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병역 브로커
1. 개요
병역의무를 이미 완료한 운동선수[1] 가 동료 선수들이나 후배 선수들에게 올림픽 동메달 이상, 혹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을 도와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은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축구, 야구 등 팀 단위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일이며, 단체전이 있는 경기에서도 해당된다.[2] 이 '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병역혜택을 받은 경우는 브로커라는 말보다는 '''면제로이드'''라는 표현을 더 쓴다.
모든 선수나 감독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경우 정작 본인은 해당 국제 대회 성적이 아닌 다른 사유로 이미 면제를 받은 경우가 많다.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2. 명단
참고로 여기서 나온 나이는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시점의 나이를 가리킨다.
2.1. 야구
2.1.1. '''박찬호'''
당시 LA 다저스의 잘나가는 선발투수였던 박찬호는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본인도 구원하고, 동료들도 구원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이 대회부터 프로선수 참가가 허용이 되었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아시안 게임 개최가 야구 비시즌인 12월에 하는 덕택에 박찬호나 서재응[3] 등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들의 참가가 가능했었다. 이때 박찬호는 예선전 대만 5이닝 1실점 승리, 두 번째 대만 예선에서 1.2이닝 무실점, 마지막 일본과의 결승전은 7이닝 1실점으로 깔끔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알루미늄 배트 타자들을 상대로 이런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후 2001 시즌이 끝나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 FA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퇴물이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그는 '''브로커계의 대부'''가 되었다. 오랜만에 2006년 WBC에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 ''''방어율 0'에 3세이브'''를 기록하며 WBC 4강 신화의 주역이 되었다. 다들 박찬호의 체인지업 위력이 떨어져서 고전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그 체인지업에 상대가 박살났다.''' '''심지어 일본과의 예선 2라운드에서는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4강 신화로 인해 많은 후배들[4] 이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참고로, WBC 는 병역 혜택 대상이 되는 대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 축구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자, 야구계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발생했고, 정부에서는 병역 혜택을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관련기사. 다만, 병무청에서는 타 종목으로 무분별하게 혜택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서 '''더이상의 특례 혜택은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고, 2009년 WBC 에서는 병역 혜택이 사라졌다.
이후 장출혈로 고생하지만, 2008년 친정인 LA 다저스에서 구원 투수로서 부활에 성공,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여 쏠쏠한 활약을 펼친다. 꿈에 그러던 월드시리즈 무대에도 올랐으나, 팀은 뉴욕 양키스에 패배하여 우승반지는 얻지 못했다.
참고로 박찬호는 1994년 미국으로 갈 당시 대학생이였던 관계로 본래는 '''입영대상자'''였으나 국가에서 대승적 차원으로 보내줬고, 4년만에 이를 몇배로 갚았다. 2012년에 은퇴하면서 병역 브로커 업무도 같이 마무리했다.
여기서 칭송받는 이유는, 본인이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는데도 부를 때마다 영광이라면서 꾸준히 응해 왔다. 이는 김병현도 마찬가지. 아마 본인이 느낀 짜릿함을 후배들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2.1.2. '''이승엽'''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무너뜨리는 결승 2타점 2루타도 쳐 냈고,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을 침몰시키는 투런, 멕시코전에서도 결승홈런, 미국전에선 전해 사이 영 상 투표 2위를 기록한 돈트렐 윌리스[5] 로부터 기선을 제압하는 선제 솔로홈런 등을 날리며 일약 합법적 병역 브로커로 등극하게 된다.[6] [7] 그가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시드니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 보면 당시 기준으로 24세. 초대인 박찬호보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승엽의 출생 연도가 더 늦었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존재감을 발휘한 시점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조별리그에서는 죽도록 삽을 펐지만[8] 한일전 준결승전에서 이와세 히토키로부터 8회말 역전 결승 투런포를 작렬[9] , 팀의 6:2 승리에 일조, 군대 안 간 선수들의 병역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다![10] 이에 그치지 않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1회초 선제 투런포를 작렬하여 대한민국의 전승 금메달에 큰 공을 세웠다.
