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스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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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7년 4월 15일에 대성기획(현 DSP미디어)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6인조로 데뷔했던) 4인조 보이그룹이다.'''안녕하세요 젝키입니다.'''
2000년 5월에 해체되며, 2016년 4월에 재결합을 하고,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7년~2000년 활동 당시 H.O.T.와 함께 가요계 아이돌 돌풍의 쌍두마차였으며,[5] '''아이돌 팬덤의 시초'''[6] 로 알려져 있다. 공식색은 '''노랑'''이다.
그룹명 '젝스키스'는 독일어로 여섯 개의 수정[7] 이라는 뜻으로, 팀 내에서 멤버 세 명씩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로 구분했다.
블랙키스는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 화이트키스는 (장수원, 고지용, 강성훈)이다. 활동을 거듭하면서 이 컨셉은 초창기 컨셉으로 남는다.
젝스키스의 약칭인 '젝키'로도 주로 불리곤 한다. 공식 색은 노란색이며 팬클럽은 옐로우키스(옐키)이다.
1997년 4월 15일에 데뷔해 2000년 5월 18일 공식 해체했고,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를 통해 재결합하게 된다. 이후 고지용을 제외한 나머지 5인이 YG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해 다시 활동에 나서게 되다가[8] 2019년 1월 강성훈이 공식제명되면서 현재는 4명으로 활동 중이다.
전 소속사인 DSP미디어는 젝스키스와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지금까지 젝스키스 상표권을 신청한 바도 없다.[9] YG엔터테인먼트와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상표권 또한 YG 측에서 정식으로 등록해 젝스키스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젝스키스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1.1. 인기
1990년대 후반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로 3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줄곧 정상권에 있었고, 다수의 음악 방송 1위를 비롯해 각종 가요 시상식 본상은 물론 98년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정상급 아이돌'''이었다. 데뷔 초 10대 여성 팬덤이 상당했으며 활동할수록 젊은 여성 층과 남성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아이돌 그룹이면서 매년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매진을 기록하였으며 2000년 해체 발표 후 드림콘서트(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고별 무대에 '''약 5만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10] 음악 외적인 예능, 연기, 뮤지컬 등의 활동이 미비했던 당시에도 데뷔 초부터 고정 예능에 출연했고, 멤버 전원이 라디오 DJ를 하였으며, 영화, 뮤지컬에도 출연했고 젝키의 이름을 붙인 상품도 출시한 바 있다.
젝스키스가 건재하던 당시에는 (1998년 ~ 2000년 초) 같은 1세대 아이돌인 신화와 god보다 훨씬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11][12][13] 이러한 평가는 젝스키스가 재결합 후 과거의 이력이 알려지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짧은 시간의 활동후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잊지않고 있는 팬들의 관심에 대중들이 당대 인기를 실감하게 되며, 새로운 세대들까지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제시하고 있다.
H.O.T.와의 비교 문제의 경우, H.O.T.와 격차가 컸던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 H.O.T. 팬덤 규모가 워낙 컸던 것이지, 젝스키스 자체의 절대적 인기치만 따지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컸긴 하지만, 2위와 그 밑의 격차도 컸다. 그리고 젝스키스는 노래의 대중성이 확보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커플'''은 역대급 대중성을 오랜 기간 유지했다.[14][15] 참고로 양 기획사 입장에서는 라이벌 구도를 통해 동반 상승효과를 얻으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돼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SM 이수만 사장이 고맙다며 젝키 매니저한테 밥도 사주고 등도 토닥여주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16][17]
2016년 재결합 후 현재까지 상당한 규모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 활동 당시에 보유했던 기존의 팬덤[18] 과 동시에 재결합 소식 이후 새로운 팬덤이 유입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할 점은 젝스키스가 오랜 공백을 딛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어린 팬층[19] 을 적지 않은 비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때문에 팬들의 연령 스펙트럼이 꽤나 넓은 편이며 아이돌 팬덤 중에서도 독특한 케이스.[20][21]##[22]
'''3년이란 짧은 활동 후 16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않은 수많은 팬들과 지금의 세대가 아닌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새로운 팬층까지 유입시킬 수 있는 저력있는 그룹'''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이 한창 활동했던 시기인 1997년~200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현재 기준 성인으로 성장했으며 해당 나이대의 현역 아이돌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젝스키스는 16년이 지나 재 결합 당시에도 많은 팬들이 응원을 겉삼아 보고싶었다 다시 돌아와줘서 고맙다 등등 훈훈한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1.2. 외모
재결합 이후 16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상당히 잘된 외모[23] 와 몸매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는 현재 어린 소녀팬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지난 토토가 시즌 1에 비교해서 어린 시청자들이 90년대 가수를 보고 팬이 되어버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1.3. 음악
대중적인 컨셉과 노래로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간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정규앨범만 5장으로 히트곡 수가 상당한데, 타이틀곡만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수록곡은 팬들만 듣는 요즘의 아이돌 앨범과는 달리, 각 앨범당 수록곡까지 2~3곡은 히트를 쳤다. 심지어 3집의 경우, 아이돌 가수 중 최초로 '''한 앨범에서 3곡이 지상파 1위'''를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운다. 대체로 타이틀 곡으로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댄스곡을 선보이며, 후속 활동으로 발라드와 부드러운 템포의 곡으로 활동으로 조화를 이루며 여러 색깔을 보여주었다. 립싱크가 많았던 활동 당시에도 격한 안무속에서도 라이브 무대가 많았으며 무리없이 소화하기도 했다. 그 중 1997년 폼생폼사와 기사도, 1998년 무모한 사랑, Road Fighter, 커플, 1999년 Com' Back 등은 시간이 지나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젝스키스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타이틀 곡으로 활동하지 않은 앨범 내 수록곡 중에도 명곡이 많은데, 특히 기억해줄래, 너를 보내며, 예감과 같은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들이 많이 꼽힌다. 특히 오락실을 휩쓸던 펌프 음악으로도 사용되어서 큰 인기를 모아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2. 멤버
3. 결성 배경
3.1. 멤버 영입 과정
은지원과 강성훈이 제일 먼저 캐스팅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장수원, 이재진, 김재덕, 마지막으로 고지용이 젝스키스에 합류하였다.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를 K-pop 최초의 유닛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 활동도 허용이 안되고 완전체로만 활동해야 했던 당시 분위기 상 실제 유닛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29] 활동목적이 아닌, 컨셉과 파트를 둘로 나눈 것으로, 실제로 데뷔 초엔 블랙 키스는 검거나 짙은 옷, 화이트 키스는 희거나 밝은 옷을 입고 나오곤 했으나 이후엔 이마저도 별 구분 없이 멤버 전원이 옷을 통일하게 되었다.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를 나누게 된 비화가 2016년 9월 10일 콘서트 Yellow Note에서 밝혀졌는데,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이재진만이 알고 있었다. 일본 그룹 V6가 멤버들끼리 나이차가 심해서 연령대를 기준으로 20th Century(토니센)와 Coming Century(카미센)로 구분하는데,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은 하와이에서 유학 중이었고 은지원은 클럽 DJ[30]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당시 이호연 사장이 은경표 PD와 같이 하와이에 놀러왔었는데, 은지원이 일하고 있던 클럽 사장과 이호연이 친분이 있었다.[31] 이호연은 클럽 사장에게 남성 듀오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하자 사장은 은지원과 강성훈을 추천했다고 한다. 이호연은 클럽에서 즉석 오디션을 본 뒤[32] 공식적으로 두 사람에게 가수 활동을 제안하였다. 제안을 승낙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둘은 듀엣 데뷔를 예정으로 대성기획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H.O.T.가 캔디로 대박이 터진 것을 목격한 사장이 듀엣에서 6인조 아이돌로 노선을 변경하고 급히 추가 멤버 모집을 시작하였다. 이때 강성훈은 회사를 나가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사장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어 먹는다.
