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

 





'''손자(孫子)
손빈
孫臏
'''

''''''
(媯)
''''''
(孫)
''''''
(臏)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382년 ~ 기원전 316년[1]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3.1. 삼국지 시리즈
3.2. 기타


1. 개요


전국시대 제나라의 인물. 일설에 귀곡자(鬼谷子)라는 기인 아래서 수학했다고 전한다.
제나라 사람으로, 그 유명한 오나라손자(孫子)로 칭해지는 손무의 후손[2]으로 그의 사후 100여 년이 지나 등장하였으며 맹자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스승이 소장하고 있던 《손자병법》을 본 뒤 시대에 맞게 새 병법을 기술할 것을 결의한다는 설도 있고, 손무와는 전혀 별개의 약 100여 년 뒤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에서는 손빈이 손무의 손자라는 관점하에서 두 사람이 등장한다. 아무튼 진실은 저 너머에(...).

2. 생애


귀곡선생의 네 제자 중 하나였던 손빈은, 동문수학했고 먼저 위나라에 벼슬하고 있던 방연의 부름에 위나라로 갔으나, 방연의 시기심과 지인들의 참소로 인해 제의 첩자라고 누명이 씌워져 죽음의 위기로 내몰렸다. 이후 손빈은 앉은뱅이형을 받아 무릎의 슬개골이 뜯겨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방연은 손빈에게 "내 빽 때문에 죽을 거 앉은뱅이 되는 걸로 끝난 줄 알아"라고 했고 손빈은 그저 고마워했다. 방연이 이런 짓을 한 이유는 출신 컴플렉스가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기도 하고, 귀곡선생이 방연의 인품을 못미더워 해서 손자병법을 성실하고 심성이 착한 손빈에게만 전수해 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손빈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 뒤로 손빈의 이름이 그냥 빈이 아니라 원래 이름에 육달월을 붙인 '앉은뱅이 빈'을 사용하게 되었다.[3]
방연은 자신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손빈을 기르다시피 했는데 이 와중에 손자병법서를 필사하게 했다. 이 상황에서 제나라에서 손빈을 스카웃 해가기 위해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방연의 계략의 전말을 알게된 손빈은 돼지우리로 기어들어가 돼지을 먹는 모습까지 보이며 미친 척해서 감시를 느슨하게 만든 뒤[4] 방심한 틈을 타 제나라 사신의 마차에 몰래 타고 도주해 버렸다.
그리고 제나라 장군 전기의 빈객이 되어 복수를 꾀한다. 전기가 제나라 왕과 전차 세대를 가지고 전차경주 내기를 할 때 필승법을 조언하여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가장 느린 전차를 상대의 가장 빠른 전차와, 가장 빠른 전차를 상대의 두 번째로 빠른 전차와, 두 번째로 빠른 전차를 상대의 가장 느린 전차와 대결시켜 2:1로 승리를 얻는 삼사법 전략. 현대에도 e스포츠계에서도 이걸 아주 잘 써먹고 있다. 그 후 전기는 손빈의 비범함을 알고 그를 제위왕에게 추천했다. 위왕은 손빈과 병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군사(軍師)로 삼았다.
조나라위나라의 침략을 받을 때 원군으로 출장,[5] 조나라를 직접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위나라 수도 안읍을 냅다 밟는 전략으로 조나라를 구해냈고, 여기서 유래한 성어가 위위구조(圍魏救趙) 이다.
그 후 위나라는 조나라와 연합하여 이번에는 한나라를 침공하였고 손빈은 이번에도 전기와 함께 출전해 다시 한번 빈집털이 신공을 시전한다. 이에 한나라를 침공하던 방연이 회군했다. 그 무렵 제나라 군은 국경을 넘어 위나라 땅에 들어왔는데 이때 손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삼진(三晉)의 군사는 원래 용맹스러울 뿐만 아니라 제나라 군사를 우습게 여겨 겁쟁이라고 부릅니다. 전술에 능한 장군이라면 이런 형세를 이용하여 스스로 유리하게 이끌어가야 합니다. 병법에는 '승리에 눈이 멀어 백 리를 가는 군사는 장수를 잃고, 오십리를 가는 군사는 절반밖에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군사가 위나라 땅에 들어가면 첫날에는 10만 명의 밥을 지을 수 있는 아궁이를 만들게 하시고 이틑날에는 5만 명 분의 아궁이를 사흘째에는 3만 명분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십시오.

