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전국시대)
趙奢
생몰연도 미상
전국시대의 조나라의 무장.
동시기의 무장인 염파, 인상여 등과 함께 조나라를 지키면서 일대강국으로 부상시킨 명장이다. 또한 장평대전에서 진나라 명장 백기에게 관광당한 조괄의 아버지이다.
조사는 본래 세금을 징수하는 하급관리였으며, 본격적으로 조나라에서 유명해지기 전에는 기원전 280년에 제나라의 맥구를 점령한 적이 있다.
전국사군자 중 한 명인 평원군의 집에서 세금이 걷히지 않자 평원군의 집을 관리하는 9명을 죽였다. 자기 집의 사람들이 하급관리에게 죽었다는 말을 들은 평원군은 노발대발하며 조사를 문책하였는데, 조사는 얼굴빛 하나 변화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후 기원전 270년에 진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조나라의 연여로 쳐들어오자 왕은 군신들을 소집하고 염파에게 승패를 물었다. 그러자 염파는 길이 좁고 험한 지형이기에 승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왕은 다른 장수들에게도 승패를 물어보았으나 모두 염파와 비슷한 대답을 하였기에 실망하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오직 조사만이 당당한 태도에 두려움이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조사에게 승패를 물어보았더니 조사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염파, 인상여 등과 함께 조나라를 지킨 명장이나 이상하게 인지도는 저 둘보다 못 해서 조사? 그게 누군가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저 둘보다 떨어진다는 건 아니며, 조나라 전성기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만 전국시대 말기 상황이 급변하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각축을 벌이는 와중에, 조사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어버린 탓이 크다. 그렇기에 활약도 연여전투 이후로는 없는 것이고..[2]
생전에 아들 조괄은 신동이라며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며, 심지어 조사가 아들과 병법을 논하다가 먼저 말문이 막힐 정도였지만(…) 끝내 조사는 아들을 천거하지 않았다. 아내가 궁금해하여 이유를 묻자 조사는 걱정스레 답했다.
훗날 조사가 우려한 일이 기어이 터지고 마는데, 조사의 아내와 병중에 있는 인상여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조괄을 중용했고, 조나라는 장평대전에서 끔찍한 대가를 치뤘다. 자세한 내용은 조괄과 장평대전 참조.
<후한서> 마원전에 의하면 조사의 후손이 마원이라고 한다. 조사가 마복군이란 호를 받아 마씨 성을 칭했다고 하는데 조괄의 후손인지, 아님 조사의 다른 아들의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서는 조나라의 삼대천의 한 사람으로 회상신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작중시점에서 동료 삼대천이던 인상여와 (염파 본인 및) 염파의 수하들이 나와 과거의 명성 및 주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 정작 조사의 부하들은 전혀 안 보이는데, 추정상 아들인 조괄을 보좌하다가 함께 쓸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12에서는 끝내 고대무장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대신 전국칠웅 시나리오에서 마등일족이 업땅의 재야로 나오는데, 마원의 조상이 조사이기 때문이다.
생몰연도 미상
1. 소개
전국시대의 조나라의 무장.
동시기의 무장인 염파, 인상여 등과 함께 조나라를 지키면서 일대강국으로 부상시킨 명장이다. 또한 장평대전에서 진나라 명장 백기에게 관광당한 조괄의 아버지이다.
2. 생애
조사는 본래 세금을 징수하는 하급관리였으며, 본격적으로 조나라에서 유명해지기 전에는 기원전 280년에 제나라의 맥구를 점령한 적이 있다.
전국사군자 중 한 명인 평원군의 집에서 세금이 걷히지 않자 평원군의 집을 관리하는 9명을 죽였다. 자기 집의 사람들이 하급관리에게 죽었다는 말을 들은 평원군은 노발대발하며 조사를 문책하였는데, 조사는 얼굴빛 하나 변화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평원군은 크게 깨닫고 조사를 왕에게 천거하였다.공께서는 나라의 귀중한 분이신데 나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신다면 나라의 힘은 약해질 것이고 그리한다면 결국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나라가 멸망하고도 공께서는 부귀영화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이후 기원전 270년에 진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조나라의 연여로 쳐들어오자 왕은 군신들을 소집하고 염파에게 승패를 물었다. 그러자 염파는 길이 좁고 험한 지형이기에 승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왕은 다른 장수들에게도 승패를 물어보았으나 모두 염파와 비슷한 대답을 하였기에 실망하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오직 조사만이 당당한 태도에 두려움이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조사에게 승패를 물어보았더니 조사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기뻐하며 조사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출진을 명하니 조사는 위염, 호양을 격파하면서 진나라에게 대승을 거두어 명성을 알렸다. 이 공으로 조사는 마복군에 봉해졌으며 그 권세가 인상여, 염파, 평원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길이 좁고 험한 지형이지만 그 형세가 좁은 쥐구멍에서 두 마리의 쥐가 서로 싸우는 꼴이니 용맹하고 재능있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1]
염파, 인상여 등과 함께 조나라를 지킨 명장이나 이상하게 인지도는 저 둘보다 못 해서 조사? 그게 누군가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저 둘보다 떨어진다는 건 아니며, 조나라 전성기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만 전국시대 말기 상황이 급변하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각축을 벌이는 와중에, 조사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어버린 탓이 크다. 그렇기에 활약도 연여전투 이후로는 없는 것이고..[2]
생전에 아들 조괄은 신동이라며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며, 심지어 조사가 아들과 병법을 논하다가 먼저 말문이 막힐 정도였지만(…) 끝내 조사는 아들을 천거하지 않았다. 아내가 궁금해하여 이유를 묻자 조사는 걱정스레 답했다.
무릇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것인데 조괄은 목숨을 가볍게 여기며 입만 살았을 뿐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니 저 아이가 후일 장군이 된다면 필시 군대를 파멸시킬 것이오.[3]
훗날 조사가 우려한 일이 기어이 터지고 마는데, 조사의 아내와 병중에 있는 인상여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조괄을 중용했고, 조나라는 장평대전에서 끔찍한 대가를 치뤘다. 자세한 내용은 조괄과 장평대전 참조.
<후한서> 마원전에 의하면 조사의 후손이 마원이라고 한다. 조사가 마복군이란 호를 받아 마씨 성을 칭했다고 하는데 조괄의 후손인지, 아님 조사의 다른 아들의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3. 대중매체에서
3.1. 킹덤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서는 조나라의 삼대천의 한 사람으로 회상신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작중시점에서 동료 삼대천이던 인상여와 (염파 본인 및) 염파의 수하들이 나와 과거의 명성 및 주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 정작 조사의 부하들은 전혀 안 보이는데, 추정상 아들인 조괄을 보좌하다가 함께 쓸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12에서는 끝내 고대무장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대신 전국칠웅 시나리오에서 마등일족이 업땅의 재야로 나오는데, 마원의 조상이 조사이기 때문이다.
[1] 이 드립은 후에 이시애의 난에서도 갑사 유자광이 써먹었다. 사림파에게 간신으로 유명한 그 유자광 맞다. 이 상소로 세조에게 총애 받아 일약 승진을 시작하고, 자신과 같이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운 신공신들을 배신하고 (남이라든가..) 다시 한 번 승진한다.[2] 그러나 당시 승승장구하던 진나라를 대파함에 따라 장평대전 이전까지 전국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다.[3] 사실 병법을 논하면서 발렸던 것도 아니다. 같이 병법을 논하다가 막히는 부분에서 조사는 오래 생각하거나 알 수 없다고 하는 부분에서 조괄은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즉, 임기응변식으로 전략을 얘기하는데 조사는 조괄이 전략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