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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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전남 드래곤즈에서 골키퍼로 뛰었으며, 은퇴 후 골키퍼 코치로 전업하여 현재 전북 현대 모터스 골키퍼 코치로 재임중이다. 국가대표팀과 K리그에서 맹활약하여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발표한 '21세기 최고의 골키퍼(2001-2011)' 순위에서 41위에 올랐으며 랭크된 80명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 선수이다.[1][2] 출처'''아직도 그를 기억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맞붙고 싶은 선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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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로 2011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15년 가까이 수원의 골문을 지켜온 레전드. 수원의 K리그 우승 4번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국가대표 131경기 출전은 전 세계 현역 골키퍼 A매치 출전 순위 4위를 기록하고 있다.[3]
프로 데뷔 시즌이었던 1996시즌과 1997시즌에는 간염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 때문에 박철우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여 각각 12경기와 7경기밖에 나오지 못하였다.
1998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골리로 나서며 18경기에 출전하였고 수원의 사상 첫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이어진 1999시즌에도 총 27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두 시즌 연속 K리그 우승과 아디다스컵, 대한 화재컵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5월 16일 천안 일화와의 대한 화재컵 4강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이와 같은 활약들로 1999 시즌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 이운재는 군입대를 하여 2000년부터 상무 축구단 소속으로 경기에 나섰다. 2002년 3월 4일 전역하자마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대비하는 대표팀 합숙 훈련에 발탁되어 2002 월드컵이 끝난 2002시즌 중반에야 수원으로 복귀했다.
2002 잔여 시즌동안 23경기에 출전하여 FA컵 우승에 공헌하는 등의 활약으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2002년 월드컵 끝난 뒤 스페인에서 이적 제의가 왔었다고 한다. 근데 조건도 안 좋고 그냥 남아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거절했다고...
그 후 수원의 전성기를 이끌며 최정상급 활약을 하다 2008년에 골키퍼로는 전무후무한 '''K리그 MVP'''를 수상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는 등 찬란한 선수 생활을 보냈다.[4]
하지만 2010년부터 4월 4일에 열린 서울전에선 8분동안 내리 3점이나 실점하는 삽질을 하는 등 좋지 못한 폼을 보이며 5월 1일 기준 '''시즌 8경기 22실점'''이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진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국대 및 수원 주전 골키퍼 교체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물러났고 소속팀에서도 슬슬 은퇴를 생각해봐야 할 나이(37)라 물러난 후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본인은 팀에 남아 코치가 되는 걸 바라고 있으며 농구선수 출신이던 감독[5] 과 함께 음식점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후 분당 정자동에 퓨전음식점을 냈지만 2012년 기준으로 망했어요...
2.1.2. 전남 드래곤즈 (2011~2012)
그러나 소속팀과의 코치직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선수로 뛸 수 있는 다른 팀을 찾았고 2011년 1월, 전남 드래곤즈 입단이 결정되었다. 전남에서 10kg을 감량했다는데 그 덕에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선방들을 보였고 그 결과 30경기 29실점으로 2011 시즌 최소 실점을 기록하였다.
2.1.3. 현역 은퇴
상당히 자존심이 강하고 인터뷰 때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김병지의 대표팀 합류설이 나왔을 땐 대놓고 직설적인 말을 쏟아냈을 정도였으며[6] , 네티즌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내가 팀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언제라도 옷을 벗겠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강한 자존심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2012년 12월 5일 은퇴했다.[7]
2.2. 국가대표 경력
3. 기록
3.1. 대회 기록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11)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4위: 2002
- AFC 아시안컵 3위: 2000, 2007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3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3.2. 개인 수상
- K리그 MVP: 2008
- K리그 베스트 XI: 1999, 2002, 2004, 2008
- FA컵 MVP: 2009
- AFC 아시안컵 베스트 XI: 2007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최우수 골키퍼: 2005
- 윈저어워즈 한국축구대상 베스트 XI: 2008
- 체육훈장 맹호장: 2002
3.3. 국가대표 기록
4. 플레이 스타일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골키퍼.''' 라이벌이었던 김병지보다 더 안정적이고 더 수비적인 스타일을 추구해 어느 상황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는 안정감으로 유명하다.[8] 이러한 스타일 덕분에 김병지와 달리 국가대표에도 잘 뽑혔다. 김병지와의 골키퍼 대결은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승전(포항VS수원)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경기는 전설 아닌 레전드 수준인데, 1, 2차전은 두 골키퍼의 활약으로 무승부, 그리고 2차전 끝나고 연장전으로 들어가서도 득점이 안나서 승부차기로 들어갔다. 이때 포항측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온 것이 김병지였다. 김병지로서는 이것이 이운재와 결판을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슈팅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2004년 우승은 수원에게 돌아갔다.
