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寒溪嶺 / Hangyeryeong[1]
[image]
1. 고개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 인제군과 양양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해발 고도는 네이버 지도에 의하면 1,004m이다. 도로의 최대 해발고도는 바로 위 사진에 의하면 920m.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로, 왕복 2차로로 잘 포장된 44번 국도가 지나간다. 설악산 국립공원을 지나가기 때문에 경치는 아름답다. 특히 단풍구경을 하면서 지나가기에 좋다. 그러나 매우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운전 난이도는 높다. 그나마 인제군에서 한계령 휴게소까지는 나은 편이지만, 휴게소에서 오색리 방향은 말 그대로 낭떠러지를 보게 된다. 헤어핀 커브도 적지 않아 엔진 브레이크 없이 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만큼 와인딩 로드가 많다. 엔진 브레이크[2] 를 써가며 천천히 넘는다면 그렇게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길에 두려움이 있는 초보 운전자라면 56번 지방도를 타고 미시령터널(유료)을 지나서 속초시로 가는 길을 추천한다.
한계령이라는 지명은 예전부터 있었으나 소동라령(所冬羅嶺)과 혼용되어 쓰이다가 1970년대에 제3군단이 당시 군단장이었던 김재규의 주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한계령이 정착되었다. 고갯마루에 공사 당시 죽은 장병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세웠는데 당연히 김재규 본인의 이름도 있었으나 10.26 사건 이후 누군가가 이름을 지웠다고 한다.
정상에는 김수근이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한계령 휴게소가 있다. 산꼭대기의 휴게소답게 물가는 비싸지만[3] 매우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또한 한계령이 비교적 오지에 속하지만, 놀랍게도 동서울 - 속초, 춘천 - 속초 양양경유 시외버스가 정상을 정확하게 찍고 넘어가며, 한계령 휴게소에도 정차한다. 이는 한계령 휴게소에 설악산 등산로가 있기 때문.[4] 서울 방향으로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의 비율로 오는 편인 만큼 드물지는 않다. 표는 휴게소에서 판매한다.
눈이 오면 그야말로 헬게이트. 폭설이 내리면 체인 없이 넘어가려는 생각은 하지 말자. 눈이 내리면 제설차가 계속 지나다니면서 눈을 치우지만 일반 승용차는 체인 없이 넘기 어려우며 매우 위험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따금 있는지, 눈이 오는 날이면 "체인장착"이라는 LED간판을 단 차량들이 지나다닌다.
영서 지방에서 속초시로 넘어가는 길이 미시령과 한계령, 서울양양고속도로밖에 없고, 한계령과 인근 오색약수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통행량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미시령터널이 뚫린 미시령이 길은 편하지만, 속초를 경유하여 돌아가는 길인 만큼 양양이나 그 남쪽으로 갈 때에는 한계령을 넘어 가는 것이 더 빠르다. 또한 양양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교차로가 보이는데, 샛길로 가면 인제군 필례약수 쪽으로 빠진다. 이 샛길에 관해서는 필례로 문서로.
1.1. 이름 논란
양양군에서는 '''오색령'''으로 이름을 바꿀 것을 주장한다. 근거는 조선시대에 이 고개가 오색령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5년 한계령휴게소 양양군 측 지역에 '''옛 오색령'''이라고 적힌 표지석을 설치했고, 2010년 범군민운동을 여는 등 공론화를 했다. 당연히 인제군에서는 반발하였는데 '한계'는 인제군 북면 한계리, '오색'은 양양군 서면 오색리의 지명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대관령을 두고 강릉시와 평창군이 서로 다투는 것과 연유가 비슷하다. 2012년 양양군이 오색령 명칭을 군내에서만 사용하기로 하여 이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후 인제군이 한계령 지명 안내판 설치와 양희은(2번 목차로.)의 노래비 등을 한계령에 설치하려는 계획을 양양군 측에서 불허하면서 논란이 다시 일었다. 한계령휴게소 대지는 거의 다 양양군역에 속해서 인제군이 이런 시설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양양군에게서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제군은 한계령 지명 안내판을 설치하려는 목적을 법정지명인 한계령을 알리고자 함이라 밝혔지만, 양양군은 이것이 오색령 표지석에 대한 맞불로 보일 수 있어 불허한 듯하다. 만약 인제군 측에서 표지판을 설치하면 같은 고개에 두 이름을 가진 표지가 설치되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조선조에 제작·편찬된 「해동지도」, 「광여도」, 「동여도」, 「대동지지」 등에서는 한계령과 오색령을 다르게 표기하였다. 양양군의 주장이 타당도가 떨어지는 까닭이다. 오히려 고지명을 근거로 한다면 한계령을 그대로 쓰거나 소동라령(所冬羅嶺)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위 동여도에서 한계령과 오색령 사이에 이름 없는 고갯길이 하나 더 있는데, 주변 능선 분포가 설악산 오색지구의 주전골-십이폭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길일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 오색지구 등산로중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즉, 오색령은 한계령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해야 하고[5] , 조침령(필노령)보다는 북쪽에 있어야 하는데 이 위치에 맞는 고개는 단목령과 곰배령 뿐이다. 따라서 옛 오색령은 실제로는 단목령-곰배령 루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재도 단목령과 곰배령은 길이 험해 등산로는 있지만 자동차가 통행하지 못하는 길이다.
2. 가요
가수 양희은이 1985년 발표한 노래. 하덕규가 4번 항목의 정덕수의 시 <한계령에서 1>에 곡을 붙였다.
그런데 정덕수 작사라는 것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 작사로 알려져 있어 저작권료 등 권리를 못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가 되어서야 시인 본인의 노력으로 알려지게 된 사실이 있다. 저작권 의식이 없던 80년대 가요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예.
대중가수뿐만 아니라 성악가와 국악인도 커버한 바 있는 양희은 최고 명곡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노래의 작시자가 직접 편집한 동영상도 유튜브에 있으며, ‘다시 한계령에서’를 제목으로 한 노래도 있다.
1박 2일 2010년 10월 17일 방송분에서 기상 미션 음악으로 나왔다. 이 노래의 이름을 최종적으로 못 맞힌 한 사람(김종민)은 설악산을 등반하는 벌칙을 받았다.
시노래 가수 박경하의 한계령
김애령의 다시 한계령에서
3. 소설
양귀자가 쓴 소설. 2번 항목의 가요와 관련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원미동 사람들 문서로.
4. 시
한계령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시에는 한국시인협회 회장이자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문정희가 쓴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있다.
2번 항목의 '한계령' 노래의 원본인 ‘한계령에서’는 1981년 정덕수에 의해 처음 쓰여졌으며 이후 다양한 작품들이 한계령에서로 하여금 탄생했다.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었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상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메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5. 관련 문서
[1] 우리가 흔히 아는 '''한계(限界)'''가 아니라 차가운 시내라는 뜻이다.[2] 제한속도가 30~40km/h 이므로 2단 정도의 엔진브레이크면 충분하다.[3] 캔 커피 하나에 1,000원, 라면 한 그릇에 5,000원 수준[4] 이 등반로는 산불 예방이나 동절기에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자주 통제하는 코스다. 이 코스로 등하산을 하고자 한다면 등반로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5] 주전골-십이폭포 방면 고개 남쪽으로는 1424m의 점봉산이 위치하고 있어서 고개가 조성될 환경이 아니다. 점봉산보다 더 남쪽에 고개가 위치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