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패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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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 출신으로 한국에서 활동한 남성 방송인이며, 과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다. 흔히 영어권으로 생각되는 캐나다 출신이지만, 그 안에서도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며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퀘벡 주 출신에 프랑스식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계라 퀘벡 프랑스어를 가장 익숙한 모어로 사용한다. 영어를 한국에 와서 배웠고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비긴 어 게임에서 밝혔다. 프랑스어가 모어인 퀘벡 출신 캐나다인은 캐나다의 다른 지역, 특히 미국, 영국 등 다른 영미권 국가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데니스 강·줄리엔 강과 비슷하지만 이들 형제는 프랑스인 모친에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자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출신으로 초창기 최강자로 유명해서 0대 본좌로 불리기도 했다. 1998년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며 북미를 정복하고 한국으로 와서 온게임넷 스타리그마저 우승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었으며 이후 기량 하락으로 임요환에게 1인자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 후 한국에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다 비정상회담으로 방송에 데뷔하여 이후 계속 방송인 생활을 하고 있다.
외국인 프로게이머 중에는 드물게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던 선수였는데 당시에는 외국인 치고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오래 산 것 치고는 한국어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에 거주 했었으며[1] 한국어는 이화여자대학교 어학당에서 배웠다. 생활 어휘는 능숙하지만 고급 어휘는 헤매고, 잘 모르면 프랑스어나 영어와 섞어서 말하는 교포 스타일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래서 <비정상회담>에서는 한국어 하위권으로 꼽힌다. 그리고 방송에서 인터뷰할 때 한국어로 얘기할 때가 많은데 이걸 온게임넷은 다시 영어로 통역해서 외국 선수들에게 말해준다. ~~
2. 활동
2.1. TV 프로그램
- 체험 삶의 현장
- 비정상회담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님과 함께 시즌2
- 이웃집 찰스
- 선암여고 탐정단
- 게임쇼 즐거운 세상
- 어바웃 스타크래프트
- 뭉쳐야뜬다(알베르토 몬디, 다니엘 린데만, 샘 오취리와 함께)
- 멜론 뮤직어워드(알베르토 몬디, 다니엘 린데만과 함께)
- 연예반장 절친노트(알베르토 몬디, 다니엘 린데만과 함께)
- 마녀를 부탁해(알베르토 몬디, 다니엘 린데만, 장위안과 함께)
- 한국기행 - '알베르토와 기욤의 한국방랑기'(알베르토 몬디와 함께)
- 다문화 청소년 힐링캠프, 꿈을 쏘다
- Game real life 5
- 1대 100 - 516회 1인
- 비긴어게임
2.1.1. 비정상회담
'''알베르토 몬디와 함께 시즌 1부터 2까지 비정상회담 패널 중 한 번도 교체되지 않은 멤버'''이다. 2000년대 초반 스타를 하던 많은 청장년들이 이 프로를 통해 기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3년 인터뷰에서 밝혔던 "연예계에 진출하고 싶다"는 꿈을 이룬 셈이 되었다.
비정상회담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으로 보인다.
좋은 의미로 사고 방식이 자유분방하며, 순진함과 백치미 속성도 약간 갖고 있다. 비정상회담에서 '''천재와 바보를 오가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부연설명하자면, 기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한해서는 '''타일러 라쉬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특유의 순진한 성격과 시너지를 일으켜 귀요미스런 모습을 보인다. 별명도 '''기요미'''
당연하지만 비정상회담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제작진들이 밀고 있는 캐나다 바보형. 일각에서는, 자막으로 제작진이 바보형 캐릭터를 밀고 있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시청자들도 있다. 딱히 바보스러운 언행이 아닌데도 이걸 무작정 바보형으로 밀다 보니 억지 밈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다.
캐릭터는 방송에서 포장한 이미지일 뿐, 전직 프로게이머였던 만큼 지적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토론 경향은 상당히 진보적이며 열린 사고를 지향한다. 캐나다 출신에 직업 자체도 개척자 성격이 강한 직업의 '''개척시절'''을 어린 나이에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겪었으니 말 다했다.
장위안이나 에네스 카야의 다소 과격하거나 강경한 발언에도 흥분하는 일이 없다. 그저 장위안이 '한 마디만 할게요' 하고 몇 마디 하면 '한 마디만 한다며' 하고 토 다는 식이다. 또한 발언 직 후 와글와글 들고 일어나는 패널들에게 "워워워~ 한 명씩 대답해."라며 분위기를 정리하기도 한다.
초반에는 테라다 타쿠야와 함께 안습 분량의 대명사였지만 방송에 적응한 이 후 빠르게 자신의 분량을 확보했다.
방송 초기에만 해도 사기 당했던 사실을 이용한 자학 개그가 주로 나왔는데, 그 쪽 얘기가 나오면 '''영락없이 인간극장이 된다.'''
일례로 형편이 어려웠을 때 700달러짜리 어머니의 선물을 전당포에 맡겨 20만원 받았던가, 한국 체류 기간이 길고(2015년 기준 한국에서 16년을 살았다.) 원래 한국말 실력이 상위권이니만큼 더 큰 활약이 기대되었는데, 실제로 금방 포텐이 터졌다.
