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리그
1. 개요
프로 스포츠의 연간 진행되는 리그를 크게 2개로 나누어서 진행하는 리그. 축구협회가 일괄적으로 주관하는 축구리그의 승강제와 다르게, 리그가 각각 독립적으로 흥행을 운영해오면서 리그들이 각각 흥망성쇠를 거듭한 끝에 거대리그 2개가 남아 연합하여 양대리그 체제가 된 것이 보통이다.
NBA, NFL, NHL같은 단일리그[1] 라도 팀 수가 20팀이 넘어가게 되면 컨퍼런스라는 큰 틀로 갈라서 양대리그의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일상적이다.
단, NFL 이외의 컨퍼런스는 야구 메이저리그의 디비전 개념과 같이 지리적 분할이라는 점에서 양대리그와 차이가 있다. (MLB와 NFL은 해당 구별을 디비전 개념으로 실시) 양대리그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리그 하나가 1년 동안 모든 팀이 유의미하게 홈/어웨이를 나누려면 현실적으로 20팀 이상을 굴리는 것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리그 크기를 제한하여 경기수를 나누기 위함이다.
판타지 리그를 해 보면 잘 알 것이다. 대체로 단일 구분으로 풀리그 돌리는 임계점이 20팀. 이런 편의 때문에 풀리그 내에서도 디비전이라는 세부구분을 또 가진다. 이 모든 것이 경기수 분배의 효율 문제 때문. 이때문에 승강제를 실시하는 유럽축구에서도 한 디비전이 18~20개 팀으로 구성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정도만 돼도 주1회 홈앤드어웨이 한번만으로도 일정이 36~38주로 7개월 가까이 강행군을 해야한다. 그래서 한계선을 두는 것.
또한 미국의 국토가 넓어 이동이 불편하며,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특정 지역에 진출팀이 몰리면 플레이오프 경기시간 조율의 문제도 있을 뿐더러, 이 문제가 직접적으로 터진 게 1989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vs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월드 시리즈 3차전이 지진크리로 취소된 사태. 시청권역이 지역 팬덤에 묶여있어서 리그 전체의 흥행을 저해할 수 있는 점도 고려되어 있다. 4대 종목과 달리 경쟁리그 흡수의 전례가 없는 메이저 리그 사커는 10개 프랜차이즈로 구성된 첫 시즌부터 동서 디비전과 8강 플레이오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 야구
프로리그 운영이 양대 거대리그가 연합한 형태로 양대리그의 사전적 의미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진행되던 리그가 야구이다. 때문에 양대리그 하면 자연스럽게 야구리그의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규시즌에서는 양 리그 간 인터리그가 시행된다.
2.1. 미국의 양대 리그(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1876년 내셔널 리그가 발족하고, 1901년 아메리칸 리그가 발족한다. 1903년 아메리칸리그가 스스로 '메이저리그'임을 선언하고 내셔널리그가 이를 승인하여,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우승팀이 월드 시리즈를 하여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양대리그 체계가 만들어진다.
1973년에 아메리칸 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여 내셔널 리그와 큰 차이가 생겼다. 2019년 현재도 내셔널 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투수가 타격에도 참가해야 하는 방식을 지키고 있다.
또한 마이너 리그에서는 AAA만 해도 월드시리즈와 비슷한 형식으로 (멕시칸리그를 제외한) 양대리그인 인터내셔널리그와 퍼시픽코스트리그의 챔피언이 격돌하는 Triple-A Baseball National Championship Game이 열린다. 게다가 수많은 여타 리그의 챔피언들이 붙는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많은 편이다.[2]
2.2. 일본의 양대 리그(일본프로야구)
1949년, 요미우리 신문의 사장 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소유자인 쇼리키 마츠타로(正力松太郎)가 프로야구를 6개 구단에서 8개 구단, 10개구단, 12개 구단으로 늘려서 미국을 모방하여 양대 리그를 만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성장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요미우리 신문을 라이벌로 여기고 있던 마이니치 신문에서 프로야구 참가를 선언했다. 기존의 구단들은 고생해서 야구의 인기를 늘려놓았는데, 다른 기업에서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여서 구상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서 반발이 나오게 된다. 정작 말을 꺼낸 요미우리 측도 프로야구를 자사의 홍보 수단으로 잘 이용하고 있었으며 사실상 요미우리가 야구계를 지배하는 상황이었는데, 라이벌인 마이니치가 끼어들어서 파이를 나눠먹으려 든다고 생각하여 맹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벳쇼 빼내기 사건으로 교진군과 척을 진 난카이 호크스가 찬성파로 돌아선데다 마이니치에 이어서 프로야구에 가입하려는 구단이 잇따랐고, 한신 타이거즈(당시 오사카 타이거즈)가 마이니치 측에 붙으려고 하면서 신구단 가맹 찬성파가 일시 우위에 섰으나 거인-한신 전의 인기 등을 고려하여 한신 타이거즈가 반대파로 돌아서면서 찬성파와 반대파가 4:4. 이렇게 비등비등한 상황이 돼버리자 분열이 오히려 가속되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분열되었다.
