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성

 



'''이민성 관련 틀'''



'''이민성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Daejeon Hana Citizen'''
''' 이름 '''
'''이민성'''
'''李敏成 | Lee Min-Sung'''
''' 출생 '''
1973년 6월 23일 (51세) /
대한민국 경기도 광명시
''' 국적 '''
대한민국
''' 신체 '''
182cm
''' 직업 '''
축구선수(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부산 대우 로얄즈 (1996~1999)
부산 아이콘스 (2000~2002)
상무 축구단(1999~2001 / 군복무)
포항 스틸러스(2003~2004)
FC 서울(2005~2008)
용인시청 축구단(2010)
''' 감독 '''
용인시청 축구단(2010 / 플레잉 코치)
용인시청 축구단(2011 / 수석코치)
광저우 헝다(2012 / 2군감독)
강원 FC(2012 / 코치)
전남 드래곤즈(2013~2014 / 코치)
울산 현대(2015~2016 / 수석코치)
창춘 야타이(2016~2017 / 수석코치)
대한민국 U-23(2018~2020 / 수석코치)
대전 하나 시티즌(2021~)
''' 국가대표 '''
67경기 2골 (대한민국 / 1995~2004)
1. 소개
2. 선수 시절
2.1. 클럽
2.2. 국가대표
3. 지도자
3.1. 코치
3.2.1. 2021 시즌
4. 여담
5. 논란
5.1. 음주운전 뺑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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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 현재 대전 하나 시티즌의 감독이다. 경기도 시흥군 서면 출생으로, 시흥초등학교, 문일중학교, 문일고등학교, 아주대학교졸업하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를 대표하는 '''센터백 중 한 명'''임에도, 1997년 '''도쿄 대첩의 역전골 명성''' 때문에 '''공격수'''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아 그의 골 기록을 살펴보고 실망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원조 '''골 넣는 수비수'''인 셈.

2. 선수 시절



2.1. 클럽


대학졸업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였다. 1997년 리그 우승에 공헌 하였다. 1999년 상무에 입대하였고, 특이하게도 상무 시절에는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상무는 선수층이 열악해서 얼마 안되는 포지션의 선수들을 본 포지션이 아닌곳에 배치해 써먹는 일이 왕왕 있었다. 2001년 군대 갔다온 사이 간판 바뀐 부산 아이콘스로 복귀하였다.
2003년 최순호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고, 2시즌 동안 43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포항에서 이민성은 시즌 내내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많이 나섰고, 이 위치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며 팀을 이끌었다
이후 2005년 이장수 감독의 FC 서울로 이적하여 4시즌 동안 62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세뇰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2007시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서 좋은 활약을 선보여 시즌 초반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으나 시즌이 절반도 진행되기 전에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
이후 2008년 후술할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방출되었다가, 2010년에 내셔널리그 용인시청의 플레잉 코치로 1시즌을 더 뛰며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2. 국가대표


[image]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 송재익

1995년 2월 19일 다이너스티컵 중국전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데뷔골은 1997년 9월 28일있었던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이다. 0:1로 뒤진 후반 38분 서정원의 헤딩슛으로 동점을 만든 상황에서 41분 왼발 중거리 슛을 날렸고, 바운드 된 볼은 득점으로 이어지며 2:1 역전골을 만들어냈다.[1]이 순간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스포츠사에서 일본에서 열린 국제대회 도전 역사상 가장 유쾌상쾌통쾌한 순간으로 남아있을 정도이고, 이 한일전을 대한민국 팬들은 도쿄 대첩으로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수조롭게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통과하고 본선 티켓을 따낸다.

