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일본시리즈

 


'''역대 일본시리즈 우승팀'''
1975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0승 2무)
'''한큐 브레이브스''' (4승 2무)

'''1976년'''
'''한큐 브레이브스''' (4승)
요미우리 자이언츠 (3승)

197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1승)
'''한큐 브레이브스''' (4승)
[image]
'''한큐 브레이브스, 5번의 좌절을 딛고 타도 거인의 숙원을 이뤄내다!'''
1. 개요
2. 경기 내용
2.1. 1차전 : 10월 23일, 고라쿠엔 구장
2.2. 2차전: 10월 25일, 고라쿠엔 구장
2.4. 4차전: 10월 29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2.5. 5차전: 10월 30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2.6. 6차전: 11월 1일, 고라쿠엔 구장
2.7. 7차전: 11월 2일, 고라쿠엔 구장
3. 후일담
4. 관련 문서


1. 개요


1976년 10월 23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린 퍼시픽리그 우승팀이자[1] 전년도 일본시리즈 챔피언 한큐 브레이브스센트럴리그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간의 일본시리즈.
과거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의 지휘 하에서 1967년 첫 퍼시픽리그 우승을 이루고 이후 니시모토 감독 휘하에서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루며 퍼시픽리그 강팀으로 자리잡았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선 카와카미 테츠하루 감독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나간 시리즈마다 전부 준우승(1967~1969, 1971~1972[2])'''의 수모를 당한 한큐가 전년도인 1975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4승 2무로 철저히 털어버리며 기나긴 한을 푼 뒤, 3연승 뒤 3연패를 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4승 3패로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요미우리를 제압하며 숙원인 '''타도 거인'''의 꿈을 이뤘고, 더불어 일본시리즈 2연패에 성공했다.

2. 경기 내용



2.1. 1차전 : 10월 23일, 고라쿠엔 구장


팀/이닝
1
2
3
4
5
6
7
8
9
R
'''한큐'''
0
1
0
0
3
0
0
1
1
6
'''요미우리'''
2
0
0
0
0
2
0
0
0
4
한큐의 선발은 야마다 히사시, 거인의 선발은 호리우치 츠네오였다.
요미우리는 1회 장훈의 1타점 적시타와 스에츠구 토시미츠희생플라이로 2점을 선취하지만, 한큐는 2회 후쿠모토 유타카의 적시타로 추격의 불을 붙이고, 5회 바비 마르카노의 동점 2루타와 나카자와 신지의 2타점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한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6회 오 사다하루의 투런 홈런으로 야마다를 강판시켰고, 여기서 한큐의 우에다 토시하루 감독은 2차전이 열리는 24일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2차전 선발로 내정된 야마구치 타카시를 구원등판시키는 모험수를 둔다. 야마구치는 후속 데이비 존슨요시다 타카시에게서 연속 탈삼진을 이끌어내며 기대에 부응했고, 한큐는 8회 2사 후 바비 마르카노의 1타점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아낸다. 그리고 9회에는 나카자와가 솔로홈런을 작렬하며 쐐기를 박는다.

2.2. 2차전: 10월 25일, 고라쿠엔 구장


팀/이닝
1
2
3
4
5
6
7
8
9
R
한큐
0
2
0
0
2
0
0
1
0
5
요미우리
0
0
0
1
0
0
2
1
0
4
우에다 토시하루 감독의 바램처럼 2차전은 폭우로 하루 순연되어 25일 치뤄졌다. 한큐 선발은 아다치 미츠히로, 요미우리 선발은 클라이드 라이트.
한큐는 2회 버니 윌리엄스모리모토 키요시의 연속 1타점 적시타로 2-0으로 앞서나갔고, 4회에 1점을 내주긴 했으나, 5회에 요미우리 내야진의 실책으로 2점을 추가해 4-1로 앞서나간다. 요미우리는 7회 오 사다하루의 솔로홈런으로 반격의 물꼬를 텄고, 야나기 토시로가 2루타를 치며 아다치를 강판시켰다. 한큐는 여기서 1차전 구원승을 올린 야마구치를 구원등판시켰으나, 야마구치가 하라다에게 1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4-3까지 쫓긴다. 한큐는 8회초 요미우리 구원투수 니우라 히사오의 실책을 발판으로 1점을 다시 달아났으나, 요미우리는 8회말 공격에서 오 사다하루의 1타점 2루타로 다시 1점을 따라붙는다. 그러나 타격전은 여기까지였고, 한큐가 5-4로 승리한다.

