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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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후지카와 큐지, 제프 윌리엄스, 쿠보타 토모유키.
JFK는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시절 2005시즌 부터 2008시즌까지 한신 타이거스의 불펜을 지켰던 제프 윌리엄스'''(J)''' , 후지카와 큐지'''(F)''', 쿠보타 도모유키'''(K)''' 이 3명의 중간계투를 일컫는 용어이다.
KBO 리그의 안정권KO나 MLB의 불펜 3대장급의 압도적 성적과 더욱 놀라운 수준의 혹사를 보여준, 여러 의미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필승계투조 라인.
2005년 7월 18일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7회 후지카와 큐지, 8회 제프 윌리엄스, 9회 구보타 도모유키의 등판으로 완벽하게 경기를 끝내자[1] 그 다음 날 일본의 스포츠 언론에서는 평소 이 세명의 중간계투의 머리글자를 연결하면 존 F. 케네디(JFK)와 동일하다며 중간 계투 3인방의 네이밍을 JFK로 만들며 그 이후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큐지, 쿠보타 토모유키 이 세 명을 JFK라는 명칭을 언론들이 사용하며 JFK가 유래되었다.
투수의 혹사 따위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일본프로야구의 중간계투 라인 답게 이 세명은 다 합쳐서 평균 소화이닝이 200이닝이 넘을 정도로 마구 출전하였는데 실제로 7회, 8회, 9회에 한 사람당 한 이닝씩 이기는 경기에는 대부분 등판 하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혹사이긴 하지만 사실 한신에선 저렇게 혹사를 할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한신 타이거스는 2004년 시즌에 6회에만 83실점을 기록하며 12개 구단 중 최악의 실점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2] 그리고 2004시즌의 12개구단 6회 평균 ERA가 4.77이었다는것을 감안하면 우승을 노리는 한신 타이거스 입장에선 우수한 중간계투인 JFK를 빠른 시기에 등판시켜 더 이상 실점을 내지 않고 이기는 경기는 확실히 틀어막아 승리를 거두는게 중요했다.
하지만 JFK 라인은 6회부터 출전한 것은 아니었다. 언급한대로 JFK라인은 각각 7, 8 ,9회에만 등판하였기 때문에 마무리 투수가 9회에 등판하기 전에 프라이머리 셋업맨이 8회에 등판하듯이 JFK가 7회에 등판하기 전에 다른 중간계투 스윙맨이[3] 6회에 등판하여 어찌저찌 리드를 지키고 7회에 JFK에게 넘겨주는 식이었다.
즉, JFK가 있었던 한신 타이거스의 승리 공식은 이가와 케이 같은 이닝 이터들의 선발 출전이 아닌 경기에서는 5, 6회까지 시모야나기 츠요시, 안도 유야, 후쿠하라 시노부같은 선발들이 버텨보고 안 풀린다 싶으면 퀵후크, 또는 5회까지 버텼다면 6회에 스윙맨들이 등판 후 리드를 지켜 7회부터 9회까지 JFK가 등판하여 리드를 지켜 경기를 끝내는 식으로 2005, 2006, 2010년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의 안정권KO를 사용한 투수 운용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한신이 리그 우승을 차지한 2005년, 15승을 거두며 리그 다승왕을 차지한 한신의 노장 좌완 시모야나기 츠요시는 규정이닝조차 채우지 못한 132.1이닝만을 소화하고 타이틀을 거두었다. 최다승 투수가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은 1988년 야쿠르트의 이토 아키미츠(18승)[4][5] 이후 처음이며, 현재까지도 일본프로야구 사상 두번밖에 없는 일.
