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드래프트/1996년
1. 개요
1995년 11월 30일 시행된 K리그 드래프트. 신생팀 수원 삼성이 참여하면서 9팀이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수원 삼성 입장에선 역대급 드래프트라고 할 수 있는 드래프트.
2. 진행방식
- 신생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팀 자격으로 보충 드래프트의 수혜를 받는다. 수원은 대학 선수, 고졸 선수 중 우선 6명을 각각 지명할 수 있으며, 실업리그 선수 중에서도 최대 5명 지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후 일반 드래프트 지명 순위에선 1순위 지명때 최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 일반 드래프트 지명은 10차 라운드로 확대되어 진행되고 그외 번외지명에선 제한없이 여러명 뽑을 수 있다.
- 일반 드래프트 지명은 한 라운드에 1명만 지명 가능하다.
- 4라운드 지명은 연고지명으로써 각 구단이 후원하는 대학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라운드다. 또한 1순위 지명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입단한다.
- 추첨을 통해 지명 순서가 배정된다. 창단팀 삼성[1] 은 자동으로 맨 뒷번호인 9번에 위치한다.
3. 지명결과
- 신생팀 우선지명
전체 드래프트 1순위는 최진철이 차지했다. 전북에 입단한 그는 은퇴할 때 까지 전북에서만 활약하며 전북의 초창기 레전드 중 한명이 된다. 후 순위로 입단한 김경량도 이후 두각을 나타내며 2000년대까지 전북의 핵심으로 활약한다. 전남과 LG가 큰 재미를 못본 가운데 대우는 이민성, 우성용이라는 공수 재능을 아주대에서 공수해오며 과거의 영광을 노리는 전력으로 슬슬 리빌딩을 만들어가며 현대는 김상훈을, 포항은 고병운과 이영민, 일화는 후에 팀 레전드 골키퍼가 되는 김해운을 확보한다.
포항으로 2순위에 지명되었던 고려대 미드필더 서동원은 기대를 가지고 포항이 지명한 자원이었으나 입단 과정에서 실시한 메디컬 테스트에 신장염이 발견되어 입단이 좌절된다. 완치가 어려운 병이었고, 신장염이 지구력에 영향을 크게 주는 병이었으므로 축구선수에겐 치명적이었기 때문. 이후 1998년 다시 드래프트를 통해 울산에 입단하지만 역시나 우려했던 몸상태 때문에 짧은 전성기를 가지고 부상에 시달리다 이르게 은퇴하고 만다.
4. 특이사항
보통 신생팀이 참여하면 그 해 드래프트 기피 현상이 심해지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그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에서 창단하는 수원 삼성이 신생팀으로 참여하는 드래프트였기 때문에 올림픽대표, 청소년대표 출신 선수들이 너나할것없이 적극적으로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특히 드래프트를 피해 실업리그에서 활약하던 국가대표 상비군급 선수들 또한 드래프트에 참여해 수원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그 해 신생팀이 한 팀이었기 때문에 수원은 프로축구연맹이 지원해 줄 수 있는 모든 신생팀 혜택을 독점하면서 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었다.
연고 대학 제도를 운영하면서 가장 연고 대학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대우 로얄즈는 이번 드래프트에선 아예 모든 지명자들을 아주대학교에서 영입하면서 연고대학 사랑의 정점을 찍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줘 한동안 축구부 입시에선 아주대가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주대에서 잘만 하면 대우가 무조건 데려간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1996 드래프트에서 사상 최고령 드래프티가 탄생하는데 그 주인공은 실업팀 할렐루야 선수였던 황득하. 1989년부터 할렐루야에서 활약하며 실업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그가 전북의 지명을 받아 만 30세에 프로팀에 입단한 것이다. 황득하 선수는 한번 은퇴를 했었으나 축구 지도자의 꿈을 버릴 수 없어 지도자가 되기 전 프로를 경험하고 은퇴하는 것이 목표여서 드래프트에 지원했다고 하며, 전북 입단 후 그는 2년간 로테이션으로 쏠쏠히 활약하다가 1998년 은퇴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감독을 차례로 맡으며 학원축구 지도자가 되었다.
[1] 드래프트 당시까지는 지역 이름을 우선으로 표기하는 조항이 없어 삼성으로 약칭이 통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