이민성은 98년도 프랑스 월드컵 최종 엔트리 이름 올리며 첫 월드컵 무대를 밟게된다. 월드컵 대회에서 이민성은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와 맞서 모두 풀타임 출장했으나 세계의 벽에 부딪치고 좌절감을 맛본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23명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러나 김태영-홍명보-최진철로 이어지는 3백라인에 밀려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최진철과 교체로 56분에 처음 투입되었다. 다만 미하엘 발락의 실점 장면을 두고 아직까지 이민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있는데 그 장면 자체만 놓고보면 이민성의 과실은 거의 없다. 그 상황에서 이민성의 수비상대는 독일 대표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인 올리버 뇌빌였는데 안그래도 발 느리기로 유명했던 이민성이었지만 뇌빌에게 벗겨지지 않고 끝까지 따라붙어 주었고 결국 크로스 각이 좁아진 뇌빌로 하여금 거의 자포자기식의 느릿느릿한 땅볼 크로스를 올릴 수밖에 없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페널티박스 안에 있던 유상철홍명보가 하필이면 동시에 정줄을 놓으며 그 쉬운 크로스를 흘렸고 이걸 발락이 가볍게 마무리한 것. 유상철, 홍명보 둘의 실책이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4강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쌓아온 게 있다 보니 함부로 까기 좀 그래서 만만한 이민성이 욕받이가 된 느낌이 강하다.
3/4위전에는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했으나 역시 수비력의 불안감을 노출하며 3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 당시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센터백 자원은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 이민성 4명이었는데 유상철과 송종국이 멀티플레이어로 수비를 보기도 했지만, 독일전과 터키전 시점에 두 선수의 체력고갈도 극에 달한 상태라... 이에 대해서 히딩크는 자서전에 '한국은 수비수가 별로 없다'고 언급하며 "차두리가 체격조건도 좋고 발도 빠르니 수비수하면 잘할거다"라는 예언을 남겼다.[2] 하지만 당시 축구팬들 중에는 심재원은 왜 버렸나? 성남의 김영철은 왜 끝까지 무시하나요? 이임생과 이상헌은? 마시엘 귀화시키면 안 되나요? 라며 잔소리들을 했다.
이 당시 김영철 처럼 K리그에서 활약한 본좌급 수비수들이 많았지만, 히딩크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영철의 경우 부산 아시안 게임 때 와일드 카드로 기용되었고, 이후 독일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임생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월드컵 직전에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마시엘은 브라질 출신 수비수로 당시 전남 드레곤즈에서 김태영과 철벽을 이루던 콤비였다. 일설에 축협에서 귀화제의를 했지만, 마시엘이 '월드컵 끝난 뒤에 다시 브라질 국적 회복할 수 있음?'이라고 되묻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마시엘은 2003년을 끝으로 브라질로 돌아갔고, 선수시절 모은 돈으로 현재 농장 운영하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3. 지도자



3.1. 코치


2010년 정광석 감독이 이끌던 용인시청에서 플레잉코치로 처음 지도자생활에 입문하였다.
2012년 1월, FC 서울 시절 은사인 광저우 헝다 이장수 감독의 호출로 중국에서 코치 겸 2군 감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 간지 얼마 안돼 이장수 감독이 경질되고, 이민성도 한국으로 돌아와 강원 FC 코치 자리로 옮긴다. 이후 강원 FC 감독으로 김학범이 선임되면서 이을용과 함께 김학범을 보좌한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하석주 감독의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하석주와 이민성은 대우로얄즈와 대표팀 시절 같이 뛰었다.
2015년 1월 5일 동갑내기인 윤정환 감독의 요청으로 울산 현대 코치로 부임한다. J리그 무대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했던 윤정환 감독이기에 K리그를 잘 알던 이민성이 필요했다고 한다.
2016년 5월, 창춘 야타이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이장수 감독의 강력한 러브콜로 울산을 떠나 두 번째 중국생활을 하게 되나, 1년만에 이장수 감독이 해임되면서 같이 나오게 된다.
이후 소식이 뜸하다가 2018년 3월 5일, 김학범호U23세 대표팀 수석코치로 합류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일조한다.
2020년 12월, 대전 하나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단독기사가 나왔고, 곧이어 구단 오피셜이 나왔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같은 올림픽 대표팀 코치이자 대전의 레전드인 김은중과 동행을 원했으나 김은중이 고사했다고 한다.
줄곧 코치생활만 해오던 이민성이 맡은 첫 감독직이다.

