 이갈로 등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으나 15라운드까지 3승 3무 9패의 참혹한 성적으로 14위에 머무르며 결국 자진사임 형식으로 플로레스 감독을 경질했다. 이후 석연찮게 다롄 이팡에서 물러난 최강희 감독을 선임하고[3] 최강희 감독의 애제자인 김신욱과 스테판 엘샤라위를 보강해 8승 6무 16패로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고, 13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또한 FA컵 결승전에서 산둥 루넝에 2차전 합 3대1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거두는 의외의 소득까지 올렸다. 특히 김신욱이 시즌 중간에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12경기 9골의 놀라운 활약을 보이며 팀을 하드캐리했다.
2020 시즌들어 최강희 체제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전북 현대에 부임했던 시절처럼 국대급 베테랑 선수들을 중심으로 리빌딩을 시작하기 위해 전북 현대에서 인연이 있던 펑샤오팅을 영입했고, 한때 중국 No.1 골키퍼였던 쩡청을 임대영입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리그 운영이 불가능해 중립지에서 조별리그로 1차 리그를 벌이는 방식으로 시즌이 진행되었고, 상하이 선화는 A조에 속해 조 4위로 상위 토너먼트에 가까스로 진출했다.이후 B조 1위 상하이 상강과의 상하이 더비에서 아쉽게 승부차기로 지면서 5-8위전에 진출, 충칭 리판에게 지고 7-8위전에서 허베이 화샤를 이겨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특히 주 공격수 김신욱, 스테판 엘샤라위 모두 부상과 부진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던 시즌임을 감안하면 나름 대단한 성과다. 12월에 진행된 AFC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선 초반 2승 1패로 16강 진출의 희망을 높였으나 마지막 3경기에서 1무 2패로 부진하며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21 시즌 준비를 위해 외국인 선수를 대부분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몸값 대비 매우 부진했던 스테판 엘샤라위를 AS 로마에 자유 이적으로 놓아주었고, 에콰도르 공격수 피델 마르티네즈도 영입 3개월만에 리가 MX 팀인 티후아나로 이적했다. 대신 베테랑 미드필더 스테판 음비아와 주장 지오반니 모레노, 한국인 공격수 김신욱을 잔류시켰고 나간 두 선수의 자리는 크로아티아 수비수 마테이 요니치와 카메룬 대표 출신 공격수 크리스티안 바소고그로 메꿨다. 또한 폴란드 대표팀 출신 미드필더 아드리안 미예르제프스키를 영입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경우 스테판 음비아가 팀을 떠날 것이 유력하다.
3. 라이벌
원래 상하이 선화의 최대 라이벌은 베이징 궈안이 아닌 다롄 스더였다. 1996년부터 시작해서 다롄과 힘겨운 우승경쟁을 펼쳐야 했으며 어쩔때는 다롄에게 승점 10점 이상으로 우승을 내줄정도로 다롄에게 열세를 보여왔다. 1996, 1997, 1998 3연속 준우승 할때도 다롄이 있었고 2000, 2001년 2연속 준우승 할때도 다롄에게 우승을 내줘 상하이 팬들은 다롄에게 분노와 열등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경기 시작하기 전부터 살벌한 분위기는 기본이고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주둔했지만 그걸로도 모잘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할정도로 과격하고 폭력이 오가는 더비 매치를 형성했다. 그러다가 2012년 다롄이 공중분해되고 지역 라이벌팀에 합병되자 상하이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는데...1년뒤 다롄 스더 서포터들과 시민들이 나서서 기업을 유치하고 다롄 차오웨라는 이름으로 재창단하고 을급리그에 참여했다. 그리고 2년뒤 갑급리그행. 이제 이 팀이 올라올날도 얼마 안남았다. 거기에 2019년초 팀이 해체가되었다...
다른 라이벌로는 베이징 궈안인데 베이징 궈안과 상하이 선화는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중심적인 도시로서 서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두 도시는 축구에서도 열띤 경쟁을 벌인다. 경기가 시작하기전 살벌한 분위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한적도 있을정도로 과격하고 흉폭할 정도의 응원들이 오가고 폭력이 난무한다. 상하이 선화는 베이징 궈안을 상대로 11승 8무 9패로 약간 우위에 서있다.
2008년 상하이는 원정에서 베이징에게 2:0으로 이겼으나 홈에서는 1:1로 비겼다. 2009년에는 상하이는 원정에서 0:0 홈에서 1:1로 승부를 둘다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2010년 상하이는 베이징 원정에서 1:4로 크게 패했으나 홈에서는 상하이가 베이징 3:2로 이기면서 사이좋게 1승 1패를 기록하게 된다. 2011년에는 상하이는 원정에서 0:3 대패를 했으나 역시 상하이도 베이징 상대로 자기 홈에서 1:0으로 복수하면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2012년도에도 상하이는 원정에서 2:3로 패했으나 홈에서 베이징 상대로 3:1로 이기면서 베이징과 상하이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로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2013년 베이징 궈안과 전적은 15승 11무 12패로 베이징상대로 약간 우세에 있다.