한국 체류 경험이 오래 되어서 억양이나 발음은 훌륭하지만 은근 어휘에 약한 모습을 보여줘서 깨알 같은 웃음을 담당하고 있다.
'인구'를 '인간'이라고 말한다거나 다케다 히로미츠에게 '어리지 않은' 나이에 말할 것을 '늙은' 나이라고 직설적으로 말을 해서 웃음을 주었다.
방송을 계속 하면서 최근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18회에서는 '무정하다'라는 어휘를 익혀 와서 단 한 번도 자기한테 연락한 적이 없다던 전현무에게 써먹었다.
이 때문에 전현무는 18회 내내 무정하다는 말로 디스를 당했다. 그리고 그 후로 전현무에게 지속적으로 무정하다는 어필을 하여 전현무는 무정한 남자란 기믹을 얻게 되었다. 또한 로빈 데이아나이 토론 도중 장위안에게 네거티브하다는 말을 하자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부정적인!!'이라고 외치며 반대말인 positive까지 떠올리며 큰 발견을 한 듯 좋아했다.
방송 초기만 해도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상대 패널의 의견을 조금 더 보충해준다거나 난상 토론이 될 때 알베르토처럼 분위기를 정리하기도 하는 등 토론 참여 비중이 점차 상승했다.
거기에 본인의 순진함 컨셉이 자리잡으면서, 이젠 비정상회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자막에는 알베르토 몬디나 로빈 데이아나처럼 말끝에 '욤'이 붙는다.
묘하게 한우에 집착하는 육식남이다. 1회 때 성시경이 회식 때 한우를 쏘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회식은 감자탕집에서 했고 돈도 안냈다고 한다.
에네스 카야가 라마단 기간이라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에네스는 무슬림이라 아예 돼지고기를 안 먹는데 감자탕을 먹었다고? 그리고 라마단은 '''해가 진 뒤에는 먹어도 된다.''' 그래서 밤에 폭식해서 오히려 라마단 기간에 찌는 사람도 꽤 있을 정도이다.
4회 촬영 후 전현무가 쏴서 드디어 한우를 먹었다. 이번엔 약속대로 성시경한테 한우를 사라는 식의 무언의 압력을 보냈다. 결국 전국한우협회가 비정상회담에게 한우 회식을 쐈다. 이후로도 방송에서 꾸준히 고기와 엮이는 걸 보면, 제작진들이 '소고기'욤 기믹을 밀어주는 듯하다.
테라다 타쿠야가 북한의 블러핑에 전쟁이 날까 무서워서 한국을 떠나려 한 적이 있다고 하자, 벼락이 마구치는 날에는 전쟁이 시작된 것 같아서 무섭다고 했다가 덩치는 산만해도 겁이 많다고 디스당했다.
'''노래를 정말 못 한다.''' 2014년 9월 8일 방송분에서는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열창하며 저질 가창력을 뽐냈다. 이 때 모두가 빵 터진 상황에서 평온을 잃지 않던 다니엘 린데만의 표정이 압권이다. 이 노래 실력은 어디 안 가서 17회에서 장위안 다케다 히로미츠와 함께 히든싱어를 패러디하며 성시경의 노래를 불렀는데 또 한 번 패널들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박장대소했다.
이 후로 음치 기믹이 아예 고정이 되어서 방송에서 노래 부르는 역은 기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일명 '''비정상회담의 명창名唱'''.
3회에서 과거 "applied science(응용과학)를 공부했다고 하였다고 말했다. 그 단어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타일러가 답을 했다.
7회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조세호가 뱃살로 개그를 쳐서 본인도 배를 깠는데, 배에 털이 무성하여 자체 모자이크 처리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16회에서 한국어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으로 된소리 발음을 꼽았다. 세게 발음할 때는 되지만 약하게 발음할 때는 안 된다고. 하지만 성시경에 의해 금방 해결되었다.
17회에서 드디어 한명 빼고 빚을 다 갚았다고 한다. 그 한명은 다름 아닌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딱히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아서 스트레스 쌓일 일 없다고 한다(괜히 혼자 못받은게 아니다). 그리고 키이라 나이틀리 닮은 꼴이란 평을 받았다.
18회에서 전현무가 녹화 끝나고 자신에게 연락 한 번 한 적이 없다며 어학 당에서 배운 표현을 응용해서 '''무정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에 패널들이 빵 터졌고, 전현무는 무정한 기믹을 얻게 되었다. 이후로도 전현무와 투닥 거리는 모습을 보이며 방영분을 확장하고 있다.
22회에서 G11 패널들 중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지겠냐는 안건에 사라질 것이라고 손을 들었다.
여러 게스트들이 다소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그런 문제에서 굉장히 민감하고 진보적인 국가인 캐나다 태생이어서 그런지 어린세대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으니 희망이 있을 거라고 발언했다.
