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A 프랑
'''franc CFA'''
프랑스의 해외 영토[1] 나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사용하는 통화. 이름이 약간 다른 CFP 프랑까지 포함한 탄생배경은 모두 같지만 제각기 별개의 통화로 취급되며, 의미도 다르고 발행처도 다르고 탄생 이후의 역사나 특징까지 모두 다르다. 우연히 약자가 똑같았을 뿐. 프랑스어로 세파프랑이라고도 부른다.
탄생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이후의 프랑스 프랑의 폭풍약세에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6주만에 항복하고 비시 프랑스로 정권이 교체되며 전 세계의 프랑스 식민지들이 붕 뜬 상태가 되는데,[2] 아프리카 식민지의 상당수는 이 기간 중에 비시 프랑스와의 교역보다 미국과의 교역량이 압도적으로 늘어 분명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주 교역상대는 종주국이 아닌 골때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따라서 전후 프랑스는 그저 본국에 돈이 없다는 이유 만으로 많은 해외 거주 국민들이 환율상의 타격을 입는 상황을 방지함과 동시에 식민지들을 다시 프랑존으로 끌어들여 프랑스의 경제적 영향력을 수복하려는 의도로 1945년 프랑과 연동되는 CFA프랑을 도입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프랑스의 뜻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튀니지, 모로코, 기니, 말리, '''알제리''', 모리타니, 마다가스카르 등 굵직한 프랑스 식민지들이 뚝뚝 독립해 떨어져나가면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구 식민지들은 프랑존도 동시에 탈퇴해버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왜 아직까지 존속하는지 의아할 수 있는데, 저렇게 프랑존을 탈퇴한 구 식민지 국가들의 일부는 프랑존으로 다시 복귀했다. 물론 프랑스의 강요나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CFA 프랑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
우선 화폐가치가 안정적이어서 독립 후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고통받았던 정신나간 인플레이션을 피해갈 수 있었고, CFA 프랑존 권역 내 금융 감독기관을 둠으로서 각국이 독자적인 정책을 쓰지는 못하는 대신 방만한 재정편성을 막고, 프랑스의 참여를 통해 보다 세련되게 설계된 경제 정책을 쓸 수 있었다.
또한 무작정 프랑스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CFA 프랑 운영의 개혁을 1970년대에 진행함으로서 프랑존의 직책을 프랑스로부터 CFA프랑존 회원국들이 넘겨받았으며, 외환보유액 100%를 프랑스에 예치해야 한던 것을 65%로 줄였다.
마지막으로 기존 프랑과 연동되던 것에서 프랑스 정부의 태환 보증은 그대로인데 프랑이 더더욱 안정적인 유로화로 바뀌면서 물가 상승률이 다른 사하라 이남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게 유지되며, 해외 투자 유치에 프랑 시절보다도 더 유리해졌다는 장점이 생겼다.
독립적인 화폐와 경제정책을 사용하다가 수많은 인접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를 말아먹는 것을 지켜본 CFA 프랑존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정치 불안과 능력 부족으로 자국에 최적화된 경제정책 수립을 못할 바에야 뭉쳐서 프랑스 지원 받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주변국들이 국가 막장 테크를 착실히 밟으며 말아먹을 때 CFA 프랑존 국가들은 나름 안정적으로 경제를 꾸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경제가 잘 안돌아갈 때 독자적인 통화/환율 정책을 쓸 수가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무역조건의 조정이 안되기 때문에 주요 수출품 가격의 변동에 경제가 쉽게 흔들리는데다 빚내거나 돈을 찍어서 산업 테크 올리는데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는 그대로이다.
세파프랑을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선은 복잡하다. CFA 프랑존이 커먼웰스같은 거대 경제 권역이었으면 신나게 꿀을 빨 수 있었겠지만, 그런 구조라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선 CFA 프랑존 국가들이 사하라 이남에서 괜찮은 성장을 하는 중인 건 사실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다. 프랑스의 對 CFA존 무역 비중은 60년대의 3% 가량에서 현재는 1% 남짓으로 줄어든 상태다.