2008년 상하이는 원정에서 베이징에게 2:0으로 이겼으나 홈에서는 1:1로 비겼다. 2009년에는 상하이는 원정에서 0:0 홈에서 1:1로 승부를 둘다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2010년 상하이는 베이징 원정에서 1:4로 크게 패했으나 홈에서는 상하이가 베이징 3:2로 이기면서 사이좋게 1승 1패를 기록하게 된다. 2011년에는 상하이는 원정에서 0:3 대패를 했으나 역시 상하이도 베이징 상대로 자기 홈에서 1:0으로 복수하면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2012년도에도 상하이는 원정에서 2:3로 패했으나 홈에서 베이징 상대로 3:1로 이기면서 베이징과 상하이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로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2013년 베이징 궈안과 전적은 15승 11무 12패로 베이징상대로 약간 우세에 있다.
최근에는 상하이 상강이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상하이 선화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클럽이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구단인데 상하이 상강이 슈퍼 리그로 승격한 뒤로 막대한 투자를 퍼부으며 선화보다 순위가 높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선화팬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상하이 상강 경기 때마다 상대팀 서포터에 합류하며 상강 디스질을 하고있다. 결국 상강의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감바 오사카 원정에서 "상하이를 대표하는 클럽은 선화뿐이다"라는 현수막을 그것도 상강 원정팬들 좌석 바로 앞에(...) 걸어놨다가[4] 분노한 상강팬들과 난투극까지 벌어졌다. 주먹다짐으로 이어진 오사카발 상하이 더비
두 팀의 팬층은 미묘하게 다른데, 상강은 신흥 부호들과 유럽 축구에 눈을 뜬 젊은 팬들이 많은 반면 선화는 순수 상하이 거주민과 나이가 있는 중국 골수 축구팬 중심이다.
두 팀의 팬층은 미묘하게 다른데, 상강은 신흥 부호들과 유럽 축구에 눈을 뜬 젊은 팬들이 많은 반면 선화는 순수 상하이 거주민과 나이가 있는 중국 골수 축구팬 중심이다.
상하이 선신과도 지역 더비 관계이긴 하지만 상하이 선신이 원래 다른데에서 연고이전해서 온 경우라 그렇게까지 원수 관계는 아니다. 그리고 선신의 2부리그 강등으로 당분간 선화-선신 경기는 개점휴업상태라서 언제 다시 열릴지는 모른다.
2017년 FA컵 4강에 상하이 팀만 3팀(선화, 상강, 선신)이 올랐고, 4강에서 선화는 선신을 만났고 이겼다. 결승에선 상강을 만나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4. AFC 챔피언스 리그
- 1995
1995년 지아 A리그 우승자격으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에 참가했다. 1라운드 홍콩 인스턴트 딕트를 상대로 13:0 대승을 거두었으나 2라운드 당시 천안을 연고로 하던 성남 일화 천마를 상대로 0:1 패배를 당하면서 탈락 했다.
- 2002-03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 02-03시즌 2라운드 인도네시아 페트로키미아 푸트라를 상대로 1차전 1:3으로 패배했으나 2차전 5:1로 이기면서 3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3라운드에서 싱가포르 게일랑 유나이티드 FC를 1차전 3:0, 2차전 2:1로 이기면서 통합 5:1로 조별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조별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 BEC 테로 사사나, 가시마 앤틀러스와 속하게 되는데 1차전 대전 시티즌에게 2:1로 패배했으나 2차전 가시마 상대로 혈투끝에 4:3으로 이기면서 4강 진출에 희망을 이어갔으나 3차전 BEC 테로 사사나에게 2:1로 패해 1승2패 조3위로 대회를 마치게 된다.
조별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 BEC 테로 사사나, 가시마 앤틀러스와 속하게 되는데 1차전 대전 시티즌에게 2:1로 패배했으나 2차전 가시마 상대로 혈투끝에 4:3으로 이기면서 4강 진출에 희망을 이어갔으나 3차전 BEC 테로 사사나에게 2:1로 패해 1승2패 조3위로 대회를 마치게 된다.
- 2004
2004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해 E조 전북 현대 모터스, BEC 테로 사사나, 주빌로 이와타와 속하게 되었는데 1차전 BEC 테로 사사나에게 1:4로 대패하고 2차전 전북에게 0:1로 패하고 3차전 주빌로 이와타에게 1:2로 패하면서 승점 셔틀 역할을 하나 싶었지만 4차전 주빌로 이와타를 3:2로 꺾고 5차전 BEC 테로 사사나를 1:0, 6차전 전북 현대 상대로 1:0으로 이기면서 3승3패 조 3위로 대회를 마쳤다.
