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강산 시리즈
八道江山
Six Daughters
1967년부터 1971년가지 세 차례에 걸쳐 제작된 한국의 영화이자 1974년 4월 14일부터 1975년 10월 17일까지 KBS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감독은 배석인. 제공은 공보부, 제작은 공보부 산하의 국립영화제작소[1] 에서 담당하였다.
내용은 서울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노부부가 전국 (청주, 공주, 부여, 보은 법주사, 유성온천, 정읍 내장산, 무주 구천동, 여수 호남비료공장, 남원, 광주, 부안, 섬진강댐, 목포, 제주도, 부산, 울산, 경주, 속초, 춘천댐, 휴전선)에서 살아가는 자식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방문한다는 내용.
TV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이라서 제작비를 많이 투입하여 당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30만명이나 관람하였다. 6~70년대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영화 내용 속에 반공을 짙게 깔고 있다. 그래도 이 팔도강산의 경우는 정부에서 제작한 영화들 가운데에는 나름 건전하고 양호한 편이다. 이 팔도강산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TV시리즈로 제작하려는 계획도 세워졌다. 그래서 꽃피는 팔도강산 부분과 기존 팔도강산 시리즈와 줄거리를 이을려고 내일은 팔도강산의 결말부분이 강제로 수정되어져서 내용이 엉성해졌다.
여하튼 1974년 KBS에서 팔도강산 시리즈를 TV 드라마로 제작했는데 제작 목적이 목적이다보니 참신성같은건 기대할수도 없기는 했지만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데다가 캐스팅도 당시로써는 초호화였고 각 정부부처와 각 기업에서 대대적으로 협찬에 나섰기 때문에 영화판과 마찬가지로 당시로써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고[2] 대한항공이 유럽에 취항하자 이를 홍보하기 위해 프랑스로 해외 촬영을 나가기까지도 했으며, 줄거리도 하도 우려먹은 부분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멜로적인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여하튼 내용 자체가 구리구리한 면이 있어도 기업들의 성공담이나 정부가 홍보하려고 하는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군데 군데 집어넣으면서도 건설현장과 명승지를 돌아다니면서 펼쳐지는 일들을 홈드라마적인 요소와 잘 엮었던 점이 컸다. 그래서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주5회 방송으로 장장 398회에 걸쳐서 방영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당시에 제작된 홍보물 가운데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다.
하지만 꽃피는 팔도강산 집필은 윤혁민 작가에게 있어서 불편한 경험을 남겼다. 비록 인기를 끈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제작의도가 의도이다보니까 새마을운동이나 유신홍보, 박정희 정부 찬양 대사를 군데 군데 집어넣을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시청률이 높았던 만큼이나 시청자들에게 많이 까였던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 잡가라고 자조하기도 했다고.
여담이지만 신봉승 작가도 꽃피는 팔도강산 제작제의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중앙정보부로부터 꽃피는 팔도강산의 집필을 맡으면 원고료를 비싸게 주는것은 물론이고 드라마가 잘되면 새마을 훈장도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정책홍보성 드라마라는 점때문에 꽃피는 팔도강산의 집필을 거절했고, 중앙정보부에서 찾아올까봐 열흘간 잠적한끝에 윤혁민 작가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많은 인기를 끌었음에도 꽃피는 팔도강산에 대한 자료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당시 비디오 테이프는 가격이 비싼데다가 방송사 내에서 TV프로그램이 문화자산이라는 인식도 드믈었기 때문에 팔도강산 방영 직후 테이프를 재촬영하는데 썼다. 그래서 꽃피는 팔도강산 방송영상은 현재 남아있는것이 없고 일부 짧은 음성자료와 대본만 남아있는 수준이다.[3] 1975년 봄개편을 앞두고 2시간 짜리 총집편을 방영한것을 보면 그래도 이때까지도 일부 방송영상 자료는 남아있었지만 이후로는 나머지 방송영상들은 테이프 덮어쓰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중에 KBS 방송관계자들도 TV 프로그램 제작목적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자료를 찾아낼려고 했을때 일부 음싱자료와 대본만 남아있다는 사실에 한탄해있을 정도. 그 만큼 당시 TV프로그램 보존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영화는 1967년 원작과 68년의 속 팔도강산, 71년의 내일의 팔도강산. 이렇게 3부작으로 이어지고 TV드라마는 꽃피는 팔도강산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출연진은 90% 이상 동일하며 속 팔도강산은 해외(일본, 하와이, 미국, 프랑스, 월남 등)를 무대로 한다.