3.2.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대전 하나 시티즌 역대 감독'''
조민국 (대행)
(2020)

''' 이민성'''
''' (2021)'''


[image]
2020년 12월 9일 대전 하나 시티즌의 '''14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민성은 본인의 축구의 핵심은 전체적인 공수 밸런스라고 말했다. 좋은 팀, 앞으로 좋아질 팀 모두 밸런스가 중요하며, 밸런스가 갖춰져야 압박도 할 수 있고, 역습도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볼을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의 타이밍을 맞추면 템포가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승격이라는 목표로 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색깔이 있어야 한다. 물론 어느 시점에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승격에 무게를 두고, 절충하는 방법도 찾을 것"이라고 했다.

3.2.1. 2021 시즌


시즌을 앞두고 이진현, 이현식, 원기종 등을 대거 영입하였으며, 전지훈련에서는 운동량이 많고 강도가 높은 지옥 훈련으로 시즌을 준비하였다.
선수들은 이민성의 훈련 방식에 대해 공수전환, 빠른 템포, 전체적인 수비 밸런스, 안정적인 것보다는 공격적인 것을 선호하며, 뒤에 사이드백 보다 확실히 나가는 화끈한 축구를 펼치길 원한다고 평가했다.
부천 FC와의 리그 개막전을 통해 감독 데뷔전을 치렀으며, 전지훈련에서 4-2-3-1과 4-1-4-1 포메이션을 혼용할 것이라 공언했던 이민성 감독이 놀랍게도 이날 경기에서 3-1-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3]
90분 동안 강한 압박을 유지했으며, 볼을 잃으면 야수와 같이 달려들어 소유권을 되찾아냈고 곧바로 역습 전환해냈으며, 신인 신상은과 에디뉴의 골을 앞세워 2:1 승리를 거두며 감독 데뷔승을 거두었다.

4. 여담


  • 마리텔에서 밝히길 안정환이 꼭 유명해져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이민성 때문이라고 한다. 도쿄대첩 이후 부산의 발리라는 나이트를 선수들과 다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유명한 선수였던 이민성의 룸에 여자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걸 보고 굳게 마음먹었다고. 참고로 이민성은 본인이 군대에 있던 시절 지구 반대편에 있어 시차가 적응이 안되어 있는 안정환에게 나이트 예약을 부탁했다고 한다.
  • 안정환의 말로는 이민성과 같은 방을 쓸때 코를 곤다고 탁상시계로 얻어맞아서 눈에 멍이 든 적이 있고, 안정환과 같은 팀이던 시절 안정환이 공을 잡고 있을때 오버래핑을 하다가 실수로 안정환의 머리를 박치기해서 기절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5. 논란



5.1. 음주운전 뺑소니


2008년 당시 FC 서울 주전 수비수로 뛰던 이민성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신의 BMW 승용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고 도주한 사건이다. 도쿄 대첩의 영웅이고 바로 해당시즌만 해도 K리그에서 활약하던 이민성의 이러한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은 큰 파장을 낳았고, 심지어 사고 당시 이민성의 혈줄알콜농도는 0.169%로 약주 몇 잔 한 수준이 아니라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성은 소속팀 FC 서울로부터 방출당했고 이어 조용히 은퇴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후 2010년에 내셔널리그 용인시청 축구단과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계약해 다시 필드를 밟았다가 한 시즌 후 2차 은퇴를 했다.


[1] 야구로 비유하자면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일전 9회말 투아웃'''에서 대한민국 '''9번 타자'''가 역전 끝내기 홈런을 때린 것과 같은 위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국가대표 팀의 특성상 9번 타자라 할 지라도 소속팀에선 1번에서 5번 타자 사이를 맡고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2] 그리고 차두리는 정말로 수비수가 되었다.[3] 상대를 의식해서라기보다 현 스쿼드 상태에 따른 결과물로 보인다. 스트라이커 바이오와 윙 포워드 안토니오를 쓸 수 없고 박진섭과 이지솔, 이웅희가 부상에서 회복 단계라는 점이 감독의 선택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또한 백 스리가 서영재와 최익진의 강점을 더 살릴 수 있고 원 보란치로 나온 이진현의 수비 부담을 덜어줄뿐만 아니라 이현식과 에디뉴가 더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는 이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