2.3. 3차전 : 10월 27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팀/이닝
1
2
3
4
5
6
7
8
9
R
요미우리
0
0
2
0
0
0
0
1
0
3
한큐
4
0
0
0
3
0
0
3
-
10
  • 승: 야마다 히사시(한큐, 1승)
  • 패: 가토 하지메(요미우리, 1패)
요미우리의 선발은 이적생 에이스 가토 하지메, 한큐의 선발은 야마다 히사시.
한큐는 1회말 공격에서 1번 후쿠모토의 안타를 시작으로 4득점, 일본시리즈 첫 등판의 가토를 강판시켰고, 5회에는 바비 마르카노가 추격조 고바야시 시게루를 상대로 쓰리런을 작렬,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큐 선발 야마다는 3회에 2실점하기는 했으나, 큰 점수 차를 바탕으로 부담없이 퀄리티스타트 완투승을 기록, 5번째 등판 만에 거인전 승리투수가 된다. 이렇게 일본시리즈는 한큐의 4승 무패 스윕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2.4. 4차전: 10월 29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팀/이닝
1
2
3
4
5
6
7
8
9
R
요미우리
0
1
0
0
0
0
1
0
2
4
한큐
1
0
1
0
0
0
0
0
0
2
  • 승리투수: 고바야시 시게루(요미우리, 1승 1패)
  • 패전투수: 야마구치 타카시(한큐, 1승 1패 1S)[3]
요미우리 선발은 호리우치, 한큐 선발은 아다치.
한큐는 1회말 공격에서 1번 후쿠모토의 선두타자 솔로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으며 타도 거인을 결정짓는 듯 했으나, 요미우리는 2회초 오의 시리즈 3호 홈런으로 간단히 동점을 만들었다. 한큐는 3회말 가토 히데지의 1타점 적시타로 다시 리드를 빼앗았고, 여기서 우에다 감독은 호투하던 아다치를 퀵후크시키고 야마구치를 구원등판시켰지만, 그것이 오산이었다. 지친 야마구치는 7회에 3타자 연속 볼넷을 기록한 뒤 시바타 이사오에게 희생플라이를 허용하며 동점을 허용했고, 9회에는 2사 후 투수 고바야시 시게루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 시바타 이사오에게 아예 역전 투런 홈런까지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2.5. 5차전: 10월 30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팀/이닝
1
2
3
4
5
6
7
8
9
R
거인
0
0
0
4
0
0
1
0
0
5
한큐
0
0
0
1
0
0
0
2
0
3
  • 승: 클라이드 라이트(1승 1패, 요미우리)
  • 패: 야마다 히사시(1승 1패, 한큐)
  • 세: 고바야시 시게루(1승 1패 1S, 요미우리)
한큐 선발은 야마다, 요미우리 선발은 라이트.
승부처는 4회 초 요미우리 공격이었다. 야마다는 선두 오 사다하루를 상대로 볼카운트 2-2에서 절묘한 코스로 유인구를 던져 오의 하프스윙을 유도했으나, 센트럴 리그 소속의 야마모토 후미오 구심은 볼을 선언했고, 오는 볼넷으로 출루한다. 멘붕한 야마다는 1사 2, 3루의 핀치에 몰린 뒤 요시다 타카시에게는 2타점 적시타, 2사 후 투수 클라이드 라이트에게는 대형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단숨에 4실점했고, 승부는 이것으로 갈렸다. 이로써 거인은 3연패 뒤 2연승을 기록, 적지 니시노미야 구장에서의 헹가래를 저지한다.

2.6. 6차전: 11월 1일, 고라쿠엔 구장


팀/이닝
1
2
3
4
5
6
7
8
9
10
R
한큐
2
0
0
2
3
0
0
0
0
0
7
요미우리
0
0
0
0
2
3
0
2
0
1
8
  • 승: 고바야시 시게루(2승 1패 1S, 요미우리)
  • 패: 야마다 히사시(1승 2패, 한큐)
한큐는 5회까지 7-0으로 앞서나가며 우승을 확정짓는 듯 했다. 그러나 거인은 5회말 공격에서 대타 아와구치 켄지[4]의 볼넷을 기점으로 2점을 만회한 뒤 6회에는 아와구치 켄지의 3점 홈런으로 단숨에 7-5까지 추격한다. 한큐는 7회에 황급히 야마다를 구원등판시키지만, 8회에 시바타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7-7 동점을 허용하고, 10회에는 하리모토 이사오에게 2루타를 쳐맞고 심지어 투수인 고바야시 시게루에게 안타를 쳐맞더니 다카다 시게루[5]에게 끝내기 우전안타를 허용하며 거짓말같이 역전패를 당했다. 이로써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한큐 선수단에게는 3연승 뒤 4연패라는 불안감이 감돌았고, 거인은 역전 우승의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2.7. 7차전: 11월 2일, 고라쿠엔 구장