장수원은 본래 친구 따라 오디션에 따라갔으나 정작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이 합격한 경우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아이돌 가수들의 합류 과정과 비슷하지만 정말 특이한 것은, 오디션장에서 잘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고 장수원이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답했더니, 사장이 솔직해서 좋다며 그대로 합격시켰다는 사실이다. 당시 장수원은 학교 댄스팀에 속해 있어 춤을 잘 췄고, 이에 1차 오디션을 통과하고 2차 오디션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가수로 데뷔하겠다는 큰 의지가 없었고, DSP 측에서 2차 오디션에 나와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DSP 측에서 붙잡은 면이 큰 것이다(2차 오디션에서 위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 이 점은 2015년 1월 8일 SBS 박소현의 러브게임에서 박소현도 증언했다. 당시 박소현도 DSP 소속이었는데, 이호연 사장한테서 젝스키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장수원의 경우, 친구 따라 왔는데 가수가 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님은 무조건 잘된다고 하길래, 저 친구의 어떤 모습을 본 걸까 의아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나도록 롱런하는 것을 보니, 사장님은 괜히 사장님이 아니라 느꼈다고 한다.해당영상
이어서 학창시절에는 부산에서 춤으로 유명했고 당시에 이주노의 소속사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이재진과 김재덕을 스카우트해왔다. 당시 사장이 이주노 사무실에 찾아와서 둘을 보고는 김재덕만 뽑아갔지만, 이후 이재진도 합류하게 된다. 이호연은 이재진이 화면으로 봤을 때 코가 너무 크다며 뽑기 싫어했는데, 은지원과 김재덕이 사장과 매니저를 설득해 뽑힐 수 있었다[33] 마지막으로 학교 얼짱으로 유명했던 고지용이 강성훈의 추천으로 합류했다.[34]
3.2. 젝스키스 멤버 영입, 강성훈 역할에 대한 거짓말
2016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강성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다.
이호연 사장을 싫어하는 젝키 팬덤은 이 방송을 계기로 "젝스키스를 만든 것은 강성훈이지 이호연은 한 것이 없다"는 식의 글을 많이 퍼뜨렸다. 그러나 강성훈 발언 자체부터 다른 멤버들 발언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을 뿐더러, 사실관계를 따지면 젝키를 만드는데 제일 큰 공헌을 한 것은 이호연 사장이다.당시 은지원과 강성훈의 듀엣에서 6인조 아이돌그룹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는데, 강성훈은 반발하여 자신은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이에 사장이 "네가 OK한 사람으로 뽑겠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강성훈이 오디션장에서 이호연 사장 옆에 앉아 이야기하며 멤버들을 뽑았다. 장수원은 오디션 장에서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말하는 순수함이 마음에 들어, 강성훈이 사장한테 귓속말로 "쟤 픽스 하시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재덕은 워낙 춤을 잘 추니 사장이 처음부터 OK 했다. 근데 장수원 폭로에 따르면 강성훈은 김재덕 얼굴을 보고 뽑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에 강성훈이 해명하길, 얼굴이 아니라 사투리가 너무 쎄서 오해했다고 밝혔다. 이재진의 경우, 강성훈 생각에 김재덕이 각기춤을 잘 추는 반면 이재진은 웨이브를 잘 춰서 조화가 맞아 보였다고 한다. 고지용은 강성훈과 초등학교때 부터 친구인데, 고지용이 강성훈에게 가수를 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강성훈의 추천으로 젝키에 합류하게 됐다.
우선 이재진의 영입은 기존 인터뷰에서 밝혀졌던 바에 따르면, 은지원과 김재덕이 사장과 매니저를 설득한 덕분이다. 원래는 이호연이 6명 멤버 중 이재진은 뽑기 싫어했다. 화면으로 보니 코가 커서 안 되겠다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99년도 출연한 서세원쇼나(영상 14분부터), 컴백 자서전의 김재덕 부분에 은지원과 김재덕이 회사를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35]
고지용의 경우 기존에 자서전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호연이 처음 얼굴 보자마자 바로 OK해서 멤버로 영입하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지용이 강성훈한테 가수를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다'라는 부분도 고지용 본인의 말과 다르다. 고지용은 자서전에서나 인터뷰에서나 늘상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해왔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에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장수원의 경우 이호연 사장이나 다른 멤버의 발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뽑혔다. 2차 오디션장에서 이호연 사장이 '잘 하는 게 뭐냐'고 장수원에게 물었는데, 장수원은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사장이 솔직해서 좋다며 그대로 합격시켰다.