그러나 선동열의 무리한 투수운용으로 삼성의 중간계투들이 다 나가떨어진 것처럼 한신의 JFK 역시 선수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후지카와가 '''80경기'''에 등판해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등판횟수 기록을 경신'''했고, 2007년에는 쿠보타가 무려 '''90경기'''에 등판하며[6] 05년 후지카와의 기록을 2년 만에 깨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가와 케이의 뉴욕 양키스 이적과, 꾸준히 선발로 제몫을 해준 안도 유야, 후쿠하라 시노부의 부상으로 선발진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 이 해 오쿠보 감독은 후지카와에게도 10연투를 소화하게 하고, JFK가 모두 합쳐 256이닝이나 등판하는 막나가는 투수 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기어이 이런 무리한 운용의 대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셋 모두가 꾸준히 1점대 ERA를 기록한것과 달리, 후지카와 큐지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인 제프 윌리엄스와 구보타 도모유키가 2008시즌에는 3점대 ERA를 기록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2008시즌에는 아라이 타카히로의 부상, 필승계투조의 부진 등 여러 요인이 겹쳐 다 잡았던 센트럴리그 우승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내주게 되었고 감독 오카다 아키노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2009년 제프 윌리엄스가 부상을 당하고, 쿠보타 토모유키가 선발 투수로 보직 전환되며 JFK 라인은 해체되었다. 이후 제프 윌리엄스는 2009년 시즌에도 부진을 이어가다가 선수로서 은퇴한 뒤 2011년부터 한신의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고, 쿠보타 토모유키는 선발 전환에 실패한 뒤 부상에 시달리다 재기하지 못하고 2014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7] 은퇴 후에는 한신에서 배팅볼 투수로 근무한다고 한다. 후지카와 큐지 역시 노쇠화와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부상과 구위 저하에 시달리며 메이저리그 도전을 제대로 공쳤다. 다행히 한신에 돌아온 뒤로는 예전만큼 압도적이지는 못해도 여전히 괜찮은 구원투수로 현역생활을 지속하다 2020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JFK 라인이 히트한 이후 일본프로야구의 다른 구단의 필승계투조에도 비슷한 별명이 붙었다. 예를 들면,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치바 롯데 마린즈의 야부타 야스히코-후지타 소이치-고바야시 마사히데로 이어지는 '''"YFK"''' 라인.[10]
2005 ~ 2006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가와무라 타케오-가토 타케하루-기즈카 아츠시-마크 크룬의 '''"콰트로 K"''' 라인.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다케다 히사시/다테야마 요시노리-오카지마 히데키-마이클 나카무라의 '''"TOM"''' 라인.[11]
2010년대 초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셋츠 타다시-브라이언 팔켄보그-마하라 다카히로의 '''"SBM"''' 라인.[12] 등이 JFK와 비슷한 명명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좌측부터 후지카와 큐지, 제프 윌리엄스, 쿠보타 토모유키.
1. 개요
JFK는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시절 2005시즌 부터 2008시즌까지 한신 타이거스의 불펜을 지켰던 제프 윌리엄스'''(J)''' , 후지카와 큐지'''(F)''', 쿠보타 도모유키'''(K)''' 이 3명의 중간계투를 일컫는 용어이다.
KBO 리그의 안정권KO나 MLB의 불펜 3대장급의 압도적 성적과 더욱 놀라운 수준의 혹사를 보여준, 여러 의미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필승계투조 라인.
2. 역사
2005년 7월 18일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7회 후지카와 큐지, 8회 제프 윌리엄스, 9회 구보타 도모유키의 등판으로 완벽하게 경기를 끝내자[1] 그 다음 날 일본의 스포츠 언론에서는 평소 이 세명의 중간계투의 머리글자를 연결하면 존 F. 케네디(JFK)와 동일하다며 중간 계투 3인방의 네이밍을 JFK로 만들며 그 이후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큐지, 쿠보타 토모유키 이 세 명을 JFK라는 명칭을 언론들이 사용하며 JFK가 유래되었다.
