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왕(주)
1. 개요
주나라의 제35대 왕. 열왕의 아우. 신정왕의 아버지이자 난왕의 할아버지. 이때 진(秦)나라는 상앙을 등용해 법가 체계를 구축하여 부국 강병을 이룩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전국칠웅을 압도할 정도로 강해진다. 그 유명한 제나라의 손빈, 위(魏)나라의 방연의 싸움도 이 왕 때의 일이다.
참고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동방 원정은 현왕의 재위 기간과 일치한다.
2. 재위 기간
2.1. 상앙의 개혁과 최후
현왕 10년(기원전 358년), 진 효공은 상앙을 등용해 개혁을 실시하고 법가 사상으로 혹독하게 다스렸다. 그러자 진(秦)나라는 몰라보게 강성해져 상앙은 위나라의 곡옥 등 여러 땅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진 혜문왕이 즉위했는데, 그가 죄를 짓자 스승을 대신 벌한 일에 앙심을 품고 상앙을 실각시킨 뒤 상앙에게 반역을 유도해 죽음으로 몰고간다. 그러나 혜문왕도 그 유용함을 잘 아는지라 그가 남긴 제도는 그대로 썼다.[1]
2.2. 명분보다는 실력
같은 해에 제 위왕은 위나라가 이미 왕을 칭했으므로 제나라 후작일 당시에 왕을 칭했고, 이에 질세라 한(韓)나라, 조나라, 연나라, 진(秦)나라도 왕을 칭했다.[2] 이는 주 왕실을 무시한 행위였다.[3][4]
2.3. 손빈과 방연의 대결
현왕 12년(기원전 356년), 위왕은 현명한 선비 추기(鄒忌)와 전기(田忌)를 등용하여 부국 강병을 위한 개혁이 일어나 제나라 또한 날로 강성해졌다. 이 당시 위나라에 있었던 손빈이 방연의 견제로 니트족으로 있다가 제나라의 구출을 받아 제나라로 되돌아왔다.
현왕 16년(기원전 353년), 위(魏)나라의 양 혜왕은 방연을 보내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을 치니 조나라에서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제 위왕은 대장으로 전기, 군사로는 손빈을 보내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이때 손빈은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5] 이 비었음을 간파하고 전기에게 대량을 칠 것을 권하니 전기는 그 말에 따랐다. 그리하여 위군은 대량을 지키기 위해 허둥지둥 돌아오는데, 제나라가 계릉 땅에서 매복해 위군을 말 그대로 개발살을냈다. 그리하여 조나라의 포위가 풀렸다. 이 전투를 계릉 전투라고 하며,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다는 고사이다.
현왕 18년(기원전 351년), 한나라는 최약체였으나 한 소후가 신불해(申不害)를 등용하여 한나라가 강성해져갔다.
현왕 28년(기원전 341년), 방연이 한나라를 치니 한나라에서 구원을 요청했고 제나라 측에서는 전기를 대장으로 전영(田嬰)[6] 을 부장으로 삼고, 손빈을 다시 군사로 삼아 한나라를 구원했다. 그리고 한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에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 쓴 방법처럼 역시 위나라의 수도 대량을 치니 혜왕은 태자의 군대를 되돌아 오게했다. 그러나 방연은 손빈의 계략에 넘어가[7] 마릉에서 제나라 군사들이 어지러이 날리는 화살과 쇠뇌살에 맞아 죽어가면서 말했다.
"내가 그 변변치 않은 놈의 이름을 떨치게 해주었구나."
이 전투를 마릉 전투라고 했다. 그 뒤 손빈은 사표를 내고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고 한다. 열국지에 의하면 귀곡자를 따라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일리 없다.[8]
이것을 그만큼 전국시대에 국가들이 얼마나 부국강병을 추구했으며,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뤘는지 알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2.4. 붕어
현왕 48년(기원전 321년), 현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인 희정이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신정왕이다.
[1] 상앙은 자신이 고안한 거열형에 처해져서 죽었는데, 이 고사를 작법자폐라 한다. 자승자박의 좋은 실례기도하다.[2] 여담이지만 고조선 왕은 대외적으로 조선후(朝鮮侯)를 칭했는데, 이 때의 일을 계기로 조선왕(朝鮮王)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다.[3] 물론 이것은 당연한 감상이나 당시 실력이 곧 명분이 되는 시대였으니 당연하다 하겠다. 물론 일단 주나라를 형식상 천자라고 대우해 주기는 했다.[4] 물론 한나라 등은 나중에 왕을 칭한다.[5] 원래 수도가 안읍이었다가 진(秦)나라의 파상 공세로 인해 이 대량으로 옮긴 까닭에 위 혜왕이 양 혜왕이라 불린다. 애초에 위에 언급된 왕이 위 혜왕이 아닌 양 혜왕이라 불리는 것도 그 까닭.[6] 바로 그 유명한 전국사군자인 맹상군의 아버지다.[7] 방연은 제나라가 겁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방연과 친구였던 손빈이 그것을 알고 일부러 아궁이를 적게 파서 병사들이 탈영하는 것처럼 속여서 유인했다고 한다.[8] 열국지가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삼국지 연의보다 허구가 적은 편이지만,(사기와 비교했을 때.) 이런 비현실적인 일과 조양자가 사실보다 빨리 죽은 일 그리고 상앙이 있을 때 위나라 왕이 양 혜왕이 아닌 위 양왕의 일이라고 언급하는 등의 일은 허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