영입 과정 전반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호연 인맥의 공이 제일 컸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은지원, 강성훈 2명은 이호연이 친분이 있던 하와이 클럽 사장으로 부터 소개 받아 직접 데리고 왔다.(출처: SBS 땡큐 130329일자 방송) 그리고 나머지 3명도 강성훈이 아니었으면 젝키 멤버로 뽑히지 않았을거라고 볼 수 없다. 장수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사장이 솔직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서 뽑고 싶어 했다. 김재덕과 이재진은 이주노 소속사의 연습생이었는데, 이호연이 찾아가 직접 데려왔다. 이호연과 이주노가 형 동생 하는 사이일 정도로 친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고지용의 경우 강성훈을 계기로 소개받았으니 강성훈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컴백 자서전의 강성훈 부분에 적힌 관련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즉, 강성훈이 젝키의 결성에 영향을 줬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라디오스타에서의 발언은 과장됐다. 젝키 팬들이 퍼뜨리던 "젝키는 강성훈이 만든 그룹이고 이호연은 한 것 없다"는 말은 더더욱 거짓이다. 애초에 강성훈이 원하는대로 였다면 6인조 그룹인 젝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성훈이 싫어하던 김재덕이 초반부터 잘만 멤버로 가입된 것을 보면, 이호연 사장의 발언(네가 OK한 사람으로 뽑겠다)이 진심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나 안하겠다"는 16살 짜리 연습생을 달래느라 한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대형기획사가 사운을 걸고 런칭하는 아이돌을, 16살 짜리 연습생이 전적으로 맡았다는 것 자체부터 말이 안된다.[36]원문: 그러나 뜻밖의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한창 5명에서 6명 정도의 댄스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는 멤버의 수가 6명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사장님,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멤버가 그렇게 많은 그룹에서는 노래부르기 싫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배짱이 튀어나왔는지 겁도 없이 사장님께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수의 꿈을 접고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 사장님은 나를 설득하시는 한편, 어머니를 만나 내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번 품은 가수의 꿈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때 나의 마음을 돌려주신 분은 어머니셨다. "성훈아, 비록 어리지만 사장님과 이미 한 약속은 지켜야 되지 않겠니? 그리고 쉽게 네 꿈을 접을 수 있겠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렴"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어머니, 한번 해볼게요. 그 대신, 열심히 할 게요." 그리고 내 마음이 완전히 바뀐 것은 지금의 멤버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부터였다. 착하고 세련된 느낌의 수원이, 워낙 춤을 잘 추는 재덕이 형과 재진이 형을 보니 더욱 믿음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한 지용이. 지용이는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모범생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와 붙어다니던 춤꾼 중에 춤꾼이었다. 이렇게 여섯 명이 모이자,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고 잘해낼 자신감이 생겼다.
2018년 9월 강성훈의 팬클럽 문제, 대만 공연 문제 등 여러 구설수가 터지고 나서는, 위 발언이 거짓이었다는 글이 젝키 팬덤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도에 강성훈이 젝키 만들었다며 글 퍼뜨리던 것을 생각하면 180도 태도가 변했다.
본 문단이 작성된 후, ‘예능에서 재밌으라고 약간의 MSG를 첨가해서 한 발언일 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며 위 내용이 대거 삭제됐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능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젝스키스 팬덤은 2016년경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에서 보듯이 이호연 사장에 대한 온갖 욕설과 허위루머를 유포했다. 그 과정에서 위 라디오스타 발언은 좋은 소재거리였다. 이호연은 한 것이 없고 젝스키스는 강성훈의 작품이라는 내용을 퍼뜨렸으며, 심지어 해외 케이팝 팬들한테도 그렇게 유포했다.[37] 이에 2018년 9월 강성훈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진 후에, 젝키는 강성훈이 만든 그룹이라는 옹호 글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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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위키피디아도 같은 취지의 내용으로 수정해놨었다.## 이렇게 잘못된 사실이 퍼뜨려진 상태라면, 그에 대한 반박 내용이 작성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당시 올라온 글의 예시는 각주 참조 바람.[38] 글에서 보듯이 ‘개호연 욕하면서 안목 하나 땜에 깨림직했는데 ㅈㄴ 상쾌하다’ ‘저 새낀 결국 ㅂㅅ’ '역시 개호연 취향이 그리 고급질리없엇네' 등 모욕 글도 다수 올라왔다. 이래놓고 2018년 9월 사건이 터진 후에는 팬덤이 나서서 본 문제에 대해 강성훈을 비난하니, 태도가 완전 바뀐 것이다. 올라온 글을 보면 180도 태세 전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4. 활동
4.1. 정산 문제
90년대 활동 말기 즈음에 소속사와 정산에 관해 다툼이 있었다고는 한다. 문제는 팬덤에 의해, 한달에 100만원씩 벌었다거나 소속사가 젝키로 번 돈이 수백억이라는 등의 허위 사실이 많이 퍼졌다는 점이다. 특히 은지원의 2억 발언이 각 사이트에 많이 퍼뜨려져 있다. 이에 대한 팩트 여부, 객관적인 증언 및 자료, 90년대 연예기획사의 수입 규모 등이 위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4.2. DSP 관련 루머
2000년 해체 당시, 젝키 팬덤에 의해 DSP 관련 허위 루머가 많이 올라왔다. 이는 2016년 젝스키스가 재결합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국내 및 해외의 각종 사이트에 젝키가 과거 이런 일을 당했다는 글들과 욕설을 수없이 올렸다. 일부 맞는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 허위 사실과 과장이 심하게 섞여 있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가 위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2016년 말에는 젝키 팬덤으로 추정되는 집단적 세력이 위 문서를 수차례 훼손하였다. 결국 편집제한이 오랫동안 걸려졌었다.# 이후 토론으로 넘어와서도 불법적인 행동이 이어졌고, 토론의 대다수 계정이 다중계정으로 발각되어 영구차단 당하는 사태로 까지 번졌다.# 동일인이 여러 명의 사람들인 척 하며 수백개의 글을 올려 문서를 지우려했다. 그러다 아이디를 헷갈려 글을 올리는 바람에 들통이 났고,# 관리자의 조사 결과 다중이 짓이 매우 광범위하게 벌어졌음이 드러났다.
4.3. 해체
2000년 5월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해체를 발표했다. 당시엔 이유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팬들은 이호연이 강제로 찢어놔서 해체당한 것이라는 루머를 인터넷에 수없이 퍼뜨렸다. 이는 2016년 젝키가 재결합하며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그간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할 때 마다 이에 대한 질문이 자주 나왔고, 그때마다 강제 해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재진의 경우 팬들의 루머와 비슷한 뉘앙스로 말한 바 있지만,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그것은 이재진 개인의 생각이었다. 다른 다수의 멤버들 생각은 달랐다. 자세한 내용은 위 문서를 참고 바람.