투수의 혹사 따위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일본프로야구의 중간계투 라인 답게 이 세명은 다 합쳐서 평균 소화이닝이 200이닝이 넘을 정도로 마구 출전하였는데 실제로 7회, 8회, 9회에 한 사람당 한 이닝씩 이기는 경기에는 대부분 등판 하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혹사이긴 하지만 사실 한신에선 저렇게 혹사를 할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한신 타이거스는 2004년 시즌에 6회에만 83실점을 기록하며 12개 구단 중 최악의 실점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2] 그리고 2004시즌의 12개구단 6회 평균 ERA가 4.77이었다는것을 감안하면 우승을 노리는 한신 타이거스 입장에선 우수한 중간계투인 JFK를 빠른 시기에 등판시켜 더 이상 실점을 내지 않고 이기는 경기는 확실히 틀어막아 승리를 거두는게 중요했다.
하지만 JFK 라인은 6회부터 출전한 것은 아니었다. 언급한대로 JFK라인은 각각 7, 8 ,9회에만 등판하였기 때문에 마무리 투수가 9회에 등판하기 전에 프라이머리 셋업맨이 8회에 등판하듯이 JFK가 7회에 등판하기 전에 다른 중간계투 스윙맨이[3] 6회에 등판하여 어찌저찌 리드를 지키고 7회에 JFK에게 넘겨주는 식이었다.
즉, JFK가 있었던 한신 타이거스의 승리 공식은 이가와 케이 같은 이닝 이터들의 선발 출전이 아닌 경기에서는 5, 6회까지 시모야나기 츠요시, 안도 유야, 후쿠하라 시노부같은 선발들이 버텨보고 안 풀린다 싶으면 퀵후크, 또는 5회까지 버텼다면 6회에 스윙맨들이 등판 후 리드를 지켜 7회부터 9회까지 JFK가 등판하여 리드를 지켜 경기를 끝내는 식으로 2005, 2006, 2010년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의 안정권KO를 사용한 투수 운용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한신이 리그 우승을 차지한 2005년, 15승을 거두며 리그 다승왕을 차지한 한신의 노장 좌완 시모야나기 츠요시는 규정이닝조차 채우지 못한 132.1이닝만을 소화하고 타이틀을 거두었다. 최다승 투수가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은 1988년 야쿠르트의 이토 아키미츠(18승)[4][5] 이후 처음이며, 현재까지도 일본프로야구 사상 두번밖에 없는 일.
그러나 선동열의 무리한 투수운용으로 삼성의 중간계투들이 다 나가떨어진 것처럼 한신의 JFK 역시 선수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후지카와가 '''80경기'''에 등판해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등판횟수 기록을 경신'''했고, 2007년에는 쿠보타가 무려 '''90경기'''에 등판하며[6] 05년 후지카와의 기록을 2년 만에 깨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가와 케이의 뉴욕 양키스 이적과, 꾸준히 선발로 제몫을 해준 안도 유야, 후쿠하라 시노부의 부상으로 선발진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 이 해 오쿠보 감독은 후지카와에게도 10연투를 소화하게 하고, JFK가 모두 합쳐 256이닝이나 등판하는 막나가는 투수 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기어이 이런 무리한 운용의 대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셋 모두가 꾸준히 1점대 ERA를 기록한것과 달리, 후지카와 큐지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인 제프 윌리엄스와 구보타 도모유키가 2008시즌에는 3점대 ERA를 기록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2008시즌에는 아라이 타카히로의 부상, 필승계투조의 부진 등 여러 요인이 겹쳐 다 잡았던 센트럴리그 우승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내주게 되었고 감독 오카다 아키노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2009년 제프 윌리엄스가 부상을 당하고, 쿠보타 토모유키가 선발 투수로 보직 전환되며 JFK 라인은 해체되었다. 