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힐랄 FC
1. 소개
아랍어: نادي الهلال السعودي
한국어: 알 힐랄 사우디 풋볼 클럽
영어: Al-Hilal Saudi Football Club
1957년에 창단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클럽이다. 수도인 리야드를 연고로 하며 홈 구장은 킹 사우드 대학 경기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축구 팬이 가장 많고, 또 우승 타이틀이 가장 많은 구단으로 유명하다. 또한, 2019/20시즌에는 2019 AFC 챔피언스 리그와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사우디 킹스컵을 모두 우승하며, ''''아시아 대륙 최초의 트레블'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하였다.'''
1957년 창단 이후 56차례 공식 대회 우승을 기록하였으며(그 중 41회가 자국 대회 우승), 게다가 아시아 무대에서도 역사적으로 알 이티하드를 능가하는 깡패였던지라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재단(IFFHS) 선정 20세기, 21세기 아시아 최고의 축구 클럽'''으로 등극하는 등 역사가 매우 깊은 명문 축구팀이다.
홈 경기장이었던 킹 파드 스타디움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큰 경기장으로 국제 경기 중계로 종종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3] 관중석은 약 82,000석으로 알 이티하드의 젯다 스타디움(27,000석)의 3배가 넘는다. 리그 성적이 화려하고 구단주인 왕족이 꽤 부자라서(왕족도 서열 및 여러 가지로 재산이 차이가 엄청나다. 이천수가 속해 있던 알 나스르는 재정 문제로 한동안 곤란을 겪었던 적이 있다) 재정적으로 꽤 튼튼하기로 알아준다.
'푸른 물결'이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듯 전통적인 클럽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다. 보조색은 흰색. 어웨이 유니폼도 이 두 색을 벗어나지 않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이 들어간 디자인이다.
2. 역사
1975년에 리야드에서 창단, 1976-1977 시즌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 리그 초대 멤버로 참여하여 원년 우승을 차지한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리그 4회 우승, 킹스 컵 2회 우승 등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플레이 오프제가 도입되고, 90년대 들어 리그 1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 나스르, 알 샤바브에게 패하면서 2인자로 밀려나게 된다.
1995-1996 시즌 리그 4위를 기록해 플레이 오프에서 알 이티하드를 상대로 1:0 승, 1:1 무, 도합 1승 1무를 기록하고 결승 진출, 결승전에서 알 아흘리를 2:1로 꺾고 5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급성장한 알 이티하드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현재까지 알 이티하드와 험난한 우승 경쟁을 펼치게 된다.
1996-1997 시즌에는 알 이티하드에게 우승 컵을 내줬고 1997-1998 시즌에는 다시 정상을 탈환하게 되나 이어지는 1998-1999, 1999-2000, 2000-2001 3시즌 연속 알 이티하드에게 우승 컵을 내주게 된다.
2001-2002 시즌 3년 만에 알 이티하드로 부터 우승컵을 되찾아 왔으나 다음 시즌에는 5위로 추락하고 만다. 2003-2004 시즌에는 플레이 오프에서 알 아흘리에게 5:1패배를 당해 3위로 대회를 마쳤다.
2004-2005 시즌에는 리그 2위를 기록해 플레이 오프에서 라이벌 알 이티하드를 1:0으로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알 샤바브을 1:0으로 꺾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 리그 최초 10회 우승 금자탑을 쌓게 된다.
2005-2006 시즌 플레이 오프에서 알 이티하드를 2:1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알 샤바브에게 3:0으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2006-2007 시즌에도 리그 1위를 차지했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알 이티하드에게 역전패를 당하게 된다.
플레이 오프가 폐지된 2007-2008 시즌에는 라이벌 알 이티하드와 같은 승점을 기록했지만 상대 전적에서 앞서 알 이티하드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2008-2009 시즌엔 알 이티하드에게 승점 5점차로 우승을 내주게 되지만 2009-2010, 2010-2011 시즌 2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2010-11 시즌에는 무패로 리그 우승과 같이 리그 컵인 크라운 프린스 컵 4연패를 달성하며 더블에 성공했다.
2011-2012 시즌엔 리그 3위에 그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크라운 프린스 컵을 우승하면서 5연패에 성공, 2012-13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얻었다.
