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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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 포지션은 3루수,1루수. 유망주 시절부터 대단한 파워 툴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지만 공갈포 이상으로 성공하지는 못한 선수.
별명은 엘 토로(El Toro), 스페인어로 황소라는 뜻이다. 선천적인 힘과 근육질의 피지컬이 대단해서 붙은 듯. 이것조차 귀찮은 중계진은 그냥 영어로 'Bull'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피츠버그 팬은 페티(Petey)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한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났지만 1살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를 왔다. 도미니카 이민자 출신 커뮤니티가 밀집해있는 뉴욕 맨해튼의 워싱턴 하이츠에서 자랐는데, 이때 생활 기반이 뚜렷하지 않은 여느 이주자 출신들도 그러하듯 택시 기사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침실 두 개 뿐인 허름한 아파트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넉넉치 못한 가정환경을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알바레스는 일찍이 엄청난 파워 포텐셜로 올 아메리칸 팀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뉴욕 시티 지역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었고, 고교를 졸업한 2005년엔 드래프트 14라운드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받아 서플먼트픽 수준의 상당한 계약금을 제시받기도 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밴더빌트 대학교에 입학한다.
밴더빌트에 입학하자마자 알바레스는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올해의 신입생을 수상하는 등 대학 야구 최고의 강타자로 떠오른다. 2년 연속 올 아메리칸팀에 선정되는가 하면 대학 3년 동안 통산 홈런 39방을 쳐내며 밴더빌트 통산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알바레스는 대학야구를 평정한 최고의 파워히터로서 일찍이 전체 1픽을 다툴 2008년 드래프트의 타자 최대어로 떠올랐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탬파베이 레이스가 이미 메이저리그 레디 유망주인 3루수 에반 롱고리아를 보유하고 있던 관계로 고졸 유격수 팀 베컴을 지명함에 따라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알바레스를 지명하게 되었다. 이 드래프트는 데이브 리틀필드를 짜르고 신임 단장으로 취임한 닐 헌팅턴의 첫 드래프트였는데, 전임 단장 데이브 리틀필드가 2007년 드래프트에서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라는 이유로 대학 최고 포수 맷 위터스를 거르고 듣보 좌완 불펜에 1라운드 지명권을 허공에 날리는 짓을 감행한 것을 교훈삼아 보라스의 클라이언트이자 900만불의 계약금을 요구하던 알바레스를 별 고민없이 지명한다. 당연히 그 시점에서 파이리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의 에이전트인 보라스와 파이리츠는 지리한 협상을 벌인 끝에 2008년 8월 15일 파이리츠 구단은 알바레스와 팀 역사상 최고액인 600만불의 입단 계약[1] 에 합의했다고 보도했지만, 12일 뒤에 에이전트인 보라스는 데드라인을 넘겨서 사인을 했다며 계약을 무효라고 주장했고, MLB 선수협 측에서 이를 가지고 커미셔너에게 따진 끝에 9월 22일 알바레스는 계약금 600만불을 포함 4년 635.5만불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얻어낼 수 있었다.
파이리츠에 입단한 알바레스는 2009년 마이너에서 빠르게 AA까지 승격되면서 .288 .378 .535 27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면서 거포 유망주의 자질을 보인다.
뛰어난 대졸 유망주답게 프로에 빠르게 적응을 하는 모습을 보였고, 빠르면 2010년 개막 로스터에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슈퍼2 조항를 피하기 위해 트리플A에서 60여경기를 소화한 시점인 6월달에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그런데 윌리 스타젤 이후 최초로 4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특급 슬러거가 될 수 있다는 전망과는 달리 메이저리그 초창기에는 폭삼을 양산하는 붕붕 스윙으로 메이저에 고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7월 3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첫 홈런을 뽑아내기도 하면서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어느 정도 적응하는 듯한 모습으로 95경기 .256 .326 .461 16홈런 64타점이라는 스탯을 남기며 루키 시즌을 마쳤다.
소포모어 징크스인지 2011년엔 더 발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잘한 부상이 겹치며 DL에 오르기도 하고 시즌 중반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하기도 하면서 .191 .272 .289에 단 4홈런 19타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낸다. 빅리그에 올라오기만 하면 빅리그 투수들의 수준높은 변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 이 때문에 마이너에서 대학 은사까지 초빙해서 폼 교정에 나섰다고 한다.
