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배우)
대한민국의 배우.
1960년대 최고 인기 스타로 당대의 슈퍼스타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보다 선배이며 우위에 있던 배우.[2] 1950년대 중반 주연으로 올라선 그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여성 관객들의 인기를 얻었다. 지금 배우와 비교하자면 박해일이나 한석규와 비슷한 스타일. 특히 대한민국 영화 사상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범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61년작 영화 오발탄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오발탄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를 뽑고 피를 흘리며 택시를 타고 뇌까리는 '가자'는 1960년대 영화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찍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사랑방 손님 역할로도 유명하다.
1965년에는 벙어리 삼룡이의 주연을 맡으며 최고 전성기를 보냈다. 역대 대한민국 배우 중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에서 최우수연기상과 대상을 동시에 받은 유이한 인물.[3] 또한 1960년대에 받은 남우주연상만 9개다.(부일 5개, 청룡 2개, 대종상 1개, 백상 1개) 자신이 감독한 영화 '성웅 이순신'의 실패 이후 이혼 등의 가정사로 곤욕을 겪었고 이만희 감독의[4] 마지막 작품인 1975년 삼포 가는 길이 사실상 마지막 히트작이 되었다.
신사적인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는 여자 관계가 무척 복잡했고, 술만 먹으면 개로 변해 폭력을 휘두른다고[5] 그의 2번째 부인인 배우 김보애가 쓴 자서전에 나온다.[6] 또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있는 김진규 영화를 보면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김진규의 지저분한 사생활을 욕하는 코멘트가 종종 있다(...).
여담으로, 상당히 이순신을 좋아했는지 1971년에 '성웅 이순신'을 찍고 말아먹은 뒤 1978년 '난중일기'를 또 찍기도 했다. 1987년 '하녀의 방'을 마지막으로 은퇴, 1998년 75세로 사망했다.
배우 이덕화의 손윗동서다. 김보애는 이덕화의 처형이다.
장녀 김진아도 배우였으며[7] 삼남[8] 김진근도[9] 배우로 활동 중이다. 참고로, 김진규 본인과 자녀들간 이름에 '진'자가 들어가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사실 김진규는 김녕 김씨 26세 '규(圭)' 자 돌림이고, 자녀들은 27세 '진(鎭)' 자 돌림이다. 즉 그 '''김재규'''와 같은 항렬이라는 얘기. 고로 자녀들간 이름에 '진'자가 들어가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참고로, 딸 김진아는 2014년 8월 20일, 암으로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김보애도 딸 사후 3년 뒤인 2017년 10월 14일, 하와이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 최고 인기 스타로 당대의 슈퍼스타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보다 선배이며 우위에 있던 배우.[2] 1950년대 중반 주연으로 올라선 그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여성 관객들의 인기를 얻었다. 지금 배우와 비교하자면 박해일이나 한석규와 비슷한 스타일. 특히 대한민국 영화 사상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범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61년작 영화 오발탄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오발탄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를 뽑고 피를 흘리며 택시를 타고 뇌까리는 '가자'는 1960년대 영화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찍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사랑방 손님 역할로도 유명하다.
1965년에는 벙어리 삼룡이의 주연을 맡으며 최고 전성기를 보냈다. 역대 대한민국 배우 중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에서 최우수연기상과 대상을 동시에 받은 유이한 인물.[3] 또한 1960년대에 받은 남우주연상만 9개다.(부일 5개, 청룡 2개, 대종상 1개, 백상 1개) 자신이 감독한 영화 '성웅 이순신'의 실패 이후 이혼 등의 가정사로 곤욕을 겪었고 이만희 감독의[4] 마지막 작품인 1975년 삼포 가는 길이 사실상 마지막 히트작이 되었다.
신사적인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는 여자 관계가 무척 복잡했고, 술만 먹으면 개로 변해 폭력을 휘두른다고[5] 그의 2번째 부인인 배우 김보애가 쓴 자서전에 나온다.[6] 또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있는 김진규 영화를 보면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김진규의 지저분한 사생활을 욕하는 코멘트가 종종 있다(...).
여담으로, 상당히 이순신을 좋아했는지 1971년에 '성웅 이순신'을 찍고 말아먹은 뒤 1978년 '난중일기'를 또 찍기도 했다. 1987년 '하녀의 방'을 마지막으로 은퇴, 1998년 75세로 사망했다.
배우 이덕화의 손윗동서다. 김보애는 이덕화의 처형이다.
장녀 김진아도 배우였으며[7] 삼남[8] 김진근도[9] 배우로 활동 중이다. 참고로, 김진규 본인과 자녀들간 이름에 '진'자가 들어가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사실 김진규는 김녕 김씨 26세 '규(圭)' 자 돌림이고, 자녀들은 27세 '진(鎭)' 자 돌림이다. 즉 그 '''김재규'''와 같은 항렬이라는 얘기. 고로 자녀들간 이름에 '진'자가 들어가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참고로, 딸 김진아는 2014년 8월 20일, 암으로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김보애도 딸 사후 3년 뒤인 2017년 10월 14일, 하와이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1] 1939년 3월 15일 일본령 조선 경기도 김포군 출생. 이덕화의 처형.[2] 다만 1967년 감독을 맡은 영화 '종자돈'의 실패 이후, 1970년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신성일이나 최무룡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반면 김진규는 하락세를 탔고 197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거의 스크린에서 보기 힘들어졌다.[3] 다른 한 명은 안성기.[4] 배우 이혜영(1962년생)의 아버지.[5] 부인과 아들, 그에게 연기를 배우러 찾아온 제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들의 과외 선생 까지 상습적으로 구타했다고 한다.[6] 김진규의 첫 부인은 배우 이민자인데, 생활고와 김진규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했다고 한다.[7] 김진규가 유독 편애하고 아꼈다고 한다.[8] 김진규는 전처 이민자와의 사이에서도 아들 둘을 낳았다.[9] 배우 정애연과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