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동메달 결정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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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첫 메달의 감격스러운 순간!
이 대회에서 한국은 동메달을 확정지었으며 구대성은 합법적 병역 브로커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리게 된다. 이후 이 둘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나란히 활약하며 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2. 경기 전 정보
김응룡호는 일본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3/4위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무박 2일 경기로 당일 오전 1시까지 진행된 4강전으로 인해 전체적인 컨디션이 말이 아닌 상태였고, 선발투수로 예정된 구대성은 감기 몸살로 골골 대고 있었다. 허구연이 당시를 회상하기로는 :"일본은 낮에 경기를 치뤄 여유가 있었던 반면 우리는 새벽 3시에 잠을 자고도 일본을 꺽었다."고.
3. 경기 내용
3.1. 치열한 투수전
이날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되었다.
한국 측 선발은 아마추어 시절 일본 킬러로 명성을 떨쳤던 구대성이었고[1][2] 일본 선발은 괴물 투수로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였다. 둘 다 완투를 기록하였고, 7회까지 위기는 있었을지언정 양 팀 모두 점수를 내지 못했다.
구대성은 2회초 2사 만루에서 삼진을 잡아내는 등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9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적시타를 맞아 1점을 내줬지만 후속타자에게서 삼진을 잡았다. 그 다음 타자 아베 신노스케가 공을 쳤을 때, 구대성이 공을 잡지 못해 내야안타가 되는 줄 알고 많은 시청자들이 순간 굳었지만, 다행히 2루수 박종호가 공을 잡고, 유격수 박진만이 포구해 2루주자를 아웃시키며 경기를 매조지었다.
한편 한국 타선은 1회 말 이병규-박종호의 연속안타로 나온 무사 1-3루 상황에서 이승엽,김동주의 연속 삼진과 김기태의 중견수 뜬공으로 득점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6회 말에 다시 1사 1-2루 찬스를 맞이했으나 이승엽의 삼진과 김동주의 중견수 뜬공으로 또다시 점수를 내는 데 실패한다.
3.2. 약속의 8회
그러다가 8회 말 선두 8번타자 박진만이 내야안타를 쳤고, 정수근이 희생번트를 치며 1사 2루의 상황을 만든다. 이어 이병규는 2루수 실책으로 살아나가 1-3루 상황이 된다. 이어 박종호가 포수 파울플라이로 상황은 2사 1-3루. 다음 타석은 이승엽.
투수 마스자카는 이 날 3타수 3삼진을 기록하고 있던 이승엽의 타격감을 깔보았는지 한가운데에 속구를 던졌고, '''이승엽은 이를 놓치지 않고 좌중간을 뚫는 2루타를 쳐 박진만과 이병규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렇게 한국은 2점을 따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김동주가 안타를 치며 이승엽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데까지 성공해 한국은 3점을 내는 데 성공한다.
5번타자 김한수는 아웃되며 8회는 종료되었고, 구대성이 9회초 2연속 안타를 맞으며 1실점했지만[3] 스코어는 1:3으로, 홈팀(한국)이 이기고 있던 관계로 쇼튼드 게임 처리되어 9회말은 없었고 마스자카는 8이닝 160구 3실점 완투패를 기록하였다.
[image]헹가레를 받는 김응용 대표팀 감독.
4. 경기 후일담
4.1. 일본킬러 구대성
'''구대성의, 구대성에 의한, 구대성을 위한 경기'''
구대성은 9이닝 155구를 던지며 장장 11삼진을 잡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완투하는 동안 딱 1점을 내주는 거의 완벽한 투구로 승리를 견인했다.
결과적으로, '''구대성의 일본 킬러 기질은 프로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마추어 때보다 대중들에게 더더욱 각인되었다.'''
흠좀무한 것은, 경기 당시 구대성은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기 전날, 담에 걸려 팔을 제대로 뻗기 힘든 상태였는데, 투수코치였던 김인식(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은 구대성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구대성이 괜찮다고 하자 "그럼 내일 선발은 너다" 라고 통보한 뒤 돌아섰다고 한다. 그리고 구대성은 '하라니까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등판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김인식 코치가 물어보았을 때 구대성이 너무 아파 "좀 힘들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자 김인식은 "왜 못던지느냐." 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구대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웃으며 속으로 '아, 내가 나가야겠구나.' 라고 생각해 선발등판 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는 말도 있다. 실제 구대성은 경기 초반만 해도 제구 난조를 보이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계속해 던지면서 컨디션을 되찾아갔다.[4] 결국은 11삼진이라는 호투를 선보였으니, 이는 투혼과 저력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4.2. 눈물바다가 된 일본
한편 일본 대표팀은 이날 경기 패배후 눈물 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나카무라가 울었다. 스즈키도. 마쓰자카는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야구의 3위 결정전은 에이스 마쓰자카의 힘이 달려 한국에 1대 3으로패했다. 처음으로 아마와 프로의 혼성팀으로 출전한 올림픽이었지만 84년 LA 올림픽 이후 내리 다섯 번의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프로 정규 시합 도중 전혀 다른 무대에 선 프로선수들. 이기지 못한 분함이가슴을 찌른다…"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1] 다분히 아마시절 명성을 의식해서 등판시킨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마무리 투수였고 예선에서는 계투로 기용되었기 때문에 선발등판은 좀 의외였다.[2] 미국전 선발대결이 정대현-오스왈드로, 예선과 4강전에서 똑같은 선발 투수로 매치했지만, 예선에서 일본전 선발이었던 정민태는 올림픽 내내 부진했고, 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선발 예측은 어려운 상태였다.[3] 점수를 내줄 당시 혹시 모를 추가 실점을 대비해 임창용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4] 당시 포수였던 홍성흔은 김인식 코치가 9회 말 1실점 상황에서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오자 "공이 점점 좋아집니다."라며 끝까지 던질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