'''이승엽 본인은 국제대회 성적으로 면제를 받은 것이 아니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입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이미 군대 면제를 받은 상태였다. 즉, 면제로이드조차 먹은 적 없이 곧바로 병역 브로커로 데뷔한 것.[11]
국대 타율 2할 8푼에 국대 최다 홈런 최다 타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베이징에선 삽펐지만 나머지 국대에선 최고의 타자였다. 게다가 베이징에서도 준결승과 결승이라는 큰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홈런을 두 방 날렸으니 밥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타이중 참사 당시에도 타율 4할을 기록하며 이대호와 함께 둘뿐인 타자 까방권을 얻었었다.[12]
2.1.3. 구대성
'''2000년 당시, 타자 쪽에 이승엽이 있다면 투수 쪽에는 구대성이 있다.''' 투수부분에서 고향팀에서 은퇴한 원조 병역브로커의 뒤를 잇는 2번째 합법적 병역브로커로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3,4위전의 수훈공신. 대표팀 선수들의 카지노 출입 파문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데다, 본인은 담에 걸려 팔을 제대로 뻗기 힘든 상황. 하지만 구대성은 괜찮다고 하고 등판했으며[13] 무려 '''156'''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승을 일궈냈다. 이로 인해 그의 별명은 '''일본킬러'''가 되었다.[14] 사족으로 구대성 본인은 96년에 MVP까지 받고 시즌후 입대하였으나 허리 디스크로 면제판정 받았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31세. 이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참가해서 활약했다. 일본 킬러 답게 일본전에서도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2.1.4. 정대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9회말 1사 만루, 한점차의 위기에서 율리에스키 구리엘 상대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그림 같은 '''병살타'''를 만들었다. 물론 야구팬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이라 임팩트가 오래 남아 있지만, 이 경기는 금·은메달을 다투는 결승전이었고 사실 병역혜택은 이미 확보해둔 상태였기는 하다.[15]'''궁'''내 '''채'''고의 '''싱'''카볼 투수 - 허구연
참고로 정대현 본인이 2000 시드니 올림픽을 통해서 병역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기자들조차도) 실은 그 전에 이미 군 면제를 받은 상태였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30세.
2.1.5. '''김현수'''
2000년대에 이승엽이 있다면, 2010년대는 김현수가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0년, 2014년,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선수들의 병역면제에 많이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전 이와세 상대로 대타 1타점 적시타는 굉장했다.
더이상의 병역 혜택은 없어졌지만, 그 뒤로 2009, 2013년 WBC에도 출전하고 2015, 2019 프리미어12에도 출전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9년 WBC에서는 베스트멤버에 들었고, 2015 프리미어12 MVP를 차지했다. 참고로 2008년 국대 출전이후 2017년 WBC를 제외하면 모두 출전했다.
2.2. 축구
2.2.1. '''거스 히딩크'''
한국인은 아니지만 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인물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폴란드를 이기고 미국과 비긴 뒤 다시 포르투갈을 이겨 16강에 진출시켰다. 이 상황에서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 선수가 응원차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수들에 대한 병역 혜택에 관해 문의했고, 대통령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 #
대표팀은 16강에서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연장 혈투 끝에 이기고 스페인과의 8강전 역시 승부차기로 이겨 4강 신화를 만들어내며, 병역 혜택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었다. 16강 진출로 이미 대통령의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는데, 4강까지 진출하자 병역 혜택은 별 문제 없이 승인되었다. 이로 인해 '''박지성''', 설기현, 이천수, 이영표, 송종국 등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히딩크 본인은 이로 인해 대한민국 명예 국민이 되었고 휘하 선수들 상당수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줬으며 조국인 네덜란드에서는 이 공로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2.2.2.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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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지도자로서 모두 달성한 케이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수비수로 나섰고, 대한민국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는 대한민국이 16강에 올라가게 되자,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선수들 병역에 관해 논의했고, 국가에서는 콜을 외치며 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해 주었다.#[16] 그리고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성공한 후의 그의 표정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이후 홍명보는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쌓았고,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 최초 4강 진출인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브라질에게 지긴 했지만 한일전에서 2:0 완승으로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사상 최초의 메달'''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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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출전이 없는 선수는 메달을 따도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3,4위전에서 유일한 비출전 선수인 김기희를 후반 44분에 투입, 모든 선수들에게 동메달+병역특례를 선사했다. 하지만 당시 홍명보 감독은 김기희를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고.#
다만 홍명보 감독 본인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병역 생활을 했었고 그나마 4대 독자여서 6개월만 복무했다. 이후 포항에 입단해서 커리어는 모두가 아는 대로. 선수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것은 33세 때, 43세 때에는 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되었다.