따라서 최종 대부자 자격으로 태환 보증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부담은 가득한데 당연히 EU는 이미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 독자적으로 만든 세파프랑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건 전적으로 프랑스가 해결할 일이지 EU의 다른 회원국들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못박았기 때문에 프랑스 입장에서는 그냥 국민들이 과거 식민제국의 영광을 추억할 수 있는 자존심 충족감을 제외하면 얻는 것도 없다. 게다가 CFA 프랑의 태생이 식민지들의 경제 예속을 위한 것인지라 국제적으로 식민주의 잔재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욕은 바가지로 먹고, 경제적으로는 딱히 이득도 안 되니 계륵이나 다름이 없다. CFA 프랑을 유지하자니 세계적으로 구시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제국주의자라고 까이고, 그렇다고 폐지하자니 식민지 시절에는 실컷 뽑아먹고 경제대국인 프랑스가 작은 식민지들힌테 그깟 보증도 못 서냐고 까일 게 뻔하니 이러니저러나 욕을 먹는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새 화폐인 ECO를 밀면서 서아프리카 8개국에 교묘하게 영어권-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 참여하자고 권유하는데, 영어권 국가들은 프랑스의 옛 식민지가 아니므로 ECO로 전환하면 최종 대부자 딱지를 떼려는 속셈이다. 당연히 영여권 아프리카 나라들에게는 태환 보증도 안 되는 걸 왜 쓰냐고 무시당했다. 이런 형편이라 근시일 내에 CFA 프랑의 실질적인 알맹이는 변화 없이 이름만 ECO로 바꾸고 식민 잔재를 청산했다고 정치적인 쇼를 벌이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1. 개요
프랑스의 해외 영토[1] 나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사용하는 통화. 이름이 약간 다른 CFP 프랑까지 포함한 탄생배경은 모두 같지만 제각기 별개의 통화로 취급되며, 의미도 다르고 발행처도 다르고 탄생 이후의 역사나 특징까지 모두 다르다. 우연히 약자가 똑같았을 뿐. 프랑스어로 세파프랑이라고도 부른다.
2. 배경
탄생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이후의 프랑스 프랑의 폭풍약세에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6주만에 항복하고 비시 프랑스로 정권이 교체되며 전 세계의 프랑스 식민지들이 붕 뜬 상태가 되는데,[2] 아프리카 식민지의 상당수는 이 기간 중에 비시 프랑스와의 교역보다 미국과의 교역량이 압도적으로 늘어 분명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주 교역상대는 종주국이 아닌 골때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따라서 전후 프랑스는 그저 본국에 돈이 없다는 이유 만으로 많은 해외 거주 국민들이 환율상의 타격을 입는 상황을 방지함과 동시에 식민지들을 다시 프랑존으로 끌어들여 프랑스의 경제적 영향력을 수복하려는 의도로 1945년 프랑과 연동되는 CFA프랑을 도입하게 된다.
3. 상세
그러나 모든 것이 프랑스의 뜻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튀니지, 모로코, 기니, 말리, '''알제리''', 모리타니, 마다가스카르 등 굵직한 프랑스 식민지들이 뚝뚝 독립해 떨어져나가면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구 식민지들은 프랑존도 동시에 탈퇴해버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왜 아직까지 존속하는지 의아할 수 있는데, 저렇게 프랑존을 탈퇴한 구 식민지 국가들의 일부는 프랑존으로 다시 복귀했다. 물론 프랑스의 강요나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CFA 프랑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
우선 화폐가치가 안정적이어서 독립 후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고통받았던 정신나간 인플레이션을 피해갈 수 있었고, CFA 프랑존 권역 내 금융 감독기관을 둠으로서 각국이 독자적인 정책을 쓰지는 못하는 대신 방만한 재정편성을 막고, 프랑스의 참여를 통해 보다 세련되게 설계된 경제 정책을 쓸 수 있었다.
또한 무작정 프랑스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CFA 프랑 운영의 개혁을 1970년대에 진행함으로서 프랑존의 직책을 프랑스로부터 CFA프랑존 회원국들이 넘겨받았으며, 외환보유액 100%를 프랑스에 예치해야 한던 것을 65%로 줄였다.
마지막으로 기존 프랑과 연동되던 것에서 프랑스 정부의 태환 보증은 그대로인데 프랑이 더더욱 안정적인 유로화로 바뀌면서 물가 상승률이 다른 사하라 이남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게 유지되며, 해외 투자 유치에 프랑 시절보다도 더 유리해졌다는 장점이 생겼다.
독립적인 화폐와 경제정책을 사용하다가 수많은 인접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를 말아먹는 것을 지켜본 CFA 프랑존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정치 불안과 능력 부족으로 자국에 최적화된 경제정책 수립을 못할 바에야 뭉쳐서 프랑스 지원 받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주변국들이 국가 막장 테크를 착실히 밟으며 말아먹을 때 CFA 프랑존 국가들은 나름 안정적으로 경제를 꾸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경제가 잘 안돌아갈 때 독자적인 통화/환율 정책을 쓸 수가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무역조건의 조정이 안되기 때문에 주요 수출품 가격의 변동에 경제가 쉽게 흔들리는데다 빚내거나 돈을 찍어서 산업 테크 올리는데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는 그대로이다.
4. 현재
세파프랑을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선은 복잡하다. CFA 프랑존이 커먼웰스같은 거대 경제 권역이었으면 신나게 꿀을 빨 수 있었겠지만, 그런 구조라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선 CFA 프랑존 국가들이 사하라 이남에서 괜찮은 성장을 하는 중인 건 사실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다. 프랑스의 對 CFA존 무역 비중은 60년대의 3% 가량에서 현재는 1% 남짓으로 줄어든 상태다.
