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퍼드 리맬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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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Trafford Leigh-Mallory KCB, DSO & Bar
(1892년 7월 11일 ~ 1944년 11월 14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영국 공군 제12비행단을 맡았던 장성. 등산가 조지 말로리가 바로 형이다.
공명심에 불타오르는 야심가로, 정치적인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휴 다우딩의 실각 후 영국 공군 전투기사령부[1] 사령관이 되었다.[2] 키스 파크[3]와는 견원지간.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그의 12비행단은 지정학적 위치상 독일 공군과 맨먼저 맞닥뜨리는 제11 그룹[4]의 비행장을 엄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공명심에 불타는 리맬러리는 이 명령을 무시하고 휘하 비행대를 풀어서 독자적으로 독일 공군기들을 요격하도록 했다. 문제는 독일 공군이 영국 공군의 3배[5]에 달해서 번번이 돌파당했던 것. 결국 11비행단은 독일 공군과의 공중전을 치르는 동시에 기지가 공격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파크는 이러한 리맬러리의 행동에 크게 격노했지만, 리맬러리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러한 리맬러리의 트롤링은 영국 공군이 1940년 8월 중순~9월 초까지 격전을 치르는 동안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되었다.[6]
문제는 리맬러리가 파크의 요구만 무시한 게 아니라 파크의 비행장을 보호하라는 다우딩의 지시도 무시하는 트롤링을 저질렀다는 것. 그러다가 결국 리맬러리도 마지못해서 11비행단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많은 적기를 잡고자 대편대 전술을 채택했고 이는 대형을 형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11비행단을 공습하는 독일기를 제때 요격할 수 없었고 이렇다할 전과도 올리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파크와 다우딩은 대편대 전술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리맬러리는 이런것을 전부 무시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은근히 런던에 독일의 공격이 집중되길 바랬는데, 이유가 순전히 '''런던이 12비행단의 작전구역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이쯤되면 막장 소리를 듣기에 손색이 없어보인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런던 대폭격은 독일 공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결정이 되었으니 이걸 예견했다면 전황을 예견하는 능력 자체는 준수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영국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이사람이 야심가이지만 능력도 겸비한 인재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편대 전술은 처음에는 뒷북이나 열심히 치고 있었지만 런던 대폭격이 시작되자 그 효과를 발휘했다. 마음놓고 런던으로 날아오던 독일 공군기들은 11비행단의 고춧가루 공세를 견뎌야 했고, 그렇게 도착한 그들을 50~60대에 달하는 12비행단의 전투기들이 '''개떼처럼 모여서''' 반기는 충격과 공포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
다만 이후 파크와 다우딩이 거부했던 전술을 이용하여 해협을 건너가서 싸움을 걸었을 때는 신통치 못한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가장 위급한 때에 공적만을 생각한 그의 행동이 영국에게 필요 이상의 피해를 입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940년 12월에는 11그룹의 지휘관이었던 파크를 밀어내고 11그룹의 지휘관이 되었다.[7] 1942년 12월에는 더글러스를 밀어버리고[8], 전투기 사령부의 사령관과 중장으로 승진 되었으며. 1943년 8월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연합군 원정공군 (Allied Expeditionary Air Force) 사령관에 취임을 했다[9]. 그는 D-Day때 프랑스 북부에 있는 모든 도로와 교량, 철도망등을 모조리 파괴할것을 주장했는데. 이 결정은 공군 지휘관들과 샤를 드골, 프랑스 망명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오버로드 작전 때 영미 폭격기와 공격기들은 모든 도로망을 갈아 엎었고. 덕분에 독일군은 반격은커녕, 주둔지에서 발이 묶여있여야 했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V1 기지와 공장을 파괴하자. 아이젠하워는 사임을 하라고 리 맬러리와 영국 공군에 압력을 넣었고, 별 수 없이 사임을 했다.
나중에 대장으로 임시 진급한 뒤 동남아시아 연합 공군 사령관(Air Commander-in-Chief of South East Asia Command, SEAC)으로 임명되지만 버마(미얀마)로 가던 중 그가 탑승한 수송기 아브로 요크가 악천후로 알프스 산맥에 추락하였고 리맬러리는 부인과 함께 사망한다.[10] 덕분에 실제로 동남아시아 연합 공군 사령관으로 지휘를 하는 일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죽는 바람에 그를 대신해서 저 자리에 임명된 사람이 그와 라이벌이자 견원지간이었던 키스 파크다(...).
다른 지휘관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일이 많았는데 심지어 그 아이젠하워조차 리맬러리의 성질에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을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스트라이크 위치스》에 등장한다. '''최종보스를 만든 악역'''으로.
[1] 당시 영국 공군 조직. 이외에 방공, 폭격, 해안방어 사령부 등이 존재하며, 각 사령부의 사령관들은 공군참모총장의 최고 지휘를 받는 것과 동시에 각 사령부의 실질적 책임자이다. 그 중 전투기 사령부는 공대공 전투기들을 총괄했다.[2] 리맬러리는 처음에는 자신의 상관인 공군참모차장 더글러스를 부추겨 다우딩을 실각시키도록 만들었으며 그가 다우딩의 후임으로 오르자 그를 배신하고 정치 공작을 벌여 자신이 사령관에 올랐다.[3] 2차대전 야전공군 지휘관중 가장 뛰어다나는 평가를 받은 용장. 후일 몰타 항공대 사령관을 맡아 용명을 떨친다.[4] 그래서 RAF에서 가장 많은 전투기가 배치되었다. 12 그룹에 15개의 비행대대가 배속된것에 비해서 11비행단은 28개의 비행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5] 영국 공군의 전투기는 657여 대. 독일 공군은 전투기만 따져도 2,000여 대에 달했다. 그리고 폭격기와 슈투카 편대까지 포함하면 쌍방의 전력차는 1:5에 달한다.[6] 이 기간동안 영국 공군의 손실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기존의 통설(1950~60년대)은 영국 공군이 전멸 직전에 몰렸다는 것이지만 이러한 통설은 2000년대에 들어서 반박되는 상황이다. 손실이 크기는 했지만 영국측의 손실은 대부분 보충할 수 있어서 실질적인 전력 감소가 크지 않았으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독일측 손실도 결코 가벼운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7] 파크는 훈련 비행 부대로 좌천되었다. 나중에 파크가 이사람의 자리를 대신 임명되는걸 생각하면 참...[8] 더글러스는 중동 사령부로 전출갔다. 그래도 이 양반은 전후 원수까지 진급했다.[9] 이 자리를 아서 해리스, 칼 스피츠, 아서 테더같은 쟁쟁한 경쟁자들도 노리고 있었으나. 영국 공군참모총장과 미국 육군항공군은 리 맬러리를 선택했다. 아서 테더는 연합군 최고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10] "왜 산을 오르려고 하는가?" -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는 명언을 남기고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망한 조지 말로리가 이 사람의 형이다. 남들보다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던 형제가 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까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