2.2.3. 이광종
'''28년만에 아시안게임 축구에서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끈 감독.'''
게다가 무실점 전승우승으로 단 한 번도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 모든 상대를 이겼으며 그 결과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모두 병역 특례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이광종호 참조.
2.2.4. 김학범
'''두 대회 연속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 조현우와 손흥민, 이승우, 그리고 자신의 애제자 황의조의 병역특례를 기어이 이끌어 준 감독.'''
반둥 쇼크를 시작으로 가시밭길로 흘렀던 아시안 게임 축구였지만,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일본을 차례대로 꺾고 결국 19인 미필자 및 의경 1인[17] 으로 구성되었던 선수단 전원에게 모두 병역 특례를 안겨줬다. 특히 손흥민의 병역 특례 여부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외신들의 관심거리였다. 자세한 내용은 김학범호 문서 참조.
2.3. 바둑
2.3.1. 이슬아
'''최연소 + 여성 합법적 병역 브로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녀 페어에서 박정환 8단(현 9단)과 출전하여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93년생인 박정환에게 군면제를 선사했다.
1991년 생으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불과 '''19세'''. 여성으로서는 이효정의 뒤를 이은 두번째 합법적 병역 브로커다. 2019년 이슬아는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여 바둑기사직을 사직하고, 중국인 바둑기사와 결혼하는 방법으로 바둑계를 완전히 은퇴했다. 2019년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다.
2.3.2.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에서도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강동윤, 조한승 두 명이 추가로 병역혜택을 받게 되었다. 특히 조한승은 현역 군복무 중 소속 부대의 배려로 한국대표 선발전 및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 획득하였다. 그리하여, 남은 복무기간을 바둑기사 생활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이미 병역을 마쳤거나 특례를 받은 위 세명[18] 이 합법적 병역 브로커에 이름을 올렸다. 브로커가 된 나이는 이창호가 35세, 이세돌이 27세, 최철한 25세.
참고로, 바로 전날 혼성에서 금메달을 따서 이미 자격을 획득한 박정환은 브로커로 쳐주지는 않는 듯 싶다.
2.4. 배드민턴
2.4.1. 이효정
이 쪽 분야에서는 드물게 이분은 여성. 일명 '''브로커계의 대모(代母).'''
배드민턴 선수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용대 선수와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 금메달을 획득하며 이용대에게 혜택을 주었다. 당시 나이는 27세로 합법적 병역브로커가 되셨다. 2년후인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신백철 선수와 혼합복식에 출전하여 또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신백철 선수에게 혜택을 주었다. 이렇게 2년만에 두 선수에게 금메달을 하사(?)하고서는, 나이+결혼을 이유로 국가대표 은퇴하였다.
2.4.2. 이현일
선수 본인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배드민턴 단체전 금메달을 통해 병역 면제를 받았다. 원래 단식 전문이라 병역 브로커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고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났다면 이 문단은 만들어 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단체전 단식의 구원투수로 호출되어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했다.
