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제1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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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근대 멕시코의 첫 정부체제.
2. 역사
멕시코는 아즈텍 제국 멸망 이래 스페인 제국의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래 쇠퇴 일로를 걷던 스페인이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 본토가 유린당하며 해외 식민지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자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 y Costilla,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신부가 돌로레스라는 마을에 위치한 그의 교회에서 사람들을 부른 뒤 스페인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킬 것을 부르짖었고(돌로레스의 부르짖음;Grito de Dolores), 이후 그를 중심으로 1810년대 독립 운동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달고 신부는 1811년 스페인 군대와 크리올들에게 패배하였다. 이달고 신부의 사망 이후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José María Morelos)가 이어받아 4년간 항쟁을 계속하나, 그 역시 1815년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gustín de Iturbide)에게 무너진다.
독립운동은 실패하고 나폴레옹도 스페인 본토에서 물러가게 된다. 그러나 이후 스페인의 정권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자유주의자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크리오요들은 멕시코 식민지에서의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1821년에 멕시코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한다. 그 독립을 선언한 사람은 다름아닌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였다.
멕시코 사람들 모두가 독립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계속해서 바랐던 근왕주의자들도 있었다.[3] 이 때문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정치적 술수를 썼다. 우선 독립을 선언하면서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섭정이 되었고, 당시 스페인 왕 페르난도 7세에게 멕시코 제국 황제 자리를 제안했다. 즉 정부는 별개이되 군주는 같은 동군연합을 제안한 것이다. 페르난도 7세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그러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다시 스페인 보르본 왕조의 인물을 멕시코 황제로 추대하기로 했지만 페르난도 7세는 그 어느 유럽의 왕실도 멕시코 황제로 추대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페르난도 7세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알고 있었고, 마치 '어쩔 수 없이 독립하는 것처럼' 위장해 멕시코 독립을 이뤄낸다. 물론 스페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독립 전부터 멕시코의 군권을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쥐고 있었으니 그가 전향한 이상 2류 국가가 된 스페인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페인군이 독립운동 진압에 투입되기는 했는데 중요한 항구인 베라크루스에서 산타 안나가 격퇴했다.[4]
그리고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멕시코 의회의 추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모방해 스스로 황제 아구스틴 1세가 되었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적임자가 간택되기 전까지의 임시 황제'라는 명목이었지만 그런 적임자는 있을 리가 없었다.
이때 '''멕시코는 현재 미국 서남부 지역인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일대를 차지하고, 파나마 지협 이북의 중앙아메리카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는 아구스틴 1세의 제국이었다.
그러나 아구스틴 1세는 건국 직후 광속으로 인기를 잃어갔다. 부정부패와 독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1822년에 군주제 전복 기도가 발각되어 의원 16명이 체포되었는데 이 전복 기도라는 것이 아구스틴 1세의 조작이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토대로 의회가 반발하자 아구스틴 1세는 의회를 해산한다.
이 때 몇몇 군 지도자들은 이투르비데를 실각시키기 위한 계획을 짰고 이것이 12월에 완성된 카사 마타 계획(Plan of Casa Mata)이었다. 그 주요 골자는 멕시코의 군주제 철폐 및 공화국 성립이었다. 이에 따라 12월부터 멕시코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아구스틴 1세 역시 군권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지의 반란은 빠르게 진압되었지만 이 계획에 참여한 산타 안나의 반란군만큼은 진압되지 않았다. 산타 안나가 진압군 사령관을 설득해 배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1823년에 들어서면 몇몇 멕시코 독립운동가들도 카사 마타 계획에 동의했고, 멕시코 거의 대부분의 주도 카사 마타 계획에 동의해 아구스틴 1세는 고립에 빠졌다.
결국 아구스틴 1세는 1823년에 폐위되었고, 당시 토스카나 대공국의 일부였던 이탈리아의 리보르노로 추방당한다. 그리고 아구스틴 1세는 이후 다시 돌아왔다가 끔살(...) 이후 산타 안나 등을 비롯한 제국 반대파에 의해 멕시코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멕시코의 정치는 안정되지 못하여 박정희, 전두환 비스무리한 인간들이 공공연히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다.
한편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싫어서 이미 독립한 멕시코에 편입해 자유주의자들을 탄압하고자 했는데 멕시코가 공화국이 되면서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독립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1823년 1월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한다.
3. 역대 황제
- 아구스틴 1세(1822~1823)
- 아구스틴 2세(명목상)
4. 역대 섭정
-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1821~1822)
[1] 제1제국 당시 멕시코에는 헌법이 없었다.[2] 페닌술라르, 크리오요, 메스티소, 원주민들 간의 대립과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통합된 멕시코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이 아직 확립된 시기가 아니었다.[3] 대체로 페닌술라르들은 스페인의 지배를 바라는 편이었고, 실제로 이들은 멕시코 독립 이후 추방되었다. 원주민 중에서도 틀락스칼텍인들은 멕시코의 전신인 아즈텍 제국의 약탈과 인신공양으로 엄청나게 고통을 받다가 스페인의 도움으로 아즈텍 제국에 복수했을 뿐더러 스페인 치하에서 전형적인 식민지가 아니라 자치령으로 지내면서 최대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에 멕시코의 독립에 강하게 반대했다.[4] 스페인은 1836년 12월이 되어서야 멕시코 독립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