또 캐나다는 인종차별보다 언어차별이 있어서, 퀘벡에서 프랑스어를 못하면 무시당하고 그 외 캐나다 지역에서 영어를 못하면 무시당한다는 캐나다 특유의 문제점을 발언했다.
크리스마스 특집에서 "분명 내가 나이가 장위안보다 많은데 형이라고 안 부르는 것이 싫다"를 안건으로 상정했는데, 장위안이 기욤 그 특유의 호구스러움 때문에 형이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엔 형으로 부르기로 정했지만, 언제까지 지켜질지. 그리고 어릴 때 가족들이랑 같이 교회에 가서 노래를 부른 추억을 말하니 의장단에서 '아니 노래를 왜..' 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는데 아무래도 정말로 음치인 듯,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
비정상회담 멤버가 G12로 늘어나면서 자리가 바뀌었는데 맨 끝자리로 이동했다. 때문에 MC들과 멀어지면서 발언권을 얻기 힘들어졌는데, 이 때 제작진에게 스케치북을 빌려 '''"저기욤!"'''을 써서 보여줬다.
테라다 타쿠야의 섬섬옥수와 같이 기욤의 아이덴티티가 될 것으로 보인다. 30회에서는 '''요기욤'''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그리고 본인은 캐나다의 부패인식지수가 상당히 높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뉴스에서 계속 나오니까 상당히 부패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여기에 성시경은 작은 것들도 전부 다 잡아내니까 부패 인식 지수가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을 주제로 한 32회에서는 장위안 유세윤과 함께 제작진의 몰래카메라 대상이 되었는데 이때 굉장한 의리를 보여주었다. 다니엘 린데만이 제작진의 부탁으로 "사실 나는 오스트리아인인데 그간 독일인이라고 속였다.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언어(독일어)와 민족이 같아서 약간의 오스트리아 식 독일어 사투리 억양을 제외하면 겉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 그런데 내 친구가 이걸 퍼뜨린다고 하는데 좀 도와 달라"라는 거짓말을 한 것을 정말로 믿고서 위로도 해주었다. 게다가 이 후 제작진이 약속을 지키나 검증하기 위해 녹화 전에 성시경을 시켜 이 루머를 상황을 모르는 다른 패널들(알베르토 몬디 로빈 데이아나 블레어 윌리엄스 일리야 벨랴코프 수잔 샤키야)에게 퍼뜨리게 하자 "내가 다니엘 린데만의 여권을 봤는데 독일인이 맞던데?"라고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편들어주었다. 이 때 다른 몰래카메라 대상이었던 장위안은 성시경의 주의를 돌리려 멘트를 연습한다며 중국어를 늘어놓았고, 유세윤은 괜찮다고는 했지만 내심 '이렇게 또 한 명이 하차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편 이 방송에서 전현무와 궁합이 가장 안 맞는 것으로 나왔다. 사실 방송에서 보면 이 둘의 성격이 극과 극이다.
35회의 '옷장을 부탁해'에서는, '유행에 둔감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옷장을 공개했다. 이화여자대학교 티셔츠와 에코백, 15년차 하와이안 셔츠, 스타크래프트 레이어드 티셔츠 등이 공개되었다. 어릴 적 프로게이머 기욤을 보고 자란 시청자들은, 이 티셔츠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실제로 기욤도 방송에서 이 티셔츠를 아낀다고 말했다.
게스트로 출연한 문희준 왈 "저런 옷은 헌옷 수거함에서 많이 봤다". 게다가 데이트 패션을 공개할 때는 블링블링한 '''핫 핑크 티셔츠'''(본인 말에 따르면 진짜 크리스털이 달려 있다고)에다, 색감이 묻어날 듯 엄청나게 짙은 파란색에 밑단은 짤막한 '''청바지'''를 입고 그 밑에 '''정장 구두'''를 코디하는 엄청난 패션을 보여 다시 한 번 모두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본인은 이게 뭐 어떠냐는 듯 당당했지만, 사실 의외로 명품은 많은 편인데 코디 능력이 영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쇼핑 철학에 대해서는, 자신은 매장 직원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대로 산다고 대답했다.
36회의 눈물 흘리기 배틀에서는 2라운드의 매운 라면 먹기 대결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가장 먼저 그릇을 비우더니 3라운드의 양파 갈기 대결에서는 갈다 말고 "이런 거 그냥 오렌지처럼 먹을 수 있겠다"며 정말로 양파를 무슨 사과 베어 물듯이 씹어 먹었다.
37회에서는 화성에 사람이 살기 힘든 이유를 아주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많은 이들이 기욤이 저렇게 똑똑했냐면서 놀라워했다.
43회에서는 유세윤과 타일러 라쉬와 함께 암기력 테스트를 해서 1등을 했다. MBN 끝장대결 4회에서 7장의 카드를 다 기억했으니 어느 정도 예상 할 수 있었지만 상대가 타일러였다.
44회에서는 G12와 의장단, 허영만 화백의 캐리커처 그리기에 도전해 전현무의 캐리커처를 그려 허영만 화백으로부터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받았다.
