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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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제4회 하계 아시안 게임. 개최 전부터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으며, 대회 자체도 파행으로 얼룩진 대회였다.
2. 종목
3. 메달 순위
4. 대회 이모저모
- 사회주의자였던 수카르노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 중이었고(하나의 중국 항목 참고), 또한 중화민국(타이완)이 수카르노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중화민국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또한 이슬람권 국가인 인도네시아 정부는 중동지역 아랍 세계 국가들의 압력과 이들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이스라엘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하였다.[2]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입국도 거부하려고 했지만 나중에 철회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네시아는 순수한 스포츠 경기를 정치 문제와 결부시키는 큰 오점을 남겼다.[3] .
-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 육상 경기 연맹, 국제 역도 연맹 등은 이 대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여 참가 선수의 국제 경기 참여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인도네시아는 대회를 강행하였고 결국 본 대회는 파행을 거듭하게 된다. 이를테면 역도 부문 같은 경우, 국제 역도 연맹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타이완, 이스라엘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한 책임을 물어 본 아시안 게임에서 역도 종목의 승인을 취소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말라야 연방(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이란, 인도, 일본,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의 9개국은 역도 종목에서 불참하는 보이콧을 단행하였고 역도 참가국은 주최국인 인도네시아만 남게 되었다. 결국 역도 부문은 본 아시안 게임에서 취소되고 말았다.
- 인도에서는 대놓고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을 비공인 대회로 돌려버리자!!!고 디스를 날렸으며, 이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를 규탄하는 관제시위를 벌이는 걸로 대응했다.
- 배드민턴이 대회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아시안 게임이기도 하다.
- 대한민국은 역도 뿐만 아니라 육상과 테니스 종목도 보이콧하여, 종합 순위는 저조하였다.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을 딱 4개 땄는데, 이로 인해 본 대회는 대한민국이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가장 적은 금메달을 획득한 대회로 기록된다.
- 대회 종료 후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인도네시아를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서 제명시키는 한편 인도네시아의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 참가를 금지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런 제명 조치에 크게 반발해, 역시 IOC를 보이콧하던 중화인민공화국과 함께 이듬해인 1963년 올림픽에 대항하는 국제 경기 대회인 신흥국 경기 대회(GANEFO, 가네포) 대회를 창설하였다. 한편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신흥국 경기 대회가 정치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도록 조치하였다.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에서도 이스라엘과 대만의 입국 거부로 일본이 아시안 게임을 보이콧할지 말지를 대회 직전까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 영국에서 독립한 말라야연방의 마지막 출전. 사바주도 북보르네오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단독 참여했다. 이들은 이듬해인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으로 통합된다.[4]
- 이후 자카르타는 56년 뒤 다시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됐다.[5]
[1]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 선수이며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1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이후 2003년 향년 72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2] 이스라엘 올림픽 위원회는 현재 유럽 올림픽 위원회 소속이지만 이 당시는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 소속이었다.[3]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조직 위원회가 이스라엘과 대만에 '초청장'이 아닌 '백지'를 보냈다고 나온 책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현재는 이러한 거대 국제 대회의 초청장은 개최국의 대회 조직 위원회가 아니라, 국제기구(올림픽 같으면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직접 보낸다.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의 경우와 같이, 개최국이 적성국을 일부러 초청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4] 말레이시아연방 출범땐 싱가포르도 합류했지만 1965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축출돼 다음 대회인 1966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도 싱가포르 국명으로 참가한다.[5] 원래는 베트남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제문제로 개최를 포기하고 그걸 자카르타가 따낸 것. 다만 2018년 대회는 팔렘방과 분산 개최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