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희(배구)

 

'''장윤희의 직책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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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
張潤喜 / Chang Yoon-Hee'''
'''생년월일'''
1970년 5월 22일 (54세)
'''출생지'''
전라북도 전주시
'''출신학교'''
근영여고 - 한국체육대학교
'''포지션'''
레프트 / Outside Spiker
'''등번호'''
4번
'''신체'''
170cm
'''국가대표'''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1989~1998)
'''소속팀'''
호남정유-LG정유 (1988~2002)
수원시청 (2005~2009)
부천시 체육회 직장팀 (2009~?)
GS칼텍스 서울 KIXX (2011)
'''지도자'''
GS칼텍스 서울 KIXX 코치 (2010~2011)
'''SNS'''

1. 소개
2. 선수 시절
2.1. 짧은 현역 복귀
3. 현역 은퇴 이후
3.1. 해설
3.2. 지도자
4. 플레이 스타일
5. 국가대표 경력
6. 개인 수상
7. 여담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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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시절'''
대한민국 국적의 전 배구선수이자 국가대표. 현재는 코치이자 해설위원이다.
대통령배-슈퍼리그 시절 호남정유/LG정유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로 MVP 5회 수상, 베스트6 10회 수상한 한국 여자배구계의 레전드.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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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현역(LG정유) 시절
GS칼텍스의 레전드
'''호남정유-LG정유-GS칼텍스의 레전드'''
1990년대 여자배구 중흥기의 중심 선수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거포다. GS칼텍스의 코치를 맡았던 2010-2011 시즌 중 9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하여 전주원을 제치고 현역 최고령 여자 스포츠 선수로 잠시 활약하기도 했다.[1]
장윤희는 1988년 전주시 근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남정유에 입단했다. 당시 세터 이도희가 고군분투하며 1987-1988 시즌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호남정유에 장윤희가 입단하며 팀은 물론 대한민국 여자배구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장윤희는 국내외 코트를 휘저으며 10년 간 대한민국 여자배구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1990-91시즌을 시작으로 1998-99시즌까지 호남정유-LG정유가 '''무려 9연패'''를 달성하는데 핵심선수로 큰 공을 올렸다. 물론 세터 이도희와 윙스파이커 박수정, 정선혜, 센터 홍지연 등이 최절정의 기량을 보였던 시기였기도 했지만 명장 김철용 감독의 지휘 아래 전무후무한 성적을 냈다. 또한 장윤희는 '''호남정유+한일합섬김남순'''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국가대표에서 역시 맹활약을 하며 1994년 브라질 세계선수권대회 4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7년 월드그랑프리 3위, 1999년 월드컵 4위 등 한국배구의 중흥기를 이끄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1999-2000시즌에 출산으로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 1999-2000 시즌이 끝난 후 2000 시드니 올림픽 최종예선전을 앞두고 있었는데 당시 임신 중이었던지라 쿨하게 국가대표를 반납했다. 그런데 당시 역대 최강 전력이었던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이 메달권도 노릴 수 있었지만 큰 공격을 맡아서 해줄 장윤희의 부재 때문이었는지 미국과의 8강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석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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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슈퍼리그 폐막식'''[2]
이후 장윤희는 출산 후 2001-2002 시즌 한 시즌을 더 뛰며 은퇴를 했다.
은퇴 이후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3] 2005년부터는 수원시청 배구팀 창단멤버로 입단하였다. 2009년 부천시 체육회 직장팀 소속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본인은 "출산 때를 제외하면 코트를 떠난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또한 친정팀인 LG정유-GS칼텍스의 코치로 잠깐 활약하다 2010-11 시즌 코칭스탭이 대대적으로 바뀔 때 정식 코치로 선임됐다.

