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순

 

''' 황정순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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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
[image]
'''여우주연상'''


''' 제1회
(1963년) '''

''' 제2회
(1964년) '''
[3]

'''황정순
(혈맥)'''

문정숙
(돌아보지 마라)


'''역대'''
[image]
'''여우주연상'''
''' 제2회
(1963년) '''

''' 제3회
(1964년) '''

''' 제4회
(1965년) '''
도금봉
(새댁)

'''황정순
(혈맥)'''

최은희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 연극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나옥주
(1967)

'''황정순'''
'''(1968)'''

천선녀
(1969)

[image]
'''출생'''
1925년 8월 20일, 경기도 시흥시
'''사망'''
2014년 2월 17일 (88세), 서울특별시
'''직업'''
영화배우
'''가족'''
무남독녀
'''데뷔'''
1943년 영화 '그대와 나'
1. 소개
2. 출연
2.1. 영화
2.2. 드라마
2.3. CF


1. 소개


대한민국배우.
1925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현 시흥시) 출생. 어릴 적에 모친이 인천광역시에 '황해집'이라는 냉면집을 열자 인천으로 이사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외갓집에 놀러가다 우연히 영화 <타잔>을 본 계기로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지니기 시작했고, 부모님의 끈질긴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여자중학교(現 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에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靑春座)'에 들어가 연극배우가 되었고, 1942년에는 영화 <그대와 나>에서 일본군에게 꽃다발을 주는 처녀A 역으로 출연해 은막에 데뷔했다.[1]
1960년대 ~ 1980년대까지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다수 출연하였다. 주로 주인공의 어머니 역을 많이 연기하여 '한국 영화의 어머니' 라고도 불렸다. 연극,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였고 지금까지도 여러 연극영화인들에게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로 인식되어있다. 그만큼 그녀는 한국 영화예술의 역사이다. 또한 '''역대 대종상 여우조연상 최다 수상자'''다.[2]
방송계에서 은퇴한 이후 2014년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조카 사위로는 집게사장으로 유명한 중견 성우 이채진이 있다.

2. 출연



2.1. 영화


  • 1949년 - 여성일기
  • 1949년 - 파시
  • 1958년 - 인생차압
  • 1959년 - 대원군과 민비
  • 1960년 - 박서방
  • 1961년 - 마부
  • 1962년 - 맹진사댁 경사, 연산군 : 장한사모편
  • 1963년 - 김약국의 딸들
  • 1964년 - 육체의 고백
  • 1963년 - 혈맥 : 김수용 감독
  • 1976년 - 돌아온 팔도강산 : 정소영 감독
  • 1979년 - 장마 : 유현목 감독
  • 1981년 - 사람의 아들
  • 1985년 - 장남 : 이두용 감독
  • 1986년 - 88 짝궁들

2.2. 드라마



2.3. CF



[1] 그러나 원로 영화감독이자 전 영등위 위원장인 김수용 옹의 회고에 따르면 김 감독은 극장에서 보았을 때 황정순이 나온 장면이 짤렸다고 황정순 본인이 그에게 말했다.[2] 그러나 황정순은 청룡,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 기록도 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이 당시 최고의 여배우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