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4대회장'''
<colbgcolor=#00a86d> '''이름'''
'''정몽헌'''
'''鄭夢憲''' | '''Chung Mong-Hun'''
'''출생'''
1948년 9월 14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자유시 종로구
'''사망'''
2003년 8월 4일 (향년 54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학력'''
보성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종교'''
개신교
'''가족'''
배우자 현정은
장녀 정지이
차녀 정영이
장남 정영선
1. 개요
3. 이야깃거리
4. 관련 링크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현대그룹 제4대 회장.
1948년에 정주영의 5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원래는 문학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정주영의 뜻에 따라 이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미국 페어레이디킨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1992년 현대전자 대표이사를 지냈다. 1998년 현대그룹 회장이 되면서 대북사업을 수행하였다. 2000년 둘째 형 정몽구와의 왕자의 난 이후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2003년 불법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서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그 해 8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하였다.[1] 장례식 당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에서 조전을 보냈으며, 금강산 지구에서 분향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의 사후, 현대그룹 회장직은 아내인 현정은이 이어받았다.

2. 가족 관계




3. 이야깃거리


  • 유난히 축빠가 많은 현대가(家)에서[2] 동생 정몽윤과 함께 야빠였다.[3][4] 현대 유니콘스도 정몽헌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던 덕에[5][6] 팀 성적이 매우 좋았었다.[7] 하지만 그의 사망 이후 구단주를 잃은 현대 유니콘스는 비참한 말로를 겪고 만다. 구단의 모기업인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하이닉스와 범 현대가 형제 기업들의 구단 운영 지원이 끊어졌고[8] 서울특별시 연고지 입성을 위해 기존 서울 연고 구단에 줬어야 할 연고지 이전 비용 54억원을 모기업 하이닉스반도체가 가로챘으며[9] 26년간 적립해 온 KBO의 야구발전기금마저도 홀라당 써버리는 난리통 끝에 결국 해체되었다.
  • 현대엘리베이터 이천공장 안에 있는 테스트타워인 현대아산타워 안에 자신의 이름을 딴 정몽헌 R&D센터가 있다.
  •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배우 김갑수가 정몽헌 회장 역을 맡았는데, 간지나는 연기로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했다는 평이다. 현대그룹측의 초청으로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4. 관련 링크



[1] 한때는 여러 의문점들 때문에 타살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조사 결과 자살로 공식적으로 밝혀졌다.[2] 아버지 정주영현대중공업 사내 축구대회에 직접 출전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고, 바로 아랫동생인 정몽준대한축구협회 회장과 국제축구연맹 부회장을 지낸 세계 축구계 거물이며, 사촌동생인 정몽규사촌형에 이어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됐을 정도로 현대가는 축구와 인연이 깊다.[3] 현대해상화재보험넥센 히어로즈의 창단 이후부터 2015년까지 꾸준히 스폰서를 맡아왔던 이유도 바로 정몽윤 덕분이기도 한데, 대한야구협회 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2004년까지는 사내 사회인 야구팀 1루수로 직접 뛰기도 했다. 한국실업야구팀이었던 현대해상야구단을 2003년 실업야구가 해체되기 전까지 운영한 것도 정몽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4] 그러나 이장석의 전횡이 드러나고 스폰서들의 지원비도 빼돌려 쓴 게 알려지면서부터는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옮겨간 게 역시나 현대가인(...) KIA 타이거즈.[5] 인천고를 막 졸업한 대형 유격수 박진만해태 타이거즈 지명을 받았던 연세대학교 출신 내야수(당시 포지션) 박재홍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거액이 동원됐다. 두 사람에게 쥐어준 신인 계약금 총액만 해도 7억1000만원인데 박진만에게 지불한 신인 계약금 2억8000만원은 당시 고졸 야수 역대 최고대우 수준이었다.[6] 물론 이 당시 현대그룹의 재력이 삼성그룹과 대등했을 정도로 빵빵하기도 했지만, 야구단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투자가 이뤄질 리 없었다.[7] 이전 버전에는 인기도 높았다고 하지만, 이는 유니콘스 구단의 연고지가 인천광역시였던 1996년부터 1999년까지의 일일 뿐이다. 구단이 연고지를 옮긴 2000년부터는 비인기 구단으로 전락하고 만다.[8] 적어도 2005년까지는 십시일반 형태로 현대자동차, 현대백화점범 현대가 형제 기업들이 조금씩 지원해줬지만, 2006년부터는 지원을 아예 끊어버렸다. 더 심각한 것은 정몽헌의 부인인 현정은이 2005년을 끝으로 아예 구단 운영 지원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생전에 남편이 열렬한 야구팬이었고, 남편이 유니콘스 구단 운영에 열정을 바쳤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당한 아이러니다.[9]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인천 연고권을 취득하는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54억원을 줬고 현대는 그 54억원을 반으로 쪼개 서울 연고권 분할에 대한 권리 보상 목적으로 LG와 두산에 주기로 했으나, 하이닉스가 이 돈을 가로채면서 서울 연고권을 취득하지 못했다. 결국 이 때문에 유니콘스 구단은 2003년부터 구단이 해체될 때까지 연고지 출신 1차 지명 신인을 뽑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