강한 멘탈이야말로 이운재 최고의 장점으로, 침착성은 물론이고 과감한 판단력과 정확성으로 단점인 반사신경을 커버한다. 여기에 수비라인 형성은 여러 전문가들이 손꼽는 이운재의 장점. 골키퍼로서 뒤에서 호통까지 치면서 수비라인 형성을 지시해 수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수비의 핵심이던 홍명보가 은퇴하고, 3백에서 4백으로 국가대표 수비 전술이 교체되던 단계에 이운재의 카리스마는 축구 국가대표의 수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그 덕에 은퇴 전까지 국대팀의 주장도 겸임하였다.
반사 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끝까지 공을 보며 기다리는 타입인데, 이런 특성이 페널티킥 방어 시엔 강점으로 작용한다.[9]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에게 파넨카 킥을 시도한 결과...[10]
다만 순발력이 떨어져 프리킥이나 순간적인 중거리 슈팅에 약점을 보인다는 점. 특히 선수 말년으로 갈수록 체중관리에 실패한 것과 겹쳐서, "살이 쪄서 순발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아 돼흐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4.1. 승부차기
특기는 페널티킥(그리고 승부차기)방어로, K리그 통산 승부차기 전적은 '''12전 11승 1패 승률 91%'''[11] . 승부차기 전적이야 말할 것도 없으며 32골 허용 26 방어로[12] K리그 역대 승부차기 방어율 역시 1위이다. 본인 스스로도 페널티킥에는 굉장히 자신이 있어서, 2002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미리 스페인 키커들의 성향을 파악해 공의 방향을 예측해 이운재에게 전달하는데 본인은 헷갈릴 수도 있으니 자신의 감대로 해보겠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13] 특히 승부차기는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키커보다도 오히려 여러번 기회가 주어지는 골키퍼가 심리적으로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페널티킥에 특별한 비결은 없고 상대 키커가 나올때부터 볼을 찰 때까지 자세를 하나하나 끝까지 보고 움직일 방향을 결정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순간적으로 읽는 연습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14] 키커들의 버릇으로 공을 놓는 순간과 뒤로 갔다가 달려오기 직전의 순간 골대의 한 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그런 경우는 자신의 찰 반대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서 공을 놓는 순간 방향을 알 수도 있다고. 다만 상대 선수가 달려오는 거리가 지나치게 길 경우엔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져서 그냥 감으로 막는다.
