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키나파소

 

[image] '''부르키나파소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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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 파소
Burkina Faso
'''
[image]
[image]
'''국기'''
'''국장'''
'''Unité, Progrès, Justice'''
'''통일, 진보, 정의'''
'''국가 정보'''
'''면적'''
274,200km²
'''인구'''
19,742,715명[1]
'''수도'''
와가두구
'''주요 도시'''
보보디울라소, 쿠두구, 와이구야
'''국가(國歌)'''
어느 날 밤
(프랑스어: Une Seule Nuit)[2]
'''공용어'''
프랑스어외 토착어
'''정부 형태'''
대통령 중심제, 단일국가, 이원집정부제, 공화국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16위'''(2020년)[권위주의]
'''대통령'''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
'''총리'''
폴 카바 티에바
'''외교장관'''
마마두 알파 베리
'''민족구성'''
모시족(52%), 풀라족(8.4%). 구르마족(7%), 보보족(4.9%) 등
'''종교'''
이슬람교(수니파) 61.5%, 천주교 23.3%, 전통신앙 7.8%, 개신교 6.5%
'''UN 가입년도'''
1960년 9월 20일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61년 4월 2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72년 10월 11일
'''교민 수'''
61명
'''여행경보'''
여행자제[3]
철수권고[4]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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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식민지 이전
2.2. 프랑스 강점
2.3. 오트볼타 공화국
2.5. 토마스 상카라 이후
3. 자연
4. 사회
5. 부르키나파소의 행정구역
6. 문화
6.1. 언어
6.2. 종교
6.3. 스포츠
7. 외교
8. 출신 인물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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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리카 대륙, 정확히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내륙국. 수도는 와가두구이다.

2. 역사



2.1. 식민지 이전


기원전 1만 5000년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걸로 보이며, 일찍부터 농경이 성행했던 니제르의 영향으로 기원전 3600년을 전후해서부터 농경이 이루어졌던걸로 추정된다. 서기 3세기부터 철기가 널리 보급되고 이후에 도시국가(부라 문화)가 형성되었던 걸로 보이나 기록의 미비로 고고학적인 유적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후에 말리 제국이 일부 지역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가, 11~13세기에 걸쳐 모시족들의 국가인 모시 왕국이 들어섰다. 모시 왕국이 세워졌지만, 모시 왕국에 속한 이들 국가들은 통일된 국가는 아니었지만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흥망성쇠 과정에서도 공동의 조상을 가졌다는 점을 내세워 서로 동맹관계를 맺어 오랜 기간 독립을 유지한다.

2.2. 프랑스 강점


그러나 19세기 말-20세기 초반에 차근차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가며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50년대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나 50년대 후반에 자치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2.3. 오트볼타 공화국


'''오트볼타 공화국'''
프랑스어: République de Haute-Volta
[image]
국기[5]
'''Unité, Travail, Justice'''(단일, 노동, 정의)
존속기간
(설립, 해체)
1960년 8월 5일 ~ 1984년 8월 4일
면적
[동일]
인구
15,434,231명(추정치)
수도
와가두구
국가
오트볼타의 국가
(프랑스어: Hymne Nationale Voltaïque)
공용어
프랑스어
정부형태
대통령제 공화국
초대
모리스 야메오고
2대
상굴레 라미자나
3대
사예 제르보
4대
장바티스트 우에드라오고
마지막 대통령
토마 상카라
민족 구성
[동일]
종교
애니미즘66%, 이슬람교(수니파)31%외[6]
<color=black> 언어별 명칭
한국어
오트볼타
오트볼타 공화국
영어
Republic of Upper Volta
일본어
オートボルタ
オートボルタ共和国
중국어
上沃尔特
上沃尔特共和国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Верхняя Вольта
프랑스어
Haute-Volta
République de Haute-Volta
1984년 오트볼타에서 부르키나파소로 국명을 바꾸기 전까지 쓰이던 국기는 볼타강(흑볼타강, 백볼타강, 적볼타강)을 의미한다. 여담으로, 저 국기를 180도 뒤집으면 現 예멘의 국기가 된다.
그리고 1960년, 독립하면서 오트볼타(Haute-Volta)라는 국명으로 독립을 하였다. 오트볼타는 불어로 볼타강 상류라는 의미이다. 독립을 하면서 모리스 야메오고가 집권했으나, 이후에 경제가 악화되어가고 야메오고의 통치도 독재적으로 변하면서 국민들은 실망을 하였고, 1966년에 반정부 시위와 쿠데타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야메오고는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이후의 정부들도 영 좋지 않았고, 산적해 있는 사회 문제들을 개혁하지도 못하고 경제발전에도 실패하여 몇차레에 걸쳐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되어나가다 1984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토마스 상카라를 위시한 장교들에 의한 국가개혁에 착수해 토마스 상카라가 오트볼타의 대통령직에 올랐다.