- 신구단 반대파 4구단+4개 신구단의 센트럴 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 쇼치쿠 로빈스, 코쿠테츠 스왈로즈, 다이요 훼일즈, 한신 타이거스, 주니치 드래곤즈, 히로시마 카프, 니시닛폰 파이러츠
- 신구단 찬성파 4구단+3개 신구단의 퍼시픽 리그: 니시테츠 클리퍼스, 도큐 플라이어스, 다이에이 스타즈, 긴테쓰 펄스, 마이니치 오리온스, 한큐 브레이브스, 난카이 호크스
일본은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챔피언이 붙는 일본시리즈에서 전일본 챔피언을 가리며, 정규리그 우승팀 확정후 남은 경기의 김이 빠지는 걸 막기 위해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도입하였다. 이후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못한 주니치 드래곤즈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자 정규리그 우승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전 경기 홈경기라는 특권을 추가했다. 하지만 1위 어드밴티지 도입 후에도 정규리그 하위 팀이 상위 팀을 쓰러뜨리는 업셋은 종종 일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주로 전통적 강팀의 팬이 불만이 많고 하위에서 허우적댔던 팀의 팬은 수긍하는 편.
2004년말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경영부진 끝에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흡수합병될 당시에는 요미우리 구단주 와타나베 쓰네오 등의 몇몇 구단주 중심으로 11개팀, 혹은 1개를 더 줄여 단일리그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결국 선수회장 후루타 아쓰야 주축의 선수 파업 및 반대 여론, 그리고 신흥 인터넷 자본의 가담(라쿠텐과 라이브도어의 치열한 경쟁 끝에 라쿠텐에 프랜차이즈가 주어졌다)을 통해 12구단 및 양대리그 체제가 존속되었다.
2014년에는 일본프로야구 구단수를 16개로 확대하자는 떡밥이 투척되었다(일본프로야구 문서 참고). 그렇다면 양대리그가 각각 8개 구단으로 편성되므로, 각 리그가 1990~2012년의 한국프로야구(8구단) 규모가 된다.
2.3. 대한민국의 양대 리그(KBO 리그)
국내에서도 1999~2000년 두 시즌 동안, 양대리그 제도를 채택하여 리그를 운영했지만 망했어요. 한국프로야구의 '''흑역사'''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흑역사라고만 보기 어려운 것이 밑의 서술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고 프로야구의 메인 스테이지인 포스트시즌은 단일리그일 때 1위팀이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매우 치열한 게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괄호 안은 양대리그의 편성기준이 된 작년 승률순
첫해인 1999년에는 전년도인 1998년 순위에 따라 1·4·5·8위팀을 드림리그, 2·3·6·7위팀을 매직리그(ㄹ자 배치)로 묶었다. 동 리그 팀과는 20경기, 타 리그 팀과는 18경기가 편성되었다. 또한 4월 13일 '''시즌 중에''' 제도를 신설하여 특정 리그 3위가 다른 리그 2위보다 승률이 높으면 3선2승제 준플레이오프를 갖는다. 이는 시즌 중 드림리그 3위인 현대 유니콘스가 매직리그 2위 한화 이글스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실제로 이뤄지는가 했으나 막판 한화의 10연승으로 무산되었다.
포스트시즌은 각 리그 상위 2개팀이 크로스 토너먼트(드림 1위 vs 매직 2위, 드림 2위 vs 매직 1위)로 7전4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한국시리즈 진출팀을 가렸다. 일단 포스트시즌만 진출하면 낮은 순위라고 해도 딱히 불리할 게 없는 일정 덕분에 매직리그 2위 & 리그 전체 승률 4위에도 불구하고 드림리그 1위 두산 베어스를 4연승으로 잡아낸 한화 이글스가 7경기를 꽉 채우며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를 찍은 롯데 자이언츠를 여유있게 기다린 뒤 우승할 수 있었다. 이 해 두산은 1989년에 전/후기에서 단일시즌으로 통합된 이후 가장 높은 시즌 승률을 기록하고도 한국시리즈에 참가조차 하지 못한 최초의 팀[5] 이 되고 말았는데 단일리그 하에서는 승률 1위팀(=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이 무조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므로 이변이 없는 이상 앞으로도 단 하나뿐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양대리그의 우승팀이 둘 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리그 2위간 최종 대결이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에는 승률로만 따져서 1·3·5·7위팀과 2·4·6·8위팀(Z자 배치)으로 나눴는데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대신 SK 와이번스가 매직리그에 참가하고, 롯데 자이언츠(드림→매직)와 삼성 라이온즈(매직→드림)가 서로 자리를 바꾸었으며 1999년 우승팀인 한화 이글스가 승률 4위 자격으로 매직리그에 배치되었다. 리그에 관계없이 팀당 19경기가 편성되었다.