2.1. 2012-2013 시즌
해당 문서 참고.
2012-2013 시즌에는 알 파스에게 승점 4점 뒤진 2위를 달리고 있고 성적 부진(?)으로 앙투앙 콤부아레 감독을 경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점차는 더더욱 벌어져 8점차까지 벌어지게 되고 결국 알 파스에게 우승을 내주고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반면 라이벌 알 이티하드는 임금 체불 문제로 콩가루 집안이 돼 리그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위안이라면 크라운 프린스 컵 6연패를 달성했다는 것.
2.2. 2013-2014 시즌
해당 문서 참고.
2.3. 2014-2015 시즌
해당 문서 참고.
2.4. 2015-2016 시즌
해당 문서 참고.
2.5. 알 힐랄/ 2016-2017 시즌
리그 5경기를 앞두고 1위를 달리며 2위팀들이랑 승점 8점 차를 벌리며 6시즌만에 리그 우승을 앞두고 있으며 국왕컵도 8강에 진출했다.
2.6. AFC 챔피언스 리그
AFC 챔피언스 리그는 서아시아, 동아시아로 나누어서 치러진다.
여기서 동아시아는 2009년부터 전력차가 확연히 드러나 대개 한국, 일본이 조 1, 2위를 나누어 가지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4] 서아시아 예선은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서아시아는 사우디, 이란, 아랍 에미리트, 카타르, 우즈베키스탄이 속해 예선을 치르는데, 평소 아랍 에미리트,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팀들은 사우디, 이란 팀들의 승점 셔틀이 되지만 중요할 때 이기거나 비겨 사우디, 이란 팀을 껄끄럽게 만든다.[5] 하지만 2010년도 이전까지 알 힐랄은 아시아 대회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성적을 내던 팀이었다.
1985-1986 시즌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86-1987에 참가해 아시아 무대 데뷔전을 가졌다. 무난하게 결승 라운드까지 올라가 랴오닝 FC, 제프 유나이티드, 이라크 알 탈라바와 결승 라운드전을 가져 2승 1패 조 2위로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3승을 거둔 제프 유나이티드는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87-1988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1차전을 기권하면서 요미우리 FC(현 도쿄베르디)에게 우승을 넘겨 준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89-1990에서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1991-1992 시즌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참가해 1 라운드 쿠웨이트 알자흐라 3:1 승, 2 라운드 부전승, 조별 리그에서 에스테그랄, 4.25 체육단, 요미우리 FC와 한 조가 되었으나 요미우리의 기권으로 3팀이 경기를 치르게 되고 2승으로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에서 아랍 에미리트 알 샤바브을 1:0으로 이기고 결승에서는 에스테그랄을 다시 만나 1:1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4:3으로 꺾고 창단 첫 아시아 대회 우승을 하게 된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7-1998에서는 서아시아 8강전에서 2승 1패를 기록해 2승 1무를 거둔 페르세폴리스에 이어 조 2위로 4강에 진출한다. 4강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1:0으로 패해 3/4위전으로 내려갔고 다시 만난 페르세폴리스를 상대로 4:1 복수를 하며 3위를 차지하게 된다.
1999-2000 시즌 대회에서는 2 라운드 부터 시작해 알 사드를 3:1로 꺾고 8강에 진출했으며 8강에서 2승 1무 조 1위로 4강에 올라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올라갔다. 결승 상대는 주빌로 이와타로 확정되었다.
알 힐랄 홈에서 펼쳐진 결승전에서는 세르지오 히카르도에서 전반 3분만에 골로 앞서갔지만 18분, 19분 연속해서 2골을 내줘 2:1로 뒤쳐지게 되고 후반 들어서 별다른 일이 없어 패배하나 싶었지만 경기 막판 후반 44분 세르지오 히카르도가 또 다시 골을 넣어 경기는 연장전 승부에 돌입. 연장 12분 또 히카르도의 골로 3:2 역전당한 주빌로 이와타는 필사에 공격을 퍼부었지만 알 힐랄 수비에 막혀 경기는 이대로 끝나게 돼 알 힐랄이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통산 2회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2000-2001 시즌 대회에는 우승팀 자격으로 자동 참가되었으나 8강에서 1무 2패로 탈락하게 된다.