2002년 북중미 골드컵 8강전에서 멕시코와 0 :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 들어갔는데 이 때 3번 킥커 알폰소 소사의 킥과 4번 킥커 이그나치오 이에로의 킥을 연달아 선방하며 한국의 4 : 2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5개월 후에 치른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상대 골키퍼는 그 유명한 '''이케르 카시야스'''.[15] 스페인의 4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 5 : 3으로 승리해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4강전에선 미하엘 발락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고 원통함을 잊지 않고 있었는지 2년 후 열린 가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한국의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 키커로 발락이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방해버리고 발락에게 복수를 이뤄내기도 했다.[16]
2007 아시안컵 때는 8강과 4강, 3,4위전이 전부 승부차기로 결정났다.[17] 이란과의 8강에서 2번의 선방을 하며 4 : 2로 승리해[18] 4강에 진출했으나,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는 염기훈과 김정우가 실축하며 4:3으로 패배했다.[19] 일본과의 3,4위전에서는 강민수가 퇴장당한 불리한 상황에서 0:0으로 승부차기까지 가서, 6:5의 상황에서 선방하여 팀을 3위까지 이끌었다.[20][21] 2009년 K리그 FA컵 결승전에서는 2번이나 막아서 수원의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4.2. 김병지와의 관계
3살 위 선배인 김병지와는 대표팀에서는 물론이고, K리그에서도 라이벌 관계였다. 더구나 이들의 전성기 때 소속된 팀은 당대 K리그의 강호였던 수원 삼성과 포항 스틸러스.[22]
이들의 치열한 스토리가 절정에 달한 것은 2004년 12월 12일에 열린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 1, 2차전 두 팀은 무승부로 비겨 연장전으로 갔고, 연장전에서도 두 키퍼의 선방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여기서도 승부가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4-3으로 수원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의 키커로 나선 이는 김병지. 역대급 키퍼의 대결은 서로의 직접 대결로 이어졌고, 여기서 이운재가 김병지의 슛을 막아내면서 승자가 되었다.#
일선에서 물러난 현재는 그래도 옛날처럼 디스를 주고받는 정도까진 아니라도 나름 사이 좋은(?) 선후배 관계로 지내고 있다.[23] 슛포러브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과 김병지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김병지가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마실(...)을 나가자 깜짝 놀랐다고. 자신의 입장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플레이었기 때문이란다. 당시 이운재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관중석에서 관전을 했고, 17년이나 지났기에 자세하게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용대가 후반전에 김병지와 교체된 것은 알고 있었다.[24]
5. 사건 사고
5.1. 2007년 아시안컵 숙소 무단이탈 및 성매매 룸살롱 출입사건
2007년도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아시안컵 대회 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동국,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밤늦게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취재에 따르면 이운재는 룸살롱에서 접대부와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2차'까지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업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성매매 유흥행위를 하는 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다 이운재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이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진까지 공개되며,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성추문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 기사 더군다나 이 사건은 이동국을 제외하면 모두 30줄에 접어든 고참 선수들이 벌인 행동이었기에 분노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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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은 국민에게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동국은 서면으로 사죄문을 썼다.
2015년 1월 아시안컵이 한창일때 SBS의 풋볼매거진 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운재를 인터뷰할 때 박문성이 이운재에게 2007년 아시안컵 당시 음주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이운재는 "그때 당시 사건은 내가 생각해도 참 바보같은 짓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큰 일이 될 줄 몰랐었다. 그냥 선수들끼리 서로를 독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지금도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많이 아프다."라고 말하며 반성과 후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운재는 관련자들 중 제일 욕을 덜 먹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술 먹고도 미친 선방을 해서 삽질하는 대표팀을 멱살잡고 4강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에...
6. 지도자 경력
6.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3~2016)
스페인으로 건너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2013년 12월 10일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2 국가대표팀(이광종호)의 골키퍼 코치로 임명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듣기로는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광종호의 코칭스태프(골키퍼 코치)로 합류해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다. 특히 660분간 무실점으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은 김승규 등의 수비라인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5년 킹스컵에서 오랜만에 모습이 비춰졌는데, 살이 많이 쪘다 (...) 이 대회 온두라스전에서 골키퍼 김동준이 페널티킥 3번을 연달아 막아내는 신기를 선보이고, 이창근이 편파판정을 등에 업은 태국의 일방적인 공격과 슈팅을 모조리 선방한 것으로 보아 코치로서도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 하다.
올림픽대표팀(이광종호, 신태용호) 코치와는 별개로, 2015년부터는 함께 국대에서 활동했던 안정환의 부탁을 받고 청춘 FC의 골키퍼 코치로도 활약 중이다.[25] 1분 9초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 코치 이운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르칠때는 엄격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장난도 많이 치고,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걸로 보인다.