작년에 우려되었던 리그 쏠림 현상이 실제로 이루어져 드림리그 3위팀 삼성이 매직리그 2위팀 롯데는 물론 1위팀 LG보다 승률이 높은 사태가 벌어졌고, 결국 크로스 토너먼트 전에 드림 3위 삼성과 매직 2위 롯데간의 3전2선승제 준플레이오프가 치뤄졌다. 이 과정에서 3경기분의 투수를 소모한 준PO 승자 삼성과 붙은 드림 1위 현대 유니콘스가 상대적으로 이득을 봐 플레이오프 4연승에 이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물론 2000년의 현대가 승률 7할에 육박하는 압도적 1위였던걸 감안하자면 단일리그 체제에서 받을 수 있었던 어드밴티지에 비할 바는 아니다.
MLB, NPB의 양대리그는 지명타자 제도의 유무라는 확연한 차이가 있던 데 비해 한국프로야구는 단일리그였던 것을 양대리그로 쪼개서 리그별로 규칙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리그 별 팀 개수가 4개에 불과 했고, 드림리그가 매직리그에 비해 지나치게 강했다. 1999년 매직리그 1위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승률은 0.562였고, 드림리그 2위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승률은 '''0.591'''였다. 2000년엔 더 심화돼서 매직리그 1위팀인 LG 트윈스의 승률은 0.515로 드림리그 3위인 삼성 라이온즈의 0.539보다도 낮았다. 결국 2001년부터 다시 단일리그로 전환되었다.
양대리그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이미 단일리그로 존재하는 리그를 굳이 두개로 쪼갠다고 흥행에 도움이 될 리가 없고 전력 불균형으로 인한 흥미 감소, 불평등 문제만 생길 것이며, 외국의 양대리그는 흥행을 위해서 쪼개진 게 아니라 '''다른 리그로 존재하다 흥행을 위해 교류가 이뤄진 형태'''이므로 인위적인 리그 분할은 억지였다. 특히 양대리그 출범 시 장점으로 거론되었던 인터리그(교류전) 흥행도 기형적이었는데 8개구단 체제를 나눠 놓았더니 자리그 경기수보다 인터리그 경기수가 더 많았다.
1999시즌에는 리그전 팀당 20경기, 교류전 팀당 18경기였다. 문제는 한 팀이 상대해야 할 팀의 수가 당연히 자리그 팀보다 상대리그 팀이 한 팀 더 많기 때문에 계산해 보면 자리그 경기는 60경기(20×3=60), 인터리그는 72경기(18×4=72)로 교류전이 더 많았고, 2000시즌에는 아예 매치업당 19경기로 편성하면서 각각 57경기, 76경기가 되었다. 2000년도엔 이름만 양대리그였지 사실상 단일리그와 똑같았기 때문에 양대리그로 나눈 의미가 전혀 없었다. 사실상 똑같은 조건에서 페넌트레이스를 치뤘는데 승률 1위를 해도 KS 직행이 아니라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기에 포스트시즌은 승률 1위팀한테 크게 불리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99년 승률 1위팀인 두산은 아예 한국시리즈에 가지도 못했고, 00년 현대도 그 높은 승률을 찍고 사실상 어드밴티지 없이 시작해야 했다.
참고로 2015년 이후를 기준으로 MLB에서 162경기 중 20경기, NPB에선 143경기 중 18경기를 인터리그로 치룬다. 참고로 NPB도 원래는 경기수가 36경기로 훨씬 더 많았는데 센트럴리그 팀들이 자이언츠 떡고물 못 받아먹는다고 징징대는 바람에 경기수가 줄어들었다. 단순 역대 성적만 보면 자이언츠가 센트럴 리그 중 성적이 좋아서 리그 우승에 유리하였기에 센트럴 리그 타팀이 주장하는 성적이 좋지 않다는 걸 장악력으로 묵살할 수도 있었다.
