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그스
1. 개요
포그스(The Pogues)는 1982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되어 1984년에 첫 앨범을 내고 데뷔한 아일랜드 · 영국인 혼성 펑크록 밴드이다. 아일랜드 음악과 영국식 펑크록을 결합한 특유의 사운드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걸쳐 영어권과 유럽 및 (뜬금없게도)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리엄 클랜시에 의하면 클랜시 브라더스와 섹스 피스톨즈의 짬뽕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섹스 피스톨즈보다는 클래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조 스트러머를 피처링해 런던 콜링을 연주하기도 했고, 1991~1992년에는 아예 프런트맨으로 영입하기까지 했을 정도니까... 무엇보다도 디스토션 없는 기타 사운드는 섹스 피스톨즈와는 판이한 것이다.
2. 사운드
기본적으로 드럼 비트와 베이스라인 및 가창 발성은 펑크 리듬과 펑크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발성[1] 이며 곡의 구성도 3코드, 기껏해야 6도 마이너 추가해서 4코드와 리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펑크 스타일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음악을 결합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펑크 사운드와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기타 사운드는 대개 일반적인 어쿠스틱 포크처럼 통기타로 리듬만 넣으며, 일렉기타인 경우에도 Telecaster 혹은 ES-335 계열의 세미할로우 기타에 별도의 이펙터 없이 볼륨을 세게 걸고 톤만 강하게 때린 사운드를 뽑아낸다. 즉 기타 한정으로는 레스폴 계열에 오버드라이브나 디스토션을 강하게 때려넣는 일반적인 펑크 기타 사운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포크록 기타 사운드도 아닌 게, 스트라토캐스터로 대표되는 싱글 픽업의 깔끔한 사운드를 뽑아내는 건 더더욱 아니다. 통기타, 텔레캐스터, 세미할로우 셋 중 하나로 '완전 깔끔도 아니고 전형적인 펑크 사운드도 아닌 약간 드라이브가 걸려 듣기 무난한 톤의 사운드'를 뽑아내는 것이 포그스만의 기타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리드기타의 역할은 아예 빠지거나 곡에 따라 아이리시 부주키나 만돌린이 대신하는데 어찌되었든 어쿠스틱 악기인 관계로 일반적인 펑크 리드기타와는 거리가 있다. 거기에 밴조, 틴 휘슬, 아코디언이 추가되어서 아일랜드식의 멜로디와 반주를 뽑아내는 역할을 한다.
곡에 따라서는 드렐라이어나 색소폰 같은 특이한 악기의 사운드를 넣기도 한다. 또 멤버 외의 객원 연주자를 통해 재즈풍의 브라스 반주를 보태거나, 일리언 파이프 같은 아일랜드 악기를 이용해 아일랜드식 사운드를 보강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골 때리는 사운드로서 '''스테인리스 쟁반 찌그러트리는 사운드'''를 삽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스파이더 스테이시가 머리로 박아서(...) 낸다...
3. 음악적 성향
섹스 피스톨즈나 클래시 같은 선대 펑크 밴드들은 68혁명을 계승한 반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성향에 입각해 곡들을 뽑아냈다면, 포그스의 곡들은 아일랜드 민족해방 운동에 철학적 · 사상적 성향을 두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역습과 신보수주의의 백래시가 극심하던, 그리고 한편으론 아일랜드나 남한과 같은 후발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민족해방을 간판에 내건 정치 · 사회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 후반의 정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때가 언제냐 하면 아일랜드에서는 IRA가 심심하면 폭탄을 꽝꽝 터트리고, 남한에서는 NLPDR이 등장해서 로널드 레이건과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인형을 수시로 태워먹고 길바닥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시기다...
즉 포그스의 음악 철학은 '''아일랜드판 NLPDR'''이라 할 수 있는 좌파 민족주의와, 당대의 좌파 민족해방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시기 남한에서 등장한 좌파 민족주의 성향에 실제로 한민족의 전통음악을 접목시키거나 곡 자체를 국악스럽게 뽑아내기도 했던 민중가요 운동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남한의 민중가요 운동이 대체로 권위주의적 좌파 민족주의를 지향한 반면[2][3] 이쪽은 반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내세운 펑크록의 계보를 잇는 관계로 민족주의적이면서도 반권위주의적이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4]
4. 라인업
아래 라인업은 이들의 최전성기였던 1986~1991년 사이의 라인업이다. 그 이전과 이후의 라인업에 대해서는 역사 문단에서 서술한다. 굵은 글씨가 주로 맡는 포지션임.
