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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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종교인 출신 정치인이다. 현재 제20대 경기도 교육감으로 활동한다.
2. 생애
2.1. 초년 시절
1944년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서 성공회 신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천으로 귀향하여 중학교 진학을 못한 학생들을 위한 무상 중등 교육과정 (관인)신명학원을 설립하여 3년 간 운영하였다. 그 후 1965년 고려대학교 독문과에 입학했으나, 김진만[5] 교수의 강력한 권유로, 성공회 성직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대한성공회 성 미가엘 신학원[6] 에서 수학하였고, 1972년 대한성공회 사제가 되었다.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유신반대 투쟁에 참가하면서 교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교회와 사회위원회 및 인권위원회 임원, 그리고 한국기독학생총연맹의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와 사회 정의, 그리고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였다.
1982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강화읍성당 사목을 마치고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매니토바 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토론토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2. 교육자 시절
1988년 귀국 후, 천신신학교[7] 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으로 1989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열린 남북한 교회 및 세계 교회 대표들이 참석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의회 참석을 시작으로, 워싱턴 D.C., 토론토, 도쿄 등지에서 열린 그리스도교계의 남북 회담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성공회대학교가 설립된 뒤, 성공회대 학장을 거쳐 성공회대학교 초대 및 제2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신영복 교수, 조희연 교수 등과 함께 성공회대학교에서 진보적인 학풍을 확립하였다.
2.3. 정치인 시절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정계에 입문하여, 2000년 새천년민주당이 창당하였을 때 초대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10번으로 공천받아 당선되었으며, 교육위원회 간사 및 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이후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유세 연수 본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그 해 8월 16일 민주당 국회의원/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반노측 인사들이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자, '''"(노무현 후보는) 국민이 뽑아준 후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믿고 보호하고 지원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마침내 노무현이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안희정과 더불어 대선 시기의 불법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고, 2004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8]
2004년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재직하였고, 2005년 광복절 특사에서 이상수와 함께 특별사면, 복권되었다. 2006년 제33대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9]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중단되었던 남북 장관급 회담을 재개하는 한편, 남북 철도를 개통하고 열차 시험 운행은 물론, 남북 열차 정기 운행을 이룩하는데 주무 장관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2007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및 10.4 남북 공동 선언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때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남북정상회담 준비 기획단장으로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부터 정상회담 진행과 배석 및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실무를 책임지고 총괄하였다. 장관 재임 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모든 기록을 경신하여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 개성공업지구의 활성화와 남북 경제 협력의 확대 등 모든 분야에서 큰 진전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2009년 노무현 사망 후에 결성된 국민참여당의 초대 당 대표를 역임했다.[10] 그러나 통합진보당으로 대통합한 뒤에는 통합진보당 고문으로만 남아있다가 부정경선 사태 이후 탈당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소속으로 충청북도 도지사 후보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시종 후보와 단일화하여 사퇴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교육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2위로 낙선한 후보는 조전혁 前 의원으로, 한나라당 내에서도 신지호와 더불어 뉴라이트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교육감 재선에 도전했고, 진보 진영이 분열된 상황이었음에도[11] 새로 보수 진영 후보로 출마한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임해규 前 의원과, 단일화 실패로 독자 출마한 진보 진영 송주명 한신대 교수를 꺾고 재선에 성공한다.
정치 활동과는 별도로 노인들을 위한 자서전 집필 및 장례식장에서의 조문보를 작성하는 협동조합 은빛기획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2011년 이후 노무현 재단의 이사로도 재직하고 있다.
2.4. 교육감 시절
교육감에 취임하자마자 상당히 많은 개혁 작업을 하고 있다.