훈련 도중 골키퍼의 부재로 인해 코치인 자신이 직접 슈팅 게임에서 선방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역시 국대출신인지라 나이와 뱃살에 비해 그래도 제법 날렵한 모습. 현역 때의 카리스마와는 다르게 안정환에게 사사건건 구박받는 옆집 아저씨의 풍모를 보여준다. (...)
6.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6)
2016년 3월 9일, 공식적으로 슈틸리케호의 골키퍼 코치로 선임되었으나 리우 올림픽이 끝난 2016년 8월 차상광으로 교체되었다.
6.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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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친정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골키퍼 코치로 선임되었다.# 이는 그의 첫 프로팀 스태프 커리어이기도 하다. 새로 영입한 베테랑 골키퍼 신화용의 리그 내 클린시트 1위에 기여했다.
2018년은 진정한 지도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해가 될 것이다. 세컨드 키퍼로서는 준수한 활약을 펼친 양형모의 입대 공백을 메울 선수가 임대 복귀한 노동건, 김선우인데, 양형모보다는 기량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이들을 과연 어떻게 조련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그의 코칭 능력은 확실히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노동건의 킥력이 진짜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항상 큰 약점으로 지칭받던 골킥 능력이 상당부분 상향되어 지금은 준수한 킥력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용 또한 PK선방에 있어 원래 유명했지만 "수원에 와서 이운재 코치의 코칭이 더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언론에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는 이운재 코치의 선임 후의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그는 선수로써의 능력에 이어 코치로써의 코칭 능력 또한 뛰어남을 증명해냈다.
서정원 감독이 사퇴한 뒤 새 감독인 이임생감독이 새 코치진과 합류한다는 소식과 동시에 중국 25세 대표팀에서 원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후 수원 코치직에서 물러나 중국 25세 대표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7. 여담
상대팀의 응원가가 '''"운재야 운재야 뭐 하니? 골 먹는다!"'''이다. 그런데 아시안컵 음주 사건 이후 골이 술로 바뀌었다...
우직하고 경고 한 번 받지 않을 것 같은 이운재지만, 그도 다이렉트 퇴장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다. 1998년 8월 22일 K리그 부산 대우 로얄즈와의 경기에서 후반 37분 부산 대우의 김재영 선수에게 완전히 뚫려 페널티 박스 밖에서 김재영을 손으로 잡아 쓰러뜨려 심판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았다. 당시 수원은 3장의 교체카드를 사용한 상태였고, 궁여지책으로 공격수였던 샤샤가 골키퍼를 봤다. 일단 이운재의 퇴장으로 내준 프리킥이 있었지만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샤샤가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팀은 1:0 승리.
승부차기에 매우 강하다. A매치 전적만 따져도 무려 4승 1패의 전적을 지니고 있다. 2002년 골드컵 8강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2개를 막아내며 4 : 2 승리를 이끌었고 한일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호아킨 산체스의 킥을 막아내며 5 : 3 승리를 이끌었다. 2007 AFC 아시안컵에서도 8강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2개의 킥을 막아내며 4 : 2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4강전 이라크와의 경기에서는 하나도 막지 못하고 3:4로 패했으며 이게 유일한 패배였다. 그리고 3위 결정전인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6번 키커 하뉴 나오다케의 킥을 멋지게 막아내며 승리를 이끌었다. 다만 와일드카드로 나온 2002년 아시안게임 이란과의 4강전 승부차기에서는 하나도 막지 못하고 내리 5골을 먹혔고, 이영표의 이동국 군대 가라 슛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별명도 다양한 편인데 잘할 땐 갓운재, 운재신이지만 못할 때는 돼운재, 반반무갑 등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2006 독일 월드컵 전까지 2002년 당시 체중으로 감량하는 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힙합 덕후들에게는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 프로듀서 닥터 드레를 닮아 운드레로 불린다. dctribe의 영향이 큰 듯.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그래도 한때 샤프하고풋풋한 시절도 있었다.