먼 미래에 인간의 직업은 사라질 것인가에 대한 즉석 표결에서, 먼 미래도 아닌 우리가 죽기 전에 거의 다 사라질거라고 단호하게 발언했다.
어렵고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직업은 모두 로봇으로 대체될 거라고 말했는데, 워낙 단호한 어투로 말해서 '욤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이 생겼다.
60회에서는 식신 정준하를 상대로 비정상 식신대회를 가졌다. 찬물을 섞는 꼼수도 부렸지만 승자는 정준하.
66회에서 기욤이 자신과 임요환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79회에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사상을 주제로한 토론에서 과학의 발전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해서 과학만능주의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82회에서 게스트로 나온 유시민에게 '''자기PR을 잘 했으면 세 번이나 떨어지진 않으셨겠죠'''라고 핵폭탄직구를 날렸다. 유시민은 한참동안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후에도 패널들 상대로 돌직구를 날려 여러 사람 가슴에 명치를 날렸다.
리뉴얼 뒤에는 전체적으로 예능 보다는 토론 중심이 된 프로그램 성향에 맞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의외로 토론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향은 진보적이며, 과학 신봉적. 과학 관련 주제가 나오면 일반 상식선에선 꽤나 높은 수준의 과학 지식을 보여주며 토론을 이끌기도 한다.
144회 때 세대 간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 '여성, 인종 등의 예를 보면 항상 이전 세대가 틀렸고 신세대가 옳았다' 라고 하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신세대의 의견, 진보적인 의견이 옳고 전반적인 모더니즘(인류의 사상은 계속 진보하고 있다)는 신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다른 패널 들에 비해 밀리지 않을까 우려가 많았으나, 알베르토 몬디와 함께 유이하게 리뉴얼 뒤에도 남은 패널 답게 활약 중에 있다.
비정상회담 126화에서 말하길 원래 더 지니어스 시즌1때 섭외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방송활동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는데 홍진호가 출연후 잘된 것을 보고 비정상회담의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2.1.2.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2.2. 스타크래프트
2.2.1. 주요 경력
- 1999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 시즌1 4강[2]
- 1999 스포츠 서울'배 스타크래프트 챔피언쉽 개인전 준우승
- 1999 i2e2 세계 랭커 인비테이셔널 1vs1 토너먼트 우승
- 1999 스타 크래프트 유럽 오픈 우승
- 1999 PGL - 북미 프로게이머 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3][4]
- 1999 PGL 시즌3 샌프란시스코 대회 3위
- 1999 PGL 시즌4 뉴욕 대회 우승
- 1999 프랑스 파리 오픈 우승
- 1999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쉽 우승 (3:0 김창선)
- 2000 크레지오 코넷배 스타 8인전 우승 (3:1 국기봉)
- 2000 2000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 우승 (3:2 강도경) ( 우승 상금 : 2,000만원 )
- 2000 SBS배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우승
-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2000 슬기방 초청전 우승
- 2000 온게임넷 스타리그 왕중왕전 우승 (3:2 국기봉)
- 2000 코리아 e스포츠 챔피언쉽 KUF 부문 4강
- 2001 크레지오 종족별 최강자전 준우승 (3:4 최인규)
- 2001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 ( 3위 상금 : 300만원 )
- 2001 WCG 2001 캐나다 국가 대표 선발전 스타크래프트 부문 우승
- 2001 온게임넷 Last 1.07 특별전 준우승 (0:3 임요환)
- 2001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2002 2002 KPGA투어 1차리그 16강
- 2002 1차 GhemTV 스타리그 준우승 (0:3 한웅렬)
- 2002 2차 GhemTV 스타리그 16강
- 2002 WCG 2002 캐나다 국가 대표 선발전 스타크래프트 부문 우승
- 2002 WCG 2002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부문 7위
- 2003 스타우트배 Again 2000 우승 (2:0 송병석)
- 2003 WCG 2003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부문 3위
- 2003 iTV 랭킹전 6차리그 4위
2.2.2. 전적
2.2.3. 소개
AMD 드림팀/헥사트론 드림 팀[5] 소속 (활동기간: 1998년~2004년)
대체적으로 임요환 이전의 '''초대 본좌'''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1&2를 합쳐도 명예의 전당에도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등록되었다.
그의 아이디는 X'Ds-Grrrr... 혹은 PlayGrrrr...로 유명했다. 주 종족은 원래 저그였으나 나중에 프로토스로 바꾸었고, 가끔씩 테란으로 출전한 경기도 있었다.[6] 초반엔 그냥 저그, 중후반엔 프로토스 중심의 랜덤 플레이어였다. 랜덤을 선택하는 경기도 많았고 맵이나 상대에 따라서 3종족을 적절하게 선택해서 플레이했다. 다만 스코어가 밀리거나 중요한 상황에서는 주종인 저그나 프로토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5판 3선승제 경기에서 랜덤으로 경기하다가 0:2로 스코어가 밀리면 그때부터 프로토스를 선택해서 3:2로 역전 우승하는 식이다. 그런데, 명예의 전당 헌액 될 땐 '''프로토스'''로 등록이 되었다??? 기욤의 시절은 뭐 랜덤 종족으로 본선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다반사 하였다. 그래서 초대 스타리그 우승자인 최진우도 랜덤 유저 였으며 나중에는 저그로 확정 되었다.
