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본 조비

 


''' 존 본 조비
Jon Bon Jovi '''

'''본명'''
존 프랜시스 본조비 주니어
John Francis Bongiovi Jr.
'''출생'''
1962년 3월 2일 (62세)
미국 뉴저지 주 퍼스앰보이
'''국적'''
미국 [image]
'''직업'''
보컬리스트
'''악기'''
리드보컬, 기타, 마라카스[1]
'''소속'''
'''본 조비(1983년 ~ 현재) '''
1. 소개
2. 상세
3. 그 외
4. 디스코그래피


1. 소개


미국의 밴드 본 조비의 리드 보컬이자 프론트맨. 1980년대를 상징하는 록 스타 중 한 명이다.

2. 상세


'본 조비'라고 하면 보통 밴드 그 자체를 칭하지만, 이 사람 한 명을 칭하는 경우도 있다.[2]
본명은 존 프랜시스 본조비 주니어(John Francis Bongiovi Jr.)로 [3] 1962년 3월 2일 생이다. 미국 뉴저지 주 퍼스앰보이 출신. 7살 때부터 기타를 배웠고, 14살 때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하여 연주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뮤지션은 비틀즈, 같은 뉴저지 출신인 브루스 스프링스틴, 프랭크 시나트라이다.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있다면 닥치지 않고 했던 이유도 프랭크 시나트라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한번 시나트라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한참 신참이었던 그는 '''"자신이 시나트라를 만날 자격이 못 된다. 좀 더 성공한 뒤에 만나겠다."'''라고 했으나 알다시피 1998년 5월 14일 그가 타계했고 그는 매우 아쉬워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매우''' 잘생긴 데다 성적 매력도 넘치는 미남이었다. 리즈시절 유튜브 영상을 보면 잘생겼다, 섹시하다는 코멘트가 거의 도배하다시피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에 첫사랑인 도로시아 헐리[4]와 결혼 후, 스캔들이 하나 없고 3남 1녀를 낳고 잘 살고 있다.[5]
82년 존이 세션을 써서 녹음한 노래 Runaway 가 WAPP 라디오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후,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리면서 곡이 히트를 치면서 존은 밴드를 만들기 시작한다.[6] 이때 만들어진 밴드가 1984년에 데뷔하는 본 조비이다.[7] 그리고 1986년에 '''빌보드 1위 곡이 2개나 포함된''' 3집 Slippery When Wet으로 일약 대스타가 된다.
그 후 1989년에 4집 투어를 끝내고, 휴식기를 가지게 되는데, 이때 영 건즈 2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게 된다. 이때 발표한 노래가 Blaze of Glory.[8] 그리고 동명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2개의 정규앨범을 내고, 1997년도에 솔로 2집 Destination Anywhere를 발표한다.[9] 이후로는 밴드 활동에 전념, 2016년에 14집 This House Is Not For Sale이 빌보드 1위를 달성하여 노익장을 제대로 과시하였고, 2020년 Bon Jovi: 2020 앨범까지 내는 등 그 활동에 끝이 보이질 않는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전쟁고아 자선공연인 파바로티와 친구들 라이베리아 콘서트 때 Let It Rain이라는 곡을 함께 불렀다. 이때는 1998년도다. 관련 영상
배우 뺨치는 잘생긴 외모라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출연했다. 유명 작품으로는 U-571이 있으며 승조원 역으로 등장했다. 드라마 《앨리 맥빌》(국내 방영 제목 <앨리의 사랑 만들기>)에서 앨리가 새로 산 낡은 집을 수리하러 왔다가 앨리와 사랑에 빠지는 배관 공역으로 고정 출연했다.
2020년에는 60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별다른 스캔들 없이 지내며, 여전히 멋진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10] 전성기 시절 사용하던 창법이 결국 무리가 됐던 것인지 고음도 불가능해지고, 성량도 약해졌지만[11] 영혼 없는 립싱크를 하는 대신 기존 곡을 편곡하여 라이브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2015년 내한 당시에도 관중들이 Always를 외치자 투덜거리며 '''불러줬는데'''[12], 전성기에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을 보여줬지만, 팬들은 그딴 거 필요 없고 ''''거기 있기만 해줘, 우리가 대신 불러줄게!''''라는 마음으로 하나 되어 떼창으로 보답했다. 20년만에 간 타지에서 Always까지 불러줬다는 소식에 인터넷은 난리가 났고, 유튜브에 가보면 미국 팬들이 '고향에서도 안 부르는 걸 해외콘서트에서 부르다니 ㅜㅜ' 라고 땅을 치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전 세계를 초토화시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에 같은 멤버인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감염된 탓인지 응원의 홈 라이브를 열거나, 신곡 Do what you can에서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등 소소한 감동을 주고 있다. 본 조비는 워낙 사회 공헌을 많이 하기로 이름이 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고 '본 조비가 본 조비 했네'라며 응원하고 있다.
에디 밴 헤일런이 죽자 그에 대한 기억을 담는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 영상(영어)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서 매우 잘생겼다.

