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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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제우[1]
'''출생'''
1981년 4월 5일 (43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
'''신체'''
180cm, 72kg, O형
'''형제자매'''
2남 1녀 중 막내[2]
'''학력'''
용산공업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다중매체영상학 / 졸업)
'''소속사'''
아귀엔터테인먼트
'''데뷔'''
1998년 SBS 시트콤 '나, 어때?'
1. 개요
2. 활동
3. 주요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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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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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리즈 시절.
대한민국의 前 가수, 現 배우. 예전 이름은 최창민이었고 활동명도 동일했으며, 동방신기최강창민과는 많이 혼동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인물이다.[3]

2. 활동


1997년 터보의 백댄서로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4][5] 10대-20대 여성들을 타깃으로 했던 쎄씨나 에꼴 같은 패션잡지 모델로 등장하면서 특유의 더듬이 머리, 상큼한 미소와 보조개, 귀여운 외모와는 다른 반전 댄스 실력 그리고 힙한 패션 센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말 그대로 90년대의 청춘 스타.''' 지금은 어엿한 중견 의류기업으로 성장한 GNCO의 첫 의류브랜드 SPORT REPLAY의 초창기 모델이었다. 아직까지 해당 의류 브랜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최창민을 떠올릴 정도. 이후 조인성이 해당 의류브랜드 모델이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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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모델 출신이던 그가 춤을 췄으니 여러 음반사에서 가수 제안이 들어왔고 최창민과 손을 잡게된 조선음향 측은 최창민의 음반 활동을 책임지게 된다.[6][7] 가수 활동 당시에는 일본에서 유행하던 유로비트 넘버를 주력으로 내세웠다.
1998년 송혜교, 조여정, 김승현과 함께 SBS의 시트콤인 '나 어때'에 나오면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며 본격적으로 유명해졌다. 같은 해 SBS 연기대상에서 시트콤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인기가요 11위~20위 순위를 송혜교와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8] 이 해 10월 '영웅'이라는 곡으로 가수로 데뷔했는데 데뷔곡 <영웅>이 1위 후보까지 오르며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이후 후속곡 <짱>도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성공적인 가수 데뷔를 했다.
그 전까지 최고라는 뜻을 담은 유행어 ""이 있었지만 최창민을 필두로 ""이라는 단어가 더 앞서질러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지금도 "짱"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실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다만 많은 인기를 누렸음에도 1위 후보 경쟁대상이 젝스키스, S.E.S. 등이어서 당시 유일한 솔로 아이돌이었던 그는 항상 콩라인이었다. 항상 음악 방송에서 2~3위[9]에 그친 최창민은 밴에서 매니저들과 함께 "그래도 혼자인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어"라고 하면서 위로했다고 한다.
또 데뷔 시절부터 자신의 곡 안무를 직접 만들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외모도 특출나고 춤 실력까지 뛰어났던 케이스다. 더욱이나 당시 자신이 직접 안무를 짜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더 재평가 받아야 할 일. 2019년 현직 댄서가 98년 최창민의 무대 영상을 리뷰하기도 했는데 춤선이 댄서 수준으로 날렵하고 뛰어나다고 얘기하고 있다. 리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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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영웅>의 뮤직비디오 도중 교복안에 후드티를 받쳐입는 패션이 혁명을 일으켜 2019년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던 최창민이 코디네이터에게 부탁해서 별 생각없이 후드티를 안에 입었는데 이것이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 송혜교와는 학생복 스마트의 모델로 함께 출연한 바 있다.
한참 인기가 많았던 시절 잡지에서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홈런볼 과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난생 보지도 못했던 온갖 맛의 홈런볼 과자가 집안 가득히 쌓여있어 질릴 정도로 먹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집 활동 종료 후에는 당시 인기 스타 박지윤과 함께 뮤지컬 미녀와 야수에 캐스팅 되어 공연한 적도 있다. 박지윤과는 모델 출신이라는 점도 비슷하고 나이대와 인지도도 비슷하여 모 케이블 음악 프로그램에서 같이 사회를 맡은 바 있었다.