2.1. 짧은 현역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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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복귀한 2010-11시즌
2010-11시즌 GS칼텍스가 2009-10시즌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해고 연패에 빠져 있을 때 많은 팬들은 ''''아! 장윤희가 코트 위에 있었다면...''''라는 상상을 했는데... 결국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당시 구단의 코치로 있던 장윤희는 2011년 1월27일 對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의 홈 경기에서 3세트에 교체 선수로 나와 3득점했다![4] 사실은 장윤희가 복귀하기 바로 전날 경기였던 26일 對 인삼공사와의 홈경기에서 선수 등록을 했고, 후배들과 같이 경기를 관전했다. 그런데 장윤희가 플레잉코치를 해도
2011년 현역으로 복귀하여 녹슬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코트 위에서의 기민한 움직임이나 과감한 C속공은 앞으로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 될 듯. 2009-10시즌 장소연이 복귀한 후 센터(미들히터)들의 이동공격 시도가 늘어난 걸 보면 장윤희의 복귀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몇 경기만 뛴 걸로 봐서는 팬서비스 차원으로 경기에 투입된 듯 싶다. 물론 장윤희와 장소연 등 은퇴한 선수들이 복귀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건 올드팬들에게도 기쁜 일이지만, 이들의 나이와 결혼-출산으로 인한 1차 은퇴연도를 생각해보면 아직도 통하는 기량이라는 건 바꿔 말하면 여자배구의 선수층이 대단히 빈약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장윤희의 복귀 후의 활약은 그동안 배구 팬들이 생각하던 "배구선수는 수명이 짧다"라는 선입관을 지우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여자배구 쪽을 보면 일본다케시타 요시에는 은퇴 직전 2012 런던 올림픽까지 34세라는 나이에도 국대 주전으로 활약했다. 물론 다케시타는 세터라는 포지션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밖에 상기됐던 장소연이 2013-14 시즌에 여전히 V-리그에서 플레잉코치로 뛰고 있으며, 장윤희의 팀 후배인 박수정이 불혹을 넘어서도 실업 리그에 뛰고 있다. 국내의 경우 남자배구에서 방신봉, 이영택, 방지섭 등 현역 은퇴 후 복귀한 선수들 모두 자의 은퇴보다는 구단에 의한 강제 은퇴에 가까웠다. 2009-2010 시즌에 매튜 존 앤더슨의 대체 선수로 현대캐피탈에서 뛰던 오스발도 에르난데스는 장윤희보다 2살 어리고 2014년 현재 현대캐피탈박희상 수석코치와는 동갑내기. 역시 결과적으로 자기관리가 중요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장윤희는 몸이 금으로 된 前 야구선수와 동갑이다.

3. 현역 은퇴 이후



3.1. 해설


2010-2011 시즌이 끝나고 다시 현역 선수에서 물러나 MBC 스포츠 플러스에서 해설위원으로 데뷔해 V-리그 중계를 했다. 2013-2014 시즌부터 V-리그 중계권이 MBC 스포츠 플러스에서 SBS Sports로 넘어가며 이도희 해설위원은 방송사를 옮겼지만 장윤희는 김철용과 함께 엠스플에 남아 김연경터키 여자배구 및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등 국제 대회 해설을 했다.
MBC에서 올림픽, 아시안 게임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해설로 참여했고 2018-19 시즌부터는 SPOTV의 김연경의 터키 배구 리그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SPOTV에서 제작하고 TV조선에서 방송된 2018년 여자배구 세계선수권 대회 중계방송에서도 해설위원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해설위원으로서의 평가는 영 좋지 않다. 여자배구판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3.2. 지도자


2016년에는 코치진 인력난을 겪게 된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다시 맡게 된, 현역 시절 스승이었던 김철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임명되었다. 홍성진 감독이 지휘했던 2017년까지 대표팀에 머물다가 2018년 차해원이 전임 감독을 맡게 되면서 하차하게 되었다.
차해원 감독이 사퇴 후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차해원 역시 장윤희가 코치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배구협회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는 GS칼텍스에서 유소년 지도를 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장윤희 활약 모음 #1 #2
현역시절 별명 '악바리', '짱돌'이라는 후덜덜한 별명에서 볼 수 있듯, 탄력있는 점프에 호쾌한 스파이크를 바탕으로 근성있고 강력한 공격을 구사했다. 윙공격수 치고는 꽤나 작은 170cm의 키가 마이너스 요소였지만 그 작은 키를 상쇄하고도 남을 수직점프와 체공력, 그리고 강한 스윙이 있었기에 무시무시한 공격이 가능했는데, 오픈공격 시 날카로운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연타도 그냥 넘기는게 아니라 바로 공격으로 이을 만큼 과감하게 공격을 했다. 또한 1990년대 스피드를 이용한 배구를 했던 여자대표팀의 핵심선수로 C속공 상황에서 갑툭튀 하는 공격도 탁월했다. 위치를 가리지 않고 기민한 전천후 공격이 가능한데 완벽한 세팅 상황에서 상대를 농락하는 시간차 공격도 일품이었다.
거기에 덤으로 후위에서 무섭게 날아오르는 백어택까지! 이 백어택이 여자선수들 수준에서는 쉽지 않은데 장윤희는 그 백어택마저도 남자선수들의 그것과 못지않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고, 그 파괴력도 대단했었다. 그야말로 공격 그 자체는 후덜덜한 수준. 한편, 장윤희는 국내 여자배구 선수로서는 최초로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했었다. 오오오! 그것도 공을 살짝 띄어놓고 때리는 점핑서브 수준을 넘어선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장윤희의 공격력은 당대에 세계구급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김철용대한민국 여자배구[5]의 수비를 대표하는 선수다보니 리시브, 디그 능력은 대한민국 여자배구에선 올타임 넘버원 후보로 손꼽힐 만하다. 다만 약점은 작은 신장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낮은 블로킹 높이. 그래도 유효 블록은 잘 잡아내는 편이었다.
이러한 플레이스타일 덕택에 현재 프로리그에서도 키가 작은 공격수가 등장하면 바로 제 2의 장윤희 칭호를 붙여버린다. 일례로 김지수, 이소영, 양유나, 이재영, 서채영등... 비슷하게 키가 큰 공격수가 등장하면 제 2의 김연경이 된다. 박정아, 김희진등이 그렇다.