초창기 래더에서는 저그 최강자로 이름을 날렸고 히드라웨이브의 창시자라는 말도 있었다. 슈팅 리버로 유명했던 질리아스(Zealias)와 같이 양강으로 군림했고 최강을 가리는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원탑으로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 학교 3 카메오 출연 당시.[7][8] 퀘벡 출신의 떠꺼머리 10대 기욤 패트리가 인터넷 게임 스타크래프트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섰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들었을 때, 설마 그가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2000년''' 9월 14일 기사 기욤은 1999년 각종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한국의 고수들과 경쟁해서 우승을 차지하며[9]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2.4.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때부터 열일곱의 나이에 배틀넷 고수로 명성을 떨치며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그 외에도 비정상회담에서 밝히길, 자신이 리버드랍의 창시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10] 플레이의 참신성이나 우승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기욤이 높이 평가받았다.
2.2.5. 스타크래프트
어뷰징 논란이 있었던 래더 토너먼트 이후로 진정한 세계 최강을 가리기 위해 실시된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십[11] 에서 우승하면서[12] 진정한 세계 챔피언의 대접을 받았다.
온게임넷에서 '스타리그'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된 리그의 첫 우승자이다. 그 전에는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에서 최진우가 우승했다.
여러 대회를 도장 깨기해 우승 상금을 타다가 스타크래프트의 열기가 점차 식고 대회도 줄어들 무렵(물론 한국에선 오히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지만) 한국으로 진출한다. 한국에서도 그간의 명성이 익히 알려져 있어 초창기에는 "세계 최강"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최초로 방송 경기에 나온 것은 iTV 랭킹전이었다. 같이 한국에 왔던 4명의 외국인 선수들간의 이벤트 경기가 있었고 기욤이 우승하였는데 이게 iTV 랭킹전 1회 경기로 편입되었다.
2000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에 출전하여, 전 대회 준우승자인 저그 국기봉을 상대로 테란으로 선택하여 아무도 쓰지 않는 메딕의 옵티컬 플레어로 러커의 시야를 가리고 무력화시키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가볍게 제압하여 자신의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승에서 저그 대 마왕 강도경을 상대로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유일의 외국인 우승'''이자 MSL을 포함한 '''양대 개인 리그에서 유일한 외국인 우승 기록'''이다.
이 후 2006년 이 스포츠 매거진 기획으로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들을 모았을 때도 초청받아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때 다른 팀 선수들과 은퇴 선수들까지 모두 촬영하러 왔으나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 선수들만 게임단이 막아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다 욕을 바가지로 퍼먹은 KTF팀은 이후 MSL 우승자 사진 촬영에는 응했으나 MSL 우승자가 몇 되지 않아서..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때 MBC GAME은 KPGA 투어 우승자인 이윤열과 임요환을 MSL 우승자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나중 들어서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후 차기 대회인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8강 탈락하는 등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진 듯 우승권에서 멀어진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2000 스타리그 왕중왕전 결승에서 국기봉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0:2에서 3:2로 역전 우승을 만들어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1경기 네오 정글스토리 기욤 패트리 저그, 국기봉 저그, 2경기 아이스 로템 기욤 패트리 테란, 국기봉 저그, 3경기 네오 블레이즈 기욤 패트리 토스, 국기봉 저그, 4경기 딥 퍼플 기욤 패트리 프로토스, 국기봉 저그, 5경기 네오정글스토리 기욤 패트리 프로토스, 국기봉 저그.
특히 3경기의 경우 40분 이상 피를 말리는 대접전에 역전승이어서 더욱 극적인 승부가 되었다.
2001년에 들어오며 완전히 프로토스로 종족을 굳혔다.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4강에 올랐지만 신예 장진남에게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탈락, 다만 박용욱과 3·4위전에서 한 경기만 50분에 달하는 대접전을 치르고 역전승하며 3위를 차지했다.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었던 듯, 임요환과 'LAST 1.07' 이라고 하여 토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1.07 패치로 특별전을 치르지만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13]
한국 무대 데뷔 첫 경기에서 테란으로 아무도 쓰지 않던 메딕의 '블라인드'를 개발하여 저그 러커에 걸어준다든가 적절하게 교전 중에 상대 멀티에서 다크 템플러 견제를 사용하는 등 물량 위주의 한국 게이머들과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임요환이나 강민이 이런 기발한 전략을 미리 연습하고 준비해서 온다면 기욤은 이걸 아예 경기 중에 생각해 내서 플레이하는 수준이었다.