첫 번째로 9시 등교를 공식화했다. 9시 등교에 대해서 찬반 논란이 일었지만[12] 일선 학교에서는 썩 괜찮은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13]
두번째로 교원임용에 차별화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수업나눔과 집단토의는 경기도 교육청에서만 실시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단편적인 면접과 수업시연만 있었던 임용 2차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차별적인 시도인 것은 맞지만, 집단토의의 진행방식이 잘 다듬어지지 않아 그저 구상한 답변을 이어 말하는 수준의, 진짜 토의가 아닌 가짜 토의에 그치고 있다. 평가 기준도 모호하다. 의도는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로 2017년부터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동안 야간자율학습이 야간강제학습, 야간타율학습이라는 우스개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파행적으로 운행되었던데다 이미 경기도에서는 그 전부터 야간자율학습이 자율화된 학교들도 매우 많아서 참가율이 10~20%에 머물 정도로 사실상 폐지된 상태인지라 이를 공식화하고 대신 예비대학 교육과정을 신설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예비대학 교육과정은, 전체 이용자가 5% 가량으로 저조한 편이다. 물론 이 취지의 부합해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이용하는 아이들 마저 내신과 수능의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다. 교육감 나름 경기도의 많은 대학과 협업해서 수강신청을 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 입시의 벽을 넘기는 역부족이다. 쉽게 말하면 의도는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교육감이 저녁 급식을 보조금을 줄여서 사실상 폐지하는 바람에 반발이 매우 크다. 다만, 교육감이 없앴다기보다는, 애초에 석식 자체가 적자였던게 문제. 야자까지 없애버리자, 학교들이 이때다 싶어서 없애버렸다고 보는 쪽이 맞다. 하지만 학원으로 이동하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석식을 신청했거나 맞벌이 문제로 석식을 신청했던 학생들에게는 큰 문제로 지적받고 있고, 석식의 보조금을 줄인 것도 야간자율학습 폐지의 일환으로써 없앤 일이기 때문에 이재정 교육감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실제로 학생들이 저녁을 인스턴트 식품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2020년 4월에는 교육부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개학 연기 및 온라인 수업 방침에 반발하며, 현실적으로 온라인 수업의 효과를 거둘 수 없으니 차라리 찬성률이 높아지고 있는 9월 학기제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온라인 개학을 강행하기로 결정하였다.
3. 논란
3.1. 불법대선자금 수수 논란
2003년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는 총무위원장으로 역할을 하였다. 이때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서 1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노무현 진영에 전달한 것이 2004년에 밝혀져 구속되었다.[14] 어쨌든 개인 축재를 위하여 받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벌금형으로 선처하였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화 측과 영수증 발급을 논의하지 않은 점으로 미뤄 불법 자금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먼저 요구하지 않았고, 내용 확인도 안하고 바로 당에 전달한 사실과 피고인이 사제 신분이고 정치를 그만 둔 뒤 봉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어 원심 판결 전 구금 일수 50일로 벌금형을 대신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사면을 받았다.
3.2. 북한 관련 발언 논란
2006년 통일부 장관 인사 청문회 당시 의원들의 북한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 논란이 되었다. 6.25 전쟁이 북침이냐는 정몽준 의원의 질문에 "제가 여기서 규정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 김일성에 관한 서면 답변에서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며 아직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기사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장로회, 천주교가 있고 교회를 짓는 것이 하느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발전”이라고 답해 북한을 마치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 것 처럼 대답하였다. 기사 북한 평양에 개신교, 천주교 교회 시설이 형식상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봉수교회 항목을 참고하면 알다시피 봉수교회 여성 전도사인 리성숙 전도사가 "하나님은 곧 김일성 주석님이다." 라고 하거나,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며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발언을 보면 북한에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가 있지는 않다.[15]
3.3. 남북단일팀 논란
2018년 1월 19일 MBC <양지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올림픽에서 분단국가로서 단일팀으로 나가는 건 올림픽 역사상 처음이다", "선수들이 큰 역사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다.''' 62년 전인 1956년 동계·하계 올림픽에 이미 동독과 서독이 단일팀을 구성한 적이 있다. 남북단일팀 찬성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사실을 날조한 셈인데 교육감으로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을 날조했다기보다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독일 연합 단일팀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그 사실로도 단일팀 찬성 여론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독일도 단일팀으로 화합 분위기를 조성했다." 라거나, "독일 연합도 단일팀 깃발을 들고 입장했다. " 라거나. 애초에 올림픽 최초 분단 국가 단일팀이라는 언론플레이가 사실을 날조해가면서까지 주장할 만큼 매력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3.4. 조민 에세이 논란
이재정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조민이 한영외고 재학 시절 불과 2주 동안의 인턴 활동을 하고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을 옹호하고자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하였다:
조국 장관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때 “논문제1저자”라고 여기저기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참다못해 한마디 합니다. 2010년 당시 이명박정부 시절에 대학입시에 사정관제도를 도입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입시평가에 반영하였습니다.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장려한 것이 학생들이 대학교수등 전문가들로부터 보다 “전문적인 교육”경험으로 쌓는 것이었고 이런 실습이 끝나면 실습보고서 같은 것을 씁니다. 주로 학부모 가운데 전문인사들이 이일에 참여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보고서를 “에쎄이”라고 하는데 에쎄이의 우리말이 적절한 말이 없어서 “논문”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체로 이런 “에쎄이”를 쓰는 훈련을 합니다. 이경우 당연히 제1저자입니다. 학생 내내 이런 에쎄이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훈련입니다. 에쎄이를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조사연구를 하고 자기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주장을 쓰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러한 쓰기 교육이 부족했습니다. “인턴”이란 말도 무슨 직장이 아니라 이런 교육과 훈련과정을 의미합니다.
