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
1. 개요
관상용으로 키우는 큰 상록수로, 편백나무의 사촌쯤 되는 나무이다. 꺾꽂이도 되지만 일반인은 쉽지 않다.
2. 내용
장미과 과수목[1] 의 병을 매개하는 중간 매개목이라 근처에 심지 않는 것이 좋다.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나무를 말려서 갈아먹으면 뼈가 튼튼해지고 머리가 하얗게 된다고 한다. 열매는 한국의 전통주인 백자주를 담그는 데 사용한다.
측백나무가 화석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쥐라기 말기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발견된 화석 중 안동시 위리읍에서 출토된 화석이 1억년 전 백악기 초기 것으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2]
3. 기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호가 대구의 측백나무 숲이다. 한국에 남아있는 측백나무 숲은 모두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육 상태 또한 나이에 비해서 초라한 편. 본래 측백나무는 큰 교목으로 자라는 나무이지만 자주 채취해간 데다가 생육지가 나빠서 큰 나무가 별로 남아있지 못하다. [3]
예로부터 신선이 되는 나무로 귀하게 대접받아 왔으며, 흔히 송백은 소나무를 백수의 으뜸으로 삼아 ‘공(公)’이고 측백나무는 ‘백(伯)’이라 하여 소나무 다음 가는 작위로 비유됐다. 그래서 주나라 때는 군주의 능에는 소나무를 심고 그 다음에 해당되는 왕족의 묘지에는 측백나무를 심었다. 측백나무에는 무덤 속 시신에 생기는 벌레를 죽이는 힘이 있는데, 좋은 묘 자리에서는 벌레가 안 생기지만 나쁜 자리는 진딧물 모양의 염라충이라는 벌레가 생기므로 이걸 없애려고 측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세한도의 주연이 소나무, 잣나무로 알려져 있지만 소나무, 측백나무로 보기도 한다. 특히 김정희가 베이징으로 갔을 때 많이 봤을 나무이기도 하기 때문. 베이징에는 지금도 수령이 500년이 넘는 측백나무가 많다.
중국에서는 제갈량의 묘에 심어진 나무들이 측백나무다. 제갈량이 사망했을 때 나이인 54세를 따라 54그루를 심었는데, 지금도 그 중 22그루가 살아있다. 중국에서 이 나무들은 국보나 마찬가지다.
참고로 가톨릭에서는 십자가 고상 뒤에 이 측백나무 가지를 꽂는데 이를 '성지(聖枝)'라 부르며, 부활절 바로 전 주가 되는 종려주일에 축성한 가지를 신자들이 집에 가져가서 십자가 고상 위에 꽂아 놓았다가, 다음 해 재의 수요일에 이를 태워 신자들의 이마에 발라준다. 본래는 종려나무나 올리브나무 중 한 가지로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관계로 보통 소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등으로 대체한다.
본래 Thuja라는 속이었고 이 속이 곧 측백나무속이었는데, 이 속과 상이한 점[4] 때문에 플래티클라두스속(Platycladus)으로 따로 분리되었고, 현재는 이 쪽을 측백나무속으로 칭한다. 학계에서는 현재 원래 있던 측백나무속인 Thuja를 한국 특산종인 눈측백(''Thuja koraiensis'')의 이름을 따 눈측백속으로 바꿔서 부른다. 현재는 유전적으로도 실측백나무속(Cupressus)[5] 이나 노간주나무속과 더 가까운 것으로 본다.
[1] 배나무, 사과나무, 모과 등.[2] 이 사이트에서 참고.[3] 대구수목원에 씨앗을 뿌려 심은 도동 측백수림 후계목들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측백나무는 곧고 크게 자랐다.[4] 측백나무만의 뚜렷하게 다른 모양을 지닌 구과, 씨앗에 날개가 없음, 잎에 향기가 나지 않음 등.[5] 율마로 유명한 ''Cupressus macrocarpa''가 속한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