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쿠라 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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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倉健. 일본의 전설적인 영화 배우. 1931년 2월 16일 ~ 2014년 11월 10일
'''일본의 국민배우이자 일본 영화계를 상징했던 배우'''로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 개방을 통해서 영화 철도원을 본 사람이면 다들 알법한 연기파 대배우다. 후쿠오카현 나카마시 출신.
총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제23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현재까지 일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최다 수상자 기록(4회)'''을 가지고 있다. 과묵하고 말수적은 선 굵은 연기의 대명사이기도 한 배우로 일본은 물론 한국의 몇몇 톱스타들에게도 존경받고 있으며 한석규는 타카쿠라 켄의 팬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은 당연 철도원이며 특히 오토마츠 역을 맡으면서 그의 선 굵고 과묵하면서 말수적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고 엄격한 구세대 아버지의 모습을 잘 묘사하며 사람들 머리 속에 남았다.
영화 전광 공수치기 대비를 시작으로 미야모토 무사시, 일본협객전 같은 작품을 통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아시아영화제 수상을 여러번 해왔고 철도원의 흥행과 인상적인 연기로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다시한번 말이 필요없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대표 배우로 증명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나이 때문인지 출연작 수가 확 줄어들었고 결국 2012년에 출연한 당신에게가 유작이 되었다.
야쿠자 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던 배우인데, 일년에 몇편씩 막치기 출연을 하기도 했다(당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상황은 비슷했다).
2013년 11월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2014년 11월 10일 새벽, 혈액암으로 건강이 나빠져 암 치료 중 도쿄도 내 병원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하였다.
1959년 유명 가수인 에리 치에미[1] 와 결혼하였으나, 처형의 이간질로 인한 불화, 그리고 에리 치에미의 유산 등 온갖 악재가 겹치며 결국 1971년 이혼 하였다. 이혼 후 가끔씩 바이쇼 치에코나 요시나가 사유리, 다나카 유코, 이케카미 키미코, 이시다 아유미 같은 일본 여배우들과 스캔들이 있긴 했지만 2014년 혈액암으로 죽을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혼자 지냈으며, 에리 치에미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었지만,[2] 매년 전처의 기일에 성묘에 빠지지 않고 참석 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 처형, 그러니까 에리 치에미의 이부언니 라는 여자는 답이 없는 사람인데, 어머니와 어릴적에 생이별을 했었지만 유명한 스타 에리 치에미가 자신의 이부동생 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이혼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라고 속이고 가정부로 에리 치에미에게 접근 하였다. 에리 치에미는 자신의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을 도와주던 이 여자를 그대로 믿고 이 여자에게 회계 업무를 맡겼는데, 나중에는 자신의 인감도장 까지 맡겨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다.
이 때 부터 이 처형이라는 사람은 돌변하여 에리 치에미를 음해하기 시작하였는데, 에리 치에미와 다카쿠라 켄을 모략을 꾸며 이간질 하여 별거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혼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에리 치에미의 인감도장을 사용하여, 에리 치에미의 은행 예금을 빼돌렸고, 사채업자들에게 에리 치에미 명의의 부동산을 저당 잡혀 거액의 빚까지 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범행들이 모두 발각된 후에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고, 범행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이나 뉘우침의 기색도 없었다. 외려 여성주간지나 여성 잡지와 인터뷰를 하며 에리 치에미를 계속 음해하였고, 결국에는 실종, 자살소동 쇼 까지 하였다.
참다못한 에리 치에미는 처형을 고소하였고, 결국 처형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살게 되지만, 40억엔이라는 엄청난 피해 금액은 고스란히 에리 치에미가 모두 떠안게 되었다. 에리 치에미는 결국 이 돈을 혼자서 다 갚을 수 밖에 없었고, 1982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급사하고 말았다. 결국 에리 치에미나 다카쿠라 켄이나 막장스러운 처형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지고 만 셈.
여담으로 젊은 시절 굉장한 미남이었다. 최근 트렌드인 여리한 꽃미남상은 아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건장한 체격의 정통 미남의 모습이었다. 이런 비주얼에서 나오는 강한 이미지로 과묵한 사무라이나 협객 연기를 도맡았다.
쇼와잔협전 시리즈에 비하면 인지도는 낮지만 그래도 꽤 유명한 작품이다.
1990년대 초 NHK에서 방송한 상하편짜리 단편극 드라마. 타카쿠라 켄이 출연한 작품들 중 몆 안되는 TV 드라마 작품이다.
