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엽
1. 개요
이대엽은 대한민국의 배우, 정치인이다.
1935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창원회원초등학교, 창신중학교, 창신농업고등학교, 경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1958년 '뮤지컬 나 혼자만이'로 데뷔하며 배우의 길로 갔는데, 영화에 주로 출연하였다. 사실 주로 출연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네이버 영화에 따르면 출연이 무려 '''137편'''이나 된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반공영화 위주로 다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70년대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였다.
2. 정치 활동과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활동한 것은 1980년대다. 당시 벌써 40대 중반이였다. 이후 30년을 나름 현역에 있었으니, 대부분의 정치이력이 1987년을 넘지 못하는 제5공화국의 관제야당 출신 정치인 중에는 특이한 사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군소정당인 신정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 광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오세응 후보와 동반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같은 해 신정당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1982년 3월 24일 4명의 지구당 위원장과 함께 신정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당시 신정당을 민주사회당과 합당시켜 신정사회당으로 재편하려는 지도부에 반발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이대엽 의원은 신정당 주도 통합이 아니라 민주사회당의 당세만 확장시키는 합당에 반대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다가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오세응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신정사회당이 김철의 사회민주당을 거쳐 결국 사라진 것을 고려하면 이 선택은 이대엽의 정치인생을 25년이나 연장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1987년 김종필이 정계에 복귀하여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한국국민당을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고 이듬해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2]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윤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 김종필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황준기에 밀려 공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시장 재임 시절의 뇌물수수 등으로 구속 수감 중이던 2015년 2월 6일, 지병인 신장암으로 별세하였다.
3. 논란
성남시장 재임 시절의 비리[3] 로 구속되어 수감되었다. 이후, 병보석으로 인해 석방되었다.
자신의 고향을 마산이라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고도 허위사실 유포죄로 벌금형 먹었다. 참고로, 마산은 이대엽 본인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지금의 성남시청 호화청사를 지은 사람이다. 이것 때문에 시민단체에게 무수한 욕을 먹었다.
4.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