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리비아 관계
1. 개요
대한민국과 리비아의 관계.
대한민국과 리비아는 1978년에 영사급으로 수교했다가 2년 후인 1980년에 대사급으로 격상되었으며, 북한과는 1974년에 수교했다.[1]
박근혜 정부 때부터 모든 한국인에 대한 철수 명령이 내려졌지만, 2020년 9월 기준 40명의 거주민들과 1명의 시민권자가 살고 있다.[2]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과거 우리나라 건설 회사인 동아건설산업이[3] 1983년 리비아 대수로 건설에 나서면서 국민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4] 이후 다시 잊혔다. 200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아프리카 무역에 있어서 6위의 수출 대상국이었다.(4억 6,000만 달러 수출)
당연히 대수로 공사덕택에 한국에 대해서 호감도가 강한 나라이며 한류 열풍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빅뱅은 거기서도 유명하다고... 심지어 스피드왕 번개까지도 방송되었다고 한다.
대수로 건설 붐 당시엔 대한항공이 트리폴리에 취항했었다. 대한항공이 리비아 취항 당시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가 났었는데, 현대건설 전무 김윤규(이후 현대아산 부회장까지 오른다.) 씨가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눈을 파르르 떠는 버릇이 생겼다.[5]
2.2. 21세기
납치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2018년 리비아 한국인 납치사건 문서 참고.
대우건설은 리비아전력청과 협력해서 웨스턴마운틴 복합화력발전소 신규 건설공사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리비아는 내전중이지만, 한국 중고차의 절반이 리비아(!)로 수출되고 있다.# 요르단과 멀어 요르단에서 들어오는 중고차가 적은 것도 이점이라면 이점.
2.2.1. 리비아 한국 스파이 사건
앞서 말한 대로 한류 열풍도 있었지만, 자원은 많으나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이 2가지는 절대적인 골칫거리였다. 그런 골칫거리 중 하나를 해결한 것이 1980년대 한국 동아건설이 공사하여 이뤄낸 지하수 공사였다. 아주 물이 넘쳐날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난 시간과 공사 끝에 꽤 해낸 이 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많았다. 당시 리비아 여론도 환호했고, 오죽하면 당시 동아건설 회장이 카다피를 카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냈으며, 카다피가 서투른 한국어로 동아건설 회장을 "헤잔님"(회장님)이라고도 불렀을 정도였다.
이렇게 한국에 대하여 긍정적인 여론은 2010년 7월경에 한국의 개신교 목사가 선교하다가 잡히는 사건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한국 대사관 상주직원 3명도 철수하고 현지 공사에 필요한 인원도 보내지 못하는 등 그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
일개 목사 1명이 범법 행위를 저지른 거치고는 리비아의 대응이 너무 과한지라[6] 외교계 일각에서는 무언가 더 큰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줄곧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알고보니 '''한국 외교관의 간첩행위로 인해 국교가 파탄난 것'''이었고 외교당국이 이것을 은폐, 축소했다가 때마침 불법선교의혹을 사던 목사가 추방당한 것을 '''언론에서 아무 의심없이 불법선교행위로 국교가 파탄난 것으로 보도해버린 것'''(...). 이미 아랍 측 언론에는 이 일을 대서특필하고 있었고 현재는 이 간첩행위가 단지 한국의 국익을 위한 정보수집행위였나 아니면 다른 나라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조사 중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체포된 목사가 불법선교를 한 적 없으며 그저 리비아 대학에서 아랍관련 학문을 공부하던 중 외교적 구실 마련을 위해 체포당했다는 주장도 있고, 실은 목사가 국정원 스파이라는 설까지 있다.
