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아프리카 공화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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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2.2.1. 2010년대
2.2.2. 2020년대
3. 대한민국에서 가는 방법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관계. 한국전 당시 남아공의 파병(1개 비행중대, 826명) 등으로 양국 간 우호 관계가 유지되었으나, 1978년 이후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UN 제재에 한국이 부응하면서 모든 공식관계가 단절되었다. 그 후 1990년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의 인종차별정책 철폐를 계기로 양국 간 관계 개선이 모색되고 1992.12월 수교가 합의되었다.[1] 2021년 2월 초 기준 일반여권 소지자 자격의 한국인이 무사증 입국 가능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이며, 체류기간은 30일이다.( 외교부 영사서비스/비자 정보 참조)
남아공내에 한국인 공동체가 존재하며[2][3], 교민들을 위한 교육기관과 종교시설을 설립하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19년 재외동포 현황(외교부)[4]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약 3,843명의 교민이 남아공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인 남아프리카 연방은 1950년 한국전쟁UN군으로 참전하였다. 당시 파병된 남아연방 공군 대대는 826명 중 36명이 전사하고 8명이 포로가 될 정도로[5][6] 국군과 함께 피흘리며 열심히 싸웠다. 덕분에 남아공은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펼친 탓에 공식적 수교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교협상을 위한 물밑접촉 정도는 있었고, 각국과의 남아공측 외교관계가 잇따라 단절되고 있었기에 남아공이 한국측에 명예백인 국가로 대우해주겠다며 구애하는 스탠스였지만, 수교해봐야 국제적으로 이득을 볼리가 없는데다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어 계속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76년 남아공 정부가 소웨토 항쟁[7]을 강경 진압하였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대한민국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남아공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단절하기에 이르렀다. 흑백 인종차별 문제로 인해 1964 도쿄 올림픽부터 참가 및 출전이 정지되어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하지 못하였고[8] 1992년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나서야 수교가 이루어졌다.
다만 국가 간의 외교를 단절한 것과는 별도로 민간 경제 교류는 이전부터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1995년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하였다.

2.2. 21세기



2.2.1. 2010년대


남아공에서도 우리나라의 지원으로 우물기증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코트라는 2018년 11월 28일부터 이틀동안 남아공에서 '아프리카 소비재 행사'를 개최했다.# 2018년 12월 1일에 G20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남아공의 시릴 마리포사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9년에 월드옥타는 키르기스스탄과 남아공에서 지역경제인대회를 개최했다.# LG유플러스는 남아공 통신사인 레인 회장단에게 5G 노하우를 전수했다.#
2019년 7월 1일에 학교법인 광운학원과 남아공의 모뉴먼트 파크 고등학교가 상호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강경화 장관은 7월 15일에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아공의 외교부 장관과 만나 회담을 가졌고, 교역·투자 증진방안과 한반도 정세 등을 논의했다.#

2.2.2. 2020년대


2020년에 남아공내에서 한달동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상영되고 있다.#
KOTRA 요하네스버그무역관은 한국 중소기업과 함께 화상상담을 통해 남아공에 코로나19 진단장비 109대를 수출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밝혔다.#
남아공 명문대 교수들이 코로나19 대응에서 한국을 모방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주목받고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녀인 제나니 노시츠웨 들라미니 주한 남아공 대사가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상생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아공한인회는 남아공내 교민들과 한국전쟁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 5천장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6월 3일에는 남아공의 한국 전쟁 참전용사와 유족들에게 한국산 마스크 5천장이 전달됐다.#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는 옥수수 가루 32톤을 기부했다고 밝히는 등 남아공내 한인사회에서 남아공인들을 돕고 있다.#
7월 18일에 삼성전자는 남아공에 진단키트 1만명분을 보냈다.#
한국 기업에서 3년째 남아공에 생리대를 보내고 있다.#
11월 19일에 코트라는 남아공내에서 한류를 포함한 K-소비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25일에 주 남아공 한국 대사관의 주관으로 남아공의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전달하는 행사가 개최됐다.#
2021년 2월 11일에 주 남아공 한국 대사관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아프리카협의회에게 대통령 표창장을 전수했다.#

3. 대한민국에서 가는 방법


대한민국 직항은 없으며, 환승해야 한다. 홍콩 국제공항에서 남아프리카 항공캐세이퍼시픽 항공요하네스버그행을 운항 중이기 때문에 홍콩 등지에서 환승이 가능하다. 케이프타운의 경우 위의 경로 이외에도 카타르항공 또는 아랍에미리트를 통해 요하네스버그를 거치지 않고 한국에서는 1회 환승 후 바로 입국가능하다.

4. 여담


1974년 복싱 챔피언이자 당시 육군 일병 신분이었던 홍수환더반에서 챔피언을 획득한 기적과 영광을 일으켰고,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때에는 같은 도시에서 대한민국이 사상 최초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며 1년 후 같은 도시에서 열렸던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군으로 유치가 확정되기도 하여 특히 더반과 인연이 깊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영어강사가 될 수 있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적지 않은 수의 남아프리카인들이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특히 백인 남성의 경우 남아공 정부의 소수자 우대 정책에 의거하여[9] 고용 시 무조건 가장 꼴찌로 고려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근무를 고려하는 비율이 높다.[10] 게다가 자국 임금 수준이 한국보다 한참 낮다보니[11] 북미나 영국 호주/뉴질랜드 출신 강사에 비해 월등히 적은 임금으로도 만족하는 것이 사용자 입장에서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영어만 사용하는 화자는 아니고 모어가 아프리칸스어인데 영어에도 능통한 바이링구얼인 경우가 많고 일부는 아프리칸스어 억양이 짙은 발음을 구사하므로 본인이 강사의 발음을 크게 따지거나 미국/영국 발음만을 고집하는 경우라면 한 번 더 고려해보는 게 좋다.
조선초에 제작된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남아공과 나미비아의 오렌지 강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남아공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다.

5. 관련 문서


[1] 공관약사 (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2]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재외동포 현황 (외교부)[3] Koreans in South Africa (위키백과 영어문서)[4] ▷ 「재외동포현황(2019년)」 다운로드 후 25/352 page 참조[5] 6.25전쟁 UN참전국 (유엔평화기념관 공식홈)[6] 남아공과 한국전 (South African Embassy Seoul 공식홈)[7] 소웨토 항쟁 (위키백과 한국어판)[8]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다시 참가.[9] BEE(Black economic empowerment) 정책 때문에 흑인 여성>흑인 남성>백인 여성>백인 남성 순으로 취업이 쉽다. 남아공 흑인 사회가 빈곤률이 높고, 백인 사회에 비해 성차별이 심한 걸 고려해 만든 정책이긴 한데 아파르트헤이트 때와 방향은 반대지만 인종과 성별에 의거해 사람 차별 하는 것은 똑같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10] 영어 학원 등에서 강사를 뽑을 때는 보통 백인 여성을 가장 선호하는데, 남아공 출신 강사들은 남자가 많다.[11] 그래도 남아공 기준으로는 중산층 정도 되는 수준이고 위낙에 빈부격차가 큰 나라이다보니 이 정도 임금도 남아공에서는 평균 이상은 되는것을 취급받는다. 흑인가정부같은 직종의 경우에는 한국인 기준에서 초저임금을 적용받는다. 안습인것은 이러한 일자리도 사람이 많아서 구하기 빡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