8강전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5게임 마지막 단식 주자로 나가 승리하여 팀을 4강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인 중국전에서도 1, 2게임을 이긴 뒤 3, 4 게임을 내리 내주며 쫓기던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와 중국 선수를 2:0으로 잡으면서 금메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단체전 우승으로 인해 현재 복무중인 고성현과 아직 미필인 김기정, 김사랑, 이동근, 전혁진까지 무려 5명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35세의 나이에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되어 한방에 5명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줬지만 이제 은퇴하면서 합법적 브로커직에서 물러났다.
2.5. 기타 종목
2.5.1. 이형택(테니스)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테니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병역 특례를 받은 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도 남자 테니스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되어 전웅선, 정희석, 안재성 등 후배들의 병역 특례를 이끌어냈다.
다른 종목만큼 알려진 종목이 아니지만 국내 테니스의 사정상 개인 ATP 투어 랭킹보다는 데이비스컵 한국 대표팀 셔틀, 국내 챌린지 대회 흥행카드 등 어른의 사정으로 인한 국대 에이스 역할을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 실력으로 따지면 비운의 선수.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25세. 그나마 체육훈장이라도 받아 다행이다.
더 안습인 것은 비인기 종목 특성상 지독하게 안 알려져 있다가 차후 2019년 방송출연을 통해서야 겨우 저명도가 올라갔는데, 예능에서 활약이 나쁘지 않아 다행일 수도.
2.5.2.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
이 부문에서 '''동계 종목의 본좌'''이자 '''살아있는 전설''' 되신다. 참고로 병역 브로커 3(李)중 막내다.[19]
일단, 이승훈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10000m 금메달, 50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자력으로 병역 특례를 확보했다. 다른 여러 브로커들과 비슷하게 면제로이드를 복용하고, 시혜자가 된 경우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 종목에서 '''러시아''' 팀과 '''디펜딩 챔피언''' 캐나다 팀을 잇따라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 네덜란드에 이어 은메달을 수상하면서 김철민과 주형준의 병역 특례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특히 준결승 상대였던 캐나다와의 경기는 초반 불리함을 딛고 후반에 스퍼트 를 내면서 역전승을 거둔 경기이기도 하고, 상대였던 캐나다는 동계 올림픽 남자 팀 추월 '''디펜딩 챔피언'''이었었기에 더 의미가 깊다. 이승훈 본인 또한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5000m와 아슬아슬하게 동메달을 놓친 10000m의 아쉬움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27세.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빙속 남자 팀 추월에서 중후반부터 선두로 나서 팀을 이끌며 금메달을 수상, 만 17세인 후배 김민석을 구원했다. 그리고 김민석은 다음 날, 같은 대회 1500m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추월에서도 이탈리아, 뉴질랜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표팀 막내 정재원의 병역 특례를 이끌었다.[20] 참고로 정재원은 대회 시점에서 만 16세로, 주민등록증이 나오기도 전에 병역부터 해결하였다. 특히 뉴질랜드와의 준결승에서는 0.4초 차이가 나던 막판 2바퀴 반을 남겨두고 선두로 나와 동생들을 이끌며 주특기인 스퍼트를 시전, 반 바퀴를 남겨둔 시점에 0.07초 차로 역전하더니 결국 0.72초 차로 승리했다. 특히 마지막 랩타임은 26초대가 찍혔다.
2.5.3. 윤경신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부 핸드볼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신과 동료들이 병역특례를 받은 이후에 바로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2010년에 마지막으로 아시안게임에 참여하고 떠나기 이전까지 무려 5번이나 금메달을 쟁취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가 이끌던 많은 후배 핸드볼 선수들이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따내게 되었다.
상술한 이형택보다도 더 나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21] , 똑같은 비인기 종목이라도 테니스는 국내에서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지만 핸드볼은 하계올림픽 기간 이외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오심 등 국제 대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국민들이 그들의 고충을 모를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대팀은 여자 핸드볼 국대팀보다 선수층이 얇은데다가 병역 특례가 걸릴만한 국제 대회에서 입상한 기록 역시 밀린다.[22] 그런데도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건 본인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윤경신 선수에게 위로가 될 점은 한국 핸드볼 국대팀 남자부가 아시아 최강인 것과[23] 선수 본인이 한국 핸드볼 선수들 중 남녀 통틀어서 제일 커리어가 좋은[24] 점이 위안이 되지 싶다.