2015년부터 한국프로야구 1군은 10구단 체제가 되는데 양대리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는 데다 팀이 홀수로 나뉘어 일정을 짜기가 애매하게 되는 문제와, 선수 수급과 흥행을 보장할 만한 연고지 확보를 고려하면 통일이 된 후 추가로 구단이 창단 되지 않는 이상은 양대리그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 된다. 만약 한국프로야구가 혹시라도 이후 12구단 체제로 확대된다면 현재의 일본프로야구와 동일해지므로 양대리그를 재도입하자는 떡밥이 점화될 가능성이 있겠지만 2020년대 들어 저출산으로 인한 유소년층 인구 비율 감소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 예상됨에 따라 현행 10구단 체제에서 팀이 더 늘어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3. 프로게임리그
3.1. 스타크래프트 리그
3.1.1. 개인 리그
3.1.1.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2002년 이후 스타크래프트 판에서 양대리그라 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대회였던 온게임넷의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BC GAME의 '''MBC GAME 스타리그'''을 통칭한다.
이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블리자드 공인 리마스터 개인리그인 ASL과 KSL을 가리키는 말로 잠시나마 쓰였다.
그리고 프로리그에서도 위의 야구와 같은 개념의 양대 리그 방식을 사용한 기간이 있었다. 10개 게임단을 5팀씩 머큐리리그, 새턴리그로 나누어 진행한 2004 SKY 프로리그 2라운드와 3라운드.
원래 양대리그는 OSL과 MSL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KIGL과 PKO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들 리그가 쇠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OSL과 MSL이 양대리그 타이틀을 이어 받게 된다. KIGL과 PKO가 존재하던 시기에 OSL도 진행되었지만 그때는 메이저 대회의 위상을 갖추지는 못했었다. KGL을 포함해서 3대 리그라는 말도 쓰였다. 1999~2000년에는 KIGL, PKO, KGL이 대회 규모, 상금 규모를 종합해서 가장 큰 대회였다. 2001년 들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메이저로 올라섰고 2002년에 와서야 MBCGAME 스타리그가 시작되었다.[7]
기존 양대리그가 몰락하고 또한 게임TV(겜TV)의 스타리그, 경인방송의 랭킹전이 거의 2003~04년 경에 없어진 후 MSL이 OSL 급의 위상을 지니게 되면서 OSL과 MSL을 가리켜서 양대리그라는 용어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OSL-MSL 양대리그 체제가 제대로 갖춰진 후, 스타리그는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그 뒤 스타크래프트 방송권 분쟁,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등의 이유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점차 하락하자 2011년 ABC마트 MSL을 끝으로 MBC게임과 MSL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8] 스타크래프트의 양대리그 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어서 2012년 tving 스타리그 2012를 마지막으로 온게임넷에서도 스타1 리그가 막을 내렸고, 이후 대회는 스타2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렇게 KeSPA 주관의 브루드 워 공식 리그가 모두 종료된 이후, 프로게이머 은퇴를 하고 개인 방송을 통해 브루드 워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차츰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자체적으로 비공식전이 개최되며 소닉 스타리그 등이 한동안 열렸고, 2016년부터 아프리카TV에서 아프리카TV 스타리그를 출범하였고, 2017년부터는 SPOTV GAMES에서도 SSL 클래식을 출범하면서 얼추 양대리그 구색을 다시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SSL 클래식은 시즌 2를 내놓지 못한 채 일회성 대회로 끝나고 말았으며 2018년에는 아예 SSL Series 자체의 폐지 수순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2018년 6월, 블리자드에서 직영으로 하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리그인 코리아 스타크래프트 리그(KSL)를 출범한다는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아프리카TV 스타리그와는 별개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이로써 2018년부터 다시금 양대리그 체제가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2019년 HGC 폐지 및 개발팀 축소 논란과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비개발 인력 대거 감축 계획이 발표되며 개최가 불투명했지만 일단 시즌4까지는 예정대로 대회가 진행되었다.[9] 그러나 2019년 KSL 시즌4를 끝으로 결국 KSL은 폐지되었고,[10] 현재는 ASL만이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은 KeSPA 주관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양대리그 모두에서 상위 커리어를 기록하였던 프로게이머 명단이다. 온게임넷은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부터 tving 스타리그 2012까지, MBC게임은 MSL의 전신으로 인정받는 2002 KPGA 투어부터 ABC마트 MSL까지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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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양대 리그 진행 시절 현역 프로게이머 사이에 온막이나 엠막이라는 전문 용어가 생길 정도로 양대 리그에서 모두 빼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29]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양대리그 각 10회 이상 본선 진출 선수는 상대적으로 올드 게이머로 구분되는 선수만 봐도 임요환, 이윤열, 조용호, 서지훈 4명 뿐이며 이후 24강, 32강, 36강 등으로 개편되어 스타리그 및 MSL 본선 진출의 문이 넓어진 드래프트 세대 게이머들도 택뱅리쌍 및 이재호 까지 총 5명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만큼 양대리그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본선 진출 8회에 우승 1회, 4위 2회를 기록한 한동욱과 본선 진출 10회에 우승 1회, 4강 1회를 기록한 김준영은 MSL에서 본선에 진출한 경력이 단 한 번도 없고, 반면에 MSL 본선 진출 5회에 준우승 1회를 기록한 심소명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한 경력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4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안기효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에 총 10회나 진출하고 8강에도 세 번이나 진출한 반면에 MSL에서는 단 한 번도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했고, 거기에 4강을 여러번 갔던 선수들 중에서도 박경락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4회에 3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MSL에서는 단 한 번만 본선에 진출하고 16강 광탈만을 기록했고, 나도현도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2회에 2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MSL에서는 단 한 번만 본선에 진출하고 패자 2차 8강 광탈만을 기록했고, 박지호도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6회에 2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MSL에서는 3번 밖에 본선 진출을 하지 못하고 그마저도 16강 광탈만 기록했다. 반대로 한상봉은 MSL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준우승 1회, 4강 1회를 기록했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5번에 대부분 16강, 36강 광탈만을 기록했다.