수원시에서 잘 나가는 고깃집은 이운재 사인이 걸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26] 수원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생들이 싸게 먹는 곳이 아닌 근당 가격이 좀 나가는 곳에는 정말로 꽤나 많이 걸려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축구 잡지 포포투 인터뷰에서 본인이 사실임을 밝혔으며, 자신의 고기 철학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 때, 술도 상당히 잘 마시는 듯.
그의 강력한 수비 조율 능력에서 기인한 "펀칭 후 패드립"[27] 이라는 특이한 별명이 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내고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한 것은 아내를 위해서 한 것이었으나 아내는 자기한테 한 줄 몰랐다고 한다.
구글에서 영어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를 무슬림이라고 주장하는 블로그를 여럿 볼 수 있다.
이운재가 첼시 FC에서 뛴 것으로 아는 초딩들이 가끔 있다. 수원 시절 유니폼과 비슷했던 것 때문에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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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 이윤아 양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2014년 3월 15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출연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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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부터 AFC에 가입한 호주를 아시아로 친다면 마크 슈워처도 43위로 순위에 오르긴 했다. 그래도 베테랑 프리미어 리거인 슈워처보다 순위가 높은 건 놀라운 일.[2] 단일 연도 최고 순위는 2002년 12위이다. #[3]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설적인 골리 모하메드 알 데아예아의 178경기. 2위는 잔루이지 부폰의 169경기, 3위는 이케르 카시야스의 167경기. 부폰은 계속 경신(...)중이다.[4] 이 시즌에 리그에서 세운 기록은 39경기 29실점인데, 이는 무려 '''실점율 0.74'''에 해당하는 어마무시한 기록이다.[5] 교회에서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6] 다만 김병지도 한 성격 하는 선수다 보니, 이 발언을 듣고 "너의 상태가 얼마나 별로면 내 복귀설이 나올 지경까지 가냐" 며 되치기하기도 했다. 한일월드컵부터 시작해서 수원:포항/서울이라는 소속팀까지 라이벌 구도가 지속돼서 두 선수의 사이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2010년대가 돼서 전남의 수문장을 차례로 책임졌고(나이가 더 많은 김병지가 이운재의 후임 주전으로 들어왔다.) 현재는 슛포러브 영상에 동반 출연하는 등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7] 전남은 이운재가 은퇴한 자리를 놀랍게도 이운재보다 나이가 더 많은 '''김병지'''로 메꿨고 그 김병지는 이운재보다 '''1년 더''' 주전으로 활약했다.[8] 다만 그렇다고 김병지가 경기 때마다 돌출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적지만 가끔 벌어지는 몇몇 상황이 사람들의 인식에 크게 박힌 것. 당연히 김병지가 이런 스타일만 추구한다면 골키퍼로 그렇게 롱런하고 국가대표팀 주전이 되는것도 불가능하다.[9] 이운재와 정반대 특성의 골키퍼가 2010 월드컵 당시 지역예선 포함해서 거의 30점 다되게 실점한 바 있는 세르히오 로메로다. 로메로는 공이 하프라인만 넘어오면 바로 예측해서 공을 막는다. 때문에 코파 아메리카 2011에서 우루과이 상대로 승부차기를 했을 때 '''한 번도 선방을 해내지 못 했다.''' 안 그래도 골키퍼가 이런 스타일이라 수비수의 보좌가 누구보다도 필요한 로메로였는데 그런 로메로한테 제대로 된 수비수가 마스체라노 하나뿐이었으니 '''독일전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10] 이 때, 실축했던 스테보는 후에 수원 삼성에 입단하게 된다. 다만, 스테보가 수원에 오기 반 년 전에 이운재가 전남으로 떠났기 때문에 같은 팀으로 뛰지는 못 했다.[11] k리그에 국가대표 경력을 넣어도 이정도 전적을 가진 골키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전 역사상 승부차기에서 한번밖에 저본 경험이 없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정도?