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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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엠블럼
1. 개요
2. 케스파 공식 대회의 시작.
3. 과연 99 PKO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1회 대회인가??
4. 기타


1. 개요


  • 리그기간 : 1999년 10월 2일 ~ 1999년 12월 30일
    • 16강 : 1999년 10월 2일 ~ 1999년 11월 7일
    • 8강 : 1999년 11월 21일 ~ 1999년 12월 5일
    • 플레이오프 : 1999년 12월 12일 ~ 1999년 12월 19일
    • 결승전 : 1999년 12월 30일
  • 사용 맵 : 로스트 템플(Lost Temple), 쇼다운(Showdown), 스노우 바운드(Snowbound), 아쉬리고(Ashirigo)
  • 우승 최진우, 준우승 국기봉, 3위 이기석, 4위 김태목
  • 조 편성
A조
김성기[1], 김태훈[2], '''봉준구''', '''최진우'''
B조
'''국기봉''', '''김태목[3]''', 임우진, 정재철
C조
김동구, '''박상규''', 빅터 마틴, '''이기석'''
D조
'''김창선''', 장경호[4], 조정현, '''최지명'''
  • 특이사항
    • 투니버스에서 방송.[5]
    •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전신이라는 설이 있으나 논란이 많다.
    • 정일훈, 엄재경, 김태형(당시 이름은 김도형) 3인체제 해설의 시작.
    • 유일한 플레이오프 방식의 4강전. 듀얼 토너먼트 방식에 더 가까웠다.[6]
    • 우승자부터 4위까지 다음 시즌 시드배정.
    • 실질적인 0회 대회였는데 1회 대회로도 인정받는다.
    • 양대리그 통틀어 처음으로 랜덤 플레이어가 우승
    • 우승상금 1,000만원 및 준우승 상금 500만원, 3위 300만원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오프닝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결승전 오프닝
자세한 대진은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대진표를 참고.

2. 케스파 공식 대회의 시작.


이 대회에서 저그와 랜덤을 병행하던 선수인 최진우 선수가 우승하게 된다.[7] 당시 최진우를 상징하던 아이콘은 '물량'이었다. 매 경기 빠른 확장을 바탕으로 끝없이 나오는 저글링, 뮤탈, 히드라, 질럿, 시즈탱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최진우의 주종은 저그이지만 랜덤을 선택하거나 맵에 따라 다른 종족을 선택하기도 했는데 타종을 선택해도 저그스럽게 플레이 하곤 했다.[8]
참고로 당시 월간 깸에서 실시한 우승후보 예상 투표에서는 378명이 응모하여 54.8%의 이기석이 1위, 2위는 각각 10.1%를 차지한 봉준구와 국기봉이, 4위는 이후 게임 해설가로 활동했던 김창선(8.2%)이 차지했다.

3. 과연 99 PKO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1회 대회인가??


다른 스타리그와 달리 PKO 혹은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은 스폰서 명칭이 아니라 대회를 주관하던 회사 혹은 단체에 가까웠다. 테니스나 골프에서 US오픈, 프랑스오픈 같은 대회명칭이 일반적이듯 PKO는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이런 방식을 도입한 회사였다.
원래 투니버스[9]는 스타 대회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당시 투니버스에서는 EA FIFA 월드컵98 컴붙이기 승부예측 중계[10]를 하였는데 이 프로그램 이름이 <예측!사이버 월드컵>이었다. 시뮬레이팅 목적이었지만 소재는 비디오 게임이었고, 더 나아가 '비디오 게임을 관전한다'라는 요소는 이때부터 포함되었기에, '''당시 인기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를 관전한다'''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게임중계에 발을 걸치기 시작, 초창기에는 다른 회사에서 주최되던 이런 저런 게임대회를 중계해주곤 했는데 99 PKO도 이런 대회들 중 하나였다. 사실 어떤 대회를 방송국이 주최 한다는거 자체가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이런걸 방송국은 그저 중계를 할 뿐 직접 대회를 열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라. 어쨌든 PKO라는 회사에서 대회를 만들고 이를 투니버스를 통해서 중계를 하기로 하였는데 문제가 생겨서 중간에 PKO가 빠지게 되었고 온게임넷이 대회를 떠안게 되어버렸다. 엄재경의 말에 따르면 대회 시작전에 PKO가 빠졌고 투니버스 측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왜 대회명에 PKO를 빼지 않았는지 여기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으며 실제 이 지적에 대해서 엄재경은 반박을 하지 못하였다. 엄재경은 프리랜서[11]지 온게임넷 직원도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PKO는 투니버스와 결별한 이후에도 여러 방송국들과[12] 스폰서를 통해서 자신들의 대회를 계속 열어나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양대리그라고 하면 온게임넷 스타리그MBC GAME 스타리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PKO와 한국인터넷게임리그[13]을 말했다. PKO와 KIGL은 참가 선수들의 반이상이 기업 스폰서가 붙어있었고 경기숫자도 훨씬 많았고 상금도 온게임넷의 몇배나 많았다. 당시 PKO와 KIGL의 상금규모[14]가 2억 5천정도 되었는데 온게임넷이나 MBC게임에서 이정도 상금으로 대회를 한적은 스타판이 문을 닫을 때 까지 한번도 없었다.[15] 심지어 양대리그가 아니라 3대리그를 말할때도 KGL이라는 다른대회가 꼽혔지 온게임넷은 이름을 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이 PKO가 PKO라는 명칭으로 후속대회를 계속 이어나갔고 PKO측에서는 99 PKO를 자신들의 1회 대회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승계되는지 애매해져 버린 것이다. 이당시만 해도 온게임넷 측의 주장이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PKO 쪽 대회들이 계속 이어졌고 더 크게 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PKO가 한순간에 망해버렸고[16] 이후 온게임넷 측 주장에 반박할 단체가 사라지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1회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한때 온게임넷은 99 PKO를 투니버스배 스타리그라고 부르면서 PKO가 아닌 자신들이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99 PKO 지우기도 시도하였으나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를 진행하면서 온게임넷이 99 PKO를 1회 대회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다가[17], 나중가서는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는 은근슬쩍 다시 1회 대회로 쳐주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2009년 10월에 스타리그 2,000번째 경기를 카운트하면서, 2,000번째 기념 경기 영상에서 스타리그 1번째 경기를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으로 온게임넷이 공식 규정함으로써 역대 첫 스타리그로 정식 확정되는 듯했으나,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결승전 엔딩 크레딧에서 1회 대회를 99 PKO가 아닌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로 표기함으로써 여전히 애매한 위치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박카스 스타리그 2010 종료 후 영상에서는 '''첫 스타리그로 99 PKO를 인정했다.''' 또한 서울 OGN e스타디움에 있는 명예의 전당[18]에도 99 PKO 우승자부터 올라와 있다.
온게임넷 측이 처음에는 자신들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최초의 OSL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99 PKO를 빼더라도 역사성과 정통성이 충분할 정도가 되자 애매한 99 PKO를 지우려고 하였으나 이전까지 초대 대회로 주장하였던 것을 번복하기는 힘들어서 다시 인정하는 쪽이 되버린 것이다.