골든마우스 수상자이자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고의 커리어(3회 우승, 2회 준우승)와 15회라는 본선 진출 기록을 보유한 박성준이 MSL에서는 본선 진출 8회 중에서 4강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70승 34패(67.3%)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고 승률 보유와 동시에 5번의 결승 진출에 1회 우승, 그리고 4회로 최다 준우승 기록을 임요환과 함께 1위로 기록한 정명훈도 MSL 최고 성적은 본선 진출 8회에 4강 한 번이 전부며 그마저도 대부분은 8강에 진출조차 거의 못했을 정도로 32강과 16강에서 광탈하였고,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5회에 우승 1회, 준우승 1회의 성적을 기록한 오영종도 MSL에서는 본선 진출 2회에 16강 1회, 32강 1회의 성적만 기록하였다. 프로토스로는 유일한 금배지 보유자이자 MSL 본선 진출 13회에 3회 우승, 1회 준우승의 김택용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12회에 4강 3번이 최고 성적이었다.
양대 리그 준우승, 4강 이상을 올린 선수라고 해도 두 리그에서 고르게 활약했다고 보기도 애매한 선수가 도 뛰어난 MSL 성적과 출전 횟수에 비해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횟수는 둘 다 겨우 4번에 는 우승 1회에 불과했다.
반대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준우승 3회로 임요환, 정명훈 다음으로 최다 준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고 그 외에 우승 1회와 4강 2회를 기록한 송병구지만 MSL에서는 본선 진출 10회를 기록하긴 했지만 준우승 1회와 4강 1회가 전부였고, 마찬가지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6회로 최다 결승 진출자이자 우승 2회, 준우승 4회, 3위 1회를 기록한 임요환은 MSL 본선 자체는 10회로 많이 올라갔으나 KPGA 시절 기록한 우승 1회와 3위 1회가 전부일 정도로 두 선수 모두 MSL 성적이 상대적으로 약세다. 그리고 MSL에서는 10연속으로 살아남아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 3위 1회, 4위 2회를 기록하면서 꾸준히 4강권에 진출한 조용호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10회라는 많은 본선 진출 횟수에 비해 두 번의 준우승을 한 대회들을 제외하면 8강을 두 번 밖에 가지 못했을 정도로 대부분 16강 및 24강에서 광탈하였다. 또한 양대리그 각각 10회 본선 진출을 기록한 이재호도 MSL에서는 4강 1번과 8강 3번을 진출한 것에 비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10회 중 36강 탈락만 무려 기록의 절반인 5회를 기록한데다가 8강에 진출한 것이 1번 밖에 안될 정도로 대부분 36강, 24강, 16강에서 광탈하였다.
그리고 비슷한 케이스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8회에 준우승 1회, 4강 1회를 기록한 변형태도 MSL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4강 1회를 기록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16강, 32강에서 광탈하였다. 반대로 MSL에서는 본선 진출 10회에 준우승 1회, 4강 2회를 기록한 김구현은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4강 1회가 최고 성적이고 대부분 16강과 36강에서 광탈하였고, 마찬가지로 MSL에서는 본선 진출 12회에 4강 2회를 기록한 윤용태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단 2회에 4강 1회가 최고 성적이었다. 또한 MSL 본선 진출 9회에 준우승 1회, 4강 2회를 기록한 김명운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6회에 4강 1회가 최고 성적이고, 심지어 4강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8강에서 8전 전패를 기록할 정도였다.