[12] 단 키커의 실축도 포함[13] 당시 대표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3번째 키커까지는 히딩크가 예측한 방향이 맞은 반면 이운재는 3연속으로 방향을 헛짚어서 마음이 착잡했다고 한다. 그리고 4번째 키커는...[14] 야구선수 이치로도 사용한 훈련법이다.[15] 물론 그때는 후보선수가 주전 골키퍼의 부상으로 주전 자리를 꿰찬 정도였지만 직전 경기인 아일랜드와의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끌고 한국의 몇 안되는 공격을 귀신들린 반사신경으로 막아내는 등 단순한 신입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국대에서 자리를 완전히 잡지 못 했던 것이지 카시야스는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어린 나이에 이미 준주전급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도 카시야스는 꽤 훌륭한 수준의 골키퍼였다.[16]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는 아시아 슈퍼컵 경기를 치르러 수원 2군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사우디 클럽과 맞붙었다. 딱 14명(스타팅 11명+서브 3명, 그나마도 전원 후보)만 사우디로 건너갔고 선수교체 3명을 다 쓰기 위해 골키퍼 박호진을 공격수로 투입시킬 정도로 수원 입장에선 별로 비중을 두지 않은 경기였고 그저 이운재 한명만 믿고 갔다고 할 수 있는 상황. 그 경기에서 수원은 한국산 침대의 위대함을 중동의 침대꾼들 앞에 보여주었고(...) 승부차기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필드로 오른 이운재가 사우디 슈터들의 공을 죄다 막아버렸다. 참고로 이 경기가 치러진 건 월드컵이 막이 내린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17] 즉 토너먼트 전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했다는 소리이다.[18] 이 때 실축을 한 선수가 이란의 레전드였던 메흐디 마흐다비키아였다.[19] 이는 이운재의 국가대표 승부차기에서 유일한 패배 기록이다.[20] 토너먼트 내내 0득점으로 승부차기로만 승리/패배하며, 대회가 끝난 뒤 대회 중간에 술을 마시러 간 논란에 휩싸여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도 동시에 실력을 제대로 보여준 덕에 이운재에 대한 까방권도 생겼다.[21] 이 때 마지막에 실축했던 선수는 나오다케 하뉴라는 선수로, 실축 직후 '''한국 선수 누구와 닮았냐는 떡밥으로(...)''' 잠시 인터넷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22] 소속됐을 때의 활약이 마냥 뛰어났던 것은 아니지만, 김병지는 수원의 최대 라이벌 FC 서울에서도 뛴 경력이 있다.[23] 하지만 두 사람의 나이차(3년)를 감안하면 친분이 있다면 보통 형이라 부르는데 김병지에게 이운재가 선배라는 표현을 쓰는걸 보면 아주 친한 관계는 아닐 가능성도 있다.[24] 선배인 김병지를 존중하기 위해서인지 횡설수설하며 말을 흐렸다. 현영민이 김용대가 후반전에 들어간 걸 알면서 왜 그걸 모르냐고 하니깐 옛날 생각 난다며 위협한건 보너스.[25]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A대표팀 코치를 겸하는 신태용의 경우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26] 이 소문을 최불암은 불암콩콩코믹스 남아공 월드컵 편에서 써먹었다. 이운재가 남아공에 도착하자마자 후배들을 데리고 톰슨가젤 고깃집이라는 남아공 맛집부터 도착해서 식당 주인에게 사인을 해 준다는 내용...[27] 유래가 상당히 특이한데 경기 중 수비의 정신줄 놓은 플레이에 상대에게 찬스가 오면 일단 급하게 펀칭하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격앙된 표정과 목소리로 수비수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일이 많은데 그 모습이 마치 패드립 치는 거 같이 격한 모습(...)이라 이런 별명이 붙었다. 이운재의 독일 버전으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맞붙었던 레전드 골키퍼 올리버 칸,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마누엘 노이어가 있다.
분류
- 1973년 출생
- 청주시 출신 인물
-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
-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골키퍼
-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 수원 삼성 블루윙즈/은퇴, 이적
- 상무 축구단/전역
- 전남 드래곤즈/은퇴, 이적
- 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수원 삼성 블루윙즈/역대 주장
- 수원 삼성 블루윙즈/공식 레전드
- 경희대학교 출신
- 여주 이씨