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6년
1. 개요
2. 사건
2.1. 실제
- 연초 - 시칠리아에서 바르톨로메오 디 가실리아토의 반란. 굴리에모 1세가 대상이 아닌 대제독 마이오에 대한 것이라 밝힘. 그들의 요구대로 굴리에모가 감금했던 마이오의 정적들을 석방하고 부테라로 진군해오자 반군 항복
- 1월 20일 - 핀란드 원주민인 핀족의 투사 랄리가 잉글랜드의 주교 헨리를 도끼로 죽였다고 전해진다.
- 굴리에모 1세, 메시나에 진압군 소집. 한편 동로마 사령관 미카일 팔라이올로고스 바리에서 병사. 요안니스 두카스가 남부 이탈리아 원정 멈추고 바리로 돌아와 인계받음.
- 4월 : 동로마 사령관 요안니스 두카스, 브린디시 포위. 이에 굴리에모 1세가 수륙 양면으로 역포위. 항복시킴
- 도바 상황의 사망으로 스토쿠 상황이 인세이를 시작했는데 동생인 고시라카와 덴노가 반발하여 내전의 조짐이 보였다.
- 7월 : 굴리에모 1세, 아풀리아가 평정되자 시칠리아 귀환. 요절한 형 로제르의 서자 탕크레드 디 레체 등의 반역 혐의자들을 모두 체포
- 7월 28일 ~ 8월 16일 - 호겐의 난 : 교토에서 고시라카와 덴노 -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의 세력이 스토쿠 상황 - 후지와라노 요리나가의 세력을 상대로 승리했다.
- 12월 25일 - 스웨덴의 왕이었던 스베르케르 1세가 살해당한 이후 에리크 9세가 새 왕으로 즉위하였다.
- 이탈리아 남부의 아풀리아에서 시칠리아 왕국에 대한 반란이 격화되었고, 이에 교황 하드리아노 4세의 요청까지 받은 마누엘 1세의 동로마 제국군이 출병하였으나 굴리에모 1세는 노르만 기병대를 이끌고 신속히 반란을 진압하고 브린디시 전투에서 동로마 군대까지 격파하여 영토를 지켜내었다.
- 튀니지의 도시 스팍스의 무슬림 민중이 시칠리아 왕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노르만 - 기독교도 들을 학살하였다.
- 오스트리아 변경백 령이 공국의 지위로 승격되었다.
- 르노 드 샤티용이 키프로스를 약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