2001-2002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2002-2003 AFC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했으나 1승 2패 조 4위로 탈락하게 된다.
2004년 대회에서는 C 조 2위로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라이벌 알 이티하드는 이때부터 동아시아 팀만 만나면 대승을 거두는 "동아시아 킬러"로 부상하게 된다.
2006년 B 조에 속해 3승 1무 2패로 아랍 에미리트 알 아인에게 조 1위 티켓을 넘겨 주고 탈락한다.
2007년 B 조에 속해 알 쿠웨이트 카이판, 파흐타코르, 에스테그랄[6] 과 속해 2승 2무를 기록,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으나 알 와흐다에게 0:0, 1:1, 2무 원정 다득점 열세로 탈락하고 만다.
2009년 서아시아 A 조에 편성돼 4승 2무로 조 1위로 16강에 올랐으나 카타르 움살랄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고 만다.
2010년 대회부터 알 힐랄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알 이티하드는 8강에 올라가면 동아시아 킬러로 변신하는 반면 알 힐랄은 서아시아 예선에서 같은 사우디, 이란, 우즈베키스탄의 강팀들을 잡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2010년도 AFC 챔피언스 리그 D 조에 속해 이란 메스 케르만, 알 사드, 아랍 에미리트 알 아흘리와 속해 3승 2무 1패를 기록,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16강전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시전해 주었는데, 16강전에서 알 이티하드를 탈락시킨 분요드코르를 3:0으로 잡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카타르 리그 우승팀 알 가라파 상대로 1차전 3:0 승리, 2차전 연장전 끝에 2:4 패배, 총 5:4로 4강에 진출하게 되어 조브 아한과 맞붙게 되었다.
4강에서는 조브 아한의 침대축구에 고전한 끝에 1차전 1:0 패배, 2차전 이영표가 퇴장당하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1:0 패배, 합계 2:0 패배를 당해 4강에서 대회를 마무리지었다.
2011년 대회에서는 세파한, 알 가라파, 알 자지라와 속해 4승 1무 1패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지만 라이벌 알 이티하드에게 3:1 패배를 당해 광탈하고 만다.
2012년 대회에서는 페르세폴리스, 알 가라파, 알 샤바브과 속해 3승 3무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16강전에서 베야니스를 7:1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이 베니야스의 감독이 전 알 힐랄 감독 가브리엘 칼데론이었기에 그에겐 잊을 수 없는 일로 남았을 듯.
그리고 조 추첨으로 대진이 정해진 8강전에선 바로 울산 현대와 격돌하게 되었다.
8강 울산 문수 축구경기장 원정 경기에서 전반 10분 하피냐에게 선제골을 얻어맞고 1:0으로 끌려가게 된 알 힐랄은 실점 이후로 적극 공세를 펼쳐 울산 골문을 노렸지만 번번이 빗나가거나 추가 실점 위기까지 맞게 된다. 후반 들어 알 힐랄은 더 거칠게 울산을 몰아붙였지만 울산 수비수들에게 번번이 막히거나 패스 미스, 그리고 김영광의 선방에 의해 점수를 내지 못하고 이래 저래 원정 온 알 힐랄 팬들의 속은 타들어갔고 후반 추가 시간에 득점 찬스가 있었지만 아쉽게 골문을 빗나가면서 1: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날 유병수는 후반 교체 출전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선발 출전해 2차례 날카로운 헤더를 날렸으나 하나는 김영광이 선방, 나머지 하나는 아쉽게 빗나갔고 이후 울산 수비수 이용에게 철저히 봉쇄당해 후반 교체되었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2차전, 안방에서 울산을 상대로 전반 20분 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보였고 누구든지 한 골만 넣으면 경기 양상이 확 바뀌는 팽팽한 상황에서 전반 23분 하피냐에게 선제골을 내줌으로 말미암아 경기 흐름이 울산 현대로 한 번에 넘어가게 되었고 실점 이후 3골이 필요한 알 힐랄 선수들은 더욱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이걸 읽은 울산은 다시 한번 날카로운 역습으로 3분 만에 추가골을 뽑아내 2:0으로 달아나게 되었다. 4골이 필요해진 알 힐랄은 더 조급해져 울산을 밀어붙였지만 1차전과 같은 날카로움은 없었고 설령 골대 근처까지 볼을 몰고 가도 곽태휘, 강민수에게 커트당하면서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 힐랄의 조직력은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한다.