- 셰인 맥고원(Shane MacGowan, 1957. 12. 25.~, 아일랜드): 메인 보컬, 기타, 밴조, 피아노, 바우란[5]
- 스파이더 스테이시(Spider Stacy, 1958. 12. 14.~, 영국): 틴 휘슬, 하모니카, 보컬[6]
- 젬 파이너(Jem Finer, 1955. 7. 25.~, 영국): 밴조, 기타, 만돌라, 드렐라이어, 색소폰
- 필립 셰브론(Philip Chevron, 1957. 6. 17.~2013. 10. 8., 아일랜드): 기타[7] , 만돌린, 밴조, 베이스 기타
- 제임스 피언리(James Fearnley, 1954. 10. 9.~, 영국): 아코디언, 피아노, 키보드, 만돌린, 기타
- 앤드루 랭켄(Andrew Ranken, 1953. 11. 13.~, 영국): 드럼, 하모니카, 보컬[8]
- 대릴 헌트(Darryl Hunt, 1950. 5. 4.~, 영국): 베이스 기타[9] , 드럼
- 테리 우즈(Terry Woods, 1947. 12. 4.~, 아일랜드): 아이리시 부주키, 만돌린, 기타, 밴조, 콘서티나, 보컬[10]
5. 역사
1982년 영국 런던에서 영국 거주 아일랜드인인 셰인 맥고원을 프론트맨으로 하여 결성되었다. 초창기에는 셰인 맥고원이 메인보컬과 기타를 맡았으며 스파이더 스테이시가 틴 휘슬, 젬 파이너가 밴조, 앤드루 랭켄이 드럼, 제임스 피언리가 아코디언 및 키보드, 그리고 '나이지리아 태생의 아일랜드계 영국인'인 카트 오리어던(1965. 1. 4.~)이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다. 카트 오리어던만 여자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인데, 당시에는 카트 오리어던도 거의 남장여자 컨셉이었다.
1984년에 자작곡과 아일랜드 및 영어권 전반의 구전가요를 편곡한 커버곡들로 구성된 첫 앨범인 <Red Roses for me>를 발매하였다. 대표곡 중 하나인 <Streams of Whiskey>가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1985년에 두 번째 앨범인 <Rum, Sodomy, and the Rash>를 발표하였다. 전반적인 컨셉은 <Red Roses for me>와 유사하다. 대표곡인 <A Pair of Brown Eyes>와 <Dirty Old Town>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 때 셰인 맥고원이 노래에 주력하고자 기타를 전담할 필립 셰브론을 영입하였다.
1986년에 라인업이 두 차례 변동되었다. 우선 아이리시 스타일을 보다 강조하는 차원에서 전문 아이리시 연주가인 테리 우즈가 이 때 합류하였다. 이후 카트 오리어던이 엘비스 코스텔로와 결혼하면서 그룹을 탈퇴하였고, 카트 오리어던이 아주 어렸을 때 함께 밴드를 했던 대릴 헌트가 베이스 포지션에 합류하였다. 이에 따라 혼성 그룹에서 남성 그룹으로 바뀌었다.
1987년에 이들의 최고 히트곡인 <Irish Rover>(더블리너스와 함께), <Fairytale of New York>(커스티 매콜과 함께)을 발표하였다.
1988년에 그 전 해의 두 히트곡과 또 다른 대표곡이자 타이틀 곡인 <If I should Fall from Grace with God>, 역시 대표곡 중 하나인 <The Broad Majestic Shannon>, 그밖에 여러 자작곡과 구전가요 커버곡이 수록된 세 번째 앨범을 발표하였다.
1989년에는 기존의 아이리시 스타일로부터 보다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앨범 <Peace and Love>를 발표하였다.
1990년에 월드컵을 계기로 더블리너스와 함께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응원가인 <Jack's Heroes>를 발표하였고, 전년도보다 더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앨범 <Hell's Ditch> 또한 발표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프런트맨이자 창립자인 셰인 맥고원이 이 음반을 판매하는 것을 방해했고... 결국 이듬해에는 일본 투어 이후 나머지 멤버들이 똘똘 뭉쳐서 셰인 맥고원을 축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셰인 맥고원 축출 이후 1992년 초까지 클래시의 프런트맨 출신인 조 스트러머(1952. 8. 21.~2002. 12. 22.)가 프런트맨을 맡았다가, 이후 틴 휘슬 담당인 스파이더 스테이시가 프런트맨을 겸하게 되었다. 축출된 셰인 맥고원은 '셰인 맥고원과 포프스'(Shane MacGowan and the Popes)라는 이름으로 자기 밴드를 다시 만들었다(...).
1993년에 스파이더 스테이시를 프런트맨으로 내세운 첫 음반인 <Waiting for Herb>를 발표하였다. 히트곡인 <Tuesday Morning>이 여기에 수록되었다.
1993~4년에 걸쳐 필립 셰브론, 테리 우즈, 제임스 피언리가 우르르 나가면서 사실상 와해되었으나, 나머지 네 멤버들이 땜빵 멤버들을 동원해 포그스라는 이름 자체는 겨우 유지하였다.