5. 해체 이후
5.1. 단체 활동
2000년 7월 31일, O2MUSIC이라는 음악사이트를 통해 팬송 "Thanks"의 mp3파일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Thanks" 뮤직비디오 YouTube 링크
2001년 5월 25일, 강성훈의 솔로 1집 앨범 <비상(飛翔)>의 수록곡 "지난 1년 동안은..."에 이재진, 김재덕,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 다섯 멤버가 참여했다. 해체 후 1년 간의 심경을 담은 노래로, 김재덕이 작사, 장수원이 작곡하였다.
2003년 4월 18일, 이재진의 솔로 2집 앨범 <002 J2>의 수록곡 "우리(遇離)-만남과 떠남"에 이재진, 김재덕, 강성훈, 장수원 네 멤버가 참여했다. "지난 1년 동안은..."과 마찬가지로 젝스키스 팬들에게 바치는 곡이다.
2013년 12월 14일, 전 소속사인 DSP의 패밀리 콘서트 "DSP 페스티벌"에 은지원, 장수원, 김재덕 세 멤버가 젝스키스의 이름으로 출연했다.
5.2. 개인 활동
6. 재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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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 2 게릴라 콘서트에서 다시 만난 6명의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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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에 출연한 5명의 멤버'''
해체 이후 지금까지 팬들은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간간히 젝스키스의 재결합 가능성을 논하기도 했다. <20세기 미소년>을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분을 보면 활동 기간에 멤버들 사이는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른 그룹에 비해 비교적 안 싸우고 항상 여섯 명이 몰려 다니며 재미있게 지냈다"고 얘기했다. 2016년 복귀 이후 드러난 일화들을 보면 리더인 은지원의 리더십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39] 덧붙여 하와이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은지원-강성훈,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인 강성훈-고지용, 부산에서 같은 댄서팀에서 날린 김재덕-이재진까지 데뷔 이전부터 쌓은 소소한 친분들도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은지원, 장수원, 김재덕 등 멤버들에게 패널들이 직접 재결합에 대한 질문을 하는 등 관심을 받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2014년 무한도전 토토가 캐스팅 과정에 젝스키스 멤버로서 장수원과 김재덕이 등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90년대 가수들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진 상태에서 god는 재결합해 신곡을 발표했으며 S.E.S. 역시 토토가 이후 현역 못지않은 큰 관심을 받고 있어 당대 아이돌의 아이콘이었던 젝키의 재결합설이 주목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연예계와 인연을 끊고 있는 고지용의 복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또한 이재진, 강성훈, 장수원, 김재덕은 재결합에 대해 긍정적인 반면, 은지원은 당시 중립적이고 조심스러운 입장이고, 고지용은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니[40] 당시로서는 재결합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었다.
6.1. 2016년
이후 2016년 3월 31일, 마침내 젝키의 재결합을 알리는 기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은지원의 확인까지 이뤄지며 젝스키스는 16년 만의 재결합 무대에 서게 된다. 다행히 강성훈은 사기죄 불성립에 의한 무혐의 처분과 무한도전 제작진의 요청으로 2016년 4월 7일로 출연 정지가 해제되었다.
다만 재결합 기사를 낸 신문사가 무한도전 측에서 요청한 엠바고를 어긴 것으로 알려져 콘서트 일정 변경 가능성이 대두되었고, 결국 무기한 연기되다가 4월 14일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더 자세한 사항은 토토가2 - 젝스키스 문서 참조.
2016년 5월 11일 고지용을 제외한[41] 5명 전원이 YG와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YG에서 젝스키스 상표권을 등록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같은 해 9월 10일, 11일에 16년만의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대한민국 공연의 상징인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단독 콘서트로 양일을 매진시켰다.
10월 1일 SBS에서 생방송된 2016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개막공연에 출연했다.
10월 7일 자정에 콘서트에서 선공개한 신곡 '세 단어' 디지털 음원이 공개되었다.
12월 1일 젝스키스의 히트곡들을 리메이크한 2016 Re ALBUM이 공개되었다.[42]
이후 2016년 리메이크 곡으로 SBS 인기가요에 출연.] 2곡 빼고는 반주까지 모두 라이브 세션으로 이뤄진 무대에서 'Com' Back'+'기사도'+'사나이 가는 길 (폼생폼사)' 3곡을 메들리로 부르고, 토크 후에는 '연정', '너를 보내며', '커플' 3곡을 잇달아 불렀다.
6.2. 2017년
4월 28일 20주년 기념 앨범인 'THE 20TH ANNIVERSARY'가 공개되었다. 지난해 발표했던 '세 단어' 와 타이틀곡 '아프지 마요' , '슬픈 노래' 등 3곡의 신곡과 8곡의 리마스터 트랙[43] 이 수록되었다.
9월 21일에 18년 만인 정규 5집 'ANOTHER LIGHT'가 발매되었다. 타이틀곡 제목은 '특별해' 와 '웃어줘'. 하지만 앨범 발매 후 방송활동이 거의 전무했다. 그러다 12월달에 인기 예능인 아는 형님과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10월 22일 2017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개막공연에 출연했다. '세 단어'와 '특별해'를 불렀다.
12월 31일 MBC 가요대제전에 출연했다. '특별해'와 '세 단어'를 불렀고, 워너원과 콜라보로 '커플'을 불렀다.
6.3. 2018년
2월 14일, 제 7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가수상 - 9월 디지털 음원 부문을 수상했다.
6월 12일 기준, 양현석의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9월 컴백 예정이다. 그러나 한 멤버가 일으킨 논란 때문에 9월 컴백은 불가능해졌다.
10월 13일, 14일 양일간 진행 예정이었던 젝스키스 콘서트는 강성훈을 제외한 4인에 맞춰 전면 수정되었다.
12월 31일자로 강성훈이 전속계약 해지와 함께 팀을 떠나며 4인조가 되었다.
6.4. 2019년
은지원 솔로앨범이 6월 27일 발매되었으며 젝스키스 신곡 준비도 잘 진행중이며 여름에 여러 컨텐츠가 준비되어있다. 4인 체제로 컴백을 준비중이다.
6.5. 2020년
1월 28일 컴백했다. 4인조로 재편후 첫 앨범이자 데뷔 23년만의 첫 미니앨범이기도 하다. 타이틀곡은 ALL FOR YOU, 수록곡 차례대로 ALL FOR YOU, 꿈(DREAM), 의미 없어(MEANINGLESS), 제자리(ROUND & ROUND), 하늘을 걸어(WALKING IN THE SKY)가 있다. 엠카운트다운에서 ALL FOR YOU로 2월 첫째주 1위를 했다.
4월 15일부터 매주 수, 목 6시 Seezn 에서 젝키오樂관을 방영 중에 있다.