후반전은 오히려 울산이 알 힐랄을 밀어붙였다. 후반 9분 김신욱이 추가골을 뽑아 내면서 점수차를 3:0으로 벌리자 알 힐랄 관중들은 신발을 던지면서 퇴장하고 남아 있는 관중들은 울산을 응원하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이 날 20 리얄(6천원)인 관람석이 매진되고 무려 400리얄(12만원)까지 값이 올랐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내고 경기를 보러 온 알 힐랄 팬들 입장에서는 화가 날 법했다. 이 와중에 후반 19분 이근호의 4번째 골이 터지면서 알 힐랄은 완전 전의를 상실했고 결국 1차전 1:0, 2차전 4:0, 총 5:0. 5골을 얻어맞은 알 힐랄은 2012년 대회를 8강에서 마무리지었다.
이 날 유병수는 선발 출전해 골을 노렸으나 1차전보다 더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알 힐랄의 4:0 참패를 지켜봐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당시 경기를 직접 보고 분석한 블로거의 분석. 참고로 한국 스포츠 기자들이 허구헌날 이 분의 아랍 축구 관련 글을 멋대로 도용할 정도로 아랍 축구계 분석과 보도로 알려진 분이다.
2013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6강에 오르긴 했지만 8강에서 카타르 레크위야(남태희가 뛰는)에게 1무 1패로 덜미를 잡혀 16강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유병수는 좋은 활약을 했지만 페널티 킥을 받을 만한 상황에서 받지 못하는 등 여러모로 아쉬운 불운 속에 패했다. 반대로 남태희는 상당한 호평을 받으며 활약.
2014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강에서 알 사드를 1승 1무로 제치고 4강에 올라가 알 아인과 결승을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알 아인을 1차전 안방 경기에서 3-0으로 꺾으며 2차전이 유리해졌다. 원정에서 알 아인에게 1-2로 졌지만 득실로 앞서 결승에 진출,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와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그러나 0-1로 원정에서 지고 안방에서 0-0으로 비기면서 3번째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2015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에서 알 아흘리 클럽 에게 홈경기인 1차전을 1-1로 비겼다. 2차전 원정경기를 2-2로 끝나가기 전에 권경원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2-3으로 져서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2017 챔피언스리그에서 페르세폴리스를 홈에서 4-0으로 대파하며 결승에 올라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맞붙게 되었지만 1차전 1:1 무승부, 2차전 0:1 패배로 4번째 준우승에 머무르게 되었다.
2019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맞붙게 되었는데, 이 때는 1차전 1-0, 2차전 2-0으로 드디어 19년만에 우승의 감격을 맛보게 되었다.
3. 라이벌, 알 이티하드
서로에게 이를 가는, 엄청난 라이벌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알 이티하드가 2010-11 시즌 킹스 컵 4강전에서 알 힐랄에게 0:5로 대패하자 리그와 크라운 프린스 컵 우승, 즉 더블 우승을 이뤄 냈던 가브리엘 칼데론 감독을 즉시 해임했을까. 알 힐랄은 이 승리를 기념하는 티 셔츠를 만들어 팔았을 정도이다.
알 힐랄과 알 이티하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축구를 양분하고 있고, 알 힐랄이 20, 21세기 최고의 아시아 클럽으로 선정될 때 2위는 모두 알 이티하드였다. 둘은 여러모로 아시아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비유되고, 이들의 더비 매치 역시 ''''사우디 엘 클라시코''''라 불린다. 통산 전적은 알 힐랄이 앞서 있다.
4. 한국과의 인연
한국에선 2009년 1월 풀럼 FC에서 뛰던 설기현이 잠시 임대되어 활약한 뒤 2009년 7월 이영표가 입단하면서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유병수가 입단했었다. 2013년 유병수가 러시아 로스토프로 이적하면서 이제 한국 선수랑 인연이 없을 듯했지만 유병수의 활약이 꽤 좋았다고 판단한 구단 측이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이던 조성환을 2013-14 시즌에 앞서 영입했다.