다카쿠라 켄이 철도원, 호타루를 찍기 훨씬 전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과 함께 찍은 영화. 타카쿠라 켄이 출연한 80년대 일본 영화들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DVD로 정발 출시된 영화로 지금도 인터파크등 국내 쇼핑몰 사이트에서 구할수 있다.[5] 볼만한 영화이지만 같은 감독, 같은 배우의 작품인 철도원과 달리 피가 튀고 살인이 벌어지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타카쿠라 켄 하면 철도원보다는 이 영화를 선호하는 일본내 영화 팬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생활고와 부인의 유산으로 인해 부인과 갈등을 겪다 부부싸움을 벌이고 집 밖으로 나가 만취상태에서 살인을 하여 살인죄로 복역하여 석방 후 부인에게 돌아가려는 광부 역을 맡았다. 사내는 괴롭다네 시리즈를 맡은 야마다 요지 감독의 대표작중 하나 이 작품 이후 다카쿠라 켄은 야쿠자, 터프가이 이미지에서 벗어나 선역 주연급 배우로 급부상하게 된다. 근데 국내에선 DVD로도 나오지 않아 보기 힘든 영화..
애칭은 켄 씨(健さん). 키는 180cm.
엔카도 불렀다. 쇼와잔협전 주제가는 자기가 부른 것이다.*
이수현 씨의 부모님을 만나 성금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톱을 노려라2!에 나오는 메카닉 디스누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1. 개요
高倉健. 일본의 전설적인 영화 배우. 1931년 2월 16일 ~ 2014년 11월 10일
'''일본의 국민배우이자 일본 영화계를 상징했던 배우'''로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 개방을 통해서 영화 철도원을 본 사람이면 다들 알법한 연기파 대배우다. 후쿠오카현 나카마시 출신.
총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제23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현재까지 일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최다 수상자 기록(4회)'''을 가지고 있다. 과묵하고 말수적은 선 굵은 연기의 대명사이기도 한 배우로 일본은 물론 한국의 몇몇 톱스타들에게도 존경받고 있으며 한석규는 타카쿠라 켄의 팬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은 당연 철도원이며 특히 오토마츠 역을 맡으면서 그의 선 굵고 과묵하면서 말수적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고 엄격한 구세대 아버지의 모습을 잘 묘사하며 사람들 머리 속에 남았다.
2. 생애
영화 전광 공수치기 대비를 시작으로 미야모토 무사시, 일본협객전 같은 작품을 통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아시아영화제 수상을 여러번 해왔고 철도원의 흥행과 인상적인 연기로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다시한번 말이 필요없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대표 배우로 증명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나이 때문인지 출연작 수가 확 줄어들었고 결국 2012년에 출연한 당신에게가 유작이 되었다.
야쿠자 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던 배우인데, 일년에 몇편씩 막치기 출연을 하기도 했다(당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상황은 비슷했다).
2013년 11월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2014년 11월 10일 새벽, 혈액암으로 건강이 나빠져 암 치료 중 도쿄도 내 병원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하였다.
1959년 유명 가수인 에리 치에미[1] 와 결혼하였으나, 처형의 이간질로 인한 불화, 그리고 에리 치에미의 유산 등 온갖 악재가 겹치며 결국 1971년 이혼 하였다. 이혼 후 가끔씩 바이쇼 치에코나 요시나가 사유리, 다나카 유코, 이케카미 키미코, 이시다 아유미 같은 일본 여배우들과 스캔들이 있긴 했지만 2014년 혈액암으로 죽을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혼자 지냈으며, 에리 치에미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었지만,[2] 매년 전처의 기일에 성묘에 빠지지 않고 참석 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 처형, 그러니까 에리 치에미의 이부언니 라는 여자는 답이 없는 사람인데, 어머니와 어릴적에 생이별을 했었지만 유명한 스타 에리 치에미가 자신의 이부동생 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이혼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라고 속이고 가정부로 에리 치에미에게 접근 하였다. 에리 치에미는 자신의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을 도와주던 이 여자를 그대로 믿고 이 여자에게 회계 업무를 맡겼는데, 나중에는 자신의 인감도장 까지 맡겨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다.
이 때 부터 이 처형이라는 사람은 돌변하여 에리 치에미를 음해하기 시작하였는데, 에리 치에미와 다카쿠라 켄을 모략을 꾸며 이간질 하여 별거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혼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에리 치에미의 인감도장을 사용하여, 에리 치에미의 은행 예금을 빼돌렸고, 사채업자들에게 에리 치에미 명의의 부동산을 저당 잡혀 거액의 빚까지 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범행들이 모두 발각된 후에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고, 범행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이나 뉘우침의 기색도 없었다. 외려 여성주간지나 여성 잡지와 인터뷰를 하며 에리 치에미를 계속 음해하였고, 결국에는 실종, 자살소동 쇼 까지 하였다.
