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서

 


1. 개요
2. 같이보기


1. 개요


한국사에서 등장하는 지명.
신라 말~후삼국시대~고려 초기 기록에 주로 등장한다. 패서의 패는 패강, 지금의 대동강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단 정설은 후삼국시대까지의 패서는 대략 지금의 황해도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영역은 이설이 있다. 일단 경기도 북부인 개성시, 개풍군 지역도 나말여초에는 패서로 봐서 왕륭, 왕건은 패서 호족으로 간주되었다. 이외에도 패서 호족 계열로 박직윤-박지윤, 황보제공, 유천궁 등이 있었다. 패서는 옛 고구려의 남부지역이자 고구려 3경 중 한성[1]이 있었던 곡창지대였기에, 이들 패서호족들은 고구려 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궁예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 지역에 나라를 세우면서 새로운 나라의 이름도 옛 고구려의 후기 명칭을 딴 고려가 된다.[2]
패서지역을 지배한 신라 말기 특수 행정구역 패강진이 있었는데, 평양 지역까지 패서라는 범위에 포함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설이 나뉜다.
고려 초기에 10도를 만들 때 패서도는 지금의 황해도가 아니라 평안도 지역이었다.
패서라는 지명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0년 4월부터 23개월간 KBS 1TV를 통해 방송된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2. 같이보기


[1] 현 황해도 재령군으로 추정[2] 다만 궁예 본인은 신라 왕족 방계설이 있는만큼 고구려 유민 의식에 속한 인물은 아니었고, 곧 고려란 이름을 마진, 태봉으로 바꿔버리고 수도도 패서 바깥 철원으로 옮기는 등 고구려색 빼기를 시도한다. 왕건을 필두로 한 패서 호족의 쿠데타도 이것에 반발한 것이 원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