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두 루카스 피게레두 몬치 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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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그대로 도도하게 골을 넣는다.(...)
이름
도도 (Dodô)
본명
히카르두 루카스 피게레두 몬치 하수
(Ricardo Lucas Figueredo Monte Raso)
생년월일
1974년 5월 2일
국적
브라질
출신지
상파울루
포지션
스트라이커

177cm
프로 입단
1992년 나시오날 AC 입단
소속팀
나시오날 AC(1992~1993)
플루미넨시 FC(1994)
상파울루 FC(1995~1998)
파라냐 클럽(임대)(1996)
산투스 FC(1998~2001)
보타포구 FR(2001~2002)
SE 파우메이라스(2002)
울산 현대 호랑이(2003~2004)
오이타 트리니타(2005)
고이아스 EC(2005)
보타포구 FR(2006)
알 아인 FC(2006~2007)
보타포구 FR(2007)
플루미넨시 FC(2008)
CR 바스쿠 다 가마(2010)
포르투게자(2010~2011)
아메리카나 FL(2011)
그레미우 오사스쿠(2013)
바라 다 티후카(2013)

1. 개요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일명 '''도도'''(Dodô)라고 하며 본명을 부를때는 대개 히카르두 루카스라고 부른다. 2011년 아메리카나 FL을 끝으로 프로 무대에서 은퇴했다. 현란한 발재간을 이용한 슈팅력이 뛰어나며, 탁월한 골 결정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순발력과 침착성이 뛰어나며, 드리블을 활용한 문전 쇄도에도 능했다.
1997년 브라질 국가대표로 5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한 바 있으며, 브라질 리그에서도 많은 득점을 기록해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기 작전에는 브라질 축구팬들이 선정한 '역대 공격수 랭킹'에서 8위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1] 역대 K리그에서 활약한 브라질 선수들 중에서는 마그누 아우베스[2]와 함께 가장 경력이 화려한 선수.