3.1.1.2. 스타크래프트 2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한동안 2010년에 출범한 곰TV(현재는 아프리카TV로 이전)의 GSL만이 존재하다가 2012년부터 스타 1 공식리그가 스타 2로 전환됨에 따라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GSL과 양대리그 체제를 이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스타 2로는 스타리그가 단 두 번밖에 치러지지 않았으며, 곧 2013년에 WCS 체제 통합이 이루어지고 온게임넷이 스타리그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자 2013 WCS Korea Season 2,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을 끝으로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으며 다시 단일리그 체제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타 2로 치러진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양대리그로서의 의미가 떨어지다 보니 취지가 애매해 사상 최초로 GSL과 SSL에서 모두 우승을 달성한 김도우를 스타 2 첫 양대리그 우승자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온게임넷에서 스타 2로 두 번만 치른 스타리그의 우승자인 정윤종, 조성주가 훗날 모두 GSL과 SSL에서 각각 우승을 달성하면서 무언가가 미묘한 상황이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스타 2가 국내 발매부터 심의 문제로 인해 삐걱거리거나 스타크래프트 방송권 분쟁 및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으며, 리그의 흥행 문제나 스타 1 시절의 양대 방송사였던 MBC GAME이 폐국하고, 온게임넷도 스타 2 중계에서 철수하는 등 e스포츠계의 여러 내외적 상황으로 인해 '''국내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 자체가''' 격랑 속에 휘말렸던 것이 크다. 게다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 2부터 자사가 직접적으로 e-스포츠의 체계화를 시도하면서, 시즌이 연간시즌의 개념보다 "특정 버전간 시즌"의 개념을 우선 적용하게 되었고, 양대리그라고 해도 자유의 날개 버전 시즌 한정으로 제일 난국의 상황이 벌어졌던 것. 자유의 날개 버전으로 양대리그의 시작은 HOT6 GSL Season 4가 기점인데, 엄밀히 말하면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는, 문자 그대로 자유의 날개의 제일 끝물에 진행되었기에 정윤종이 여기서 우승하고 같은 해 GSL을 우승했다 해도 우승자의 지위가 김도우보다 높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스타 2에서의 양대리그는 오히려 군단의 심장 버전 후반부 시즌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체계화되고 안정화가 되었다는 점을 보면 (즉 조성주의 양대리그 지위가 애매하다는 것도 의미한다. 옥션 스타리그 2013은 WCS Korea의 한 세트 속에서 열린 단일 대회였기 때문에 블리자드의 표현대로 이때는 GSL과 스타리그 어느 쪽을 우승하던 상관 없던 상황이었다는 거다.) 이 점에서 김도우의 양대리그 우승은 정윤종이나 조성주보다는 공신력이 부여되는 셈. 게다가 공허의 유산이 발매되면서 김도우는 '''단일 버전(군단의 심장)으로 양대리그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스타2 부문까지 폐지된 이후, 2014년까지 GSL 국내 단일 리그 체제가 이어지다가, 2015 시즌부터 SPOTV GAMES에서 WCS 스타2 개인리그인 Starcraft 2 StarLeague(현 SSL Series)를 출범하면서 양대리그 체제가 부활했고, 스타 2에서의 양대 리그는 한국 내 WCS 공인리그인 GSL과 Starcraft 2 StarLeague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SSL Series가 2017년을 끝으로 잠정 폐지되었고 국내에서 양대 리그라 불릴만한 대회는 사라졌다.
이하 표는 스2 양대리그 체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프로게이머 명단이다. 온게임넷은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 WCS 산하로 치러진 2013 WCS Korea Season 2,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만 해당되며, 곰TV의 GSL은 TG삼보-인텔 GSL 오픈 시즌 1부터, SPOTV GAMES의 Starcraft 2 StarLeague는 NAVER Starcraft 2 StarLeague 2015 Season 1부터 측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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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곰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대 리그에서 모두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선수는 드문 편인데, SSL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1회씩 기록한 강민수의 GSL 최고 성적은 8강이 전부인 데 비해 GSL에서만 6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GSL 최다 결승 진출, 스타 1, 스타 2를 모두 포함해 단일리그 최다 준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어윤수의 SSL 성적은 16강 한 번이 고작이다.
3.1.2. 팀 단위 리그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에는 온게임넷에서 진행하는 프로리그와 MBC게임에서 진행하는 팀리그가 팀 단위 양대 리그로 존재했으며 2005년 KeSPA에 의해 협회에서 주관하는 프로리그로 통합되었다. 여기서 생긴 논란은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참조.