팀/이닝
1
2
3
4
5
6
7
8
9
R
한큐
0
0
1
0
0
0
2
1
0
4
요미우리
0
0
0
0
1
1
0
0
0
2
  • 승: 아다치 미츠히로(2승, 한큐)
  • 패: 클라이드 라이트(1승 2패, 요미우리)
요미우리 선발은 라이트, 한큐 선발은 아다치.
한큐는 3회 2사 2루에서 후쿠모토의 1타점 적시 2루타로 선취점을 올렸으나, 5회 다카다에게 솔로홈런을 얻어맞으며 동점이 되었고, 6회 1사 2, 3루에서 하리모토의 땅볼을 잡은 1루수 가토 히데지가 백네트로 날아가는 악송구를 시전, 역전을 허용한다. 그러나 아다치는 계속된 1사 만루에서 아와구치의 투수 앞 땅볼을 유도한 뒤 직접 1-2-3 병살타로 연결하면서 추가 실점을 막아내 역전의 불씨를 살려낸다.
그리고 한큐의 7회 초 공격, 1사 후 버니 윌리엄스가 내야 안타로 출루한 뒤 2루를 훔쳤고, 타석의 모리모토 키요시가 흔들리는 라이트를 상대로 통쾌한 좌월 투런 홈런을 날려 역전에 성공했다. 기세가 오른 한큐는 8회 초에 후쿠모토의 솔로홈런으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고, 9회 말 2사 1, 2루 위기에서 아다치가 대타 야마모토 카즈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 한큐는 5전 6기 끝에 비원의 '''타도 거인'''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시리즈 MVP는 7차전의 쐐기 솔로홈런을 포함, 26타수 11안타(2홈런)로 테이블세터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낸 후쿠모토 유타카가 수상했다.

3. 후일담


  • 한큐가 3연승을 거둔 3차전에서 1989년 일본시리즈카토 테츠로에 버금 갈 설화가 탄생할 뻔 했다. 경기 종료 후 후쿠모토 유타카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요미우리의 전력에 대해 평해보라는 기자의 질문에 "롯데킨테츠든, 우리랑 3번 맞붙으면 1경기는 이긴다." 라면서 요미우리를 간접 디스한 것.[6] 이 발언이 스포츠 뉴스와 신문을 통해 대서특필되었고, 요미우리 선수단은 이걸 보고 제대로 빡쳤는지 4차전부터 폭풍 3연승을 달렸다. 그러나 후쿠모토의 2타점 맹타에 힘입어 한큐가 7차전을 승리하면서 이는 다행히도 묻혀버렸다.[7]

  • 4차전에서 요미우리 3연승의 도화선이 된 투수 고바야시 시게루의 안타는 사실 월권행위(?)였다.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은 고바야시에게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 삼진당하고 들어와"라고 지시했으나, 자존심이 상한 고바야시는 나가시마의 지시를 무시하고 풀스윙했는데, 운 좋게도 제구가 안된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면서 안타가 됐다고 한다.
  • 7차전에서 역전 투런 홈런을 친 모리모토 키요시는 시즌 종료 후 주니치 드래곤즈로 트레이드 될 예정이었으나, 우에다 감독의 함구로 이를 모르고 있었다. 우에다 감독이 훗날 매스컴 인터뷰에서 술회한 바에 따르면 모리모토의 홈런을 보면서 기쁨과 죄책감이 뒤섞여 몰래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4. 관련 문서



[1] 1973년~1982년 퍼시픽리그는 전/후기리그제로 운영되어 전/후기 우승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 우승한 팀이 리그 우승팀으로 인정되었으나, 이해 한큐는 전/후기리그를 전부 우승하여 플레이오프를 취소시켜 버리는 압도적인 괴력을 선보이며 일본시리즈로 직행했다.[2] 1970년엔 롯데 오리온즈가 우승. 그러나 롯데마저도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에게 1승 4패로, 그것도 패배가 결정된 5차전은 홈구장인 도쿄 스타디움에서 거하게 털리며 우승을 내줘야했다.[3] 오승환의 한신시절 투수코치.[4] 임창용의 야쿠르트시절 타격코치.[5] 임창용의 야쿠르트시절 감독.[6] 이해 롯데는 리그 3위(전후기 3위), 킨테츠는 리그 4위(전기 5위/후기 4위)로 그저그런 중하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후쿠모토의 발언은 이런 그저그런 팀들도 우리(한큐)랑 맞붙으면 3번 중 1번은 이기는데 요미우리는 왜 그 모양(3연패)이냐는 의미였던 것.[7] 그담해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는 한큐에게 시원하게 X털렸다. 그때 우승멤버 중에 미노다 고지는 선수말년에 고향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트레이드 요구했음에도 묵살당하고 요미우리로 옮기면서 1989년 일본시리즈 역스윕때 이긴경기에서 1번타자로 선발출장했다. 이해에 야마다 히사시의 은퇴시합때 요미우리 1번타자로 선발출장해서 3구 3풀스윙삼진으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