2012년엔 4월부터 작년과 변함없이 삼진을 양산하면서 2할대 초반을 간신히 넘겼지만 드디어 포텐셜이 폭발할 기미를 보인 건지 이후 살아나기 시작해서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넘기며 149경기 .244 .317 .467 30홈런 85타점을 기록했다. 앤드류 맥커천과 동갑내기 듀오로서 동반 30홈런 클럽에 가입했지만, 아쉽게 팀은 뒷심이 부족해 포스트시즌에 진출에 실패한다.
2013년엔 개인 통산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홈런 더비에도 참가했다. 거기다 슬래시 라인은 작년과 별 차이없는 .233 .296 .473로 출루율은 3할 아래까지 떨어지고 NL 최다인 186삼진이나 당하는 막장틱한 모습이었지만 홈런과 타점은 각각 팀내 최다인 36홈런 100타점으로 늘어나며 폴 골드슈미트와 '''내셔널리그 공동 홈런왕'''에 올랐다. 21년만에 파이리츠의 루징시즌을 끊어낸, 팀의 중심타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활약이다. 다만 수비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에러가 많아서, 27개의 에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최다 실책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작년과 비교해 잉여스러워졌다. 출장경기도 30경기나 적은 122경기밖에 나오지 못하면서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22경기 .231 .312 .405 18홈런 56타점.
2015년에도 썩 좋은 출발을 하는 편은 아니다. 1루수로 전향 시켰지만 역시 좋지 못하며 급기야 와일드 카드 전에선 주전 1루수 자리마저 뺏겼다. 구단 측은 이러한 도태된 모습을 보고 다음 시즌에 줘야하는 연봉인 8M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연봉 협상 시한 마감 직전인 12월 2일에 논텐더로 방출당했다.
2016시즌을 앞두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2016시즌 최종 성적은 109경기 .249 .322 .504 22홈런 49타점.
17년에는 마이너리그에서도 그저 그런 성적(출루율이 3할이 안되었다.)을 찍다가 확장엔트리가 되어서야 콜업되었다.
2018시즌에는 1할대에 한자리 홈런을 찍었다. 그리고 2019 시즌에는 마이너에 있었지만 2020 시즌 코로나의 여파로 마이너 리거들의 대폭 방출 러시에 휘말려 종적을 감췄다. 그대로 은퇴하거나 다른 리그를 전전하는 신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PNC 파크의 우측 펜스 클레멘테 월(Clemente Wall)을 넘기는 장외홈런을 간간이 기록할 정도로 파워 하나는 진퉁이라 풀시즌을 뛰기만 한다면 30홈런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만 컨택 능력이 떨어져 삼진을 아담 던급으로 양산하며 타율도 높지 않고 출루율도 높지 않은 공갈포 스타일. 또한 심각한 좌상바이다.
마이너 시절부터 지적받던 문제가 바로 수비로, 체격이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가기 때문에 몸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좁은 수비 범위와 굼뜬 민첩성으로 인해 장래 1루수나 코너 외야수로 갈 것이라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빅리그 데뷔 이래 수비는 쭉 불안하다가 2013년에는 그나마 수비 지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2014년과 2015년에 다시 돌글러브 모드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피츠버그가 후반에 승리를 굳히기 위해 알바레스를 빼고 내야유틸리티인 션 로드리게스를 대수비 요원으로 1루에 넣는다. [2]
결국 1루수로 전향했음에도 두자릿수 이상의 실책을 기록할 만큼 엄청난 돌글러브를 보여줬고 결국 수비에서의 심각한 결점 때문에 15시즌 이후 방출당했다.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는 DH 내지 대타 자리를 놓고 마크 트럼보, 김현수 등과 경쟁했는데... 초반부터 현기증나는 붕붕질을 이어갔지만 명줄 끊어지지는 않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고, 팀에서 부상당한 J.J. 하디 대신 매니 마차도가 유격수를 보느라 3루가 비면서 3루를 '''볼 줄 안다는''' 이유로 3루에 기용되고 있다.