위 개인리그 문단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온게임넷 프로리그와 MBC게임 팀리그 방송사 팀단위 양대리그와는 별도로, 온게임넷 자체적으로 프로리그 내부에서 야구의 방식과 유사한 방식의 양대리그 시스템을 사용한 기간이 있었다. 2004 SKY 프로리그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10개 팀을 5팀씩 머큐리리그, 새턴리그 두 리그로 나누어 진행하였다.[38] 진행방식을 보면 조별리그 후 토너먼트 방식과 거의 같다.
- SKY 프로리그 2004 2라운드 : 10팀/5팀 2리그. SKY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최하위 Plus 탈락. 각 리그별 2회 풀리그 후 1, 2위는 4강 진출하여 토너먼트. 각 리그 최하위 팀은 10위 결정전으로 맞대결 후 패한 팀은 SKY 프로리그 2004 3라운드 진출권을 놓고 2라운드 탈락팀인 Plus와 최종 진출전 진행.
- SKY 프로리그 2004 3라운드 : 10팀/5팀 2리그. 2라운드와 동일 방식. 최종 진출전 결과, 2라운드 최하위 헥사트론 드림팀이 2라운드 탈락팀 Plus에 승리하여 Plus는 2라운드에 이어 다시 탈락.
이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감소와 KeSPA 소속팀이 연이어 해체하고, e스포츠 연맹이 출범하면서 2013년 현재 두 단체의 소속팀이 7팀으로 균형을 맞추게 되자, KeSPA와 연맹의 양대 팀단위 리그로 리그를 꾸려나가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KeSPA 소속 팀과 연맹 소속 팀들이 서로 대결하는 리그는 아직 없다. e스포츠 연맹이 프로리그 같은 팀단위 리그보다는 개인리그에 더 중시하다 보니... 다만 해외 게임단인 EG-TL이 게스트 자격으로 프로리그에 참가하고 있긴 하다.
그 뒤 연맹팀의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2014년 프라임, IM, MVP의 협회 가입에 이어 2015년 프로리그부터는 마지막 연맹팀이었던 스타테일도 참전하면서 연맹과 협회의 구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3.2. 그 외 국내 e스포츠 대회
3.2.1. 개인 리그
워크래프트 3는 온게임넷의 워3 프로리그와 MBC GAME의 워3 프라임리그를 양대리그 체제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온게임넷에서 2004년을 끝으로 워3 프로리그를 중단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프라임리그도 워3 프라임리그 맵 조작 사건으로 인해 2005년을 끝으로 공중분해되면서 사실상 국내에서의 워3 공식리그는 막을 내렸다.
3.2.2. 팀 단위 리그
스타크래프트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팀 단위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가 출범할 때부터 라이엇 게임즈가 1지역 1리그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초창기의 프로리그와 팀리그와는 달리 양대리그 구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2016년부터 롤챔스 중계에 뛰어든 SPOTV GAMES에서 새로운 리그를 만들지 못하고 2016 코카-콜라 제로 LOL Champions Korea Summer부터 OGN과 중계권을 나눠먹게 되면서 NAVER 2015 LoL KeSPA Cup에서의 SPOTV GAMES의 롤 중계 퀄리티가 좋지 못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중계 퀄리티를 우려함과 동시에 OGN이 일궈 온 리그를 공짜로 나눠먹는다며 팬들이 불만을 제기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와는 달리 통합 리그/디비전 제도가 시행되지 않는 PLAYERUNKNOWN'S BATTLEGROUNDS는 각 e스포츠 방송사마다 리그를 시행하고 있는데, OGN의 PUBG Survival Series(PSS)와 아프리카TV의 AfreecaTV PUBG League(APL), SPOTV GAMES의 PUBG Warfare Masters(PWM)를 3대 리그 체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금세 펍지 코리아 리그 단일체제로 개편되었다.
3.3. FIFA e월드컵
콘솔로만 진행되며, 최신기술이 가능한 콘솔이 2개 있다보니 XBOX 대회와 PS4 대회로 나누어지고, 각 부문 우승자가 통합 결승전을 치르는 방식이다.