5월 15일부터 7월 24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10시 40분~45분 tvN에서 삼시네세끼를 방영했다.
2021 시즌그리팅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6.6. 2021년
유희열과 젝스키스의 콜라보 프로젝트가 채널 십오야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1월 22일 공개가 확정되었다. 곡명은 '뒤돌아보지 말아요'
7. 팬덤
8. 수상 경력
8.1. 시상식
8.2. 가요 프로그램 1위
9. 여담
- 멤버 전원이 자연미남이다. 2016년 재결합 당시 3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동안이다.
- 맴버들이 하나같이 비글미를 뿜어낸다. 오죽하면 그 은초딩 은지원이 가장 정상인으로 취급된다. 예나 지금이나 맴버들끼리만 출연하는 방송분을 보면 대화의 주제가 시시각각 다른 산을 오르다가 아무말 대잔치로 변한다.
- 이 그룹은 팬픽도 유명했다. 공식 팬픽은 젼훈(은지원,강성훈), 진죵(고지용,이재진), 숸덕(장수원,김재덕)이다.
- 역대 가요계 라이벌을 대표하는 한팀으로[44] 실제 팬덤의 규모는 경쟁그룹인 H.O.T.가 압도적으로 컸으나 활동하는 내내 방송가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45] 현재에도 언론에서 한팀이 언급되면 높은 확률로 같이 언급된다. 충성심이 높은 아이돌팬 특성상 상대그룹에 대해 악감정이 높아 확실한 타도세력이 많았던것도 사실이며,[46] 세월이 지난 현재에도 존재한다. [47] H.O.T.의 넘사벽 인기에 비하면 팬덤이 적은 것은 맞지만, H.O.T.를 제외하면 젝키에 대적할 수 있는 다른 아이돌은 없었다. 확실한 2인자로서 H.O.T.의 라이벌로 불리기에는 충분했다.
- H.O.T. 팬들과 젝스키스 팬들의 신경전은 매우 치열해, 심할 때는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48] 팬들의 직접적인 싸움이 워낙 격렬해서 항상 구급차가 상주하다시피 했을 정도였다. 당시 싸움이 격렬했던 만큼 큰 사고도 많았다.[49]
- 반면 젝스키스 멤버들은 H.O.T. 멤버들과 관계가 꽤 좋은 편. 김재덕은 토니 안과 10년이나 동거하고 있을 정도고, H.O.T.의 재결합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젝스키스의 재결합에 자극을 받았다. 90년대 H.O.T.의 무협팬픽인 협객기가 시중에 출판되었을 당시 소속사에서 멤버들의 상표권 같은 문제로 소송을 걸었는데, 사유 중 하나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는 은지원을 작중에서 H.O.T. 멤버가 살해하는 묘사가 있어 명예훼손이 우려된다는 것이었을 정도다.
- 원래 그룹 이름 후보들이 하나같이 주옥같다. 마그마, 용암, 육계장 등. 특히 육계장이 유력했던 모양이다. 이에 맞춰 공식색도 빨간색이 될 뻔 했다. 그룹 초기에 공식색이 노랑 말고도 빨강이 포함되었던 것은 이 영향이다. 이후 사장이 MBC 은경표 PD에게 작명을 부탁했고 그 결과 젝스키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은경표 PD는 이호연사장과 96년도에 하와이로 놀러갔었는데, 이때 이호연이 은지원과 강성훈을 스카우트 해왔었다. 하와이에서 강성훈과 은지원이 이호연 앞에서 오디션을 볼 때, 은경표 PD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젝스키스라는 이름을 괜히 지어준 것이 아니었다.[50] 콘서트 Yellow Note에서 후보였던 이름들을 언급했다. 은지원은 육개장이 건강식이니 괜찮다고 밝혔다.
- 소속사가 음반을 내기도 전인 1997년 3월부터 각 통신망에 멤버들의 사진과 새로 나올 음반에 대한 정보들이 제공했다. 그로 인해 젝스키스는 매체에 출연하기도 전부터 10대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데뷔 무대 때부터 팬들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51] 라디오스타[52] 에서 김재덕이 한 말에 따르면, 데뷔 전인데 팬들이 자신의 숙소에 들어와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 1999년 11월 29일 평양에서 2000 평화 친선 음악회에 참가했다. 멤버 강성훈을 여성으로 알고 혼성 그룹으로 표기하여 여러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었다. 2008년 놀러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매니저 등은 모두 한국에 남고 이호연 사장만 동행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말을 잘못하면 체크를 해, 그 기준을 넘으면 북한에 억류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핑클이랑 젝키 10명이서 한방에 둘러앉아 있을 때, 도청될지도 모르니 서로 말 조심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은지원이 갑자기 '나는 공산당이 싫어' 라고 하더니, '이거 고지용이 한거에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은초딩은 이때부터 이미 시작된 듯... 2015년 해피투게더에 성유리가 출연했을 때, 당시 평양에서 젝스키스와 찍었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TV에 평양이라 하면 단골로 나오는 장소다.
- 해외에서 젝스키스의 곡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리메이크한 건지 단순한 표절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중국판 컴백 일본판 컴백 젝키 컴백 니코동 반응 중국판 커플 중국판 연정(모바일에서는 볼 수 없다) 연정 리메이크 다른 링크
- 한편 뮤직비디오를 감독 사비로 찍게 시켰다는 루머를 퍼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정확한 사실 관계는 어떤 신인 감독이 Road Fighter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 자기네 회사에서 비용을 전액 부담해 뮤비를 찍고 싶다고 DSP에 연락하여 찍었다는 것이다.(출처 : #) 놀랍게도 그 감독이 빅뱅과 2NE1,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를 대부분 연출한 YG 뮤직비디오 전담 감독 서현승이다. 해체 16년 후 젝키가 YG로 오게 됐으니 사람 인연이란 것이 참 희한하다.
