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이즈미초

 



'''유네스코 세계유산'''
[image]
이름
한국어
히라이즈미[1]
영어
Hiraizumi[2]
일본어
平泉[3]
프랑스어
Hiraizumi[4]
국가·위치
일본 이와테현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11년
등재기준
(ii)[5], (vi)[6]
지정번호
1277

夏草や 兵どもが 夢の跡

여름 나절 풀

수많은 병사들이

꿈꾸던 자취

마츠오 바쇼하이쿠

1. 개요
2. 세계유산
2.1. 상세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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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7]
일본 이와테현 니시이와이군에 위치한 시정촌.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까지 백여 년에 걸쳐 도호쿠 지방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했던 오슈 후지와라 집안의 거점이었다.
오슈 후지와라씨의 초대 당주였던 후지와라노 기요히라(藤原淸衡) 이래로 3대 당주 히데히라(秀衡)에 이르기까지 교토에 버금가는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4대 당주 야스히라(泰衡)의 대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오슈 후지와라씨가 멸망하고 히라이즈미는 폐허가 되었다.
2011년, 이곳에 있는 4곳의 사찰, 1곳의 산을 묶어 총 5곳의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세계유산


  • 간지자이오인 터(観自在王院跡)
2대 당주 후지와라노 모토히라의 아내가 세웠던 사찰로 모쓰지의 건너편에 있다. 모쓰지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에 폐허가 되었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논밭 상태로 있다가 근래에 들어 연못과 정원 등이 복원되었다.
  • 긴케이산(金鶏山)
이름은 산이지만 높이가 100m도 되지 않는(98.6m) 작은 언덕으로 금계산이라는 이름은 3대 당주 후지와라노 히데히라가 무료코인을 지으면서 산 꼭대기에 금으로 된 닭을 묻었다는데에서 유래한다. 히라이즈미 유적군의 중심으로 나머지 4곳의 유적이 모두 이 산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 모쓰지(毛越寺)
850년에 엔닌이 세운 사찰로 본격적인 부흥은 2대 당주 모토히라 대에 이뤄진다. 상당히 큰 사찰이었지만 오슈 후지와라씨가 멸망한 후 1226년의 큰 화재에 이어 1573년에는 정원과 연못 등만 남기고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다행히 에도 시대메이지 시대를 거치면서 일부 복구가 되긴 했으나 완전한 복구는 아니었던데다 아무래도 역사가 짧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 사찰은 유형 문화재가 아닌 무형 문화재를 내세워 세계유산에 포함되었다. 법회 후에 열리는 엔넨(延年)이라고 하는 가무가 10여개 전승되고 있는데 이것이 포함된 것.
  • 무료코인 터(無量光院跡)
히데히라가 교토의 뵤도인(平等院)을 모방해 지은 사찰로 오히려 규모는 더 컸다. 그러나 후지와라씨가 멸망하면서 폐허가 되어 현재는 초석 등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히라이즈미가 한때는 교토와 대등한 위세를 떨친 시기가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 주손지(中尊寺)
모쓰지와 마찬가지로 850년에 엔닌이 세운 사찰로 초대 당주 후지와라노 기요히라에 의해 크게 부흥했다. 몇 년에 걸친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본 그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극락정토에 가기를 기원하며 일대에 대규모 불사를 일으킨다. 히라이즈미의 다른 유적들처럼 이곳도 후지와라씨가 멸망하면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당대 최고의 예술품인 곤지키도(金色堂)가 현존하고 있다.
곤지키도는 이름 그대로 건물에 금박을 입히고 자개와 상아, 보석 등으로 장식한 가로세로 5.5m의 작은 불당으로 이 곤지키도를 외부로부터 지키기 위해 더 큰 복당(覆堂)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 1965년부터는 기존의 복당을 이전하고 새 복당을 지은 후 다시 유리 케이스를 씌워 곤지키도를 보호하고 있다. 기존의 복당은 단순히 보호각 역할이었지만 그것도 700년이나 된 건물이다보니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1. 상세