- 2006
2006년 G조에 속해 부리람, 페르시푸라 자야푸라, 베트남 동텀 롱안과 속했으나 부리람과 페리시푸라가 선수 등록기한을 지키지 않아 실격처리돠 동텀 롱안과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 3:1로 승리했고 2차전 원정에서는 4:2로 승리하면서 가볍게 2승을 기록 팀 창단 처음으로 8강에 올라갔다. 8강에서는 전북 현대 모터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1차전 홈에서 1:0 승리를 거두었고 2차전 원정에서 전반 35분 선제골을 넣으면서 기분좋게 4강에 올라가나 싶었지만 전반 44분 추격골을 내주고 후반 15분 역전골 24분 추가 실점을 내주며 3:2로 골득실로 인해 순식간에 탈락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후반 33분 또다시 추가실점을 내줘 경기가 4:2로 달아나게 되자 다급한 상하이는 전북을 계속 공격해 후반 45분 추격골을 만들어 냈지만 추가 득점에 실패해 1, 2차전 통합 3:4로 전북에게 4강을 넘겨주게 된다.
- 2007
2007년 준우승 자격으로 E조에 시드니 FC, 페르식 케디리,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속하게 돠었다. 1차전 시드니에게 1:2로 패배하고 2차전 페르식 케디리에게 0:1로 패배 3차전 우라와에게 0:1로 패배 3년전과 같은 3연패를 기록했지만 4차전 우라와 상대로 0:0 무승무를 기록했고 5차전 시드니 상대로 0:0무승부 6차전 페르식 케리리 상대로 6:0대승을 거두며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1승2무3패를 기록해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 2009
2009년 준우승 자격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해 G조에 속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가시마 앤틀러스, 싱가포르 암드포스와 속하게 되었다. 1차전 암드포스를 4:1로 누르면서 기분좋게 출발했으나 2차전 가시마에게 2:0으로 패배했으나 3차전 수원 상대로 2:1으로 승리하면서 시즌중반 2승 1패를 기록 나쁘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4차전 수원 원정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1:2로 역전패를 당하게 되고 암드포스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는등 영 좋지않는 성적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가시마 전도 선제골을 넣고도 그걸 못지켜 1:1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면서 2승 2무 2패 조3위로 대회를 마치게 된다.
- 2011
2011년 3위 자격으로 대회 참가해 또다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가시마 앤틀러스, 시드니 FC와 속하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 가시마 상대로 분투했지만 0:0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2차전 수원 원정경기에서 하태균에게 해트트릭을 내주고 오장은에 추가골 까지 얻어맞아 4:0대패를 당하게 된다. 3차전 시드니와 원정경기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4차전 시드니와 홈경기에서도 2:3으로 역전패 했으며 5차전 가시마 원정경기에서도 0:2로 패배하게 된다. 6차전 수원과 홈경기에서도 하태균에게 2골 신세계에게 1골을 내줘 0:3으로 패배해 2무4패 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 2017
2017년. 6년만에 AFC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참여했지만 플레이오프 3차예선에서 호주의 브리즈번 로어에게 0:2로 져서 한경기만에 광탈한다.(...)
- 2018년
전년도에 리그에서는 죽쒀서 아챔에 나올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예상외로 중국 FA컵을 우승함으로써 아챔에 참가했다. 조별리그에 참가하여 2월 14일 가시마 앤틀러스 원정에서는 1-1로 비겼고, 2월 21일 시드니 FC 홈경기에서는 2-2로 비겼다. 3월 7일 수원 삼성 원정에서도 1:1로 비기며 3연무를 캐다가, 일주일 뒤 홈에서 다시 만난 수원에게 0:2 완패당하고 만다. 4월 3일 가시마와의 홈경기에서는 전반에 두골을 넣어 2-0으로 이기다가 후반에 두골을 먹고 2-2로 비겼다. 4월 25일 3부리그 난통과의 원정경기에서는 2-0으로 잘 이기다가 3-2로 기적의 역전패를 당했다. 상하이와 난통은 거리가 가까워 엄청난 양의 선화 팬들이 몰렸지만 선수들은 경기 끝나고 욕만 먹었다.
- 2020년
2019년 중국 FA컵 우승 팀의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acl의 일정이 연기되어 11월에 카타르에서 조별리그 남은 6경기를 모두 치뤄야 하는 악조건 속에 대회에 참가하였는데, 1차전 퍼스 글로리 전에서 2:1 신승을 거뒀으나 2차전 울산 현대와의 맞대결에서 3:1 대패를 거두었다. 3차전 FC 도쿄전은 어찌저찌 1:0으로 승리했지만 나머지 3경기에서 1무 2패의 처참한 성적을 거두며[5] 짐을 싸게 되었다.