1996년 마지막 오리지널 앨범인 <Pogue Mahone>을 발표하였으나 반응은 그닥이었고, 이후 젬 파이너마저 탈퇴하면서 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6. 재결성
2001년에 셰인 맥고원을 제외한 나머지 1986~1991년의 멤버들이 다시 포그스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200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셰인 맥고원에 카트 오리어던까지 합류하여 완전체로 복귀하였고, 2005년부터는 카트 오리어던을 제외하고 86~91 체제를 재건하여 본격적인 풀타임 활동을 재개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곡을 발표하거나 스튜디오 음반을 내지는 않는다는 전제하에 재결성된 것이었다.
2012년 30주년 기념 라이브 음반을 발매하였다.
2013년 기타리스트 필립 셰브론이 식도암으로 향년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땜빵 기타리스트들을 투입하여 2014년 7월까지 공연을 했으나, 정규 멤버들이 자주 빠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2015년 이후로는 비록 공식 해산 발표는 없어도 포그스란 이름으로는 더 이상 공연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2015년에 셰인 맥고완이 사고로 휠체어 신세가 되는 바람에, 활동에 제약이 걸린 상태다.
포그스 출신 멤버들은 이후 이리저리 헤쳐모여 후 각자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뉴올리언스에 거주하는 스파이더 스테이시가 '포그트리 인 모션'(Poguetry in Motion)이라는 프로젝트를 '스파이더 스테이시와 로스트 베이유 램블러스'(Spider Stacy and the Lost Bayou Ramblers)의 이름으로 진행하면서 포그스 계승을 표방하고 있다.
2018년 1월 15일에 셰인 맥고원의 60번째 생일(생일 자체는 전 해의 12월 25일이었음)을 기념하여 보노, 조니 뎁[11] , 글렌 핸사드, 시네이드 오코너, 리사 오닐, 데미언 뎀프시, 섀런 섀넌, 닉 케이브 등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이 때 포그스 멤버들 중 스파이더 스테이시, 카트 오리어던, 테리 우즈, 젬 파이너 4명이 함께 출연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18년부터는 스파이더 스테이시와 카트 오리어던, 로스트 베이유 램블러스가 함께 포그트리 인 모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 단 트랙에 따라서는 셰인 맥고원 외의 다른 멤버가 전혀 펑크스럽지 않은 발성을 뽑아내는 곡도 있다.[2] 가끔 막 나간 나머지 아예 권위주의를 넘어 주체사상을 따르는 전체주의의 수준에 도달한 경우까지도 나왔다(...).[3] 단 남한 민중가요 운동을 완전 NLPDR이 장악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민중가요 노래패인 노래마을은 아예 경기동부연합(...) 계열이고 꽃다지의 전신 중 하나인 예울림도 NL 성향에 가깝지만,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노찾사는 서울대 메아리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는 PD 성향이었다. 민중가요 작곡가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윤민석은 김일성 찬양가(...)까지 만든 바 있는 초강성 NL이었다가 2000년대 이후 깨시민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또 다른 하나인 김호철은 곡에 '민중민주주의'란 단어를 심심하면 집어넣곤 하는 전형적인 PD계열이다.[4] 아일랜드의 사회주의적 민족해방 운동 자체가 강력한 지도부의 권위보다는 집단지도체제를 추구하는 성향이었다 보니까 그렇다.[5] 기타를 치던 초창기에는 12현 통기타를 쳤고, 필립 셰브론을 영입한 이후에는 몇몇 트랙에서 Telecaster를 쳤다.[6] 셰인 맥고원이 그룹에서 축출된 이후로 1996년에 그룹이 해산될 때까지는 메인 보컬이었다.[7] 대개는 픽업 꽂은 어쿠스틱 기타를 주로 쳤으며 곡에 따라 Telecaster나 ES-335 계열의 세미할로우 기타, 혹은 슈퍼스트랫을 치기도 했다.[8] 한 곡은 앤드루 랭켄이 부른다. 이 경우 연쇄이동이 일어나는데, 원래 베이스 담당인 대릴 헌트가 드럼을 치러 올라가고, 원래 기타 담당인 필립 체브론이 베이스를 치고, 원래 밴조 담당인 젬 파이너가 일렉기타(Telecaster)를 친다. [9] 1980년대에는 Precision Bass를 주로 쳤으나 2000년대에는 골 때리게도 SG 베이스로 갈아탔다. 솔로로 나와서 일렉기타를 치며 노래할 때에도 SG 기타를 친 걸 보면 SG가 기호에 맞은 듯하다.[10] , 같은 아일랜드 민족해방 성향의 곡은 본인이 작사 및 작곡을 했고 본인이 부른다. [11] 형이 왜 여기서 나오나 싶을 텐데 영화 음악가로서 일렉기타 연주도 한다. 항목에서 보듯 배우로 데뷔하기 전에는 음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