2.4. 토마스 상카라


[image]
토마스 상카라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청산하기 위해 국명을 불어인 오트볼타에서 토착언어들을 섞어서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의 '''부르키나 파소'''로 바꿨다. 자주관리정책으로 다양한 부족들을 관리하고 농업 진흥정책을 취했다. 이런 상카라의 정책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필연적으로 기득권층의 반발을 사왔고, 1987년 말 그의 사회주의 개혁정책을 불편하게 여긴 미국과 이웃의 다른 독재정권들의 사주를 받은 개혁세력 내부의 분열로 블레즈 콩파오레가 일으킨 쿠테타에 상카라가 살해되면서 개혁이 중단되었다.[7]

2.5. 토마스 상카라 이후


[image]
쿠데타를 일으키며 부르키나파소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독재자 블레즈 콩파오레.
그럼에도 최근 10년 간은 초등학교를 300개에서 5,500개로 늘리는 등, 나름대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나라라는 평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대통령인 콩파오레는 1987년부터 2014년까지 27년간 해먹은 독재자였다. 여하간 실패국가지수 순위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문제는 그 낮은 편이라는 순위도 178개 국 중 35위로써 방글라데시보다도 겨우 6계단 낮은 거란 거지만...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민주화 바람이 사하라 이남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도리어 이 나라는 일부 군인이 반란(내전)을 일으켜 국토 전역이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 이 나라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기도 했다. 현재는 어느 정도 소강된 상태. 이웃나라 나이지리아에서 득세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도 정국에 불온한 요소다.
그러나 2014년 블레즈 콩파오레 대통령이 4선을 한 것도 모자라 더 대통령을 하려고 연임 제한 철폐 개헌을 시도하다 이에 반발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의사당과 방송국을 점거했고 결국 군부가 쿠테타를 일으켜 정부와 의회를 해산한 후 과도정부를 선언하였다. 콩파오레는 사임했으며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선거는 1년 이내에 실시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전 외무장관이자 주 UN 대사를 지낸 바 있는 미셸 카판도가 1년간 임시 정부를 맡아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새 정부수립을 위한 선거는 2015년 10월로 예정되어 있고, 2015년 상반기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준비가 진행 중이라 이 덕에 특별여행주의보가 해제되었으나...
2015년 9월 16일, '''군대 안의 군대'''라고 불리우는 대통령 경호 연대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카판도 대통령과 야코바 지다 총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었으며,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의 주도 하에 새로운 선거를 치를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르키나파소 쿠데타 세력은 자진해서 해산하며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한 모양이다.
원래는 2015년 10월에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었지만, 2015년 9월 대통령 경호부대의 쿠데타 시도 등으로 투표가 연기됐었는데 결국 선거가 실시되어 2015년 12월 1일에는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Roch Marc Christian Kaboré) 전 총리가 당선됐고 이로써 장기집권과 연이은 쿠데타로 정치적 불안을 겪어온 부르키나파소에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2017년 8월 14일에 부르키나파소에서 테러가 일어났는데 18명이 사망했다. #
2018년 9월 29일에는 빈번한 테러 등에 항의하는 반정부시위가 벌어졌다. # 그리고 두달만인 11월 29일에 다시 반정부시위가 발생하였다. #
2019년 5월 19일에 말리-부르키나파소 국경지역에서 무장괴한들에 의한 공격으로 민간인 4명을 포함한 7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9월 5일에 북부의 솜 주에서 군차량 1대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아 군인 1명이 사망했다.#
10월 4일에 부르키나파소 북부의 금광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에 의한 총격으로 약 20명이 사망했다.# 10월 11일에 북부 지역의 모스크가 무장한 남성들의 공격을 받아 16명이 사망했다.# 10월26일에 북부 지역에 무장단체가 민가를 습격해 민간인들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1월 6일에는 캐나다 금광업체의 광부들을 실은 차량이 괴한의 총격을 받아 최소 37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당했다.#
12월 24일에 부르키나파소에서 지하디스트들의 공격으로 민간인 35명이 숨졌다.#
2020년 1월 21일에 부르키나파소 북부의 마을 시장에서 무장세력이 민간인 36명을 살해했다고 AFP·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2월 16일에는 사헬 지역의 교회에 나가던 기독교 신자 24명이 공격을 받아 피살된 사건이 일어나면서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강력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부르키나파소의 보안군이 4월초에 비무장 상태의 구금자 31명을 약식처형한 것으로 보인다고 휴먼라이츠워치가 4월 20일에 밝혔다.#
5월 30일에 부르키나파소 북부지역에서 괴한들의 상인 호송차량 공격으로 최소 15명이 사망했다.#
9월 9일에 부르키나파소에서 홍수로 최소 13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11월 22일에 부르키나파소에서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 투표가 시작됐다.#