손빈은 거짓 퇴각을 하며 숙영지 밥가마의 수를 점점 줄이는 전략을 구사해 방연이 '우리가 무서워서 탈영하는 놈들이 늘고 있구나' 하고 오판하여 해이하게 만들었다.
위나라 방연은 사흘 동안 제나라 군사를 쫓고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나라 군사가 겁쟁이인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불과 사흘 만에 병사의 과반수가 없어질 줄을 몰랐구나."

이에 방연은 보병은 버리고 정예 기병만을 이끌고 이틀 걸릴 거리를 하루만에 달려 제나라 군사를 바짝 뒤쫓았다. 손빈은 방연의 일행이 저녁 무렵이면 마릉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 따라서 마릉[6][7]의 어두운 계곡에 있는 고목의 껍질을 벗겨 그 위에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龐涓死於此樹之下)'''라고 적어놓은 뒤 1만의 궁수를 매복시킨 후 "밤에 불빛이 보이거든 일제히 쏘라"란 명령을 내렸다. 과연 한밤중에 마릉에 도착한 방연은 나무에 써 있는 글귀를 읽기 위해 불을 비췄고, 그 신호를 기점으로 수만 개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와 위군은 그 자리에서 궤멸해 버렸다.
이때 손빈의 글을 읽고 남긴 방연의 마지막 말이 걸작.

'''그 앉은뱅이 녀석이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구나!!!'''

혹은

'''드디어 그 꼬맹이에게 당했구나!!'''

그렇게 무수히 화살을 맞고 끔살당한 방연에 대한 손빈의 반응도 두 가지 설이 있다.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에서는 방연의 죽음을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설이 반영되어 있고, 열국지에서는 친히 칼을 꺼내어 죽은 방연과 그의 아들의 목을 잘라 버린다는 설이 나온다. 다만 방연의 조카는 살려준다. 하지만 손빈병법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손빈병법에선 방연을 사로잡았다고 적혀있다. 발견된 내용이 적고 훼손이 심해 해독이 힘든 편이라 상세한 전후사정은 알 수 없지만 기존에 알려졌던 방연의 최후와는 상반된 내용. 발견된 손빈병법이 진본이라고 본다면 손빈이 직접 서술한 것이니 아마도 사로잡았다는 쪽이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마릉 전투 이후 딱히 전선에 나서지 않고 물러나 병법을 집필하니 그것이 《손빈병법》. 당나라 시대 이후에는 실존 여부도 분명하지 않아 의심을 하였지만, 70년대 은작산의 한나라 고분에서 손빈이 집필한 죽간이 발굴되어 손무가 쓴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다만 세간에서 흔히 읽히는 건 여전히 손무의 《손자병법》.

3. 대중매체에서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북벌 당시 제갈량이 손빈의 작전을 거꾸로 이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구안이란 자의 배신을 이용한 사마의의 모략으로 제갈량이 후퇴할 때, 아궁이 등 병사들이 식사를 한 흔적을 일부러 점차 늘려가며 후퇴했다. 추격하다가 이를 본 사마의는 '이상하구나. 어째서 촉군의 병력이 점점 늘어나는 거지? 제갈량이 뭔가 모략을 꾸미는 듯 하니 더 이상의 추격은 위험하다'라고 생각하고 후퇴한다는 이야기.
또한 정사 중 후대의 문집인 태평어람의 원희지(袁希之)의 한표전(漢表傳)에선, 장합이 공격해 오자 제갈량이 군사를 매복시키고는 큰 나무의껍질을 깎아내고 "장합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라고 쓴 뒤 장합이 이를 읽자 공격해서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손빈이 방연을 죽일 때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데 제갈량이 일부러 흉내를 낸 것인지, 아니면 후대 기록의 각색인지는 불확실하다.