리비아 측에서는 국정원이 카다피의 차기 후계자 정보를 수집[7] 하다 체포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에선 그저 기업활동을 위한 통상적 업무수행이었다고 해명하자 이제는 한국 국적의 기업인들도 첩보 작전에 참여한 거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카다피는 이 사건 이후 한국과 외교를 끊는 것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라서 리비아에 나가 있는 건설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참여한 건 맞긴 한데 참 입장이 애매하다. 왜냐면 통역을 했기 때문이다. 왜 통역했냐면 국정원 요원이 아랍어를 못 했기 때문이다. 아랍어 수요는 대폭발인데 가르치는 곳은 한손에도 안 들어가고, 아랍어 능력자들은 상대적으로 연봉 적고 이런저런 조건에 시달리는 직업들을 기피하기 때문.
당시 리비아는 한국의 외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꽤 높은 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 리비아와의 교류로 얻는 경제적 이득도 큰 편이며 전체적인 영향력에서 북아프리카에서 리비아를 능가할 만한 나라는 기껏해야 먼저 혼란이 닥친 이집트를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비아는 미국이나 한국이 적대하는 나라들과도 꽤 친하게 노는 편이라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가는 게 많았다.
그런 가운데 리비아 주간지의 기사를 바탕으로 내보낸 KBS의 보도가 또 파문을 일으켰다. KBS는 리비아 주간지를 인용해서 '''한국 정부가 스파이 행위를 했음을 시인했으며''' 사죄의 의미로 리비아가 한국에게 '''10억 달러(1조 2천억 원)'''에 해당되는 것을 내놓지 않을 경우 리비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는 것. 일부에서는 10억 달러짜리 공사를 공짜로 해주라고 요구한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에 외교부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외교부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 그리고 10억 달러에 대한 것을 부정한 바로 다음 날, 리비아에게 10억 달러치의 '''경제 지원을 검토 중'''이란 말이 올라왔다. 카다피는 식민지 해방(...)이라며 환영했다.
'''그런데 어차피 카다피 정권이 작살났으니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전 이후에는 다시 상황이 역전되어서 2017년에 한국에 온 리비아 정부 대표단은 국회일정으로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는 국토부 차관에게 간곡하게 면담을 요청하였다.[8]
3. 대사관
197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까지는 한국기업들이 대수로 공사 및 여러가지 인프라 공사를 수주했었기 때문에 한국과 리비아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스파이 사건으로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 의해 대사관이 대표부로 격하되었다. 이후 리비아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끝난 뒤 다시 대사관으로 격상되었다.[9] 다만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
4. 여담
한편 대한민국에도 리비아인들이 꽤 거주하는데, 대표적인 연예인인 아미라가 있다.[10]
5. 관련 문서
[1] 수단과 마찬가지로 당시 리비아도 친공사회주의 국가에 북한과 수교한 적대국이었다. 두나라 외교회담에 북한의 협박과 반대도 있을 정도로 외교관계를 맺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리비아에 경제인들을 함께 대동해 보냈고 그 전략이 성공했다. 이후 리비아의 공장 및 건설 수주를 우리나라에서 많이 맡게 되었다. 대우 전 회장 김우중이 리비아 카다피 원수와 친했다.[2] 이 조사는 '''한민족'''만 조사한 것으로, 망명자가 소수 있으며 실제로 철수 명령을 거부한 사람은 30명 이하였다(현 거주민은 41명).[3] 문화방송 여의도 사옥, 성수대교, 원효대교를 지은 건설회사.[4] 신화창조의 비밀에서는 1차 대수로 공사 이후 진행된 119 프로젝트편을 방영하기도 하였다.[5] 정몽헌 회장의 유서에 김윤규 전무에게 남기는 말로 "윙크하는 버릇 고치세요" 라고 적힌 게 바로 이 눈을 파르르 떠는 후유증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6] 리비아의 대한민국 건설 수주량은 5위권에 들 정도로 나름대로 상당히 각별한 관계다.[7] 전제 왕권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후계자 문제에 얼마나 예민한지는 한반도 북쪽의 예에서 보듯 엄청나게 민감한 사안이다.[8] 결국 25분간 비공식 회담을 했다.[9] 트리폴리 위치[10] 2014년 10월에 방영했던 헬로 이방인에도 나왔으며, 지금도 몇몇 프로그램에 가끔씩 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