- 데뷔 당시 고지용이 폼생폼사로 활동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으나, 은지원이 이 곡으로 무대에 오르자고 밀어붙여 수록곡으로 묻힐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외 3.5집을 준비할 당시 이호연 사장은 은지원의 똥고집에 머리를 썩히다 은지원의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는 말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그렇게 "커플"이 3.5집 타이틀곡이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커플 때에는 사장이 반대하는 것이다보니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소문이 있다. 다만 위 서술은 출처가 없고 어디까지나 팬들 사이에 있는 소문이다. 아무튼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은지원의 선구안이 뛰어났던 것이다. 회사 측에서는 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하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경식은 작곡가로서 그때까지 제대로 된 히트곡이 없었다.# 게다가 기존에 해오던 음악과 정반대 느낌의 곡을 작곡했다. 커플 노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슬래쉬메탈 그룹 아발란쉬의 보컬이었다.가창력이 엄청나다 커플 이미지는 1도 안 떠오르는 모습이다 반면 3.5집의 '너를 보내며'를 작곡한 김석찬은,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로 초대박을 쳤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너를 보내며' 노래 자체도 충분히 타이틀곡으로 지정할만한 퀄리티다.# 젝키의 대부분 뮤비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커플 뮤직비디오는 사무실 문짝이 나오는 등 유독 저퀄리티다. 커플 타이틀곡 문제로 사장이랑 대판 싸워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 데뷔 당시 보컬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다. 메인보컬인 강성훈조차 보컬 레슨을 받지 않고 평소 노래 실력 그대로 데뷔한 것이다.[53] 장수원은 해체 후에 피눈물을 흘리듯이 연습하여 득음했다. 춤은 위에 각주에 달아놓은 이재진의 컴백 자서전 원문을 보면 꽤 기간을 들여 연습한 것으로 보인다. 자서전을 보면 연습생 시절 회사에서 기계체조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팔 뻗는 것만 반 년 연습했다는 말도 있다. H.O.T. 데뷔 후 급히 멤버들을 모아 데뷔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멤버들조차 정확한 수익 분배를 모르는 상태로 활동했기에, 일부 팬들은 젝스키스로 번 돈을 핑클에게 투자하느라 젝스키스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며 비난을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허위 사실이 유포되어 있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를 참고할 것. 멤버들이 정확한 수익 분배를 몰랐던 것은 정산이 부모와 회사 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54] 아무튼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상당수의 젝스키스 팬들은 핑클을 싫어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것은 아니다. 핑클의 데뷔전 젝스키스 후배로 걸그룹이 데뷔한다고 하여 젝스키스 팬들은 누구보다 기뻐했고, 기대했다. 일부 팬들은 핑클이란 이름도 지어주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하지만 핑클 데뷔후 멤버간의 스캔들, 핑클로 인한 왕중왕 실패, 소속사의 차별대우가 보이면서 젝스키스 팬들은 핑클을 좋아할수 없었고 이후 팬덤 간의 사이도 나빠지면서, 핑클에 대한 안티활동도 심했다.# 물론 젝스키스와 핑클 당사자들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에 공연 갔을 때 방에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고도 했고, 실제로 각 팀의 리더인 은지원과 이효리는 친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55] 2003년에는 은지원이 신촌에 실내 포장마차 점을 개업했는데, 보통 여기저기 동료 연예인들을 불러야 홍보에 도움이 되지만 은지원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효리가 새벽에 제발로 찾아왔는데, 은지원은 이효리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으니 가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종업원들이 "남들은 이효리 못 불러서 안달인데 그냥 보내면 어떡하냐"며 은지원을 혼냈다고 한다. "자리는 여분의 탁자로 만들면 된다"며 흥분하는 종업원들의 말에 은지원은 '왜 난리지'하는 표정으로 대답 없이 눈만 껌벅거렸다고...기사[56] 김재덕은 2015년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핑클과 친하게 지냈으며, 가끔 술도 한 잔 했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25일 SBS 정재형 이효리의 유 & 아이에서는 이효리와 은지원이 같이 출연했다. 이효리는 당시 젝키와 H.O.T.의 1위 대결에서 젝키가 지면, 같은 소속사라는게 뭔지 우리가 뭔가 진 것 같고 눈물이 났었다고 밝혔다. 은지원도 핑클이 어디 대결 나가면 잘하라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동료 연예인들을 깎아내려서 좋을 게 없으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젝키 멤버들은 소속사에 불만이 있었다거나 소속사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는 종종 언급했어도 핑클에게 악감정을 드러낸 적은 없...었는데 2016년 6월 1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전 소속사의 관심이 핑클에게 옮겨지고 우리는 홀대받은 것 같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물론 핑클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전 소속사에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핑클도 무계약 상태에서 활동했고, 새벽1시30분에 재벌 오너들의 술자리에서 2곡을 부르고 3천만원을 받았다는 잡지 문구가 있는 것을 보면[57] , 어디까지나 젝키보다 대우가 좋았다는 것이지 딱히 공주 대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핑클도 하루 평균 2시간씩 자며 스케줄을 다닐 정도로 빡세게 활동했다. 하지만 아무 탈 없이 소화해서 매니저가 천하장사라고 불렀다고...# 다만 핑클은 젝키보다 후발주자라서 더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이긴 했다.
- 젝키와 핑클은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젝키와 달리 핑클은 각주와 같이 소속사와의 사이가 좋게 끝났다.[58][59] 이런 차이에 대해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젝스키스는 김기영 라인이고 핑클은 길종화 라인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DSP는 이호연 사장이 제일 위에 있고 그 밑으로 김기영과 길종화 2명이 있었는데, 이 두명이 서로 세력다툼을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둘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호연이 데리고 있으면서 대학 학비까지 대주며 키웠다.# 다만 이호연이 뇌출혈로 쓰러진 시점 전후로 해서 둘 다 DSP를 나왔다. 김기영 라인은 젝스키스, 클릭비, SS501로 알려져 있고, 길종화 라인은 핑클, 카라로 알려져 있다. 김기영과 핑클은 거의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김기영의 경우,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젝키 멤버들이 해체이유에 대해 말할 때 사장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매니저(김기영)랑 사이가 안 좋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기영 본인 인터뷰에서도 해체 이후 젝키 멤버한테서 전혀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길종화의 경우, 2012년 본인 결혼식 때 옥주현과 이효리가 축가와 사회를 맡을 정도였다.# 이효리는 길종화가 나와서 차린 B2M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는데, 당시 계약서를 쓰지 않고 계약금을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계약이 오래전에 끝났는데도 계속 의리로 남아있기도 했다.기사 성유리는 2015년 인터뷰에서 "종화 오빠 생각이 많이 난다"며, "S.E.S. 친구들을 보면 요정같고 귀여운 장난을 치곤 하던데, 우리는 네 명이서 힘을 모아 매니저 오빠를 괴롭혔다. 그래서 오빠들이 저희 때문에 힘들어 했다"고 털어놨다.#
- 2007년 8월 20일 핑클의 이진이 야심만만에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말했다. 데뷔전 연습생 시절 사장님이 보고 있으면 열심히 연습하다가 사장님이 나가시면 딴 짓을 했는데, 당시 젝키한테 선물이 쌀자루로 몇개씩 오면 그때 그걸 풀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갖고 싶었던 것 있으면 양심상 하나만 챙기고 다시 다 정리해놨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헛나온 이야기에 자기도 당황하고 있고, 계속 죄송하다고 하고 있다. 01:02:40 정도부터 보면 된다.