5. 기타
- 1993년 상하이 지역 회사 선화 그룹에 의해 창단되었다.
- 1994년 중국 프로리그 설립. 첫 해부터 참가
- 2002년 상하이 선화 SVA 웬광 축구 클럽으로 개명.
- 2005년 오이타 트리니타와 업무 제휴.
- 2006년 상하이 유나이티드(롄청) FC의 구단주 주쥔에게 인수되어 선화 선수 15명과 리앤청 선수 15명으로 구성되는 클럽이 되었다.
- 2007년 상하이 롄청과 완전 통합
- 2007년 상하이 선화 리앤쉥 축구 클럽으로 개명
- 2008년 2008년 중국 슈퍼리그 2위
- 2001년 이후 SVA 그룹과 SMEG, 후앙푸 투자회사에 지분이 넘겨져, 선화 그룹과의 계약 관계는 종료되었으나, 클럽의 이름에는 '선화'를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2007년 상하이 유나이티드를 합병하였고, 동시에 홈구장도 옮겼다.
- 2015년 뤼디그룹이 상하이 선화를 인수해서 상하이 뤼디로 이름을 바꾸고 로고도 뤼디그룹 로고를 집어넣으면서 상당부분 변경시켰지만,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이 선화란 이름에 가진 애착이 무시무시해서 매일마다 반대 시위가 열렸다.[6] 덕분에 못견딘 뤼디그룹이 기존 선화란 이름을 그대로 존치시키고 로고도 새로 공모해서 현재 새로 쓰는 로고가 만들어진것.
- 이 구단에 오는 외국인 선수들은 먹튀가 많다. 디디에 드록바, 니콜라 아넬카가 대표적. 가장 최근의 먹튀는 카를로스 테베스. 테베스가 원래 멘탈이 약한 편이었는데, 상하이에서는 유흥에 빠지고, 과체중 증세까지 보이다가 세계 최고 주급에 걸맞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다.
- 윤빛가람은 2016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한 인터뷰에서 상하이 선화 서포터즈가 다른 구단에 비해 잘 조직되어 있는 것 같다고 인상을 밝히기도 했다.
-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이 팀의 팬인듯, 상하이에서 이팀의 자켓를 입고 사진을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북에 올리기도 했다.#
- AFC 챔피언스 리그 2018에 조별예선에서 같은 조인 수원 삼성과 팀 로고 및 유니폼까지 비슷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서포터스의 응원가까지 똑같은 것을 사용해서 마치 서로의 원정 경기가 홈구장 같았다고.
6. 주요 선수
- 니콜라 아넬카 (2012-2013)
- 디디에 드록바 (2012-2013)
- 팀 케이힐 (2015-2016)
- 뎀바 바 (2015-2018/2018.06~2019.01)
- 김기희 (2016-2017)
- 오바페미 마틴스 (2016-2018)
- 프레디 과린 (2016-2019)
- 카를로스 테베스 (2017-2018)
- 지오바니 모레노 (2012~)
- 오디온 이갈로 (2019~2021)
- 김신욱 (2019~ )
- 스테판 엘 샤라위 (2019~2021)
- 스테판 음비아 (2020~ )
- 마테이 요니치 (2021~ )
[1] 승부조작으로 2013년에 박탈[2] 출전할 때는 나름 활약을 하여 8골이나 넣었지만, 리그와 FA컵 합해 40여 경기 중에서 1/4만 뛴 셈이다. 훗날 희대의 먹튀를 자랑하는 테베스가 자기관리 부실로 2017년 시즌에 16경기에만 출전해 욕을 먹었는데 드록바도 비슷한 수준의 태업을 한 셈.[3] 박건하 코치, 최성용 코치, 최은성 골키퍼코치, 김현민 코치, 지우반 올리베이라 의무트레이너가 동행한다.[4] 이미 아챔 조별예선 1라운드 상하이 상강의 멜버른 원정부터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이 멜버른까지 비행기타고 쫒아가서 홈팀 멜버른 빅토리 서포터에 합류해 걸개를 걸어놓는걸로 어그로를 끌고있었다(...). 후에 어느 상하이 상강 서포터의 증언으로는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짓거리를 하고 다녔단다(...). [5] 특히 마지막 울산 현대와의 대결에서는 울산이 ACL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기에 대놓고 로테이션을 돌리는 등 누가 봐도 봐준 티가 팍팍 났으나 박정인과 이상헌에게 사이좋게 한 골씩 얻어맞고 비욘존슨이 멀티골로 쐐기를 박으며 4:1로 탈탈 털렸다.[6] 중국 지아 A리그 출범 당시 다른 팀들은 국영기업이나 공산당 강요에 참여한 기업의 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상하이 선화는 모기업 선화 그룹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서포터들은 최초의 민간기업 참여라는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