3.1. 삼국지 시리즈


[image]
삼국지 12, 13, 14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등장. 빈형(臏刑)을 당한 것을 반영했는지, 무력이 '''1'''이다. 거의 황호, 잠혼급이다. 그래도 나머지 능력치는 통솔력이 70대 초반~80대 초반에 지력은 90대 후반에 정치력은 70대, 매력은 60대 중반 ~ 70대 중반를 찍는 편이다. 일러스트가 신삼국의 제갈량(육의 역)과 무척 닮았다.
무력이 1이라서 당연히 일기토는 못하지만, 무력이 낮은 무장은 포박당할 확률이 높다. 즉 손빈은 전투에서 패한 경우에는 무조건 잡힌다는 안습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도 지력 90대 후반이라 계략에 능하기 때문에 전투에서 지지 않게 노력하면 된다.
삼국지 인터넷에서는 무력이 30으로 배정되었다. 나머지 능력치는 통솔력 99/지력 100/정치력 85/매력 85. 그래봐야 전투력이 64밖에 안되므로 전투용으로 사용하긴 무리다.
여담으로 삼국지 12는 전신 일러스트가 표현됨에 따라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변경되었다. 이것 역시 앉은뱅이이기 때문. 낚시를 하고 있는 여상을 제외한다면 22명의 고대무장 중 유일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여상은 낚시를 하다가 등용된 일화에 맞추어 일러스트에서도 앉아 있는 것이지만, 손빈은 굳이 특정한 일화가 아니더라도 항상 앉아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평상시 일러스트 중에서 앉아 있는 것을 따지면 단독적이다.
삼국지 9 PS2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2/지력 96/정치력 81. 연노, 투함, 정란, 투석, 교사, 혼란, 덫, 매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손빈의 무력으로 연노의 대미지를 감상하느니 차라리 혼란, 덫을 쓰는 게 훨씬 이득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1/지력 98/정치력 82/매력 71. 특기는 18개. 천문, 군사, 명사 같은 개사기 특기들을 보유하지만, 그중에서 무력이 1임에도 보수를 가지고 있는 게 개그. 무력이 그 모양이지만 명사 특기에 항변, 논파가 있어서 도적 따위에게 돈을 바칠 정도는 아니다. 오기, 인상여도 명사가 없는 것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대우가 좋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1/지력 98/정치력 79/매력 69에 병과적성은 노병, 병기가 S에 특기는 허실. 부대 공격력이 약하지만, 어차피 특기가 허실이라 백출 특기를 가진 무장하고 조합하면 된다. 맘만 먹으면 조조, 사마의, 주유 등의 S급 책사 겸 능력자도 교란이나 위보로 엿 먹일 수 있다.
삼국지 12에서는 통솔력이 83으로 상승한다. 병종은 궁병, 전법은 연환계. 특기는 연병, 병심, 수집, 인맥, 변설, 수련, 병기, 냉정, 군사, 귀모. 그러나 연환계가 잉여이고, 무력도 약하더러 군사과 귀모가 있으니 참군으로 딱이다. 전국칠웅 시나리오에서 제나라 소속에 저서 손빈병법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3/무력 1/지력 98/정치력 79. 다행스럽게도 문관이라 일기토가 없다. 중신특성은 신산귀모에 전수특기도 귀모다. 특기는 상업 6, 농업 3, 훈련 8, 설파 9, 언변 7, 신속 7, 공성 7, 견수 7, 귀모 8, 병종은 창병 B/기병 B/궁병 S로 궁 특화다. 전법은 귀모계이다.
삼국지 14에서 능력치는 통 68/무 1/지 99/정 78/매 68 으로 통솔이 많이 내려갔다. 다행히 특기는 황금개성 신안, 허실 2개를 갖고 있고 전법도 허유엄살을 갖고 있어서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다.
손빈의 조상이 손무고, 진수가 손견은 '아마 손무의 후손일 것이다'라는 추측성 언급을 해서 오에 가까운 성향으로 나온다.