2005년에는 여운계, 백일섭, 전원주 등을 주연으로 한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었다. 황정순 역시 이 연극에 합류했다.
2008년에 꽃피는 팔도강산이 중국판으로 리메이크 되어서 방영되었다. 물론 팔도라는 말 자체가 한국에서나 쓰이는 말인 만큼 제목은 개명되어서 노반(老伴)으로 정해졌다. 한국에서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 MBC에서 종착역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기는 했지만 그저 그런 드라마로 묻혀진데 반해서 중국에서는 시청률 9.57%가 나오기도 했을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Six Daughters
1. 개요
1967년부터 1971년가지 세 차례에 걸쳐 제작된 한국의 영화이자 1974년 4월 14일부터 1975년 10월 17일까지 KBS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감독은 배석인. 제공은 공보부, 제작은 공보부 산하의 국립영화제작소[1] 에서 담당하였다.
내용은 서울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노부부가 전국 (청주, 공주, 부여, 보은 법주사, 유성온천, 정읍 내장산, 무주 구천동, 여수 호남비료공장, 남원, 광주, 부안, 섬진강댐, 목포, 제주도, 부산, 울산, 경주, 속초, 춘천댐, 휴전선)에서 살아가는 자식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방문한다는 내용.
TV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이라서 제작비를 많이 투입하여 당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30만명이나 관람하였다. 6~70년대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영화 내용 속에 반공을 짙게 깔고 있다. 그래도 이 팔도강산의 경우는 정부에서 제작한 영화들 가운데에는 나름 건전하고 양호한 편이다. 이 팔도강산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TV시리즈로 제작하려는 계획도 세워졌다. 그래서 꽃피는 팔도강산 부분과 기존 팔도강산 시리즈와 줄거리를 이을려고 내일은 팔도강산의 결말부분이 강제로 수정되어져서 내용이 엉성해졌다.
여하튼 1974년 KBS에서 팔도강산 시리즈를 TV 드라마로 제작했는데 제작 목적이 목적이다보니 참신성같은건 기대할수도 없기는 했지만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데다가 캐스팅도 당시로써는 초호화였고 각 정부부처와 각 기업에서 대대적으로 협찬에 나섰기 때문에 영화판과 마찬가지로 당시로써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고[2] 대한항공이 유럽에 취항하자 이를 홍보하기 위해 프랑스로 해외 촬영을 나가기까지도 했으며, 줄거리도 하도 우려먹은 부분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멜로적인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여하튼 내용 자체가 구리구리한 면이 있어도 기업들의 성공담이나 정부가 홍보하려고 하는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군데 군데 집어넣으면서도 건설현장과 명승지를 돌아다니면서 펼쳐지는 일들을 홈드라마적인 요소와 잘 엮었던 점이 컸다. 그래서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주5회 방송으로 장장 398회에 걸쳐서 방영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당시에 제작된 홍보물 가운데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다.
하지만 꽃피는 팔도강산 집필은 윤혁민 작가에게 있어서 불편한 경험을 남겼다. 비록 인기를 끈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제작의도가 의도이다보니까 새마을운동이나 유신홍보, 박정희 정부 찬양 대사를 군데 군데 집어넣을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시청률이 높았던 만큼이나 시청자들에게 많이 까였던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 잡가라고 자조하기도 했다고.