2. 선수 경력


1992년 브라질 리그의 나시오날 AC에서 데뷔했으며, 좋은 활약을 펼치며 1994년 플루미넨세 FC로 이적했다. 이후 1995년 상파울루 FC에 입단했으며, 1996년 파라냐 클럽에 잠시 임대된 뒤 시즌이 끝난 이후 복귀하였다. 복귀한 이후 콜롬비아 출신 공격수인 빅토르 아리스티자발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으며, 1997년 22경기에서 21골을 득점해 득점 랭킹 3위에 오르는 등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그 뒤 1998년 이적료 1300만 달러유럽 무대로 진출하려다 협상 결렬된 뒤 산토스 FC로 팀을 옮겼으며, 1999년 21경기에서 13골을 넣어 득점 랭킹 공동 4위에 오르는 등 좋은 활약을 하며 호비뉴, 지에구 등과 함께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이후 2001년 보타포구 FR로 이적했으나, 팀이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2002년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강등되었다. 결국 2002년 SE 팔메이라스로 팀을 옮겼으나,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3년 이적료 100만 달러, 연봉 30만 달러에 2년 계약으로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으며, 시즌 초반 이천수, 과 삼각편대를 구성해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이후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이천수의 레알 소시에다드 이적과 주축 선수들의 국가대표팀 및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생긴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으며, 시즌 중' 결승골을 가장 많이 터뜨리는 선수'에 뽑혔을 정도로 득점 순도가 뛰어났다. 한 때 득점 단독 1위에 올랐으나 이후 다소 밀리는 모습이었는데, 광주 상무 불사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무려 4골을 터뜨리며 시즌 종료 때까지 44경기에 출전해 27골을 기록해 마그노와 함께 40경기 28골을 기록한 김도훈에 이은 득점 공동 2위로 시즌을 마쳤다.[3] 하지만 2004년에는 18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으며 다소 부진한 활약을 보였고, 결국 시즌 중반 입단한 제칼로에게 밀려 2005년 일본 J리그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15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 데 그치며 이전에 비해 침체된 모습을 보였으며, 본인 또한 브라질로 귀국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여러 차려 하며 결국 시즌 도중 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결국 2005년 고이아스 EC에 입단해 브라질 무대에 복귀했으나, 역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이후 팀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방출되었다. 2006년 자신이 이전에 좋은 활약을 했던 보타포구 FR로 돌아왔으며, 입단 이후 원래 폼을 되찾아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중동 리그로의 진출에 관심을 보였으며, 아랍에미리트 리그의 알 아인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많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07년 다시 보타포구 FR로 돌아왔으며, 다시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던 중 2007년 6월 CR 바스코 다 가마와의 경기 이후 후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흥분제의 일종인 펜프로포렉스(fenproporex) 양성 반응이 나타났으며, 120일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가 풀린 이후 무사히 시즌을 마쳤으며, 시즌 종료 후 구단과의 재계약을 거부하며 이적을 모색했다. 결국 2008년 플루미넨세 FC로 팀을 옮겨 레안드루 아마랄, 와싱톤과 호흡을 맞추어 시즌 초반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나, 아스날 사란디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경기 도중 이마뼈가 골절되어 두 달동안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이후 부상에서 회복해 팀에 복귀했으나, 팀의 감독인 헤나투 가우추의 눈 밖에 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 뒤 헤나투 가우추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쿠카가 부임했으나, 역시 성적 부진으로 얼마 못가 경질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9월 1년전 있었던 도핑테스트 앙성 반응 관련으로 CAS(스포츠 중재 재판소)로부터 2년간 선수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다행히도 CAS에 징계 삭감을 요구한 것이 받아들여져 1년 뒤인 2009년 11월 선수로 복귀할 수 있었다.
선수 복귀 이후 새 팀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나이와 기량에 걸맞지 않은 높은 몸값으로 인해 줄줄이 거절당했으며, 결국 2009년 12월 간신히 CR 바스코 다 가마에 입단할 수 있었다. 2010년 시즌 초반에는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던 보타포구 FR를 상대로 4골을 득점해 팀의 6:0 승리를 이끄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더비 라이벌인 CR 플라멩구와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두 번이나 실축한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후보로 밀려난 뒤 구단 및 서포터와의 사이가 멀어져 결국 시즌 도중 계약을 해지했다. 그 뒤 2부 리그의 포르투게자에 입단했으나, CA 브라간치누와의 경기 도중 다른 선수와 교체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경기가 끝나기 전에 경기장을 빠져나와 팀의 감독인 조르지뉴와 불화를 겪어 결국 2011년 3월 구단에서 방출되었다. 얼마 후 역시 2부 리그 팀인 아메리카나 FL로 이적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였다.
1997년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산발되어 5경기를 치렀는데, 공교롭게도 A매치 데뷔전이 대한민국과의 경기였다. 얼마 뒤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활약했으며, 본인의 3번째 A매치 경기인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는 두 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이후 모로코와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웨일즈와의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과 인연믈 맺지 못했다. 이것만 보면 K리그 외국인 선수 중에서는 최고일지 몰라도 그리 좋은 커리어는 못된다고 생각하겠지만.....당시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진 경쟁은 경악할 수준이어서 도도 이후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진 경쟁에 뛰어든 FC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급 공격수인 지오반니 에우베르조차 월드컵 예선 등에 15경기밖에 출전 못하고 월드컵에는 나가보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2001~2002 분데스리가 득점왕인 마르시오 아모로소도 19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월드컵은 밟아보지 못했다.[4] 2010년대 스페인 국가대표의 미드필더진 경쟁도 이렇진 않았다.(.....)

3. 기타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뛰던 2004년 자신의 첫 사내아이를 얻었으며, 이름은 페드로로 지었다.[5]
[1] 더불어 2014년 현재 브라질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통산 득점 랭킹 12위를 마크하고 있으며(K리그에서는 우성용, 김현석이 비슷한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리그에서도 득점왕을 3번 차지한 경력이 있다. 주리그라고 웃을 수도 없는게, 그 3번 중 2번이 브라질에서 1, 2위를 다투는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 주 리그여서.....[2] 2000년 브라질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득점왕, 브라질 국가대표 차출 경력이 있다.[3] K리그에서 4골 이상을 기록한 것은 도도가 7번째였으며, 도도가 달성한 이후 6년 뒤인 2010년 4월 유병수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4골을 기록했다.[4] 위에서 언급한 마그누 아우베스도 이 무렵에 국가대표에 차출되어 3경기 뛰었다.[5] 이 과정에서 만삭의 아내가 분만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아기를 낳지 못하자 결국 제왕절개를 선택했고, 초조해하던 도도는 결국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 도중 페널티 킥을 실축하는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