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앙겔로풀로스
1. 개요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
현대 그리스 영화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거장. 롱테이크를 통해 역사와 심리를 복합적으로 전개하는 기법으로 유명하다.
아테네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1960년대에 파리의 이덱(IDHEC)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감독으로 데뷔하여 활동하였다.
2. 소개
그리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국보급 감독으로, 미조구치 겐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더불어 롱테이크의 상징으로 꼽히는 거장.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1980년대 유럽 영화사를 이끈 대표적인 거장이다. 후술하겠지만 그는 많은 작품으로 황금종려상 황금곰상등 다양한 트로피를 가지고있다.
미조구치가 롱테이크를 통해 미학적 탐구를, 타르코프스키가 종교적·철학적 문제를 다루었다면, 앙겔로풀로스는 정치적·역사적 문제을 주로 다루었다. 또한 작품의 기복이 없이, 항상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보여주는 거장이다. 쉽게 말해, 망작이 없다.
영화가 주로 롱테이크로 이루어져 얼핏 지루할 수 있지만, 훌륭한 영상미와 아름다운 음악 때문에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특히 그는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작곡가 '엘레니 카라인드루'와 함께 작업했는데, 왕가위의 영화보다 왕가위의 OST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영화와 관계없이 이 사람이 작곡한 OST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도 콜렉터들은 〈율리시즈의 시선〉과 〈영원과의 하루〉의 OST를 최고로 뽑는 편.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 부르는 평론가들의 상찬과 달리 유난히 덜 알려진 감독이기도 한데, 영화계의 변방인 그리스에서 활약한 점,[1] 호메로스를 비롯한 그리스 고전과 현대 그리스 역사를 자주 인용하는 등, 관람시 어느 정도 지식을 요구하는 작품 특징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침묵 삼부작〉 이후 작품들은 기초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관람하기가 힘들 정도.
3. 생애
1935년 4월 25일, 그리스 내전이 한창이던 중에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아버지가 포로로 잡혀가, 본인이 9살이 돼서야 아버지가 풀려나서 아버지의 얼굴을 늦게 알았다고 한다. 아마 이때부터 죽음과 부재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 같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기 이야기에 인색하고 인터뷰에 어색해 했던 지라, 개인적 삶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2000년대 초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해서 영화감독 생활을 시작했는지 밝힌 적이 있다.
사생활로, 1980년에 〈구세주 알렉산더〉, 〈황새의 정지된 비상〉 등 많은 영화에서 기획·제작을 맡은 피비 이코노모풀로스와 결혼하여 죽을 때까지 결혼생활을 이었다. 슬하에 3명의 딸을 두었는데, 개중 두 명은 카타리나, 안나라고 이름 짓고, 나머지 하나는 평생 함께 일한 작곡가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이름을 따서 '엘레니 앙겔로풀루'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앙겔로풀로스는 인터뷰에 인색한 사람이다. 그나마도 그 인터뷰들이란 게 작품들에만 한정되어 있어서 그의 개인적인 삶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그 자신의 영화적 결심에 관해서 그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들려주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그리스에는 영화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와서 공부하였다. 그가 입학한 학교는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IDHEC''' (지금의 FEMIS)였다. 이 학교는 입학 자격 요건도 까다롭지만 교과 과정도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를 다닌 많은 감독들이 퇴학을 당하거나 중퇴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2]
앙겔로풀로스는 고전영화 스타일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고전영화의 문법에 관한 과정으로 투 쇼트나 상상선, 쇼트-역 쇼트 나누기로 콘티를 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시나리오를 나눠 주고 과제로 그 다음 주까지 콘티를 작성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앙겔로풀로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방식으로 주어진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전영화에는 존 포드만이 아니라 오슨 웰스의 방법[3]
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주인공을 가운데 세워 놓고 카메라가 360도 회전 트래킹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콘티를 구성했다. 그 콘티를 보고 지도 교수는 앙겔로풀로스를 불렀다. “자네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나?” 앙겔로풀로스는 대답했다.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네의 천재성은 그리스에서나 가서 뽐내 보이게.” 이 말은 학교를 떠나라는 뜻이었다. 앙겔로풀로스는 대답했다. “그리스에서도 그렇고 싶지만 파리에서도 그걸 인정받고 싶습니다.” 선생은 간단하게 말했다. “만일 학교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시 콘티를 짜지 않으면 자네는 학교 바깥에서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하게나.”앙겔로풀로스는 집에 돌아와서 밤새 고민했다고 한다. 새벽이 올 때 즈음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는 영화를 원한다. 하지만 영화는 나를 원하는가?” 그리고 자신에게 대답했다. 자신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영화가 새로운 영화를 위한 하나의 점을 찍을 수 있다고 그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서 자퇴 원서를 내고 그리스로 돌아갔다. 이 말은 결단이다. 앙겔로풀로스는 부산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이 말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말했다. “여기 앉은 여러분들은 영화를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영화도 당신을 원하는가!” 나는 이 말을 수없이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 말이 앙겔로풀로스 영화 전체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2012년 1월 24일, '현대 그리스 삼부작'의 마지막 편을 촬영하는 중에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당일 타계했다. 향년 76세.
죽기 전 촬영 중이던 현대 그리스 3부작 마지막편인 〈The Other Sea〉는 결국 미완성 영화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