따라서 최종 대부자 자격으로 태환 보증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부담은 가득한데 당연히 EU는 이미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 독자적으로 만든 세파프랑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건 전적으로 프랑스가 해결할 일이지 EU의 다른 회원국들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못박았기 때문에 프랑스 입장에서는 그냥 국민들이 과거 식민제국의 영광을 추억할 수 있는 자존심 충족감을 제외하면 얻는 것도 없다. 게다가 CFA 프랑의 태생이 식민지들의 경제 예속을 위한 것인지라 국제적으로 식민주의 잔재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욕은 바가지로 먹고, 경제적으로는 딱히 이득도 안 되니 계륵이나 다름이 없다. CFA 프랑을 유지하자니 세계적으로 구시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제국주의자라고 까이고, 그렇다고 폐지하자니 식민지 시절에는 실컷 뽑아먹고 경제대국인 프랑스가 작은 식민지들힌테 그깟 보증도 못 서냐고 까일 게 뻔하니 이러니저러나 욕을 먹는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새 화폐인 ECO를 밀면서 서아프리카 8개국에 교묘하게 영어권-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 참여하자고 권유하는데, 영어권 국가들은 프랑스의 옛 식민지가 아니므로 ECO로 전환하면 최종 대부자 딱지를 떼려는 속셈이다. 당연히 영여권 아프리카 나라들에게는 태환 보증도 안 되는 걸 왜 쓰냐고 무시당했다. 이런 형편이라 근시일 내에 CFA 프랑의 실질적인 알맹이는 변화 없이 이름만 ECO로 바꾸고 식민 잔재를 청산했다고 정치적인 쇼를 벌이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5. 각국의 CFA 프랑
- CFA 프랑/서아프리카: (Communauté Financière d'Afrique) 베냉,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기니비사우, 말리, 니제르, 세네갈, 토고. CFA 프랑은 코트디부아르와 프랑스측이 2019년 12월 22일에 폐지하고 새로운 화폐 에코(Eco)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 12월말 마크롱 대통령이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하여 한 연설에 ECO통화 사용에 대한 내용이 있었으나 아직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가 되고 있지는 않다.
또한 ECO통화는 프랑스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닌 현 프랑세파 사용국들간의 협의체에서 협의,발행하는 것으로 각 나라간의 이해관계가 잘 이루어 질지는 의문이다, 또한 해당 국가들이 세금 및 과세 부분에 있어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아 실제 통화개혁이 아무런 저항없이 이루어 질지 또한 지켜볼 일이다.
- CFP 프랑/폴리네시아: (Comptoirs Français du Pacifique[3] )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왈리스 퓌튀나, 누벨칼레도니
- CFP 프랑/누벨 칼레도니: 누벨칼레도니 (2013년에 기존의 CFP에서 분리될 예정...이었으나 어느새 취소.)
- 마요트, 레위니옹, 생피에르 미클롱[4] 등은 프랑스 본토와 동일하게 프랑스 프랑을 사용했으며 현재는 유로를 사용한다.
- 1945년 12월 26일, 1(CFA) : 1.7(FRF)
- 1948년 10월 17일, 1 : 2
- 1960년 1월 1일, 1 : 0.02 (프랑스 프랑의 화폐개혁(1(신):100(구))으로 인한 조정.)
- 1994년 1월 12일, 1 : 0.01
- 1999년 1월 1일, 1 : 0.00152449(유로) (프랑스가 유로를 채택하면서 변경), 655.957프랑/EUR. 기존 100 CFA = 1 프랑스 프랑 이었고, 1유로=6.5597 프랑스 프랑으로 환율이 결정되면서 CFA 프랑도 유로에 페그되기 시작했다.
- 1945년 12월 26일, 1(CFP) : 2.4(FRF), 49.6프랑/USD.
- 1949년 9월 21일, 1 : 5.5
- 1960년 1월 1일, 1 : 0.055 (프랑스 프랑의 화폐개혁(1(신):100(구))으로 인한 조정.)
- 1999년 1월 1일, 1 : 0.00838(유로) (프랑스가 유로를 채택하면서 변경), 120프랑/EUR
[1] 태평양이나 대서양 한가운데에 띄엄띄엄 박혀 있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과거 해양 개척이 활발하던 나라들이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섬들이 대부분이다.[2] 특히 프랑스의 멀티나 다름없던 북아프리카 지역은 비시 프랑스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 프랑스에 협력하는 것도 아닌 정치적으로 매우 애매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횃불 작전 당시에는 연합군인 미군에 대항해 전투를 벌이기도 했을 정도.[3] 원래는 Colonies françaises du Pacifique(프랑스령 태평양 식민지)였는데 여러모로 어감이 좋지 않아서 변경한 듯 싶다.[4] 특이하게도 캐나다 옆에 있으면서도 CFA를 사용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