4. 관련 문서
[1] NBA는 ABA, NFL은 AFL, NHL은 WHA라는 경쟁리그를 흡수합병하여 단일리그가 되었다. NBA와 NHL은 경쟁리그의 역사는 인정하지만 통합해서 ABA,WHA를 폐지한 뒤 동서 컨퍼런스 형태로 재편한 반면, NFL은 AFL과 연합한 역사를 유지하여, AFL을 AFC로 변경하여 역사를 이어갔다. 이 때문에 AFL의 라이벌리가 그대로 NFL에도 이어졌다. AFC 동부,서부지구의 4팀들이 AFL때부터 라이벌리를 이어왔다.[2] 참고로 미국은 TOP 유망주가 총출동하는 퓨처스게임과는 별도로 마이너리그 레벨별로 각자 올스타게임까지 펼친다. 한국처럼 2군 올스타전을 모두 감독 추천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팬들이 많이 참여하는 선발방식이다. 특히 AAA, AA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마이너에 옵션된 신분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만간 빅리그 팀의 콜업을 받을 선수라고 보면 된다.[3] 1999년 시즌이 끝난 뒤에 해체[4]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된 후 쌍방울의 선수단을 인수한 SK 와이번즈가 신생팀 자격으로 2000시즌부터 KBO 리그에 참가했다.[5] 전/후기 시절까지 살펴보면 1984년 OB시절에도 종합승률 1위를 하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는데 이게 그 유명한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를 고른 져주기 게임 때문이다. 그 삼성은 이듬해에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스스로 한국시리즈 자체를 없애버려 '승률 1위가 한국시리즈에 참가하지 못한 사례'를 따지면 84, 85, 99 총 3번이다. [6] 2019년 시즌 4를 마지막으로 KSL은 폐지.[7] 정확히는 전신인 KPGA Tour 1차 시즌이 시작되었다.[8] 원래는 서바이버 토너먼트까지 모두 치른 2011 MSL 시즌 2가 마지막으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음악방송을 원하던 본사가 대회를 열지 못하게 하는 등 방해공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폐국 후 전직 해설진과 인력의 폭로로 드러났다.[9] 여담으로, 2020년 3월 기준 역대 모든 ASL(~시즌 8)과 KSL의 우승자는 KSL 시즌4의 이재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필이었다. 이영호와 김성현의 경우는 2020년 기준 아직 입대를 하지 않았고 정윤종은 면제이다. 김정우 역시 지금은 군 복무 중이지만 대회 우승 당시에는 미필이었으며 이는 김민철과 김윤중도 마찬가지이다.[10] 흥행 최대카드인 이영호가 극심한 신체부상으로 KSL에 참가하지 못했는데다가, 스타팬과 스타 전프로들의 99%가 있는 아프리카 동시중계가 안 되다 보니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11]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12]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13] 스타리그 결승전 최다 진출자(6회)[14] MSL 결승전 최다 진출자(6회), 양대리그 총합 결승전 최다 진출자(10회). 동시기 진행된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음.[15] 스1 프로토스 유일한 양대리그 우승자.[16] MSL에서 세 종족(테란, 저그, 프로토스)를 결승전에서 모두 꺾고 우승한 경력이 있으며, 양대리그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들 중 유일하게 준우승 경력이 없다.[17]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18] 양대리그 총합 결승전 진출 9회로 이윤열에 이어 역대 2번째 최다 진출. OSL에서 세 종족(테란, 저그, 프로토스)를 결승전에서 모두 꺾고 우승한 경력이 있으며, OSL 역대 최단 기간 3회 우승 기록. 또한 마모씨의 기록 말소로 인해 스1 저그 유일한 양대리그 우승자.[19] 양대리그 총합 결승전 진출 8회로 이윤열, 이제동에 이어 역대 3번째 최다 진출, 동시기 진행된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음.[20] 양대리그 준우승 이상 경력자 중 유일한 MSL 우승자이다.[21] 양대리그 준우승 이상 경력자 중 유일한 개인리그 무관 기록자이다.[22]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23] 최초 양대리그 10회 이상 진출자.[24] 10회 이상 진출자 중 유일하게 4강이 최고 성적이다. 또한 이들 중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했다.[25] 이 명단에 아쉽게 포함되지 못한 사람은 염보성과 최연성으로 두 선수 모두 MSL 본선 진출 횟수는 각각 11회와 10회를 기록했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 기록이 9회로 딱 하나가 모자르다.[26]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27]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28]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29] 거기에 본좌급 혹은 준본좌급 이상으로 평가받은 선수들 중에서도 양대 방송사 성적과 진출 횟수가 모두 균등한 성적을 보인 선수는 이윤열, 최연성, 이제동, 이영호 밖에 없을 정도이다.[30] 첫번째 양대리그 우승자며 스타 1까지 포함시 두 번째 프로토스 양대 우승자다.[31] 두번째 양대리그 우승자[32] 세번째 양대리그 우승자[33] 네번째 양대리그 우승자[34] 유일한 3개대회 우승자이자 현재까지 최다 횟수 우승자다.[35] 다섯번째 양대리그 우승자[36] 유일한 저그 양대리그 우승자다.[37] 홍진호와 함께 양대리그 결승을 모두 올랐음에도 우승을 못했다.[38] 머큐리리그는 수요일 진행으로 수성의 이름을, 새턴리그는 토요일 진행으로 토성의 이름을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