그의 별명은 '푸른 눈의 마법사'였지만, 기욤의 안구는 사실 파란색이 아닌 회색이다. 하스스톤 인비테이셔널이나 기가 레전드 매치 등에서 본인이 "푸른 눈이 아닌 푸른 눈의 전사"라고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다.(처음에는 이 별명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천부적인 게임 센스에도 불구하고 한국 게이머에 비해 훈련을 매우 적게 하는 편이었고 이것은 개인 리그 부진으로 나타난다. 프로게이머 체계가 정착되는 2002년 이후부터는 이렇다 할 개인 리그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연습을 게을리 한 이유는 이 판이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또 하나는 원래 프로게이머로 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냥 '''상금을 타기 위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나갔기 때문이다.[14][15] [16]
심지어 결승 전날 나이트를 간 적도 있었다고. 연습을 적게 하는게 아니라 아예 안하고 대회에 나간 적도 있고 그러고도 우승을 했으니 정말 대단할 따름이다.
이는 2014년부터 출연하는 JTBC 비정상회담에서도 다시 언급된다. 자신은 내키면 술 마시고 밖에서 놀면서 훈련이나 연습 등을 그다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임요환 형은 말 그대로 사람들과의 연락도 줄이고 매진해서 훈련했다고 한다. 전화번호부에 20명 밖에 없을 정도에 하루종일 연습만 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전성기가 다 지난 2003년에 와서도 서지훈을 플레인즈 투 힐 데저트에서 스카웃 관광을 보내버리기도 했다.[17]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 등과 함께 AMD 드림팀/헥사트론 드림팀 등에 있었지만 2004년 이후로 프로 게임계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18]
'''총 전적: 207승 191패''' '''케스파 공식전 전적: 46승 37패'''
한 때 온게임넷에서 PC방 고수와 스타리그 전 우승자가 대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BJ소닉 해설) 거기서 한번 출전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마우스를 팔고 있다고 이야기 했었다.
2008년부터는 회사원이면서 포커 선수로도 활동했는데, 다른 포커 선수로 활동하는 프로게이머 출신 인물 중에는 심소명과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가 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도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실제로 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래 할 생각은 없는지 비정상회담에서 보통 직업을 갖고 싶다고 얘기했다.
GSL 오픈시즌에 예선에 출전했으나 탈락했다. 2016년 2월 20일 KT GIGA 레전드 매치에 레전드로 출전하여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과 함께 스타크래프트 대결을 펼쳤다.
그나마 최근까지 프로게이머로서, 혹은 개인 방송으로라도 플레이해왔던 다른 세명과는 달리 완전한 손을 떼고 일반인이 된지 10년이 넘은 터라, 이윤열과의 준결승에서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안습한 경기력으로 온갖 농락이란 농락은 다 당하며 광탈하였다.
열심히 준비한 캐리어 4기가 클로킹 레이스에게 속절없이 전멸하고 경악하는 표정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홍진호에게 패배하여 3,4위전에서 맞붙게된 임요환과의 2연전에서는 초반에 어느 정도 손이 풀렸나 하는 기대도 잠시.. 마인밭을 드라군으로 제거하는 기적의 컨트롤을 팬들에게 선사하며 역시 안습의 2연패로 마무리.
이건 당연한게 2003년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팀리그 등의 팀 단위 대회가 등장하고 KPGA 투어가 MSL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고,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정기적인 8강 지방 투어를 시작하는 등 본격적으로 프로팀들과 선수들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최대 규모의 이벤트전 대회였던 KT-KTF 프리미어 리그가 개최되면서 좀 더 스타1 프로게이머판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2004년에 은퇴하고 2002년부터 기량이 제대로 하락하기 시작하고 은퇴 이후에도 스타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기욤이 2010년경에 은퇴한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에게 이길 가능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2017년 7월 30일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GG 투게더 한국 런칭 행사'에서 이벤트 매치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발탁되었다.
이번 상대는 국기봉. 선수 시절의 명성은 기욤이 조금 더 위였으나 국기봉도 정상급 플레이어였고 은퇴 시기도 비슷하니 이제서야 해볼 만한 상대를 붙여준 셈. 전반전 승, 후반전 패로 사이좋게 무승부를 기록했다.
2018년에 부활하는 WCG의 고문이 되었다.
2.3. 토크
- We대한토크(다니엘 린데만, 로빈 데이아나, 알베르토 몬디, 장위안, 줄리안 퀸타르트, 타일러 라쉬와 함께)
- 비정상회담 4인방과 함께하는 Lovely Life Talk(다니엘 린데만, 알베르토 몬디, 장위안와 함께)
- 월드 한식 페스티벌 토크(다니엘 린데만, 알베르토 몬디와 함께)
- 고려대학교 뉴스타트 토크콘서트(다니엘 린데만과 함께)
2.4. 행사
- 위아자 나눔장터(나카모토 유타, 니콜라이 욘센, 다니엘 린데만, 새미 라샤드, 샘 오취리, 안드레아스 바르사코풀로스, 알베르토 몬디, 장위안, 카를로스 고리토, 타일러 라쉬, 프셰므스와브 크롬피에츠와 함께)
2.5. 광고
2.6. 모델
- ELLE 모델(다니엘 린데만, 로빈 데이아나, 샘 오취리, 알베르토 몬디, 에네스 카야, 장위안, 줄리안 퀸타르트, 타일러 라쉬, 테라다 타쿠야와 함께)
- My Wedding 모델(마크 테토, 다니엘 린데만, 알렉스 맞추켈리, 알베르토 몬디와 함께)
- BEANPOLE 모델(알베르토 몬디, 장위안, 줄리안 퀸타르트, 타일러 라쉬와 함께)
- ARENA 모델(다니엘 린데만, 알베르토 몬디, 장위안과 함께)
- 여성중앙 모델(다니엘 린데만, 로빈 데이아나, 줄리안 퀸타르트와 함께)
2.7. 홍보 대사
3. 기타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뉴질랜드인 존 라일리와 함께
- 2015년 11월 16일부터 21일까지 알베르토 몬디와 함께 EBS 한국기행에 참가했다.