[image]
국보 건조물 제1호 주손지 곤지키도의 한국어판 팸플릿과 국보 조각 제1호 고류지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의 일본어판 팸플릿 및 현판
오슈 후지와라씨의 거점으로써 번영을 누렸던 시대의 히라이즈미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현재 일본의 히라이즈미초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주손지 경내에 위치한 곤지키도인데 왜 하필 이것이 국보 건조물 제1호가 되었냐면 구 국보에서 신 국보로 승격된 건조물 문화재들 중 일본 땅에서 가장 북쪽에 있었기 때문. 이 문화재가 일본의 국보 건조물 제1호가 된 사정은 이처럼 단순하기 짝이 없다.[8] 물론 제반 사정이 어떻든 히라이즈미초에서는 자기 동네에 국보 건조물 제1호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히라이즈미 여행 안내 팸플릿 한국어판 PDF)
오슈 후지와라의 당주 4명의 시신이 미라화되어 그대로 발견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미라들은 앞서 설명한,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영묘인 주손지 내부 곤지키도의 불단 아래에 묻혔다가 발굴되었다. 1대 당주 기요히라, 2대 당주 모토히라, 3대 당주 히데히라까지는 시신이 온전히 매장되었으나 마지막 당주인 4대 야스히라는 머리만 미라 상태로 바구니에 담겨 발견되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참수된 것을 머리만 수습해서 매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결과 미라 상태의 야스히라의 머리에서 못자국이 여러 군데 발견되어, 참수 전 혹은 참수 후 전시(...)될 때 긴 대못 여러 개가 두개골을 관통해 박혔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명한 마르코 폴로동방견문록에서 묘사한 "'''지붕까지도 황금으로 덮을 정도로 곳곳에 황금이 넘쳐나는 나라 지팡구'''"의 이미지가 히라이즈미의 주손지를 참배했던 상인들의 입소문을 통해 생성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3. 기타


몬타나 존스 50화 '일본으로! 슬픈 전사 · 요시츠네의 재보(日本へ! 嘆きの戦士 · 義経の財宝)'(국내 제목은 '사무라이의 전설을 따라서')가 히라이즈미를 배경으로 한다. 국내 MBC 방영판의 경우 일본 문화 개방 이전의 시기에 수입해 온 터라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방영하지 않았으며, 후에 케이블 채널이라 검열이 느슨한 투니버스 & 퀴니에서는 온전히 방영되었다.
징기스칸 4에서는 가마쿠라 막부 시대 일본의 3개 도시 중 하나로 나온다. 그중 시나리오 1에서는 오슈 후지와라 정권의 수도로 나온다. 이 게임에서는 무려 교토도 안 나오는데! 아무래도 세력을 하나 더 만들려다보니 선택된 것, 그리고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라 일본열도가 좁아터져서 다자이후가마쿠라시, 그리고 멀리 도호쿠에 동떨어진 이 도시가 나오는 듯하다. 미나모토 요시츠네무사시보 벤케이 같은 초일류 장수가 있어 난이도는 매우 낮다.
아라키 히로히코가 히라이즈미 홍보를 위해 그린 일러스트가 존재한다.# 마침 히라이즈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점이 동일본 대지진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이와테 현에서는 히라이즈미 건설의 이념을 동일본 대지진 피해의 재건에 투영하고자 한다는 결의로 '도호쿠 부흥 히라이즈미 선언'을 발표하는 동시에 아라키 선생에게[9] 해당 선언의 일러스트를 받았다고.


[1] – 불교 정토 사상을 대표하는 사찰, 정원, 고고 유적군[2] – Temples, Gardens and Archaeological Sites Representing the Buddhist Pure Land[3] -仏国土(浄土)を表す建築・庭園及び考古学的遺跡群-[4] – Temples, jardins et sites archéologiques représentant la Terre Pure bouddhiste[5]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7] 이와테 현에서 제작한 히라이즈미 홍보 영상. 작중 등장하는 배우는 실제로 1993년 오슈 후지와라를 다룬 NHK 대하드라마 불타오르다에서 초대 당주 후지와라노 키요히라 역을 맡았던 무라카미 히로아키.[8] 반면 국보 조각의 경우 일본 땅의 북쪽 끝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동안 신 국보로 승격시킬 만한 문화재가 전혀 보이지 않다가, 교토에 이르러서야 고류지 반가사유상이 눈에 들어와서 이를 최초로 신 국보 조각 목록에 등재시킨 것... 만약 나라현이 교토보다 북쪽에 있었다면, 국보 조각 제1호는 나라 현에 소재한 어느 불상 문화재의 몫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9] 아라키 히로히코 역시 미야기 현 센다이 시 즉 도호쿠 지방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