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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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리그기간 : 2000년 7월 24일 ~ 2000년 11월 1일
- 24강 : 2000년 7월 24일 ~ 2000년 9월 1일
- 16강 와일드카드 : 2000년 9월 4일 ~ 2000년 9월 6일
- 16강 : 2000년 9월 11일 ~ 2000년 10월 4일
- 16강 재경기 : 2000년 10월 6일
- 8강 : 2000년 10월 9일 ~ 2000년 10월 18일
- 4강 : 2000년 10월 23일 ~ 2000년 10월 24일
- 3-4위전 : 2000년 10월 31일
- 결승전 : 2000년 11월 1일
- 사용 맵 : 블레이즈(Blaze), 다크 스톤(Dark Stone), 아방가르드(Avant Garde), 스페이스 오디세이(Space Odyssey), 정글 스토리(Jungle Story)
- 조 편성
- 우승 김동수, 준우승 봉준구, 3위 박찬문, 4위 김상훈
- 특이사항
- 대회 중간에 후원사가 게임맥스[1] 에서 프리챌로 변경.
- 이기석 예선광탈로 쌈장 이기석 시대 종말 및 김동수, 기욤 패트리, 강도경 등 여러 선수들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
- 온게임넷에서 주관한 최초의 리그.
- 최초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Mega-web station에서 현장 녹화방송.
- 최초로 24강 체제 진행.
- 스타리그 사상 최초의 4저그조 탄생(24강 D조)
- 로얄로드(첫 대회 진출에 우승)와 가을의 전설(가을이 되면 프로토스가 우승한다는 징크스)의 시작.
-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개인리그 사상 유일무이하게 테란이 16강 이전에서 전멸.
- 전태규의 스타리그 데뷔.
- 입상 선수가 차기 리그 시드를 받지 못함(왕중왕전의 우승/준우승자에게 시드 배정).
- 최초로 스튜디오가 아닌 외부에서 결승 진행(결승장소 :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이후 결승전에 관중몰이가 시작
- 브루드 워로 진행된 스타리그 사상 토스가 유일하게 3:0 셧아웃으로 우승 및 저그 상대로 우승[2][3]
- 스타리그 사상 최초의 몰수패(봉준구 VS 신성철의 24강 F조 경기, 봉준구가 지각하면서 몰수패처리되었다. 다만, 몰수패라 하더라도 24강 전적은 적용이 되나 전적 관리상 승률과 연승은 적용되지 않는다.)
- 우승자 상금 2,000만원 및 준우승 상금 : 없음[4] .
- VOD 목록[5]
2. 온게임넷의 출범
2000년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드디어 주관한 스타리그.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타이틀을 가진 최초의 리그이다.[6]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2000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의 흥행에 힘입어 드디어 2000년 7월 24일 온게임넷이 개국, 투니버스에서 독립된 스타리그는 그 개국일에 맞추어 리그가 시작되었다.[7]
3. 가을의 전설의 시작
스타리그 1회 진출자이며 프로토스인 김동수가 당시 아트라스, 킹덤 언더 파이어 등의 여러 게임 리그에서 활약했던 봉준구를 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3:0 이기고 우승[8] 하며 후에 온게임넷에서 뼛골까지 우려먹는 로얄로드와 가을의 전설 떡밥을 낳은 리그이기도 하다.[9]
다만 24강 체제가 굉장한 논란이 됐었는데 와일드 카드전까지 치르려니 리그가 두 배 정도 길어지는 바람에 전 대회들과 비교해 여러모로 실패한? 리그란 인식이 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토스가 우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을의 전설이 된 리그.[10] 또한 이후 스타1 양대 리그,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팀리그, 위너스 리그, KT-KTF 프리미어 리그 등 주요 대회에서의 언제나 개최되었던 외부 장소에서의 결승전 진행도 이 대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리그 종료 이후 우승자가 아닌 99 PKO와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 프리챌배 스타리그의 입상자들을 모아 왕중왕전을 개최, 이 대회의 우승자에게 차기리그 시드를 배정해 시드 배정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또 왕중왕전의 우승자 또한 스타리그 우승자와 같이 대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이견이 있었으나 결국 온게임넷에서 왕중왕전을 단순한 이벤트전으로 정의하며 왕중왕전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11]
[1] 정일훈 캐스터의 회사로, VOD서비스로 유명하였다.[2] 다만 위에 언급된 것처럼 결승전 2경기에서는 봉준구가 프로토스로 플레이를 했기에 순수한 프로토스 vs 저그 기록은 아니다.[3] MSL에서는 3.3 혁명이 유일하다.[4] 유일하게 온게임넷에서 펼쳐진 준우승자에게 상금이 0원 시즌이였다.[5] 각 라운드별 재경기와 결승전의 VOD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볼 수 있다. 온게임넷에서 실수로 넣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튜브에 "김동수 봉준구" 라고 검색을 하면 해당 경기가 있다. 앞에 영상은 3차전만 올린 것이다. 이유는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6] 이 타이틀은 NHN 한게임배까지 사용하다가 질레트부터 '스타리그'로 명칭을 변경했다.[7] 다만 이 대회는 투니버스에서도 동시에 중계해줬다. 다음 대회부터 완전히 온게임넷에서 중계한다.[8] 다만 봉준구의 경우 결승전 2경기에서는 저그가 아닌 프로토스로 플레이를 했다.[9] 그리고 정확히 8년 후인 2008년 11월 1일 송병구가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 정명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가을의 전설을 이어갔다.[10] 그도 그럴것이 이 당시 4강에 올라온 선수들의 종족분포를 보면 세명이 모두 '''저그'''였고, 김동수 혼자만 '''프로토스'''였다. 무려 다전제로 이들을 모두 뚫고 올라왔으니 전설이 될 법도 하다.[11] 하지만, 이후 많은 논란을 야기 시켜 팬들에게 왕중왕전 따위 왜 하냐고 엄청나게 까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