4. 기타


  • 온게임넷 스타리그MSL,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팀리그, 위너스 리그를 통틀어, 스타크래프트 공식맵만을 사용하여 치러진 유일한 리그이다.[19]
  • 결승전은 스튜디오에서 진행했으며 관객은 3명이었다. 국기봉의 여자친구 그리고 최진우의 부모님.
[1] 그 조작한 프로게이머 와는 다르다[2] 프로토스 유저로 한때 프로게이머 출신 범죄자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 범죄자는 다른 사람이다.[3] 프로토스 유저로 패스트 캐리어의 개발자라는 설도 있다[4] 저그 유저로 봉준구의 라이벌로 유명했다. 둘이 같은 동네 친구였는데 장경호가 원래 훨씬 잘했고 PC방 가도 유명인이었던 장경호는 돈도 안받았는데 봉준구 한테는 돈을 받았다고 한다. 봉준구는 장경호를 이기기 위해서 기를 쓰고 스타를 했다고...[5] 당시에는 온게임넷 설립 전이다.[6] 8강을 2개조 4인 리그로 치른 후 각 조 1위, 2위끼리 대결. 1위간 승자는 결승 진출, 1위간 패자와 2위간 승자가 대결해서 여기 승자가 1위간 승자와 최종 결승. 이후 2003년 당시 진행했던 온게임넷 워크래프트3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도 이 방식으로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여담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유럽 리그인 LEC의 플레이오프 방식과 동일하다.[7] 99 PKO 당시의 경기를 봐도 최진우의 프로필 종족은 저그라고 나와있았다. 아무도 이당시 최진우를 랜덤이라 부르지 않았다.[8] 물론 이 당시의 물량은 이후의 프로게이머들이 뽑아내는 물량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스타 전술은 계속 발전해 왔다.[9] 당시 1999년에는 온게임넷은 개국하지 않았고 투니버스에서 게임 방송을 진행하였다. 온게임넷은 그 다음 해에 개국하였다.[10] 대진을 진짜 당시 월드컵처럼 해놓았다. 단순한 컴붙이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는게, 목적은 시뮬레이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EA스포츠가 출전선수 라이센스에 많이 신경을 썼기 때문에 선수 능력치 고증도 비교적 꼼꼼했다고 한다.[11] 참고로 엄재경의 본업은 만화가이다. 사실 투니버스에서 게임 중계를 하게 된 것도 까꿍의 애니화 작업 도중 평소 친분이 있던 황형준 PD를 이곳에서 만나게 돼서 맺어진 것이라고.[12] SBS를 통해서 케이블이 아닌 지상파 중계까지 하였다.[13] 배틀탑이라는 사설 서버가 있는 것으로 유명했고 당시 최고 상금, 최대 규모의 대회였으며, 개인리그와 팀리그의 중간형식을 취했으며 춘하추동 계절별 리그와 계절리그 입상자들 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왕중왕전 방식으로 유명했으며 이 왕중왕전 우승자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 다름 아닌 임요환이었다. 온게임넷, MBC GAME과 달리 여기선 왕중왕전이 이벤트전이 아니라 정규리그 보다 급이 높은 대회였다. 사실 온게임넷과 MBC GAME이 특이한 것이고 보통의 경우 왕중왕전이 정규리그 보다 상위리그인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다.[14] 1위부터 꼴등까지 상금 전부를 합친 액수[15] 온게임넷이나 MBC게임이 제일 상금이 많았을 때에도 총상금 1억 1천~1억 2천 정도였고, 그전엔 그보다도 훨씬 적었다.[16] PKO가 망하면서 선수들 상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 였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PKO 말기에 활약하던 대표적인 선수가 굿게임맨 박현준이었고 상금을 받지 못했다고 PGR21에 글을 쓰기도 하였다[17] 이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당시 스타리그 1,000번째 경기 카운터 기념 인터뷰에 우승자 최진우가 나왔기는 했다.[18] 본래 용산 e-Sports 스타디움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19] 이전엔 모든 메이저 개인리그를 통틀어서라고 나와 있었으나 스타 공식맵을 사용한 메이저 리그는 널리고 널렸다. 당장 블리자드 레더토너먼트나 월드챔피언십만 해도 레더맵으로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