- 2017년 6월 13일자 이웃집 찰스에서 메인 게스트로 출연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만나는데 퀘벡이다보니 드라마 도깨비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 2012년 8월 아프리카TV에서 히어로즈 오브 뉴어스 방송국 밤 7시 ~ 9시까지가 방송. 그리고 게임 도중 캠방을 보면 위에 끝장대결만 해도 머리가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스킨헤드마냥 머리를 빡빡 깎았다.
- 2014년 3월 하스스톤 아옳옳옳과 하스스톤 인비테이셔널에 출연했다. 하스스톤 인비테이셔널에는 영어권 선수와 한국 선수들이 모여 팀을 이뤄 대결하는 형식인데, 영어가 서툰 홍진호나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 선수들은 팀 매치 시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기욤은 능숙한 2개 국어로 통역사 없이 게임에 임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다른 외국인 선수들이 영어 클라이언트를 사용하는데 기욤은 한국 클라이언트로 플레이한다. 뿐만 아니라 백 스테이지 에서 관람 시 서로 말이 안 통해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조율시키기도 했다. 아이디가 Giyom이었다. 한국어로 기욤이라 쓴 것을 그대로 영어로 읽은 것이다.
- 2015년 3월 15일 출발 드림팀 시즌2에 출연하여 스노우 레이스 게임에서 우승하였다.
- 2015년 5월 10일부터 5월 24일까지 3주간 방송되는 출발 드림팀 시즌 2 음식전쟁 실미도 와일드셰프 편에 출연했다.
- 2015년 5월 10일 방영편에서는 레이먼 킴 셰프가 리더를 맡은 블루팀에 소속되어 이연복 셰프의 레드팀에게 첫 경기를 이겨 참치등살과 뱃살을 획득했다. 레이먼 킴을 도와 참치 스테이크를 만들었는데 매우 잘 구워냈다.
- 2015년 5월 14일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알베르토 몬디 다니엘 린데만과 함께 JTBC 계열 매니지먼트 기획사인 '드라마 하우스 앤드 제이 컨텐츠 허브'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 2015년 8월 19일 방영한 '다문화 청소년 힐링캠프, 꿈을 쏘다'에서 출연해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 2015년 10월 15일부터 님과 함께 - 시즌2 최고의 사랑에 실제 연인인 탤런트 송민서와 출연하였으나 12월 29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하였다. 하차 이유로는 연인인 송민서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많은데 따라 악플과 비방글이 늘면서 상처가 많았고, 이로 인해 방송 출연이 부담스럽게 느껴져서라고 한다. 방송만 하차할 뿐 둘의 사랑은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2016년 3월 헤어졌다는 기사가 떴다.
- 비정상회담 1회에서 한국인 친구에게 1억을 사기당해서 빚을 갚고 있는 중이라는 고백을 했다. 한창 때에는 물건을 살 때 가격표를 본적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웠는데,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사기까지 당하자 달걀 한판으로 한 달을 버틸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전체가 밉거나 하는 감정이 없다고 하며 1대 100 516회에서 1인으로 출연할 때 이 사실을 밝혔다.