[1] 주로 병역특례를 이미 받은 사람, 현역이나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 등으로 군 복무를 끝낸 사람이 대부분이다. 혹은 질병이나 부상, 가정 형편 등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은 사람도 있다.[2] 배드민턴, 탁구, 펜싱 등.[3] 당시는 뉴욕 메츠 더블A 마이너리거.[4] '''오승환''', '''김태균,''' 이진영, 정성훈, 최희섭 등[5] 직전 시즌인 2005 시즌 22승...[6] 이 대회에서 이승엽은 5홈런 10타점으로 홈런-타점왕을 모두 먹었다. 흠좀짱[7] 물론 마쓰자카는 이후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이와세 히토키는 일본 통산 세이브 1위의 일본 대표 마무리 투수다. 이와세는 2008년 후반 부진하긴 했지만 그리 큰 부진도 아니다. 물론 명성에 맞지 않게 2008 올림픽 때 너무 부진했다.다만, 2006 WBC 때 이시이 히로토시(도쿄대첩의 원흉)나 돈트렐 윌리스를 생각해 보면... 물론 홈런을 맞아서 부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부진의 조짐이 있었으니 홈런을 맞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8] 승부치기에 들어간 중국전 끝내기 안타를 쳤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일본 팀을 묻어버리려는 생각에 너무 깊게 삽질을 했다는 말도 있었다. [9] 처음 맞았을 때 넘어가리라 생각한 사람은 적었다. MBC의 한광섭 캐스터도 우측에 높이 떴다며 반쯤 포기했는데 옆에서 누가 자꾸 크다고 소리 지른다. [10] '''류현진''', 장원삼, 이용규, 김현수, 윤석민, '''한기주''', 강민호, '''이대호''', 이택근, 고영민, 권혁, '''김광현''', 정근우, 송승준.....어마어마하게 많다. 이승엽의 역전 투런 한 방에 병역 봉인 해제. 그 중에는 2006년 도하 참사를 겪은 멤버들이 많다.올림픽이다 보니 준결승전에서만 이겨도 병역특례가 나온다. 지면 3.4위전에서 이겨야 한다.[11] 운동선수가 부상으로 면제를 받는 것은 의외로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몸을 혹사 시키기 때문. 투수 중에선 어깨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4급 판정을 받게 된 사회복무요원이 참 많다. 참고로 박용택도 턱부상으로 병역면제다.[12] 축구는 박주영이 2014년 월드컵때 못해서 말그대로 역적이 되었고, 94년 황선홍이 심하게 삽질하는 바람에 이완용 이래 최대 역적 소리를 들었다. 축구는 실시간으로 뛰어다니는 종목이고 범위가 넓기때문에 어떠한 선수가 부진하면 답답해진다. 국대에서 장현수가 삽질하니 수비가 뻥뻥뚫리지 않은가? 그러나 야구는 누구 한 명이 지독하게 삽푼다고 해서 망하는 종목이 아니다. 순서대로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08 베이징 때 조별리그에선 이대호와 김현수, 그리고 알토란같은 활약을 한 고영민이 있었다. 10아시안 게임에서도 김태균이 못했지만 추신수가 멱살잡고 파괴왕모드였고 이대호, 강정호가 엄청잘했다. 추신수도 09년도 wbc때 조별리그서 삽펐고, 최희섭도 06년도 wbc에서 멕시코전까지 침묵했다. 하지만 추신수 최희섭 전부 결정적일때 한방해주었고 그 부진을 만회해주는 선수들이 06때 이승엽과 이종범, 09때 김태균, 이범호, 김현수가 있었다. 17시즌 극초반에 김주찬이 3번에서 1할치면서 흐름을 다끊어먹었지만 팀승률은 좋았고 그걸 메꾸어주는 선수들이 많다. 만약이지만 이승엽이 조별리그 캐리하고 준결승 결승서 삽질했으면 10년 월드컵의 이동국, 아니 94월드컵의 로베르토 바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바조가 그 승부차기 실축으로 인해서 역적이 되었으니..[13] 구대성 항목을 참고하자. 뒷이야기가 심히 흠좀무하다.[14] 사실 프로 이전 아마시절 때부터 이미 일본킬러로 이름나 있었다.[15] 이전 경기였던 일본전에서 9회 2아웃에 이용규가 플라이 아웃잡고 주저앉으며 감격한 걸 생각하면 알기 쉽다. 참고로 이 모습이 일본측에서는 상당히 인상깊었다는 후문.[16] 이로인해 '''박지성''', 설기현, 이천수, 이영표, 송종국 등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17] 단, 군 복무 중이던 황인범은 전역 처리가 된다.