이후 발매된 2집 앨범 <그녀의 뒤엔 항상 내가 있었다>[10] 와 <눈을 감아>도 10위권 안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듬해 발매된 3집 <Tell Me Why>라는 곡으로 짧게 활동하고 가수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앨범 발매 직후[11] 내부 문제가 터져 활동을 접어야 했고 이 시점부터 연예계 활동이 사실상 정지되었다.
초기에는 가창력 논란으로 혹평을 들었으나, 이후 점차적으로 발전되어 3집까지 발매했지만 3집 발매 직후 소속사의 앨범 투자금 횡령으로 인해, 공사장을 오가며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tvN 예능프로그램 '명단공개 2015', 비디오스타(180911)에서 밝혀졌다. 참조
최창민이 1997년 쯤 잡지 모델로 인지도가 올라갈 무렵 여러 연예기획자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는데 어린시절이라 그 제안이 무서워서 명함을 받아도 버리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대부분의 연예기획자들이 고가의 밴을 타고 오는것과 달리 한 매니저가 그를 찾아와 조촐하게 버스를 타고 내려서, 햄버거 단품을 사주며 매니지먼트 제안을 했고 그에게 마음이 이끌린 최창민은 이 사람과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어린 시절 많이 가난했던 최창민이 이 매니저라면 비슷한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더 잘 통할 거라고 믿어서 매니지먼트 권한을 이 사람에게 맡기게 된 것이라고.[12]
이후 최창민은 음반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고 상당한 금액의 계약금을 받았는데 최창민은 계약금의 절반을 매니저에게 떼어주며 실장자리에 앉히고 소속사 건물도 구하게 하고, 최창민의 인감 서류들도 모두 맡겼는데, '''문제는 여기서 터진 것이다.'''
최창민이 3년 간 음반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 최창민에 대한 권리를 조폭계 기획사에 팔아넘기고 방대한 수익금, 차기 앨범 투자금을 모두 훔쳐가는 것도 모자라 수많은 빚을 최창민의 이름으로 져놓은 다음 달아나 버렸다... 결국 엄청난 빚이 그의 앞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설상가상 연예계 활동도 막혀버리게 된다.
이후 최창민은 영문도 모른 채 조폭계열 기획사에 압류되었으며 최창민을 관리하게 된 조폭사장은 성인이 된 그에게 밤업소 무대를 설 것을 압박했지만 끝까지 최창민은 못하겠다고 했고 험악한 상황까지 갈 뻔했다고 한다.
밤업소 제안을 거절하는 최창민에게 겁을 주겠다며 그가 보는 앞에서 매니저 실장을 폭행하는 등 각종 악행을 저질렀지만 끝까지 최창민이 확고히 안하겠다고 했고 결국엔 그 사장이 자신의 여자친구가 하는 음식집에서 싸인회 한 번을 한 다음 마무리하자는 제안에 합의했고 이 정도선에서 그 회사와의 관계는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창민이 고용했던 첫 매니저는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으며 최창민은 20대 초반부터 본인의 힘으로 빚을 갚았다고 한다. 최창민은 자신의 힘으로 그를 돌아오게끔 하려고 끝까지 노력했다고 한다.
이후 가끔 연기 판을 오가긴 했지만 연예계 활동은 거의 중단되었고 뮤지컬과 연극 위주로 활동하다가, 2006년 영화 <강적>에 출연하며 다시 활동하는 듯 하다가 또 연예계 활동이 뜸해졌다. 한참 뒤인 2012년 1월 개그콘서트위대한 유산 코너에 게스트로 잠깐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지금은 과거에 시트콤했던 것처럼 연기 분야, 배우 생활에 주력하고 있다.'고 자신의 근황을 설명했다.[13]
동갑내기 배우 김승현과는 20년지기 절친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승현이 출연하는 살림남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어서 말을 해 등의 방송에도 함께 출연했으며, 비디오스타에서는 전화 미션 상대를 김승현으로 지목도 했다. 이외에도 그룹 샵의 서지영과 친했으며 UP 출신의 상후, 디바이민경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대학교 동기였던 베이비복스의 심은진, 간미연과도 현재 SNS 맞팔로우 상태이고[14] 간혹 간미연과는 서로의 게시글에 가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공백기에 지하철 택배 일을 하며 비용을 마련[15]해 주역을 배운 덕에, 역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며 라디오 스타를 비롯, 예능 프로그램 다수에서 출연자들의 사주와 운세를 풀이해 주었다. 여담으로 해당 시기, 자신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임을 사주 풀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16]
공백기 도중 이름을 최창민에서 최제우로 개명하면서 활동명도 최제우로 바꿨다. 다만, 인스타에 올라온 포스트를 보면 정식 개명은 2016년 후반-2017년 초반 사이에 한 것으로 추정.[17]
2019년 JTBC에 방송하는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 전문가로 출연한다. 여전히 잘생긴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해 10월, 명리학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첫 칼럼 또한 어서 말을 해에서는 출연자들의 연애운을 봐줬는데 '''절친 김승현의 연애 사실이 공개되기도 전에''' 그에게 연애운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예측했다!![18]
과거 팬클럽이었던 "Dimple prince"의 팬들이 다시 팬카페를만들어 최창민의 정보를 공유하며 활동 중이다.
네이버 팬카페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팬카페이다.[19] 최창민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여기서 자료 공유를 할 수 있다.
2021년 1월 19일 SBS 불타는 청춘 새 친구로 출연하였다.