3.2. 기타


권교정의 단편 《붕우》에서 색다른 해석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의 흑막은 방연의 아내로, 사람 좋은 방연이 손빈을 추천하려 하자 남편을 위해 손빈을 부숴버린 것. 손빈은 자신을 이렇게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 게 믿었던 방연이라고 여겨 증오해 그를 죽이게 한다. 방연의 아내는 남편이 전사한 뒤에 모든 사정을 쓴 편지를 손빈에게 보내 모든 것은 내 탓이니 남편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지만, 편지를 전달하러 가던 하인이 도적에게 죽는 바람에 끝내 손빈은 그 진실을 영원히 모르게 되었다.
호시노 코우지가 손빈을 주인공으로 한 '빈~손자이전'이라는 만화가 존재한다. 내용은 한마디로 손빈신격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창천항로가 조조신격화로 욕을 먹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서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한 부분도 여럿 있는 반면, 손자외전은 고증이나 현실성 따윈 집어던져버리고 작가가 맘대로 상상해서 그리는 판타지일 뿐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카오게이가 작품전반에 걸쳐 짜증날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나온다는 것. 분명히 동일인물인데도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오버하면서 표정을 수도 없이 바꾼다. 과유불급이라는 단어는 아마 이 만화에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총 21권 완결. 한국에서는 서울문화사에 의해서 번역 정발되었으나 8권에서 끊겼다.
김희선이 출연한 2011년작 중국영화 '전국: 천하영웅의 시대' 의 주인공이지만 영화는 망작(...)
[1] 생몰년이 중국 위키백과에 실린 내용인데 출처가 불분명하다.[2] 아들의 아들인 손자 또는 증손자라는 설이 있지만 계보는 정확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손자의 손자, 둘은 동음이의어이지만 한자로 같다. 일설에는 후에 저술된 손빈 병법이 전해지지 않아, 혹시 손무의 존재는 허구이며 손빈이 바로 손자병법을 쓴 손자가 아닐까? 라는 설도 존재한다. 그러나 1972년에 손빈병법이 발견되면서 손무, 손빈 두 사람 다 인정되는 분위기다.[3] 손빈의 원래 이름은 모르고, 이 앉은뱅이형을 받은 이후에 손빈 스스로가 붙인 이름만 전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설에는 賓이 본명인데 하산하기 직전 스승이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을 받아 앉은뱅이가 될 거라고 臏으로 이름을 바꿔 주었다고도 한다.[4] 이것은 예전에 오왕 부차에게 개발리고 데꿀멍하며 억류되어 있던 월왕 구천도 선보였던 건데 앓아 누었던 부차의 똥을 먹고 그의 병이 나을 거라며 거짓 충성을 보였는데 결국 정말 병이 낫자 감동한 부차는 구천을 풀어주었고 구천은 결국 나중에 복수를 통해 부차를 쳐부수고 승리한다. 이것은 부차의 충신이자 구천을 경계하던 오자서마저도 자신도 이짓은 못 할 거라며 경악하게 만든 희대의 쇼였다.[5] 당초 제왕은 손빈을 장군으로 삼으려 했으나 손빈은 극형으로 불구가 된 몸이라 합당하지 않다고 거절해 전기를 장군, 손빈은 군사로 삼았다.[6] 귀곡자가 두 제자를 떠나보낼 때 한송이 꽃을 가져오라 한 뒤 점괘와 함께 한가지의 글을 남겼다고 한다. 방연의 경우는 마두령이라는, 한 번에 12송이의 꽃을 피우는 풀꽃 한 포기를 발견했는데, 캐낸 이후 자신의 꿈과는 맞지않는 볼품없는 꽃이라 하여 버렸으나, 다른 꽃을 찾지 못해 다시 주워왔다고 한다. 당연히 꽃은 시들었고, 따라서 위나라(시들 萎자와 동일한 발음)에서 12년간의 부를 얻으리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양을 만나 흥하고 말을 만나 죽으리라'''는 말을 했는데, 방연이 출세를 위해 위의 왕실을 찾아갔을 때 왕이 양고기를 먹고 있었다고...그리고 마릉은 한자로 馬陵이라고 쓴다.[7] 참고로, 손빈은 국화를 가져왔는데 한 겨울에도 꽃을 떨구지 않는다는 것, 즉 시련을 이기고 살아남는다는 점괘를 얻었으며, 귀곡자가 남긴 말은 '''위기의 순간 미친 척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