- 이재진의 매제이자 젝키의 현 소속사 사장은 한국 연예계에서 대형기획사 양대산맥 중 하나로 불리는 곳의 수장이다. 그 덕분에 눈치 안 보고 지상파에서 해체 당시의 상황을 직접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이호연 사장은 몇년째 거동불가능한채 말도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고, DSP는 이호연이 쓰러진 후 많은 직원이 나가거나 쫓겨나서 현재 젝키 시절 직원은 거의 없다. 회사 자체 상황도 암울하다. 이에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눈치를 볼 대상 자체가 이제는 없다시피 한다.
- 2016년 젝스키스의 재결합 후 YG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소문이 돌자, 이호연 전 사장이 거동불가능한채 누워있는데 인사는 하러 왔어야 하지 않냐며 YG에 앞서 DSP에 연락했어야 한다는 언플 기사가 나왔다. 이에 대해 젝키 팬들이 몰려와서 해당기사 댓글은 악플 일색이다해당기사. 6년째 거동불가능하고 말을 못하는 상태로 누워있는 이호연이 기사를 냈을리는 없는데, 병상에 누워있다 뜬금없이 욕을 엄청 먹게 되었다. 이 언플은 이호연 사장의 공로를 부각시키는 효과보다는, 대량의 악플과 허위 루머 유포 같은 부작용이 더 컸다. 최다추천 댓글 내용들을 보면 허위루머의 총집합 편일 정도다. 강제로 해체당했다, DSP 측이 젝키 상표권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젝키로 소속사가 300억이나 벌었다, 밤무대 돌렸다, 술자리 불러냈다, 3000만원 행사 뛰고 80만원 받았다는 등의 내용인데,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에서 보듯이 이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팬들에 의해 최다추천에 박아놨으니, 이 기사를 계기로 일반인들이 그런 루머를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해당 언플 기사를 낸 DSP 또한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젝키 시절 회사와 트러블이 심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젝스키스 팬덤이 이호연 사장에 대해 악플로 도배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특히 요즘 대중들은 저런 식의 기사를 "앞에 인사 얘기는 그냥 쓴 것이고 결국 DSP랑 계약하자고 언플한거네"라고 받아들인다. 실제로도 그런 목적이 있었다면 어리석은 판단이다. 왜냐하면 DSP에 대한 일반인들 시선조차, 이호연 사장이 쓰러진 이후 회사가 쇠퇴하여 젝스키스를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젝키 멤버들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아무 성과 없이 욕만 먹은 언플이다. 이호연 사장이 물러난 이후 각종 오판들로 쇠퇴한 경력을 봤을 때, 그런 오판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보인다. 물론 이호연 사장이 젝키를 만들고 키웠으니, 6년째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사장한테 병문안 좀 오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하면 될 일이지, 저런 식으로 언플할 사안은 아니었다. 게다가 말도 못하고 거동불가능한 상태인 이호연이 기사에서 나오는 의견을 개진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예 저런 기사가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기사 대부분이 기자의 상상이거나 DSP 측의 의견일 것이다.
- 젝키 팬덤이 이호연을 저주하는 수준으로 싫어했던 것이지[60] , 젝스키스 멤버들이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해체 이후 직접 이호연에 대해 언급한 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은지원, 장수원, 김재덕은 2013년 DSP 페스티벌에 참석해서 공연을 펼쳤다. 은지원은 "사장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사장님은 늘 우리가 무대를 하면 뒷편에 서서 함께 해주셨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으셔서 참석 못하셨다"라며 "사장님 덕에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하며 "의리"를 외쳤다. 이어 김재덕 역시 "이호연 사장님의 빠른 쾌유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재덕은 OBS와의 인터뷰에서는 "젝스키스가 있기까지 DSP라는 기획사가 있었고, 또 사장님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에 출연 결정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영상 22초부터 강성훈은 2015년 1월 30일 러빙핸즈에서 "팬들은 (이호연 사장님을) 안 좋아하지만 DSP 사장님이 젝키를 위해서 많은 일은 하신 건 맞아.. 마지막에 안 좋게 끝나서 그렇지."라고 말했다. 이재진의 경우 대놓고 싫어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과거 싸이월드 시절 호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팬이 글을 남기자, 답글로 "호연이라.."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젝키 결성 당시 6명 중 유일하게 이호연이 탐탁치 않아했던 멤버가 이재진이다. '화면으로 보니 코가 커서 안 되겠다'고 퇴짜를 놓았지만, 나중에 은지원, 김재덕이 회사를 설득하여 멤버로 데려왔다고 한다.영상 14분부터 이때부터 악연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기타 김현중의 2013년 아시아 경제 인터뷰#에서 "은지원 형도 이효리 누나도 다 지금은 이적을 했지만 전 회사를 그리워해요. 사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이전 회사를 그리워하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하지만 모두가 그리워하는 걸 보면 사장님은 참 좋고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역시 정이라는 것은 위대하다는 걸 느끼죠."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더라도 90년대 SM가수들이 지금도 수시로 이수만을 찬양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호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편이다. 이는 이수만은 여전히 권력의 정점에 있는 반면, 이호연은 병상에 누워있던 신세인 면이 클 것이다. 2016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해체이유에 대해 말했는데, 이호연 사장과의 관계가 아니라 가깝게 지내던 매니저(김기영으로 추측됨)와의 사이가 나쁜 것이 원인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 재결합 당시 DSP와 계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젝스키스 멤버들은 2016년 12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래 인터뷰에 언급된 이호연 사장의 경우, 명목상 대표라고는 하지만 뇌출혈로 인해 거동이 불가능하고 감정표현 정도만 가능한 상태로 수년째 누워만 있다. 이에 본 발언은 결국 완전 다른 회사가 됐다는 뜻이다.
“DSP미디어는 우리가 활동할 당시와 전혀 다른 회사였다.”
