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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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초등학교 때 원래는 태권도를 하고 싶었으나 폭력적인 스포츠라서 안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학교 운동장에서 몰래 놀다가 농구부 코치의 권유로 농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명지대학교 시절 주전 포인트 가드였지만, 인지도가 아주 높지는 않았다. 팀 전력도 약했고, 가드로서의 역량도 신기성에게 밀렸다. 그래도 1998년 프로 첫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번에 지명되어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로 들어가게 되었다.
2. 프로 선수 시절
2.1.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생각보다 프로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루키 시절에는 의 백업 포인트 가드로 상당히 준수하게 활약한 것. 물론 를 능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에게 휴식 시간 정도는 벌어줄 역량은 보였다. 두 시즌 밥값은 한 후, 군에 입대해서 상무에서 복무하던 도중에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다. 기아의 색깔을 지우던 모비스의 최희암 감독이 그도 트레이드 카드로 쓴 것이다. 2002년 5월 1일, 3:3 트레이드의 대상자가 되어 그렇게 팀을 전주 KCC 이지스로 옮겼다. 김동언, 송태영, 표명일이 전주 KCC로, 구본근, 이상영, 김태진이 모비스로 가는 트레이드였다.
2.2. 전주 KCC 이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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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KCC 이지스에서는 이상민의 뒤를 받쳐주는 백업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수행했다. KCC 이적 첫 해 전 경기에 다 나오면서 이상민에게 제대로 휴식 시간을 주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성실한 플레이에 적당히 준수한 패스와 수비력으로 비록 주전으로는 다소 미흡하다고 하더라도 백업 가드로서는 나무랄데 없는 활약으로 2003-04 시즌 KCC 우승의 한 축을 담당하며 우승 반지도 얻었고, 그 해 기량발전상과 우수 후보 선수상에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그렇게 KCC의 백업 가드로서 다른 팀의 주전 제안도 뿌리치고 FA로 KCC에 남았고, 2006-07 시즌에는 득점력도 향상되어 최고의 백업 가드로 명성을 얻었다. 이상민이 시즌 개막 이후 얼마 안되어 부상으로 전력이탈한 와중에 11월 12일 LG 세이커스와의 홈 경기에서 3점슛 10개를 포함 무려 40점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는데, 이 경기를 계기로 '표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3]
2.3. 원주 동부 프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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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7년 1월 KCC와 동부가 3:3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표명일은 원주 동부로 이적하게 되었다. KCC가 포워드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자 포워드를 얻기 위해 표명일을 카드로 쓴 것. 이 결과 KCC는 '''김영만, 정훈, 배길태'''를 얻었고, 동부는 '''표명일과 변청운, 백주익'''을 얻었다. 결론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동부의 승리. 김주성이 차지하는 샐러리 때문에 특급 가드를 얻기 어려웠던 동부는 표명일의 영입하며 가드진의 로또를 긁었고, 이 로또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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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성의 이적 이후, 제대로 된 포인트 가드가 없어 고생하던 동부는 표명일의 이적 이후 구색을 갖춘 가드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표명일은 백업 가드에서 주전 가드로 활약하며 동부의 2007-08 시즌 완벽한 우승을 이끌면서 주목을 받았다. 물론 성적은 두 자릿수 득점도 아니었고, 어시스트도 특출나지 않았지만, 이 정도 활약만으로도 우승에 보탬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2.4. 부산 kt 소닉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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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 이후 FA가 되자, KT로 이적한 전창진 감독은 신기성을 내치고, 그 자리에 표명일을 영입했다. 그런데 영입한 것까지는 좋은데, 연봉이 무려 4억. 게다가 신기성한테 늙었다고 은퇴를 권유하고 신기성은 이를 거절해서 결별하게 된 건데 정작 표명일은 '''신기성과 동갑이다(...).''' 그리고 표명일은 망했다(...). 다행히 KT가 포워드 중심의 농구로 가드진의 부실함을 최대한 만회해서 그렇지, KT의 표명일은 KCC의 특급 백업, 동부의 우승팀 주전 가드의 명성을 다 날려먹는 삽질로 일관해서 표4억으로 까인다(...).
하지만, 이렇게 까여도 역대 수준급의 식스맨 중에서 표명일의 이름이 들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말년에 너무 많은 돈을 받고 부진해서 그렇지, 표명일 정도의 장수한 키식스맨은 드문 편. 식스맨으로 한정하면, 역대 KBL에서 수준급의 식스맨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2011-12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여 KT의 지원으로 2년간 미국 샌디에이고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이로써 드래프트 첫 세대인 94학번 선수들이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됐다.
3.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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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연수를 받은 뒤, 원주 동부 프로미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나 구단이 김영만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자 사임했다.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18년에 모교인 양정중학교 코치에 선임되었다. 기사 참조
2019년 1월, 양정고등학교로 이직해 코치를 맡게 되었다.
4. 모래반지 빵야빵야
음성지원 버전.
표명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위 동영상. 2007~2008년도 사이 쯤의 영상으로 일명 '모래반지 빵야빵야'라 부르는 파레이돌리아 영상이다.[4] 참고로 뒤의 유재학 감독은 서로 다른 장면을 합친 합성이다. 즉 표명일이 유재학에게 욕한 것은 아니라는 것.[5][6] 실제로는 전주 KCC 이지스와 치른 경기에서 상대 외국인 선수 로빈슨과 몸싸움 도중 욕을 내뱉은 게 임재현에게 한 것으로 와전됐다.[7] 그래서 욕설을 했다거나 반칙에 항의하길래 한소리 했다는 등 말이 많았다. 은퇴 후 인터뷰에서 한 번 더 언급했다. #
웹툰 《마음의소리》 908화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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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조도 패러디했다.
웹툰 《공대생 너무만화》 3~4화에도 썼다.
김혜성 성우도 더빙했다.
오버워치에서 레킹볼 음성 대사로 패러디했다.
5. 관련 문서
[1] 부산 기아 시절[2] KCC, 동부, kt 시절[3] 사실 이 별명을 얻게된 계기중 하나가 무엇냐면 이 엄청났던 경기를 '''어떤 채널도 중계하지 않았다는거다''' 그러니까 경기장에서 직관하던 팬들은 이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겠지만 아니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40득점을 넣었던 것인지 기록지를 보고 믿겨지지 않으니 도시전설 비슷하게 받아들이다 NBA급 별명을 붙인것이다.[4] 시각 자극(입 모양)에 대한 착각 반응이므로 청각적 파레이돌리아를 가리키는 몬더그린은 아니다.[5]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선수가 감독한테 저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다.[6] 어떤 짤에는 유재학 감독의 응? 표정 후에 모비스 벤치에서 박수치는 짤까지 합성한 것도 있다.[7] 표명일은 칼 미첼로 알고 있었으나 다시 보니 칼 미첼이 아닌 로빈슨이었다. 이를 안 표명일은 칼 미첼에게 사과했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