[18] 참고로 최철한은 '청각장애 1급'인데, 이와 별개로 2004년 5회 응씨배 준우승으로 예술체육요원 혜택을 받아 이미 병역을 해결한 상태였다.[19] 첫째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게 열심히 임대료를 뜯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4대존엄(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오승환) 일원이기도 한 '''국민타자 이승엽'''이고 둘째는 대모(大母)인 이효정이다. 이승엽과 이효정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동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06년 시혜자이기도 했던 이승엽의 팀후배 오승환도 금메달리스트 동기이다.[20] 전술했듯이 후보 선수인 주형준은 소치 동계올림픽 팀추월 은메달로, 김민석은 2017 동계 아시안 게임 2관왕으로 병역특례를 이미 확보했다.[21]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JTBC에서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뭉쳐야 찬다에 나온 적이 있다. 전자는 아예 고정 멤버이며, 후자는 2020년 10월 11일에 방영한 66화에 용병으로 등장하였다.[22] 실제로 여자 핸드볼 국대팀은 올림픽에 나갈 경우 못 해도 기본 4위인데다가 메달을 따고 돌아온 적도 상당한 반면, 남자 핸드볼 국대팀은 메달권에 든 적이 88년 서울 올림픽 단 한 번 뿐이며, 그마져도 은메달에 그쳤다. 당장 윤경신 본인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는 윤경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 반대이다. 애초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다섯 번이나 딴 능력자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한국 남자 핸드볼 국대팀이 세계 무대에서 유럽 대표팀들과 메달을 놓고 경쟁하기에는 약해서 그런 것이다.[23] 물론 한국 핸드볼 국대를 아시아 최강으로 만든 건 윤경신을 포함한 당시 국대 핸드볼 남자부에서 선수로 뛰었던 본인들이다.[24] '''농담이 아니다.''' 윤경신은 핸드볼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독일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데다가 함부르크에서 5년간 주장까지 지냈으며, 총 7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했다. 게다가 그의 통산 득점은 2908골로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왕,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이다. 그리고 유럽 핸드볼 챔피언스 리그(EHF Champions League)에서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에 득점왕을 차지했고,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세 대회 연속(1993, 1995, 1997)으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또한 2001년에는 세계 핸드볼 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 커리어를 프로축구선수로 대입하자면 종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그에 못지 않은 위상을 가진 분데스리가나 라리가, 세리에 A, 리그앙의 명문팀에서 뛰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생활의 1/3에서 1/4 정도 되는 기간을 그 팀의 주장으로 있어야 하며, 현지에서 한 번 경기할때 마다 최소 4득점 이상 넣어주어야 한다. 거기다가 대표팀을 뛸 경우 아시안게임 우승과 대륙컵 우승은 물론이고, 월드컵과 올림픽에 나가서 뛸 경우 최소한 3위 이상은 해야 윤경신과 비슷한 경력을 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 조건을 만족시킨 한국의 프로축구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