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clearfix]
1. 개요
- 리그 기간: 2002년 3월 29일 ~ 2002년 6월 15일
- 사용 맵: 네오 사일런트 볼텍스(Neo Silent Vortex), 비프로스트(The Bifrost), 포비든 존(Forbidden Zone), 네오 버티고(Neo Vertigo)
- 조 편성
- 우승: 변길섭, 준우승: 강도경, 3위: 최인규, 4위: 한웅렬
- 특이사항
- Top시드 결정전 실시.[1]
- 최초로 조지명식 실시.
- 이 리그를 마지막으로 예선전이 사라지고 챌린지리그가 도입.
- 엄전김(엄재경, 전용준, 김태형) 트리오의 첫 방송.
- 왕중왕전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 시드 배정.
- 한빛 스타즈 16강 2개조 팀킬 성사(B조 강도경-김동수, D조 정재호-손승완)
- 시드배정자 전원 16강 탈락.
- 소속팀 유니폼 첫 등장.
- 공식맵에 최초로 프로텍트 및 네오컬러[2] 텍스트 로고 등장.
- 스타리그 사상 최초의 팀킬 결승. - 변길섭, 강도경 (한빛 스타즈)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열풍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비운의 시즌.
-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와 함께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사상 결승전 최소관중 기록 (700명)
- 결승장소: 서울 장충체육관
- 우승자 상금 : 2,000만원[3] 준우승자 상금 : 1,000만원.
- 네이트 스타리그 오프닝
- 네이트 스타리그 결승전 오프닝
- VOD 목록
2. 변길섭의 우승, 하지만 월드컵과 함께 투명라인으로
불꽃테란 변길섭과 저그 대마왕 강도경의 맞대결로 화제가 '''될 수도''' 있었으나,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인해 존재감이 없어진 대회.[4]
이 대회에서 변길섭은 강도경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지만, 당시 임요환, 홍진호, 김동수, 조정현 등 걸출한 흥행카드들이 조기탈락한 데다가[5] 월드컵에 빠진 사람들의 무관심, 결승 진출자 변길섭과 강도경이 같은 한빛 스타즈 소속의 팀킬 결승[6] 이라는 점들이 맞물려, 결국 변길섭은 무관심한 우승자로 남았다.[7]
후에 온게임넷에서 결승전을 모아 특집으로 방영했는데 유일하게 네이트배 스타리그만 빠져있어 그를 두 번 죽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래저래 네이트배는 흑역사 취급인 듯. 그래서인지 결승전도 겨우 700명 밖에 오지 않아 역대 스타리그 중 최저 관객이었다.[8][9] 한편 네이트배 스타리그의 흥행 실패에 큰 충격을 받은 온게임넷 측은 다음 리그에서 절치부심을 하게 되어 사활을 건 결과 흥행에 성공하자 극적인 기사회생을 하게 된다.
참고로 당시에 MBC게임은 MSL 전신인 2002 KPGA투어 2차리그 결승을 2002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 당일에 열고, 팬들과 선수들이 다 같이 결승이 열린 양재동 한전 아츠풀 센터에서 낮에 열린 스페인전 경기를 응원 한 뒤, 축구 경기가 끝나자 바로 결승전을 여는 참신한 시도로 흥행에 꽤 성공했었다. 이 시절 MBC게임은 결승 이전까지는 아예 MBC사옥에 있는 작은 A/B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팬들이 제대로 직관하기 어려운 구조로 리그가 진행되던 안습한 시절이었음에도 홍진호, 이윤열이라는 좋은 매치업에 결승 기획도 참신했으니, 이래저래 NATE 스타리그는 여러모로 아쉬운 결승이 되었다.
더욱 안습한 것은 변길섭이 우승자 출신인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또한 강도경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콩라인 가입조건을 충족시켰음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후 꾸준한 재평가가 있었지만 그래봤자 흑역사인 것은 마찬가지. 그래도 7년 반 정도 후에 같은 스폰서로 열렸던 옆 동네 대회보다는 많이 나은 편.
지나치기 쉬운 사실이지만 이 대회는 '''전용준 캐스터가 처음으로 스타리그 중계를 맡은 대회이다.''' 하지만 이 대회의 흥행 실패로 전용준 캐스터도 김철민 캐스터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굉장히 많은 마음 고생을 했다고 밝혔다.참조.