1. 개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 포지션은 3루수,1루수. 유망주 시절부터 대단한 파워 툴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지만 공갈포 이상으로 성공하지는 못한 선수.
별명은 엘 토로(El Toro), 스페인어로 황소라는 뜻이다. 선천적인 힘과 근육질의 피지컬이 대단해서 붙은 듯. 이것조차 귀찮은 중계진은 그냥 영어로 'Bull'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피츠버그 팬은 페티(Petey)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한다.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과 드래프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났지만 1살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를 왔다. 도미니카 이민자 출신 커뮤니티가 밀집해있는 뉴욕 맨해튼의 워싱턴 하이츠에서 자랐는데, 이때 생활 기반이 뚜렷하지 않은 여느 이주자 출신들도 그러하듯 택시 기사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침실 두 개 뿐인 허름한 아파트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넉넉치 못한 가정환경을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알바레스는 일찍이 엄청난 파워 포텐셜로 올 아메리칸 팀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뉴욕 시티 지역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었고, 고교를 졸업한 2005년엔 드래프트 14라운드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받아 서플먼트픽 수준의 상당한 계약금을 제시받기도 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밴더빌트 대학교에 입학한다.
밴더빌트에 입학하자마자 알바레스는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올해의 신입생을 수상하는 등 대학 야구 최고의 강타자로 떠오른다. 2년 연속 올 아메리칸팀에 선정되는가 하면 대학 3년 동안 통산 홈런 39방을 쳐내며 밴더빌트 통산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알바레스는 대학야구를 평정한 최고의 파워히터로서 일찍이 전체 1픽을 다툴 2008년 드래프트의 타자 최대어로 떠올랐고,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탬파베이 레이스가 이미 메이저리그 레디 유망주인 3루수 에반 롱고리아를 보유하고 있던 관계로 고졸 유격수 팀 베컴을 지명함에 따라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알바레스를 지명하게 되었다. 이 드래프트는 데이브 리틀필드를 짜르고 신임 단장으로 취임한 닐 헌팅턴의 첫 드래프트였는데, 전임 단장 데이브 리틀필드가 2007년 드래프트에서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라는 이유로 대학 최고 포수 맷 위터스를 거르고 듣보 좌완 불펜에 1라운드 지명권을 허공에 날리는 짓을 감행한 것을 교훈삼아 보라스의 클라이언트이자 900만불의 계약금을 요구하던 알바레스를 별 고민없이 지명한다. 당연히 그 시점에서 파이리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의 에이전트인 보라스와 파이리츠는 지리한 협상을 벌인 끝에 2008년 8월 15일 파이리츠 구단은 알바레스와 팀 역사상 최고액인 600만불의 입단 계약[1] 에 합의했다고 보도했지만, 12일 뒤에 에이전트인 보라스는 데드라인을 넘겨서 사인을 했다며 계약을 무효라고 주장했고, MLB 선수협 측에서 이를 가지고 커미셔너에게 따진 끝에 9월 22일 알바레스는 계약금 600만불을 포함 4년 635.5만불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얻어낼 수 있었다.
2.2. 프로 시절
파이리츠에 입단한 알바레스는 2009년 마이너에서 빠르게 AA까지 승격되면서 .288 .378 .535 27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면서 거포 유망주의 자질을 보인다.
뛰어난 대졸 유망주답게 프로에 빠르게 적응을 하는 모습을 보였고, 빠르면 2010년 개막 로스터에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슈퍼2 조항를 피하기 위해 트리플A에서 60여경기를 소화한 시점인 6월달에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그런데 윌리 스타젤 이후 최초로 4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특급 슬러거가 될 수 있다는 전망과는 달리 메이저리그 초창기에는 폭삼을 양산하는 붕붕 스윙으로 메이저에 고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7월 3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첫 홈런을 뽑아내기도 하면서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어느 정도 적응하는 듯한 모습으로 95경기 .256 .326 .461 16홈런 64타점이라는 스탯을 남기며 루키 시즌을 마쳤다.
소포모어 징크스인지 2011년엔 더 발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잘한 부상이 겹치며 DL에 오르기도 하고 시즌 중반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하기도 하면서 .191 .272 .289에 단 4홈런 19타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낸다. 빅리그에 올라오기만 하면 빅리그 투수들의 수준높은 변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 이 때문에 마이너에서 대학 은사까지 초빙해서 폼 교정에 나섰다고 한다.