2014년 겨울 이적 시장에 팀에 합류한 곽태휘는 알 힐랄에서 2년 반을 뛰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9년에는 장현수를 영입했다.
5. 우승/준우승 기록
5.1. 국내
-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Saudi Professional League)
- 우승: 16(최다)
1976-1977, 1978-1979, 1984-1985, 1985-1986, 1987-1988, 1989-1990, 1995-1996, 1997-1998, 2001-2002, 2004-2005, 2007-2008, 2009-2010, 2010-2011, 2016-17, 2017-18, 2019-20
- 준우승: 14(최다)
1980, 1981, 1983, 1987, 1993, 1995, 1997, 2006, 2007, 2009, 2013, 2014, 2015, 2019
- 크라운 프린스 컵(Crown Prince Cup)
- 우승: 13(최다)
1964, 1995, 2000, 2003, 2005, 2006,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6
- 준우승: 4
1957, 1998, 2014, 2015
- 킹스 컵(King's Cup)
- 우승: 8
1961, 1964, 1980, 1982, 1984, 1989, 2015, 2017
- 준우승: 7(최다)
1963, 1968, 1977, 1981, 1985, 1987, 2010
- 사우디 슈퍼컵(Saudi Super Cup)
- 우승 2
2017, 2018
- 준우승 2
2015, 2016
- 사우디 페더레이션 컵(Saudi Federation Cup)
- 우승: 8(최다)
1987, 1990, 1993, 1996, 2000, 2005, 2006, 2014
- 준우승: 6
1986, 2002, 2003, 2008, 2010, 2012
- 사우디 파운더스 컵(Saudi Founder's Cup)[7]
- 우승: 1(최다)
2000
5.2. 아시아
- AFC 챔피언스 리그(AFC Champions League)
- 우승: 3(최다)[8]
1991, 1999-00, 2019[9]
- 준우승: 4(최다)
1987, 1988년, 2014년, 2017년
- 아시안 컵 위너스컵(Asian Cup Winners' Cup)
- 우승: 2(최다)[10]
1997, 2002
1997, 2000
- 준우승: 1
2002
5.3. 걸프
- GCC 챔피언스 리그(GCC Champions League)
- 우승: 2
1986, 1998
- 준우승: 3(최다)
1987, 1992, 2000
5.4. 아랍
- 아랍 챔피언스 리그(Arab Champions League)
- 우승: 2
1994, 1995
- 준우승: 1
1989
- 아랍 컵 위너스 컵(Arab Cup Winners' Cup)
- 우승: 1
2000
- 아랍 슈퍼 컵(Arab Super Cup)
- 우승: 1
2001
- 준우승: 2
1992, 1995
5.5. 기타
- 사우디 이집티안 슈퍼 컵(Saudi-Egyptian Super Cup)
- 우승: 1
2001
- 인터내셔널 프렌드십 풋볼 토너먼트(International Friendship Football Tournament)
- 우승: 2
1998, 2000
- 매치 월드 컵(Match World Cup)
- 우승: 1(최다)
2011
6. 선수단
6.1. 주요 선수
7. 둘러보기
[1] 'Olympic Club'으로 창단.[2]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1993년 1월 20일생. 풀네임은 압둘라흐만 빈 무사아드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Abdullahman bin Musa'ad bin Abdulaziz Al Saud)이다. 사우디 왕세자와 사촌이며 청소년 복지부 장관과 알 힐랄 FC의 구단주를 역임하고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구단주와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B (2부리그)의 베이르스홋 빌레이크 구단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3] 현재는 킹 사우드 유니버스티 스타디움을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4] 2010, 2011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중국 팀은 대개 일본 팀에게 고춧가루를 뿌려 16강 티켓 1장을 얻지만 한국 팀을 만나 바로 광탈한다.[5] 2010년 대회에서 그 아시아 깡패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이유이기도 하다.[6] 선수 등록을 제때 하지 않아 실격 처리.[7] 사우디 아라비아 건국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컵대회다. 다음 대회는 2099-2100 시즌 개최 예정(.....)[8] 포항 스틸러스와 동률.[9] AFC 챔피언스 리그로의 개편 이후 첫 우승.[10]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동률.[11]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동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