참다못한 에리 치에미는 처형을 고소하였고, 결국 처형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살게 되지만, 40억엔이라는 엄청난 피해 금액은 고스란히 에리 치에미가 모두 떠안게 되었다. 에리 치에미는 결국 이 돈을 혼자서 다 갚을 수 밖에 없었고, 1982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급사하고 말았다. 결국 에리 치에미나 다카쿠라 켄이나 막장스러운 처형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지고 만 셈.
여담으로 젊은 시절 굉장한 미남이었다. 최근 트렌드인 여리한 꽃미남상은 아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건장한 체격의 정통 미남의 모습이었다. 이런 비주얼에서 나오는 강한 이미지로 과묵한 사무라이나 협객 연기를 도맡았다.
3. 출연작들
- 쇼와잔협전 시리즈
1945년, 쇼와 25년. 전후 일본은 미국 배급으로만 살아가고 있는데, 착한 야쿠자[3] 와 나쁜 야쿠자들이 서로 쌈박질한다는 내용. 여기서 타카쿠라 켄은 하나다 히데지로[4] 로 나와서, 유카타만 걸치고 시라사야를 든채로 활약하는 역할이다. 참고로 니타 타츠오의 만화에서 굉장히 많이 패러디된다. 가끔 일본만화에서 잘 패러디된다.
- 일본협객전 시리즈
쇼와잔협전 시리즈에 비하면 인지도는 낮지만 그래도 꽤 유명한 작품이다.
-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
홋카이도의 악명 높은 아바시리 형무소에 수감된 야쿠자들을 다룬 작품으로 이시이 테루오 감독이 10편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이시이 테루오가 질려서 더는 못 만들겠다고 손을 들자, 다른 감독들이 <신 아바시리 번외지> 시리즈로 8편을 더 만들어 총 18편이나 우려먹어질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던 작품이다. 링크된 포스터는 3편인 북해편의 포스터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출세하지 못하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한 늙은 철도원의 마지막 나날들을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비춰주는 감동적인 내용이다. 여러모로 노년기에 접어든 타카쿠라 켄 후기 커리어의 대표작이며 국내에선 타카쿠라 켄을 이 영화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 블랙 레인 (Black Rain, 1989)
- 미스터 베이스볼 (Mr. Baseball, 1992)
- 티롤의 만가(1991)
1990년대 초 NHK에서 방송한 상하편짜리 단편극 드라마. 타카쿠라 켄이 출연한 작품들 중 몆 안되는 TV 드라마 작품이다.
- 역 스테이션(1981)
다카쿠라 켄이 철도원, 호타루를 찍기 훨씬 전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과 함께 찍은 영화. 타카쿠라 켄이 출연한 80년대 일본 영화들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DVD로 정발 출시된 영화로 지금도 인터파크등 국내 쇼핑몰 사이트에서 구할수 있다.[5] 볼만한 영화이지만 같은 감독, 같은 배우의 작품인 철도원과 달리 피가 튀고 살인이 벌어지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타카쿠라 켄 하면 철도원보다는 이 영화를 선호하는 일본내 영화 팬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 이자카야조치(1983)
역 스테이션 이후 다카쿠라 켄과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다시 손을 잡고 1983년 새로 촬영한 영화. 이 영화에서 타카쿠라 켄은 작은 선술집에서 묵묵히 일하는 중년 남성을 연기했다.
- 해협(1982)
타카쿠라 켄이 일본의 유명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와 같이 공연한 영화. 이 영화에서 타카쿠라 켄은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이칸 해저 터널의 터널 공사 담당 측량사으로 출연했다.
- 행복의 노란 손수건(1977)
생활고와 부인의 유산으로 인해 부인과 갈등을 겪다 부부싸움을 벌이고 집 밖으로 나가 만취상태에서 살인을 하여 살인죄로 복역하여 석방 후 부인에게 돌아가려는 광부 역을 맡았다. 사내는 괴롭다네 시리즈를 맡은 야마다 요지 감독의 대표작중 하나 이 작품 이후 다카쿠라 켄은 야쿠자, 터프가이 이미지에서 벗어나 선역 주연급 배우로 급부상하게 된다. 근데 국내에선 DVD로도 나오지 않아 보기 힘든 영화..
- 호타루(ホタル The Firefly, 2001)
- 신칸센 대폭파(新幹線大爆破, The Bullet Train, 1975)
4. 그 외
애칭은 켄 씨(健さん). 키는 180cm.
엔카도 불렀다. 쇼와잔협전 주제가는 자기가 부른 것이다.*
이수현 씨의 부모님을 만나 성금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톱을 노려라2!에 나오는 메카닉 디스누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