3. 자연


망간 등 여러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개발권을 두고 여러 나라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국토 모양이 같은 대륙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많이 닮았다. 보기.
지리적으로는 거의 평원지역이고 1년 내내 흐르는 강도 하나 뿐이고 계절적으로만 흐르는 강과 작은 호수 뿐이고 많지도 않다. 남서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토가 사하라 사막의 주변부인 사헬 지역으로 사막화가 진행중이라 물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남부 일부는 그나마 건조지 농업을 할만한 지역이다. 내륙국이고 변변한 돈될만한 자원도 거의 없어서 경제도 거의 농업 위주이지만, 물이 부족해 그 농업조차도 변변하지 않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국가에 속한다.

4. 사회


워낙 가난한 나라이다보니 국제 이메일 사기의 중심지로 악명이 높다. 과거에는 나이지리아가 이런 이메일 사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최근에는 부르키나파소가 나이지리아를 뛰어넘어 이런 사기의 중심이 되고 있다.

5. 부르키나파소의 행정구역


행정이름
여행경보
부클뒤무운 주
여행자제
카스카드 주
여행자제
중부 주
여행자제
중동부 주
여행자제
중북부 주
여행자제
중서부 주
여행자제
중남부 주
여행자제
동부 주
여행자제
오트바생 주
여행자제
플라토상트랄 주
여행자제
남서부 주
여행자제
북부 주(야텡가주)
철수권고지역
사엘 주(소움주, 오달란주, 세노주)
철수권고지역

6. 문화



6.1. 언어


프랑스 식민지를 겪어서 프랑스어가 많이 통하며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외에도 모시어, 밤바라어, 소닝케어, 하우사어, 투아레그어, 풀라어를 포함한 여러 토착어가 쓰이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국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는 "뷔르키나베(Burkinabais)"이다.

6.2. 종교


종교적으로는 인구 6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데,[8]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으며 종교적인 분쟁도 거의 없고, 기독교이슬람교, 토착 신앙을 국민들이 자유롭게 믿는다. 그래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관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라고 평가한적 있다. # 또, 특정 종교에 집착하지 않는 성향이 대단히 강하다. 이 나라 국민의 50%는 이슬람교, 50%는 기독교, 100%는 토착 신앙이라는 우스개도 있을 정도이니. 일부 북부 지역을 제외하곤 치안은 아프리카에서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범죄율 또한 0점대로 아프리카 국가에선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제위기그룹에서도 부르키나파소는 종교적 관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국가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마그레브 지역의 분쟁이 사하라 이남으로 점차 확대되면서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종교 간 분쟁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9년 4월 29일에 부르키나파소에서 교회 피습이 일어나면서 목사와 신자를 포함한 6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019년 5월 12일에 부르키나파소 북부의 교회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해 6명이 사망했고,# 5월 14일에는 와가두구의 천주교회에서 종교행사도중에 총격사건이 발생해 4명이 사망했다.# 또한, 몇년새에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6.3. 스포츠


축구가 인기가 많으며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강(4위)에 진출한 것과 2001년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 4강(3위)에 오르면서 좀 알려졌지만 그 뒤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남아공에서 열린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강호 가나를 승부차기 끝에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지만 나이지리아에 패하면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최종예선까지 진출했지만 알제리에 1승 1패 3득점 3실점 타이를 이뤘으나 원정 득점(3:2승, 0:1 패)에서 뒤쳐져 탈락하면서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은 무산되었다.
국내에서 알만한 선수로는 한때 첼시에서 뛰었고 현재 아스톤 빌라 FC에서 뛰고 있는 윙어 베르트랑 트라오레가 있다.
이 나라의 국대에 대해서는 부르키나파소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야구도 한다. 야구와 소프트볼을 합쳐서 21클럽, 545명의 선수가 존재한다.
전세계에서 100번째로 리틀야구리그가 창설된 국가이기도 하다.

7. 외교




8. 출신 인물



9. 여담



부르키나파소 국가

[1] 2018년 7월 기준. 출처는 여기 참조 [2] https://youtu.be/d7RrzaYtOVw[권위주의] 3.73점[3] 철수권고를 제외한 모든 지역 [4] 소움주, 오달란주, 세노주, 야텡가주 [5] 독일 제국과 국기가 같다. 다만 빨간색이 아주 조금 어둡다.[동일] A B 현 부르키나파소와 같음 [6] 기독교, 천주교3% [7] 옛 종주국인 프랑스가 쿠데타의 배후에 있다는 애기도 있다.[8] 독립 이전보다 이슬람 신도가 4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19세기엔 무슬림이 3만 명으로 매우 적었으나 1959년엔 인구의 20%인 80만 명까지 늘었고, 지금은 60%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