- 비정상회담에서 성시경이 기욤의 프로게이머 시절을 언급하자, 게스트로 나왔던 은지원이 그제서야 "저 사람 기욤 패트리였어요??"하고 놀라는 게 압권. 심지어 한 공간에서 녹화를 5시간 넘게 진행한 상태였고, 녹화 초반에 기욤이랑 배틀도 했는데 동일인임을 전혀 인식을 못해서 제작진이 뽑은 비정상회담 녹화 역사상 가장 웃긴 사건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다행히 녹화 끝나고 서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 2015년 12월 28일 술집에서 일반인과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태원에서 술마시고 있는 기욤 일행을 알아본 취객들이 기욤 옆자리에 앉아 모욕적인 언행을 하였고, 이에 대해 기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취객들의 멱살을 잡아 신고되어 불구속 입건이 되었다고 한다. 이 후 빠르게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해당 사건의 배경이 알려진 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히려 그를 옹호하는 의견이 훨씬 많은 상황이다. 이에 현재 참여 중인 프로그램 등에 예정대로 출연할 것이라 한다. 2016년 1월 4일,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4. 관련 문서
[1] 2017년 6월 13일 방영된 이웃집 찰스/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 런칭 이벤트 다큐멘터러[2] 시즌1 우승자인 웨인창에게 접전 끝에 1:2로 패하였다. 하지만 이후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쉽 4강에서 다시 만나 2:0으로 깔끔하게 복수에 성공.[3] 기욤 본좌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당시 기욤이 아마추어라는 이유를 제시하나 PGL자체가 북미 최고의 프로게이머를 가리는 대회였다.[4]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는 신주영이 프로게이머로 인정받은 이유가 이 PGL에 진출했기 때문이었다. PGL은 ProGameLeague의 약자이다. 한국에도 이를 본따서 KPGL이라는 대회가 생겼고 초창기 최고 대회로 인정받았다.[5] AMD 드림팀과 헥사트론 드림 팀은 같은 팀이지만 스폰서만 변경되었다. 이후 이네이쳐 탑을 거쳐 eSTRO로 바뀌고 해체되었다.[6] 기욤은 2000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저그 강도경을 상대로 5판 3선제 결승전에서 1~4경기는 프로토스를 선택해서 사용했고, 마지막 2:2인 5경기에서는 테란를 선택해서 사용하여 승리하였다.[7] 해당 드라마에서 스타1에 미쳐사는 주인공에게 발리는(정확히는 발리는 중에 급한 일로 자리를 뜨는 바람에 겨우 이기는) 역할로 나오며 해당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다. 여담으로 당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격차가 작은 편이어서 간간이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일격을 먹이기도 했던 걸 보면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8] 실제로 i-TV 의 '''체인지 업 고수를 이겨라'''에서 테란 맵이라고 불리던 쇼다운에서 랜덤 테란으로 아마추어 저그에게 패한 적도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당시 쇼다운에서 기욤 패트리를 이긴 그 아마추어 저그는 한때 국내 워3 최고의 흥행 보증 수표이자 황태민과 박준 이전에 오크의 희망으로 통했던 이중헌 선수다.[9] 지금의 넘사벽 수준차보다는 격차가 작지만, 이미 초창기 래더 시절부터 스타크래프트에서 한국인 게이머들의 위세는 대단했다.[10] 이기석은 레더토너먼트 우승자이며, 당시 국내에서 압도적인 최고 대회였던 KPGL 2회 연속 우승자였다. 절대 반짝이 아니었다. 당시 KPGL의 위상은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을 합친 것 이상이었다. 그 당시 존재하던 군소대회들을 통합해서 탄생한 국대 최초 최고의 프로게임 리그가 바로 KPGL이었기 때문이다.[11] 현재의 WCS와는 주최자 이외엔 큰 관련은 없는 대회다[12] 이기석과 같은팀 동료 김창선이 준우승을 하였다.[13] 여담이지만 이때 온게임넷이 스타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료 관중을 시도했지만 대차게 망했다. 그 후로 유료 입장은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이때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블리자드 측에서 "영리화"에 대해 제제를 했기 때문이라고 뒷담화에서 언급되기도 했었다. 이 후 유료화를 추진한 게임 대회는 롤챔스로 리그 오브 레전드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해 유료화 되게 된다.[14] 근데 이건 굳이 기욤 뿐만이 아니라 이기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가졌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스타'판이 10년 넘게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외적 활동에 눈을 돌리기 쉽고 연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어려워지는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15] 정확히 프로게임리그가 아니라 스타판이 오래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비슷하게 10년이 넘게 롱런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도 있고 오버워치만 해도 4년 째 나름 인기를 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1년을 넘기는 게임이 매우 드물었다. 당시까지의 통념으로는 스타판이 10년을 간다는 생각을 하는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해서 프로게이머는 프로게이머지 스타크래프터가 아니라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초창기 프로게이머들은 스타 말고도 다른 게임을 반 의무적으로 했다. 국산 RTS인 아트록스 같은 게임이라던가 해외 명작 RTS인 C&C 라던가를 병행하였고 이후에도 워크래프트3가 출시되자 병행하던 선수들이 있었다. 국내 초창기 최강자였던 이기석은 원래 C&C 레드얼럿 고수로 먼저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고 스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레드얼럿2가 출시되자 병행하기도 하였다.[16] 임요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요환은 1999년에 데뷔했으나 스타판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중단했던 적이 있다.[17] 근데 이 경기에서의 스카웃 활용은 단순히 관광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게, 이 경기에서 기욤은 서지훈이 캐리어를 대비하여 골리앗을 많이 뽑을 것을 예측하였고, 그를 통해 드라군들을 골리앗과 싸우게 만든 다음 스카웃으로 테란의 지상군을 줄여주는 운영을 선보였다. 하지만 경기의 양상이 스카웃이 나오기 전에도 기욤에게 유리하게 흘러간 것도 스카웃을 어느정도 활약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인 것도 있었다.[18] 기욤 패트리 외의 나머지 4명의 주축 선수들도 비슷한 시기에 줄줄이 은퇴하면서 드림팀은 안습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