3. 그 외


  • 본 조비는 골수 민주당원이고, 조지 W.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존 케리를 적극 지원하며 함께 연설을 다녔다.
  • 싸움에 일가견이 있다는 후문들이 있다. 키가 몇십 cm는 차이 나는 스키드로우#s-3세바스찬과 주먹다짐을 하였는데 한 대도 맞지 않고 두들겨 팼다든지
  • 프로듀서로 유명한 토니 본 조비는 그의 사촌이다. 대표작으로는 토킹 헤즈 1집과 퀸(밴드)Under Pressure 등이 있다.[13]
  • 버락 오바마 집권 시에는 백악관의 대중문화 분야 대통령 자문 위원이다. 자문 위원과 정부 관리 회의할 때의 사진을 보면 집중 못 하고 딴짓하는 장면들이 많다(...) 한때 둘다 동안이었으나 2020년이 된 지금 사이좋게 나이들었다(...)
  • 또한 존 본 조비는 미국에서는 사회 공헌을 많이 하는 자선사업가로도 명성이 높다. 2011년에는 뉴저지에 자선 식당 소울 키친(The Soul Kitchen)을 오픈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무료급식소에서 공짜 식사를 먹으면서 심리적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이 식당에서는 그럴 필요 없이 원하는 만큼 능력껏 음식값을 내거나, 혹은 지역사회에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음식값을 대신하면 된다.
  • 하객으로 참석한 결혼시장에서, 축가로 자기 노래를 하자 나와서 함께 불러주는 모습이 2016년 유튜브에 떴다. 목소리는 전성기 때만 못하지만 잘 생긴 외모는 여전하다.
  • 2019년 1월 뉴저지 주에 있는 자신의 자선 식당 '소울 키친'에서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과 가족들을 위해 무료 점심 식사를 제공키로 했다.

4. 디스코그래피



[1] Keep The Faith 라이브를 보면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 마찬가지로 밴 헤일런하면 밴드 그 자체를 칭하는 명칭이지만, 가끔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을 밴 헤일런이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한다.[3] 데뷔할 때 이름을 간추리자는 레이블의 의견에 이름을 존 본 조비(Jon Bon Jovi)로 바꿨다.[4] 이 도로시아를 처음 만났을 때 존이 한 말이 "답지 좀 보여줄래?" 였다고 한다. 영어 위키백과를 참조하면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커플이다. 이후로 1번 결별하고 존은 여배우 다이안 레인과 1년동안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도로시아와 재결합하여 결혼한다[5] 지난 2012년 말에는 장녀 스테파니 본조비가 마약 소지 및 투약 혐의로 긴급체포되었다. 당시 포털 사이트에서 갑자기 본 조비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마약 혐의가 없었던 본 조비의 딸이 그랬다는 것에 해외 팬덤은 충격에 휩싸였다.[6] 존은 인터뷰에서 본조비라는 밴드를 몇 개월 하고 그만 둘 밴드였다고 밝혔었다. 개인적으로 솔로 가수를 생각했던 모양.[7] 사실 밴드 이름도 원래는 본 조비가 아니었지만, 레이블에서 Bon Jovi로 결정하라고 해서 만들어졌다. 밴드원들도 맘에 안들 어했지만 그대로 결정. 지금까지 유지된다.[8] 영화는 망했지만,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곡 부문 후보로 올라가고 빌보드 싱글 차트는 1위를 차지했다.[9] 흥행은 좋지 못한 듯하다.[10] 다만 2015년까지는 동안이었으나 염색을 그만둔 지금은 갑자기 나이가 들어서 제 나이를 찾았다.[11] 사실 60이 다 돼가는 나이이니 당연한 것이다. 2010년대에 비해 외모도 상당히 나이가 들고, 목소리도 많이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라이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칭송받는다. 이건 동갑내기인 액슬 로즈도 마찬가지. [12] Always는 공전절후의 히트곡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고음, 끔찍한 난이도로 무대에서는 부르지 않는 곡이었다.[13] 심지어 Under Pressure를 작업할 당시에 스튜디오에서 잡일을 도와줬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