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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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최영희 중장에 이어 13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후임자는 장도영 중장. 최종계급 육군중장. 호(號)는 호양(互讓)이다.
2. 생애
1920년 9월 21일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태어났다. 음성 삼성보통학교, 일본 도요하시 중학교, 일본육군사관학교 예과를 나왔다. 일본군 지원병 1기 출신으로 일본군 육군에서 준위로 근무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가 조선경비대 장교로 임관하였다. 1949년 당시에 연대장이었고 1950년에 훈련소장을 지냈다. 1960년에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4.19 혁명 당시에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의 발포 명령을 막았다. 참모총장을 지낸 뒤에 2군사령관을 지냈다.[1] 5.16 군사정변 이후 육군중장으로 예편했고[2] 1963년에는 백악관 앞에서 군정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쿠데타 직후에 미국의 배려로 미국으로 간 강영훈[3] , 김웅수 장군[4] 등도 이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몇 년 뒤에 군사정권에 돌아와 협조했다. 강영훈 장군의 경우 당시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갔다가 주미대사가 된 정일권과 동향 출신으로 형동생 하는 사이였다.
최경록 장군도 한국으로 돌아와 주멕시코대사, 주영국대사를 지냈고 1974년에 교통부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1977년 11월 이리역 폭발사고로 경질되었다. 1979년에는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신군부가 들어서자 주일대사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에서 활동했다. 이후 2002년 9월 2일에 향년 81세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