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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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Kaunas
러시아어: Kovno
독일어: Kauen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이며 카우나스 주의 주도(州都)이며 가톨릭 교회의 카우나스 대주교 소재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29만 명.
현재 카우나스 시에 해당하는 지역에 10세기 무렵 수운 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전략적 위치를 바탕으로 요새가 건설되었다. 요새와 수운을 바탕으로 14세기 한자 동맹 상인들이 머무르며 성당이 건설된 것이 카우나스 시의 시초가 되었다. 1408년에 도시는 마그데부르크 법의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1만여명의 인구가 거주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인들은 14세기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나 카우나스 인근 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건 조금 더 늦어서 '''15세기'''에나 개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카우나스에 새로이 건설된 고딕 성당에는 폴란드인 성직자들이 파견되어 가톨릭뿐만이 아니라 서유럽 문화 전반도 전파하였다. 1441년에 도시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도시 중 유일하게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16세기에 이르면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카우나스 시에도 많은 학교와 병원들이 지어졌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멸망 이후에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코브노 현의 소재지가 되었다. 러시아에 통치하던 당시의 리투아니아에서도 리투아니아인 귀족 지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이들은 꾸준히 리투아니아어를 보존 및 발전시켜나갔다.[2] 폴란드인 귀족들이 자신들이 사르마트인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생각하며 고대 동방 유목민 문화를 흉내낸 것과 다르게, 코브노 현을 중심으로 한 리투아니아인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가톨릭의 성도인 로마에서 찾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카우나스 시의 역사는 종종 귀족들의 낭만적인 상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도시가 나폴레옹의 침략을 두 번이나 받고 두 번이나 크게 파괴되었다. 러시아 제국에서 리투아니아어를 금지한다던지, 리투아니아어를 로마자 대신에 강제로 키릴 문자로 표기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출발지로 나오는 '코브노' 가 바로 카우나스이다. 하지만 패퇴하고 돌아온 프랑스군들을 카우나스 사람들이 잔혹하게 대했기 때문에, 리투아니아에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역사이다.
1861년 카우나스 시에 철도가 뚫리면서, 카우나스 시는 독일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철도가 건설되고 새로운 이주민들이 러시아 제국 곳곳에서 유입되면서 도시의 리투아니아인 비중은 더 줄어들었다. 1897년 러시아 제국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유대인은 도시 인구의 35.3%, 러시아인은 25.8%를 차지했지만 카우나스 시의 리투아니아인 인구 비율은 6.6%에 불과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카우나스 교외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시대에 뒤쳐진다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어 1918년까지 독일의 점령하에 놓였으며 전후 리투아니아가 독립하였을 때는 폴란드 제2공화국에 점령된 빌뉴스를 대신하여[3]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의 임시수도 역할도 했다. 이 상황은 1939년의 폴란드 제2공화국 붕괴 때까지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유대인이 도시 인구의 32%를 차지했고, 폴란드인도 30%를 차지하여 리투아니아인의 비중이 30%에 불과했으나 일시적인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중 벌어진 홀로코스트와 소련으로의 강제편입등의 격변을 거치면서 지금은 리투아니아인이 인구의 94%를 차지한다.
학생의 수가 5만 정도인 교육도시로 알려져 있다. 주변의 비스트로나스, 우테나 등등의 소도시에서 카우나스 시로 유학을 많이 온다. 연세대와 교환학생 시스템을 갖춘 카우나스 공과대학이라던지, 동국대와 교환학생 시스템을 갖춘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4] 이 카우나스 시의 대표 대학이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프로농구팀 BC 잘기리스(BC Žalgiris)는 리투아니아 리그 20회 우승을 비롯 구 소련 시절 5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팀이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농구선수들을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한데, 리투아니아의 전설적인 센터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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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Kaunas
러시아어: Kovno
독일어: Kauen
1. 개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이며 카우나스 주의 주도(州都)이며 가톨릭 교회의 카우나스 대주교 소재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29만 명.
2. 역사
현재 카우나스 시에 해당하는 지역에 10세기 무렵 수운 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전략적 위치를 바탕으로 요새가 건설되었다. 요새와 수운을 바탕으로 14세기 한자 동맹 상인들이 머무르며 성당이 건설된 것이 카우나스 시의 시초가 되었다. 1408년에 도시는 마그데부르크 법의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1만여명의 인구가 거주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인들은 14세기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나 카우나스 인근 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건 조금 더 늦어서 '''15세기'''에나 개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카우나스에 새로이 건설된 고딕 성당에는 폴란드인 성직자들이 파견되어 가톨릭뿐만이 아니라 서유럽 문화 전반도 전파하였다. 1441년에 도시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도시 중 유일하게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16세기에 이르면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카우나스 시에도 많은 학교와 병원들이 지어졌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멸망 이후에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코브노 현의 소재지가 되었다. 러시아에 통치하던 당시의 리투아니아에서도 리투아니아인 귀족 지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이들은 꾸준히 리투아니아어를 보존 및 발전시켜나갔다.[2] 폴란드인 귀족들이 자신들이 사르마트인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생각하며 고대 동방 유목민 문화를 흉내낸 것과 다르게, 코브노 현을 중심으로 한 리투아니아인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가톨릭의 성도인 로마에서 찾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카우나스 시의 역사는 종종 귀족들의 낭만적인 상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도시가 나폴레옹의 침략을 두 번이나 받고 두 번이나 크게 파괴되었다. 러시아 제국에서 리투아니아어를 금지한다던지, 리투아니아어를 로마자 대신에 강제로 키릴 문자로 표기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출발지로 나오는 '코브노' 가 바로 카우나스이다. 하지만 패퇴하고 돌아온 프랑스군들을 카우나스 사람들이 잔혹하게 대했기 때문에, 리투아니아에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역사이다.
1861년 카우나스 시에 철도가 뚫리면서, 카우나스 시는 독일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철도가 건설되고 새로운 이주민들이 러시아 제국 곳곳에서 유입되면서 도시의 리투아니아인 비중은 더 줄어들었다. 1897년 러시아 제국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유대인은 도시 인구의 35.3%, 러시아인은 25.8%를 차지했지만 카우나스 시의 리투아니아인 인구 비율은 6.6%에 불과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카우나스 교외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시대에 뒤쳐진다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어 1918년까지 독일의 점령하에 놓였으며 전후 리투아니아가 독립하였을 때는 폴란드 제2공화국에 점령된 빌뉴스를 대신하여[3]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의 임시수도 역할도 했다. 이 상황은 1939년의 폴란드 제2공화국 붕괴 때까지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유대인이 도시 인구의 32%를 차지했고, 폴란드인도 30%를 차지하여 리투아니아인의 비중이 30%에 불과했으나 일시적인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중 벌어진 홀로코스트와 소련으로의 강제편입등의 격변을 거치면서 지금은 리투아니아인이 인구의 94%를 차지한다.
3. 현황
학생의 수가 5만 정도인 교육도시로 알려져 있다. 주변의 비스트로나스, 우테나 등등의 소도시에서 카우나스 시로 유학을 많이 온다. 연세대와 교환학생 시스템을 갖춘 카우나스 공과대학이라던지, 동국대와 교환학생 시스템을 갖춘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4] 이 카우나스 시의 대표 대학이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프로농구팀 BC 잘기리스(BC Žalgiris)는 리투아니아 리그 20회 우승을 비롯 구 소련 시절 5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팀이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농구선수들을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한데, 리투아니아의 전설적인 센터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4.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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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리타스를 본뜬 카우나스 은행 건물
- 카우나스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