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테츠 야마다선
1. 개요
일본 미에현 마츠사카시와 이세시를 잇는 킨키 일본 철도의 철도 노선으로, 일본의 대표적 신사 중 하나인 이세신궁과 접속하는 노선이다. 킨테츠 연선 일대 이용객들의 참배 및 관광수요를 담당하며, 오사카선, 나고야선등의 노선과 함께 오사카-나고야선 계열의 간선 노선 중 하나이다.
1.1. 노선 데이터
- 관활 : 킨키 일본 철도 (제1종 철도사업자)
- 구간 : 이세나카가와~우지야마다 28.3km
- 궤간 : 1435mm
- 역 수 : 14
- 복선구간 : 전구간
- 전화구간 : 전구간 (직류 1500V)
- 폐색방식 : 자동폐색식
- 보안장치 : 킨테츠 ATS
- 최고속도 : 130km/h
- 열차종합관리시스템 : KRONOS
- 교통카드 호환지역 : 전구간
2. 설명
킨테츠의 다른 노선들과의 직결을 통해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와 이세 지역을 연결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토바, 시마 방면으로 연결되는 노선으로, 특급열차 외에도 오사카선, 나고야선 직통의 급행열차도 운행하고 있다.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달리며 선형이 좋고 급행열차의 정차역수가 많지 않아 전구간 평균시속 7~80km 이상의 빠른 표정속도를 자랑하는 노선이다.
JR 도카이의 키세이 본선이나 산구선과 경쟁하고 있으며 편성수 면에서는 야마다선의 열차가 더 많이 운행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노선 중 일부 구간에서는 사철인 킨테츠가 JR보다 비싼 구간이 존재하며 일부 특급의 경우 100엔 이상의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노선의 종점역인 우지야마다역은 이세신궁과의 접속역으로서 난카이 난바역의 설계로 유명한 쿠노 미사오가 디자인한 역 건물이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도 덴노나 총리대신 등 귀빈의 신궁 참배시 이용되는 역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토바선 계획이 구상되기 전에 이 역에서 이세신궁[1] 의 내궁까지 연결하는 노선연장안이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황송하게도 감히 그럴 수 없다''' 라는 이유로 취소됐다(...)[2]
3. 역사
킨테츠의 전신인 오사카 전기궤도가 오사카에서 이세 지역을 연결하는 구간을 계획하던 당시, 사쿠라이역보다 동쪽의 미에 현 구간은 별도의 자회사인 산구 급행전철(参宮急行電鉄)에게 건설을 맡겼다. 현재의 야마다선 구간이 포함된 이 구간은 1930년에 처음 개통되었는데 당시에는 현재와는 다르게 사쿠라이에서 우지야마다(현 이세시의 옛 명칭)사이의 구간이 하나의 노선이었으며, 오사카 전기궤도의 노선인 사쿠라이선과 상호직결해 오사카에서 이세신궁을 연결하는 운행을 했다.
산구 급행전철이 이세에 진출한 것과 같은 해인 1930년, 미에 북부를 운행하던 사철회사인 이세 전기철도가 노선을 남쪽의 이세신궁까지 연장하면서 이세신궁 인근에는 국철을 포함한 3개 노선이 경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세 전기철도가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영업이 어려워지자 1941년에 산구 급행철도는 이세 전기철도를 흡수했는데, 이로 인해 일대에 같은 회사의 노선 2개가 나란히 달리게 되면서 서로의 구분을 위해 원래 노선은 본선, 이세 전기철도의 옛 노선중 남쪽 구간은 이세선이 되었다.
1944년의 전시통폐합에 의해 킨키 일본 철도가 탄생하면서 옛 산구의 노선은 이세나카가와역을 기준으로 서쪽은 오사카선에 편입되고 동쪽 구간은 야마다선이랑 명칭이 부여된다. 한편, 야마다선과 나란히 달리던 이세선은 나고야선에 편입된 구간을 제외한 남쪽 구간이 단계적으로 폐선된 끝에 1961년에는 전 구간이 폐선되어 사라졌다.
4. 노선
- 전구간 미에현내 소재.
[1] 일본 황실의 시조신 아마테라스 여신을 섬기는 신사. 대대로 일본 황실의 공주들이 제관(祭官)을 맡아오고 있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이세신궁 항목을 참조.[2]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본 사회의 특수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로, 특히 천황과 관련된 것이라면 사회 곳곳에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제도외적 제약'''이 많이 걸려 있다. 이게 왜 제도외적 제약이냐 하면, 천황, 천황가, 혹은 천황가의 법적 물건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면 그 일은 정부 직속이 아니라 내각부 산하 궁내청으로 넘어가는데, 정작 이러한 일을 담당하는 궁내청 자체가 '''일본 사회의 특수성에 기반한 초헌법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제도외적으로 제약을 많이 걸고 있다. 천황을 둘러싼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 특히 한국과 중국에 상당한 어그로를 끌고 있는 오늘날의 존황 문화의 경우 사실상 메이지 유신기에 국민들에게 강요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관습법의 정의에 완벽하게 합치한다.'''[3] 토바 방면으로만 운행[乙] A B 을 전열차 정차[4] 일부정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