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Republika Litwy Środkowej'''

[image]
[image]
국기[1]
국장
[image]
1920년 ~ 1922년
수도
빌뉴스
정치체제
공화제
국가원수
상원 의장
언어
폴란드어
성립이전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
멸망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에 흡수
1. 개요
2. 역사
3. 여파


1. 개요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전간기 1920년 10월 폴란드 장군 루챤 젤리고프스키(Lucjan Żeligowski)의 반란으로 전통적인, 그리고 현 리투아니아의 수도 지역인 빌뉴스와 그 주변 지역에 세워진 폴란드 제2공화국괴뢰국이었고, 1923년 폴란드에 합병되며 멸망하게 된다.

2. 역사


빌뉴스는 예로부터 전통적인 리투아니아의 수도였으며 그 주변 지역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시절부터 리투아니아의 땅이었다.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시절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분할 후 러시아의 지배를 거치며 이 지역은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의 땅이 되었다. 1916년 독일 인구조사에서 빌뉴스 시의 인구 구성은 폴란드계와 유대계가 각각 50.2%와 43.5%로 대다수를 점하고 리투아니아인은 2.6%에 불과하였다. 빌뉴스를 제외한 중앙리투아니아 지역의 경우 89.8%가 폴란드계였으며 리투아니아계는 4.3%에 불과했다.
이라하여 1919년 러시아독일 제국, 오헝 제국이 몰락하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독립하자 갈등이 빚어지게 된다. 우선 독일 제국이 소비에트 러시아와 맺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 빌뉴스 지역은 신생 리투아니아에 귀속되었지만 이 당시 폴란드는 이런 조약 따위를 준수할 국가가 아니었다. 123년간의 지배 이후 독립한 폴란드는 국경이 분명히 정의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당시 폴란드 정부는 확장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다. 당시 폴란드 제2공화국은 루마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경을 맞대고 있던 나라들과 모두 국경분쟁을 겪었고, 독립 직후 영토분쟁으로 전쟁만 3번 치른 나라였으며, 독립 직후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재건하자는 주장(...)도 정식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호전적인 나라였다. 당연히 폴란드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던 빌뉴스 지역을 리투아니아에 넘어가도록 둘 생각은 없었으며 이는 폴란드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재건을 부르짖으며 리투아니아와의 전쟁으로 번지게 된다. 하지만 소비에트-폴란드 전쟁과 이로 인한 자금 부족 및 경제적 압박, 그리고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그리고 이어지는 국제연맹의 중재)으로 인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은 폴란드가 빌뉴스를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소득없이 끝나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포기할 폴란드 제2공화국이 아니었으니 당시 리투아니아 출신 폴란드 장군 루챤 젤리고프스키를 앞세워 폴란드군의 리투아니아 점령지에서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선포하게 하였다. 당연히 이는 리투아니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리투아니아는 리투아니아 본국과 연합안[2]도 제시했지만 제안은 결렬되었다. 결국 국제연맹이 다시 이 두 나라의 분쟁에 개입했다. 국제연맹은 두 나라에 이러한 타협안을 제시했는데,
  • 리투아니아와 중앙리투아니아(그리고 폴란드)는 모두 각자의 독립을 인정한다.
  •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은 리투아니아 본국과의 연합 '리투아니아 연합'을 가입하고 다민족국가로서 독립적인 정부, 언어, 사법권 등을 가지지만 빌뉴스에 세워질 연합정부의 지배를 받는다.
  •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모두 중앙리투아니아에 각자의 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앙리투아니아의 경제와 법령들에 영향력을 갖는다.
  •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방위조약을 맺는다.
  •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에 자국 항구들에 자유로운 사용권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런 국제연맹의 타협안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모두에게 거절당하였으며 결국 1922년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총선 이후 동유럽에 강력한 동맹들을 구축하고자 하던 프랑스 제3공화국의 비호 아래 폴란드는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을 합병하고 이 '빌뉴스 위기'라고 불렸던 분쟁은 폴란드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국제연맹에서 논의되던 폴란드에 대한 제재도 프랑스의 반대로 흐지부지되었다.

3. 여파


폴란드에 의해 수도를 잃은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은 어쩔 수 없이 카우나스를 임시수도로 삼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인 폴란드 침공으로 소련이 동부 폴란드를 점령한 후에야 빌뉴스를 되돌려받을 수 있었으며, 폴란드에 의해 세워진 괴뢰국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과 이의 병합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망가뜨려 놓았다. 1938년 나치 독일소련의 위협이 눈앞에 들이닥치고 나서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정식으로 수교했으며 그 전까지 두 나라는 철로나 우편 같은 것도 연결되지 않은 철저한 단교 상태였다.
이러한 폴란드의 행각으로 리투아니아인들은 현재까지도 폴란드에 대해 '남의 나라 수도를 뺏어갔던 녀석들'이라며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1] 참고로 이 국기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기처럼 폴란드계를 상징하는 문양, 리투아니아를 상징하는 문양을 섞고 그 위에 빌뉴스 시를 상징하는 문양을 추가했다. 다수 폴란드계의 국가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폴란드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재건 야욕을 어느정도 반영한 셈이다.[2] 오늘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비슷한 연맹으로 리투아니아계 서 리투아니아(혹은 사모기티아)와 다민족 빌뉴스로 나뉜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