여담이지만 신봉승 작가도 꽃피는 팔도강산 제작제의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중앙정보부로부터 꽃피는 팔도강산의 집필을 맡으면 원고료를 비싸게 주는것은 물론이고 드라마가 잘되면 새마을 훈장도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정책홍보성 드라마라는 점때문에 꽃피는 팔도강산의 집필을 거절했고, 중앙정보부에서 찾아올까봐 열흘간 잠적한끝에 윤혁민 작가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많은 인기를 끌었음에도 꽃피는 팔도강산에 대한 자료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당시 비디오 테이프는 가격이 비싼데다가 방송사 내에서 TV프로그램이 문화자산이라는 인식도 드믈었기 때문에 팔도강산 방영 직후 테이프를 재촬영하는데 썼다. 그래서 꽃피는 팔도강산 방송영상은 현재 남아있는것이 없고 일부 짧은 음성자료와 대본만 남아있는 수준이다.[3] 1975년 봄개편을 앞두고 2시간 짜리 총집편을 방영한것을 보면 그래도 이때까지도 일부 방송영상 자료는 남아있었지만 이후로는 나머지 방송영상들은 테이프 덮어쓰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중에 KBS 방송관계자들도 TV 프로그램 제작목적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자료를 찾아낼려고 했을때 일부 음싱자료와 대본만 남아있다는 사실에 한탄해있을 정도. 그 만큼 당시 TV프로그램 보존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영화는 1967년 원작과 68년의 속 팔도강산, 71년의 내일의 팔도강산. 이렇게 3부작으로 이어지고 TV드라마는 꽃피는 팔도강산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출연진은 90% 이상 동일하며 속 팔도강산은 해외(일본, 하와이, 미국, 프랑스, 월남 등)를 무대로 한다.
2005년에는 여운계, 백일섭, 전원주 등을 주연으로 한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었다. 황정순 역시 이 연극에 합류했다.
2008년에 꽃피는 팔도강산이 중국판으로 리메이크 되어서 방영되었다. 물론 팔도라는 말 자체가 한국에서나 쓰이는 말인 만큼 제목은 개명되어서 노반(老伴)으로 정해졌다. 한국에서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 MBC에서 종착역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기는 했지만 그저 그런 드라마로 묻혀진데 반해서 중국에서는 시청률 9.57%가 나오기도 했을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2. 출연배우 목록
- 주인공 노부부 : 김희갑(1923~1993), 황정순(1925~2014)
- 첫째 딸 부부 : 김진규, 최은희 (청주 거주)
- 첫째 사돈 : 김승호
- 둘째 딸 부부 : 이민자, 박노식[4]
- 셋째 딸 부부 : 김혜정, 이수련
- 넷째 딸 부부 : 고은아, 허장강[5] (부산 거주)
- 다섯째 딸 부부 : 강미애, 신영균 (속초 거주)
- 여섯째 딸 커플 : 강문, 이대엽[6] (서울 거주)
- 외아들 : 조항[7]
[1] 대한뉴스를 제작하던 기관이다. 현재의 KTV[2] 당시에는 자가용이 사치품인지라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별로 다니지 않았을때였고, 그래서 자동차를 다니는 장면들을 찍기가 난감했는데 이럴때 경찰에서 일부러 길을 막았다가 한꺼번에 풀어서 도로가 자동차로 붐비는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3] 당시에 방송사에서 녹화된 테이프를 방송이 끝나면 방송분을 지우고 다시 재활용하는게 관례화되어있어서 당대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의 자료는 TBC를 제외하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얼마나 알뜰하게 썼는지 녹화용 비디오 테이프가 도입된게 1964년도인데 1960년대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고 1970년대 프로그램도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은 겨우 몇편 몇편씩 보존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다. 그나마 어렵게라도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은 주로 뉴스보도자료나 다큐멘터리, 특집프로그램 위주다. [4] 배우 박준규의 아버지이다.[5] 배우 허준호의 아버지이다. 황정순과 동갑이고 김희갑과 2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사위로 등장한다. 고은아는 1946년생이니 무려 21살 차이가 나는 셈이다.[6] 前 성남시장이던 그 사람 맞다![7] 배우 조형기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