5. 국가대표 경력


  • 1989 월드컵 (7위)
  •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2위)
  • 1990 세계선수권 (5위)
  • 1991 월드컵 (6위)
  • 1994 세계선수권 (4위)
  •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위)
  • 1995 월드컵 (5위)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6위)
  • 1998 방콕 아시안게임 (2위)
  • 1999 월드컵 (4위)

6. 개인 수상


  • 베스트6 10회 수상, 1993~2000 연속 수상
  • MVP 5회 수상, 1997~1999 연속 수상
  • 1988 제6회 대통령배 베스트6
  • 1989 FIVB 월드컵 서브상
  • 1991 제8회 대통령배 MVP, 베스트6
  • 1991 FIVB 월드컵 수비상(Best Defender), 베스트6
  • 1993 제10회 대통령배 베스트6
  • 1994 제11회 대통령배 베스트6
  • 1995 슈퍼리그 MVP, 베스트6
  • 1996 슈퍼리그 베스트6, 서브상
  • 1996 올림픽 아시아 지역별예선전 MVP[6]
  • 1997 슈퍼리그 MVP, 베스트6
  • 1998 슈퍼리그 MVP, 베스트6
  • 1999 슈퍼리그 MVP, 베스트6
  • 2000 슈퍼리그 베스트6
  • 2002 슈퍼리그 수비상

7. 여담


  • 남편은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 출신의 이경환 경륜선수다. 그리고 슬하에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그중 큰딸인 이윤주 양은 중앙여고 출신 세터로 2018-2019시즌 드래프트 3라운드 5순위로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 입단했다가 한 시즌 뒤 대구시청 실업 팀으로 옮겼고 수원시청 실업 팀으로 이적했다가 현역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 현역 시절에는 보통 여자선수들 이상의 스태미너와 파워를 보여줬기 때문에 국제대회에서 맞상대하는 상대편 국가에서 남자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선수 시절에는 노안 선수로도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얼굴이 나이를 따라가지 않는 동안으로 보인다.
[1] 이 기록은 2015-2016 시즌에 수련 선수로 등록하여 현역으로 복귀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이수정(1972년 8월 25일생) 플레잉코치가 만 43년 2개월 17일로 장윤희의 기록을 넘어섰다. 2016년 2월 17일 현재 이수정 플레잉코치의 최고령 현역 기록은 계속되고 있다.[2] 사진 속 선수들은 박종찬, 최천식, 윤종일, 박수정, 장윤희, 어연순, 유연경, 정은선 출처[3] 선수 생활 중에 합격하여 대학교에 입학했다.[4] 그런데 나오자 마자 황연주서브를 날려먹었다(...). 요즘 서브 구질이 워낙 변화무쌍해서 장윤희도 곧바로 적응하기는 힘들었을듯.[5] 이 시기 한국 여자배구는 극도의 랠리가 이어지던 수비배구였고 그 핵심에는 호남정유의 김철용 감독이 있었다. 호남정유의 특성상 센터 홍지연을 빼면 다들 신장이 열세라 수비배구를 구사할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대한민국 여자배구는 대부분의 팀이 3:0 경기도 1시간 반~2시간, 풀세트는 3시간이 넘어가는 초 장기전까지도 가능한 무시무시한 수비배구다보니 여자배구 지상파 중계가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다. 25점 랠리포인트제 도입 이후에는 보통 3:0 원사이드한 승리의 경우 1시간 내외, 풀세트 접전의 경우 2시간 30분~3시간 정도가 맥시멈.[6] 이날 7득점 12득권을 따내며 한국승리를 이끈 장윤희는 대회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한국여자배구 일본 꺾고 96애틀랜타올림픽 본선 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