그룹 젝스키스가 재결합 활동을 데뷔 당시 소속사인 DSP미디어와 협의하지 않은 이유를 이 같이 밝혔다. 젝스키스는 1일 서울 마포구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재결합을 하며 DSP미디어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면서도 “(과거) 대표님은 편찮으시고 매니저는 단 한명도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전혀 다른 회사였다”고 말했다. 은지원과 제이워크로 활동했던 장수원, 김재덕은 과거 DSP미디어 가수들이 모두 출연한 패밀리 콘서트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과거 함께 일했던 매니저는 없었다고 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690448
과거 소속사였던 DSP미디어와의 연결점
“DSP는 우리가 알던 과거 소속사가 아니었어요. 이호연 대표님 말고는 우리가 아는 스태프는 아예 없죠. 다른 회사가 돼 있는 곳이라 교감할 수 없었어요.”(장수원 강성훈 은지원)
http://allets.com/bbs/board.php?bo_table=allets&wr_id=656&sca=STAR
과거 소속사 DSP미디어가 아닌 YG와 손을 잡게 된 이유도 솔직하게 전했다. 은지원은 "예전에 DSP 패밀리 콘서트에 갔는데 저희가 활동할 때 있던 분들이 단 한분도 없었다. 이호연 사장님 외에 다른 회사가 되어있어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473169
현재 카라 측은 dsp의 매니지먼트 미숙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이 문제로 삼는 것은 카라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DSP 이호연 사장의 부인이다.
작년, 이호연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사장 부인이 경영권을 쥐게 된 가운데, 그녀는 연예 소속사 관리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사 경영을 시작, 그로 인해 많은 중역 간부들이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이들 중역 간부 또는 베테랑 직원들은 핑클, ss501 등의 매니지먼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이었다.
또한 사장 부인은 카라의 매니지먼트를 함에 있어서도,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지지해 카라 멤버들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카라측의 주장이다.
요컨대, 이호연 사장이 자리를 비우고나서 dsp의 매니지먼트가 매우 부적절하고 미숙했고, 이것이 이번 계약 해지 소동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변호사측은 “능력 있는 전문적인 소속사를 찾고 있다”고 언급했다.
- 토토가 2 열풍으로 인해 재입덕한 팬들과 새로 입덕한 팬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네이버 검색창에 입덕만 쳐도 연관 검색어에 '은지원 입덕', '젝스키스 입덕', '젝키 입덕' 등이 나올 정도로 인기 몰이 중이다. 3.5집 수록곡 '커플'은 2016년 5월 6일 뮤직뱅크 케이 차트에 14위로 진입했으며 다음주인 5월 13일에는 3계단 상승한 11위에 올랐다. 또한 2016년 5월 보이그룹 브랜드 평판 빅데이터 분석 결과, 수많은 현역 아이돌들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 무도 방영을 전후로 유튜브에 젝키가 출연한 90년대 예능 영상들이 올라왔다. 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젝키를 모르고 산 사람들은 90년대의 예능에 신기해 하고 있으며, 몇몇 신규 팬들은 덕질하려고 봤다가 화질 때문에 놀란다 카더라. 사실상 90년대 후반의 예능 프로그램에 다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도 유튭에 젝키 치면 다양한 젝키가 나온 예능들을 볼수 있다. 98년도 7월에 방영된 SBS 퍼니퍼니에서 홍진경이 가방을 뒤지는 영상까지 있다(...).
- 2016년 6월 24일 방송된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 룰라의 김지현과 채리나가 출연했는데, 채리나는 룰라 시절 후배들을 때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사연을 밝혔다. 채리나는 혼낸 적은 없고 혼난 적은 있다며, 젝스키스 인사를 안 받아준다고 그쪽 대표님인 이호연 사장한테 혼났다고 말했다. 이어 채리나는 “그때 당시 저희가 선배인데 젝스키스가 인사를 건성으로 하더라. 그래서 받아주기 싫었다. 이후에는 친해져서 오해를 풀었다”며 이야기를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 DSP에 1996년 입사후 20년 이상 근무 중인 장진희 이사는, 2012년도 인터뷰에서 입사 초기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기나 정황상으로 봤을 때 젝스키스의 이야기다.기사[62]
장진희 본부장이 DSP미디어에 입사한 것은 1996년 가을. 지인의 소개로 이 회사 기획 파트에 입사해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가내수공업 수준을 면치 못했던 당시 연예계에서 기획이라는 근사한 단어는 이내 사라졌다. "일당백이 아니면 회사도 저도 버틸 수 없었어요"라는 당시 그에게 최근 분업화ㆍ산업화ㆍ세계화 등을 거듭하고 있는 최근 연예 기획사의 변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변변한 숙소가 없던 시절 지방 출신 멤버들 밥을 차려주기 일수였고 컴퓨터가 없던 시절 팬 관리에 마케팅ㆍ정산까지 모두 수기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스케줄 오갈 때 맞춰서 밥을 해놓으면 그렇게 잘 먹을 수가 없었죠. 저까지 허기를 느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쌀을 하도 많이 넣어서 밥통이 터진 적이 있을 정도였어요.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죠."
온라인 뱅킹이 도입되기 전이라 매일 은행에서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다. 매일 가족처럼 사무실에서 마주치다 보니 멤버들은 누나처럼 그를 따랐고 연애상담부터 가족문제까지 시시콜콜하게 회사의 대소사는 그의 손을 거쳐야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음이 숙연해지죠. 한번은 여자친구 선물 포장을 부탁하는 멤버도 있었어요. 워낙 가깝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젝키와 클릭비는 변변한 연습실도 없었어요. 연습생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 무대에 오른 경우죠. SS501 데뷔 때부터 오디션의 개념이 생겼어요. 통과한 친구를 전문 트레이너가 붙어 노래ㆍ춤ㆍ연기 같은 걸 훈련을 시켰죠."
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204/sp2012042007015895510.htm
- 2000년 6월 16일 피자의 아침[63] 방송내용을 보면, 소속사 측은 행사에 있어서는 멤버들에게 70%를 준다고 항변했는데, 젝스키스/정산 문제 문서를 보면 2015년 tvn 택시 방송에서 장수원이 행사 한번에 멤버당 300만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젝스키스의 1회 행사료를 계산해보면, 2570만원이다. 99년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S.E.S.가 행사 1회당 1000만원을 받는다고 쓰고 있는데[64] , 이보다 많은 액수다. 당시 대졸신입 월급 평균이 130만원 할때이니, 2570만원은 굉장히 큰 액수다. 오늘날로 치면 7000만원 가량의 가치다. 오늘날 아이돌 중 이 정도 액수를 받는 팀은 찾기 힘들다.[65]
- 모든 멤버가 데뷔 당시 예명을 쓰지 않은 1세대 남자 아이돌이다.[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