2012년엔 4월부터 작년과 변함없이 삼진을 양산하면서 2할대 초반을 간신히 넘겼지만 드디어 포텐셜이 폭발할 기미를 보인 건지 이후 살아나기 시작해서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넘기며 149경기 .244 .317 .467 30홈런 85타점을 기록했다. 앤드류 맥커천과 동갑내기 듀오로서 동반 30홈런 클럽에 가입했지만, 아쉽게 팀은 뒷심이 부족해 포스트시즌에 진출에 실패한다.
2013년엔 개인 통산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홈런 더비에도 참가했다. 거기다 슬래시 라인은 작년과 별 차이없는 .233 .296 .473로 출루율은 3할 아래까지 떨어지고 NL 최다인 186삼진이나 당하는 막장틱한 모습이었지만 홈런과 타점은 각각 팀내 최다인 36홈런 100타점으로 늘어나며 폴 골드슈미트와 '''내셔널리그 공동 홈런왕'''에 올랐다. 21년만에 파이리츠의 루징시즌을 끊어낸, 팀의 중심타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활약이다. 다만 수비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에러가 많아서, 27개의 에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최다 실책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작년과 비교해 잉여스러워졌다. 출장경기도 30경기나 적은 122경기밖에 나오지 못하면서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22경기 .231 .312 .405 18홈런 56타점.
2015년에도 썩 좋은 출발을 하는 편은 아니다. 1루수로 전향 시켰지만 역시 좋지 못하며 급기야 와일드 카드 전에선 주전 1루수 자리마저 뺏겼다. 구단 측은 이러한 도태된 모습을 보고 다음 시즌에 줘야하는 연봉인 8M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연봉 협상 시한 마감 직전인 12월 2일에 논텐더로 방출당했다.
2016시즌을 앞두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2016시즌 최종 성적은 109경기 .249 .322 .504 22홈런 49타점.
17년에는 마이너리그에서도 그저 그런 성적(출루율이 3할이 안되었다.)을 찍다가 확장엔트리가 되어서야 콜업되었다.
2018시즌에는 1할대에 한자리 홈런을 찍었다. 그리고 2019 시즌에는 마이너에 있었지만 2020 시즌 코로나의 여파로 마이너 리거들의 대폭 방출 러시에 휘말려 종적을 감췄다. 그대로 은퇴하거나 다른 리그를 전전하는 신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3. 연도별 기록
4. 플레이 스타일
PNC 파크의 우측 펜스 클레멘테 월(Clemente Wall)을 넘기는 장외홈런을 간간이 기록할 정도로 파워 하나는 진퉁이라 풀시즌을 뛰기만 한다면 30홈런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만 컨택 능력이 떨어져 삼진을 아담 던급으로 양산하며 타율도 높지 않고 출루율도 높지 않은 공갈포 스타일. 또한 심각한 좌상바이다.
마이너 시절부터 지적받던 문제가 바로 수비로, 체격이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가기 때문에 몸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좁은 수비 범위와 굼뜬 민첩성으로 인해 장래 1루수나 코너 외야수로 갈 것이라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빅리그 데뷔 이래 수비는 쭉 불안하다가 2013년에는 그나마 수비 지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2014년과 2015년에 다시 돌글러브 모드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피츠버그가 후반에 승리를 굳히기 위해 알바레스를 빼고 내야유틸리티인 션 로드리게스를 대수비 요원으로 1루에 넣는다. [2]
결국 1루수로 전향했음에도 두자릿수 이상의 실책을 기록할 만큼 엄청난 돌글러브를 보여줬고 결국 수비에서의 심각한 결점 때문에 15시즌 이후 방출당했다.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는 DH 내지 대타 자리를 놓고 마크 트럼보, 김현수 등과 경쟁했는데... 초반부터 현기증나는 붕붕질을 이어갔지만 명줄 끊어지지는 않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고, 팀에서 부상당한 J.J. 하디 대신 매니 마차도가 유격수를 보느라 3루가 비면서 3루를 '''볼 줄 안다는''' 이유로 3루에 기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