여러모로 다음 대회인 2002 SKY배와 비교되는 게, 네이트배에서는 위에 언급한대로 임요환, 홍진호, 김동수, 조정현, 김정민 등 걸출한 카드는 16강에서 전부 떨어지고 8강 멤버도 강도경, 최인규, 변길섭을 제외하면 네임벨류가 너무나 낮은 선수들 뿐이다.[10][11] 결승 관객도 네임벨류 선수들의 광탈로 인한 무관심과 월드컵 열풍이 겹쳐져 역대 최소 관객이었다. 반면 바로 다음에 열린 2002 SKY배는 8강 라인업부터 화려했는데, 네이트배 우승자 변길섭 포함, 16강에서 탈락한 임요환, 홍진호, 김정민도 이 대회에 8강 진출, 챌린지리그 뚫고 올라온 박정석, 조용호, 베르트랑, 장진남도 네이트배 8강 멤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12] 또한 최다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니 어찌 비교 당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1] 전 스타리그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와 준우승자인 김동수, 임요환.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우승자와 준우승자인 홍진호, 조정현. 4인 간의 시드 순서를 결정하는 결정전. 4강 단판 토너먼트+패자전 4경기로 A~D조 시드가 결정됨. 비록 비방송경기지만 중요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온게임넷에서 신경을 못쓴건지 온게임넷 스타리그 넘버링에서 빠져버렸다.[2]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터를 이용하여 흰색과 파란색 계열의 플레이 컬러에 대한 색을 Blue 컬러를 Dark Aqua 컬러로, White는 Tan 컬러로 설정했다.[3] 1,000만 원에서 다시 2,000만 원으로 상승.[4] 사실 이 무렵의 어지간한 이벤트는 전부 월드컵에 묻혀서 그 때 그런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을에 열린 한국시리즈 정도가 월드컵의 열기를 피해갔다.[5] 이 네 명의 선수들은 스타리그와 왕중왕전의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시드배정을 받은 선수들이었는데, 16강에서 모두 광탈하고 만다. 특히 임요환은 당시로선 믿을 수 없는 충격의 3연패 탈락이었다. 물론 다음 대회에서 잠깐의 부진을 딛고 전승준을 달성하지만.... 그리고 홍진호도 1승 2패를 기록하며 탈락했지만 다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고, 동시기 반대편인 Gembc에서 개최한 2002 Reebok배 KPGA 투어 2차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대회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긴 하였다. 그러나 김동수와 조정현은 앞의 두 선수들과는 다르게 이후에도 부진하게 되어 결국 김동수는 다다음 대회를 끝으로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조정현도 다음 대회 이후 1년 후 반대편에서 개최된 대회 이전까지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에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게 된다.[6] 상단의 특이사항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한빛스타즈는 이번 대회에 무려 5명의 선수(강도경, 김동수, 변길섭, 정재호, 손승완)를 16강에 진출시켰으나, 16강의 2개조 팀킬에 이어 8강에서도 변길섭, 강도경, 손승완 등 한빛 스타즈의 3명의 선수가 A조에 속하는 등 이래저래 팀킬과 인연이 많은 대회였다.[7] 변길섭이 이후로 양대리그에서 결승진출이나 4강 진출 등 걸출한 성적을 꾸준히 내거나 아니면 팀단위대회인 프로리그에서 다승왕, MVP, 결승전 MVP나 팀리그 다승왕을 수상했으면 우승 경력이 크게 조명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변길섭의 이후 커리어는 개인리그에서는 KT Megapass Nespot 프리미어 리그 2003 리그 준우승, KT-KTF 프리미어 리그 2003 통합 3위 외에는 4강 이내 입상한 경험이 거의 없고 팀단위대회에서도 개인 수상을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할 정도로 스타리그 우승자 치곤 상당히 초라한 편이다. 변길섭은 공식 개인리그에서 이 리그에서 한 우승 1번을 제외한 최고 성적은 8강 4번이 전부다. 그 외 나머지 공식 개인리그들에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16강 혹은 24강에서 전부 광탈하였고, 특히 MSL에서는 KPGA 1차리그 8강을 제외하면 16강 혹은 패자 8강에서 전부 광탈하였다. 그렇다고 팀단위대회에서도 확실한 에이스급으로 활약하지도 못하였다.[8] 700명이 그리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다른 스타리그 결승들에 비교해보면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나마 이 정도 관객을 모은 것도 강도경 덕분이었다. 더구나 결승이 치뤄진 15일 바로 전날이 바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첫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룬 날이라 스타리그 결승이 더욱 관심이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9] 관객도 관객이지만, 결승전 장소에 자리가 텅텅 빌 정도로 큰 곳에서 치뤄진 점도 문제였다. 한마디로 결승인데 휑한 분위기였다는 소리. 물론 아레나 MSL 같은 초 흑역사급은 아니지만....[10] 한웅렬, 나경보, 정재호, 손승완, 안형모. 그나마 한웅렬, 나경보는 인지도가 있기는 했지만 임요환, 홍진호에 비하면 한없이 존재감이 적었고, 손승완은 선수보다는 이후에 코치로 더 유명했다.[11] 참고로 이 대회에서 엄재경은 다른 대회 못지 않게 8강에 진출한 선수들을 열심히 포장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테테전의 강자로 밀어줬던 한웅렬이 테테전에서 큰 힘을 못 쓴다거나, 재야의 고수처럼 묘사된 나경보가 8강에서 떨어지는 등 밀어준 것에 비해서 선수들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12] 그리고 박정석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밑바닥인 챌린지리그부터 시작해 가장 높은 곳까지 맛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