3. 주요곡


1집: 영웅



2집: 그녀의 뒤엔 항상 내가 있었다

눈을 감아

3집: Tell Me Why


[1] 개명 전 최창민[2] 큰형과 17살, 작은누나와 10살 터울인 늦둥이다.[3] 이쪽은 본명이 심창민.[4] 댄서 시절 무대에 올랐던 곡들은 터보 곡들(Goodbye Yesterday 등) 외에도 김애리의 Bad Boys, 박지윤의 하늘색 꿈 등이 있다고 한다.[5] 비디오스타에서 공개한 바에 따르면, 룰라의 팬이여서 쇼 프로그램 녹화장을 가서 사인을 받았다가, 댄서 팀 단장의 눈에 띄어서 댄서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하교 후 다섯 ⁷시간 동안 기본기 연습을 하다가 기존 단원의 부상으로 그 자리에 투입됐는데, 그 첫 무대가 김애리의 Bad Boys. 반응이 좋아서 충원 멤버에서 터보의 메인 댄서로 자리잡았다. 참고로 소속 댄스팀은 DOHC였고 본인은 당시 만 16세로 최연소 멤버였다고.[6] 처음에는 1년에 2장 정도 발매하는 프로젝트 식의 제안을 했지만 데뷔 앨범이 성공하면서 3년동안 정규 앨범 3장이 발매되었다.[7] 이 회사는 Y2K, UP등이 소속되었던 회사였고 그래서 비슷한 시기 활동한 Y2K와 친하게 지냈으며 Y2K와 최창민은 항상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서로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Y2K의 리더 고재근비디오스타에 동반 출연했다.[8] 원래는 송혜교 단독이였지만 최창민이 합류 후 함께 소개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요원, 김승현과 함께 넷이서 소개한 적도 있는데, 이 날에는 송혜교와 함께 스마트 교복 광고(아래 영상 참조)를 재연했다! [9] 당시 뮤직뱅크 MVP 후보는 총 3팀이었다.[10] 곽부성'무기'(Wu Ji, 無忌/Fearless)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11] 수정 전엔 '일주일 만에'라고 나와 있었지만 인기가요에서 2000년 6월 4번째 주~8월 3번째 주 사이 총 4차례 무대에 출연했던 것을 확인.[12] 이 매니저는 여성이며 다른 인터뷰를 보면 이 사람이 가장 적극적으로 제안했다고도 한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최창민의 2집 활동 모습이 나오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실장이 이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13] 싸이월드에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14] 최창민은 심은진을 팔로우하지 않았지만 심은진은 그를 팔로우 중이다. 간미연과는 맞팔 상태.[15]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면 2주에 16만원을 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명리학 수업료가 고액이었기 때문에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 했다고.[16] 이 때 시기는 빠르면 2017년 10월, 늦으면 2018년 1~2월에 출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차태현이 백미. 이유인즉슨, '''파업만 아니었으면 10월에 복귀했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니... 게다가 방영 날짜도 '''2018년 1월''' 10일이다![17] 이후 불타는 청춘에서는 최창민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다시 활동명을 최창민으로 바꾼 것인지는 불명.[18] 게다가 동일 영상에서 전현무에게 도화살, 홍염살이 붙어있다고 했는데 11월 12일 연애 소식이 전해지면서 역시 예언이 적중했다...[19] 다음 팬카페들은 대부분 휴면으로 전환되거나 방치 상태이고, 아예 관리자가 탈퇴한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