이후 제프 윌리엄스는 2009년 시즌에도 부진을 이어가다가 선수로서 은퇴한 뒤 2011년부터 한신의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고, 쿠보타 토모유키는 선발 전환에 실패한 뒤 부상에 시달리다 재기하지 못하고 2014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7] 은퇴 후에는 한신에서 배팅볼 투수로 근무한다고 한다. 후지카와 큐지 역시 노쇠화와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부상과 구위 저하에 시달리며 메이저리그 도전을 제대로 공쳤다. 다행히 한신에 돌아온 뒤로는 예전만큼 압도적이지는 못해도 여전히 괜찮은 구원투수로 현역생활을 지속하다 2020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3. 통산 기록
4. 다른 구단의 필승계투조
JFK 라인이 히트한 이후 일본프로야구의 다른 구단의 필승계투조에도 비슷한 별명이 붙었다. 예를 들면,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치바 롯데 마린즈의 야부타 야스히코-후지타 소이치-고바야시 마사히데로 이어지는 '''"YFK"''' 라인.[10]
2005 ~ 2006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가와무라 타케오-가토 타케하루-기즈카 아츠시-마크 크룬의 '''"콰트로 K"''' 라인.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다케다 히사시/다테야마 요시노리-오카지마 히데키-마이클 나카무라의 '''"TOM"''' 라인.[11]
2010년대 초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셋츠 타다시-브라이언 팔켄보그-마하라 다카히로의 '''"SBM"''' 라인.[12] 등이 JFK와 비슷한 명명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 이날 선발 겸 승리투수가 후에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에서 뛰게 되는 제이미 브라운이었다.[2] 실제로 이해 한신은 리그 4위로 B클래스를 찍었고, 시즌 성적도 '''66승 70패 2무 승률 .485'''로 5할도 넘지 못했다.(다만 피타고라스 성적 자체는 5할이 넘었다) 그것도 작년(2003년) 시즌 내내 돌풍같은 질주로 6할3푼의 엄청난 승률과 함께 18년만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의 화제가 되었던 팀이![3] 아예 이런 용도로 주로 등판했던 중간계투들인 사지키하라 마사시, 하시모토 켄타로, 에구사 히로타카 3명 역시 JFK를 본따서 '''SHE'''라인으로 불렸다.[4] 참고로 이 1988년 다승왕 이토 아키미츠도 등판 기록이 무척 비범했는데 '''선발 등판 없이(!!!) 구원투수로서만(!!!)''' 55시합을 등판. 122.2이닝 18승 9패 17세이브(!!)를 기록하며 다승왕을 수상했다(...) 더 여담으로 그보다 3년 전인 1985년에도 킨테츠 버팔로즈의 이시모토 요시아키가 선발 등판 없이 70경기 등판하여 131.1이닝으로 19승 3패 7세이브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이시모토는 규정이닝(130이닝)을 넘겼고 최다승도 아니었다.(최다승은 21승이었던 사토 요시노리)[5] 다만 다승왕 자체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오노 카즈유키와 공동수상했다. 또한 오노는 18승 4패, 승률 .818로 최고승률도 수상.[6] 2018년 현재까지도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기록이다.[7] 2009년에는 애초에 부상으로 1경기밖에 못 나왔다. 그리고 다시 불펜으로 돌아왔는데, 2010년에 돌아오자마자 '''71경기 81.2이닝'''을 던졌다. 이미 한번 탈이 난 선수가 다행히도 회복했는데 이전만큼 막 굴리니까 1년만에 다시 탈이 나버린것.[8] 당시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경기 등판 기록.[9] '''현재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경기 등판 기록'''. 후지카와의 2005년 기록을 2년만에 깼다.[10] 2010년에는 멤버가 야부타, 고바야시 히로유키(마무리), 후루야 다쿠야(좌완)로 바뀐다.[11] 다케다와 마이클만 묶어 Hisasi And Michael의 앞글자인 HAM으로 부르기도 했다. 닛폰햄을 흔히 '햄'이라 줄여부르는 것과 연관되었다.[12] 여기에 등번호가 48번이던 카토 케이스케까지 껴서 SBM48로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