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비석로
1. 개요
서울특별시 노원구 하계2동에서 시작하여 중계동 은행사거리를 경유하여 노원구 상계8동으로 이어지는 도로. 총 거리는 약 5.9km이다. 중랑천의 월계1교 동단 동부간선도로 위에서 월계로와 직결되어 있고[6] , 종점은 동부간선도로 의정부 방향과 연결되어 있다. 은행사거리~하계역 사이 하계동 산12번지에 이윤탁 한글 영비(보물 제1524호)가 있어 한글비석로로 지정되었다.
[image]
길 이름의 유래가 된 이 비석은 조선 중종 때 이문건(1494~1567)[7] 이 자기 아버지인 이윤탁의 묘를 오늘날 위치로 옮기면서 세운 비석이다. 오늘날 남은 한글이 새겨진 비석 중 가장 오래된 비석이며, 조선시대 묘비에 한글이 새겨진 유일한 비석이라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여기에 새겨진 한글을 현대 한글로 풀이하면 "'''신령한 비다. 건드리는[8] 사람은 재화를 입을 것이다. 이를 글(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노라'''"라고 쓰여 있다. 이 한글은 비석 왼편에 쓰여진 글이다.'''靈碑'''
'''"녕ᄒᆞᆫ 비라 거운 사ᄅᆞᄆᆞᆫ ᄌᆡ화ᄅᆞᆯ 니브리라 이ᄂᆞᆫ 글모ᄅᆞᄂᆞᆫ 사ᄅᆞᆷᄃᆞ려 알위노라”'''
한편 비석 오른편에는 한자로 '불인갈(不忍碣: 건드릴 수 없는 묘비)'이라고 쓰여 있는데 밑에는 한자로 된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참고로 이 비석은 하계동 산12번지, 이 한글비석과 똑같은 복제품[9] 은 하계동 한글비근린공원에 있다. 사실 이 비석 진품은 도로 개발 과정에서 본래 위치에서 약간 옮겨진 건데 도로를 개발할 당시 저 비문의 내용 때문에 도로 공사 일을 맡았던 공무원들이나 건설회사 직원들도 뭔가 꺼림직한 게 있었는지 비석을 옮기는 것을 주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문건의 본관인 성주 이씨 문중에서 예를 갖춰 제사를 지낸 후에 비석을 옮기고 도로를 개발했다는 후문이 있다.[10]爲父母立此 誰無父母 何忍毁之 石不忍犯 則墓不忍凌 明矣 萬世之下可知 免夫
부모를 위하여 이를 세우니, 누군들 부모가 없겠으며 어찌 차마 이를 훼손하겠는가. 차마 비석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묘도 차마 능멸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만세의 후인들은 이를 알아야 함이니 힘쓸지어다.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서라벌고등학교 방향으로 넓은 도로가 한글비석로 이며, 학원이 시작하거나 끝마칠 때 쯤에는, 셔틀버스 및 승용차들로 도로가 꽤 혼잡하다.
또한 차선이 참으로 아스트랄한데, 월계1교 ~ 대진고교 구간은 6~7차선, 대진고교 ~ 삿갓봉근린공원 구간은 6차선, 삿갓봉근린공원 ~ 상계역 구간은 4차선인데... 남은 상계역 ~ 상계8동 구간이 '''2~3차선'''규모이다.[11]
2. 구간
월계로 직결 ~ 하계역교차로(동일로(3번 국도)) ~ 대진고등학교(노원로) ~ 서라벌고등학교 ~ 양지근린공원 ~ 은행사거리(중계로) ~ 삿갓봉근린공원 ~ 상계역교차로(상계로) ~ 온곡초교입구[12] ~ 마들역교차로(동일로(3번 국도)) ~ 동부간선도로 의정부 방향
3. 대중교통
3.1. 전철
서울 경전철 동북선이 월계로 직결되는 곳 부터 상계역까지 지나갈 예정이다. [13]
서울 지하철 7호선 하계역, 마들역이 동일로와 만나는 지점에 있으며, 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역도 위치해 있다.
3.2. 버스
하계역 동쪽의 이 도로 인근에 한성여객 차고가 위치해 있다. 서울 버스 1017을 제외한 모든 한성여객 소속노선의 종점이다.
하계역과 은행사거리를 잇는 버스는 서울 버스 1141, 서울 버스 1224가 있지만 1141번이 한글비석로만 경유한다면, 1224는 노원로를 경유하여 노원경찰서를 지나간다.
은행사거리와 상계역을 잇는 버스는 서울 버스 1142가 있다. 엄청난 수의 승객을 자랑하는 버스.
상계역과 마들역 사이에는 보람사거리 주변으로 많은 버스 정류소들이 위치해 있으며, 서울 버스 1137, 서울 버스 1143 및 서울 버스 노원02, 서울 버스 노원11 등이 경유한다. 그리고 마들역 서쪽으로는 서울 버스 노원08이 이 도로를 경유하여 회차한다.
특징으로, '''서울 버스 1137''','''서울 버스 1224''','''서울 버스 1142'''등 노원에서 사람 많이 태우는 버스들은 많이 경유하는 도로다.
[1] 월계1교~대진고등학교[2] 대진고등학교~삿갓봉 근린공원[3] 삿갓봉 근린공원~상계역[4] 상계역~동부간선도로 의정부 방향 직결 종점[5] 보람사거리로 주변 사람들은 더 잘 알고 있다.[6] 2010년 도로명 개정 전 월계1교 - 하계역4거리 구간은 월계로였다.[7] 이른바 '조선시대 선비의 육아일기'라고 매체에서 다뤄진 바 있는 양아록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문건이 손자 이수봉을 16년간 양육하면서 기록한 기록물. 그 외에도 묵재일기, 설공찬전 한글 필사본 등을 남겼다.[8] 원문이 '거운' 인데, '거우다'는 "집적거려 성나게 하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월인천강지곡이나 염상섭의 소설 <택일하던 날>, 나도향의 소설 <행랑자식>에도 나오는 표현이다.[9] 진짜 이윤탁 한글비석은 산속 안에 있어서 접근성이 불편한데 비해, 1997년에 제작한 이윤탁 한글비석 복제품은 하계동 한글비근린공원 안에 있다. 하계동 한글비근린공원은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이 무척이나 편하다.[10] 사실 이때 정작 성주 이씨 문중에서 이 묘의 이장을 고려했지만 문화재청에서 사료적 가치가 큰 문화재는 본래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들고 나오며 반대했다고 한다.[11] 과거에는 4차선이었으나 자전거도로를 도로 양옆으로 만들면서 차선을 칼질당했다.[12] 보람사거리로 주변 사람들은 더 잘 알고 있다.[13] 하계역,가칭 골마을역, 은행사거리역, 상계역까지 4역이 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