조 후보의 따님의 경우도 대학교수의 지도 아래 현장실습을 한 것이고 그 경험으로 “에쎄이”로써서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지요. 이것을 논문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제1저자는 그 따님입니다. 영미계통의 학교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에쎄이”를 쓰는 것이 기본입니다. 자기 보고서를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입시사정관이 이를 보고 평가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중복해서 이런 실습을 했다는 것도 아무 문제 아니고 당시에 권장한 사항입니다.
저는 그저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뜻에서 이글을 씁니다.
― 이재정 페이스북 게시물
일거에 학회의 대표 학술지가 고등학생의 "에쎄이"나 실어주는 학술지로 전락해버린 대한병리학회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논문 게재 당시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이었던 서정욱(서울대 의대 교수)은 "그 당시에 우리나라 SCI(국제 인용색인) 학술지는 15종인가 있었을 겁니다. 리뷰 논문(review article)과 학술 논문 (scholarly article)만 싣죠. 에세이 같은 건 실어본 적도 없고요. 심사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학회를 모독하고 연구자를 모독하는 그런 발언'''인 거예요."라고 반발했다. 현직 대한병리학회 이사장 장세진(서울아산병원)은 "'''명예훼손 수준에 달하는 발언'''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저도 수년간 논문도 썼고, 에쎄이도 써 봤으며 흔히 말하는 페이퍼도 썼습니다. 대학에 20년간 재직하면서 논문지도도 많이 해보았고, “에쎄이”를 과제로 내준 적도 많습니다. 논문은 학위논문의 경우 흔히 dissertation이라고 합니다. 페이퍼는 주로 학기중이나 학기말에 연구결과를 과제로 내는 term paper 또는 research paper가 있습니다. “에쎄이”는 굳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보고서, 발표문 또는 수필과 같은 것입니다.
학술지에 기고하는 것은 학술지의 권위에 따라 아주 엄격한 등재기준과 심사과정이 있어서 그야말로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학술지의 경우 국제적인 기준에 올라 있는 학술지도 있지만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학술지도 있습니다. 학술지의 등재는 학술지 권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제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한편으로 비난하지는 말고 경청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재정 페이스북 게시물
이재정이 에세이라던 논문은 해외에서 크로아티아 의대 소아신경과 교수의 논문을 포함해 두 번 인용되었으며 5만 여명이 봤고, 1만 1062회 내려받아졌다고 한다.
3.5. 경기도 급식 꾸러미 논란
보도 자료
농민들을 돕자는 취지로 실시된 경기도 급식 꾸러미에 당초 농민들이 재배하는 채소를 넣지 않고 대기업(오뚜기)에서 만든 완제품, 냉동 식품, 가공 식품들만 들어있었던 것에 농림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학교 운용의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허울 좋은 소리로 강행해 큰 논란이 되는 중이다.[16] 이로 인해 경기도 농민들만 큰 손해를 봤다.[17] 물론 지역별로 다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명백한 범죄.
3.6. 안산 유치원 식중독 사건 관련 "간식은 보존식 아냐" 발언 논란
29일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안산의 한 사립유치원이 간식을 보존식으로 보관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간식은 법적으로 보존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가 피해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3시간여만에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했다.
인구 최대 광역자치단체의 교육 수장인 경기 교육감이 보건당국의 발표 내용과 언론 보도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발언을 해서 이재정의 사과와 해명에도 학부모들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3.7. 조두순 발언 관련 논란
https://news.joins.com/article/23873663
조두순 출소와 관련하여 '''"한 시민으로 돌아오는 조두순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만, 그보다는 더 따듯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피해자는 현재까지도 조두순이 찾으러 올까봐 극도로 무서워 하고 있고 피해자 가족은 정부에게 조두순과 영구 경리 약속을 지켜달라 간절히 호소를 하고 있는 와중에[18]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발언이라며 비난과 비판을 가했다.[19]
4. 선거 이력
5. 여담
- 트위치 스트리머 오킹의 방송에 나와서 블러드트레일을 시전한 적이 있다(…).#
- 지금은 주로 정치인으로 활동하지만 본업은 사제다.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노동자 복지 시설에서 사목한 적도 있으며, 경기도 교육감직을 수행하는 요즈음에도 성공회 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보기도 한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방문 불법 정치자금 수수 논란 때문에 정치 활동을 잠시 중단하였을 때는 아예 사제로 복귀하여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이재정 신부, "정치인 사명 다하고 이제 사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